올 상반기 아파트 분양 시장 열기가 뜨겁다. 수도권은 물론 지방도 여전히 높은 청약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분양권 거래에도 수천만원의 높은 프리미엄이 붙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의 주택 시장은 아파트 중심 시장이 되었다. 1990년대 초 신도시 건설과 함께 아파트가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뒤 매년 신규 주택의 80~90%가 아파트로 공급되고 있다. ‘주택은 곧 아파트’란 공식이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도 있듯이 일부 도시국가를 제외하고 이렇게 아파트라는 주거유형에 편중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아파트 선분양제도, 청약제도 등 외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가 있고, 아파트라는 주거양식은 하나의 주거유형이 아니라 주거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다. 주거양식, 주거문화는 그 나라의 지리적 조건, 사회문화, 경제 등 여러 가지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경우 과거 고도성장과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주택부족 문제가 심각했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대규모 신도시 건설과 아파트 공급이었다. 아파트라는 주거유형은 단기간에 대량 공급이 용이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단독주택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싸고 편리성 면에서 우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공급자와 소비자의 선호가 맞물리면서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아파트 중심의 시장이 유지될지 또한 의문이다. 아파트라는 주거양식이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 중에는 편리성 외에도 투자재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다른 주거유형에 비해 거래가 용이하기 때문에 가격상승률도 높고 환금성도 용이하다. 이러한 이유로 상당히 안전한 투자자산으로서의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들이 앞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일본의 아파트 단지의 과거와 현재
일본의 경우, 1990년대의 버블붕괴 이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은 공실이 늘어나고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일본의 현상이 주는 시사점은 충분히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아파트 단지가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이다. 전후 급속한 도시화와 경제의 고도성장을 배경으로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권에 대량의 노동인구가 밀집되면서 심각한 주택부족 문제가 발생했다. 주택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주택공단(55년)이 설립되어, 교외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근로자 서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공급되었다. 아파트라는 주택유형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현대식 주거양식이었다. 싱크대와 식탁이 배치된 부엌과 수세식 화장실, 냉장고 등 전기제품이 설비된 주거공간은 그야말로 서민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을 상징하는 일명 ‘단지족’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1960~1970년대 아파트 단지 거주자의 대부분은 전쟁 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서 20~30대의 젊은 부부 세대가 중심이었다. 맞벌이 부부에서 시작해 자녀가 태어나면서 단지 내 모습은 젊은 세대 층으로 활기가 넘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며 이러한 아파트 단지의 모습은 점점 바뀌고 있다. 7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붐 주니어 세대가 부모에게서 독립하면서, 단지 거주자가 노인 세대 중심인 고령자 타운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최근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의 경우 65세 이상의 노인 세대가 50%를 넘는다고 한다. 단지 주변 상점가도 이전 청과물이나 잡화 상점들의 상당 부분이 접골원이나 개호(介護) 서비스 상점으로 바뀌었다. 거주자의 고령화뿐 아니라 건물도 고령화된 채, 좀처럼 재건축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주택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재건축을 해도 개발 이익을 기대할 수 없으니 주민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또 노인 거주자가 많다 보니 재건축에 대한 의욕도 적다. 1970년대까지는 혁신적인 주거양식 덕분에 젊은 근로자 서민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아파트 단지가, 지금은 공실이 넘치는 고령자 타운으로 전락한 것이다. 인구 감소, 고령화, 1인 가구 증가 등의 영향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응하여, 도시재생기구를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재생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리모델링을 통해 노인 세대에 맞춰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일부 주동은 젊은 계층의 1~2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 아파트 단지 몰락의 시사점
일본의 현상이 앞으로 우리에게도 그대로 나타날 것이라고 보기에는 몇 가지 한계점이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단독주택과 목조주택 선호 성향이 강하다. 1960년대에 신도시 건설과 대규모 아파트 공급 정책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신규주택의 70~80%는 단독주택 유형으로 공급되고 있다. 일본인이 주거양식으로 가장 선호하는 것은 자신의 토지에 정원이 딸린 주택이다. 그리고 버블붕괴 이후 주택 가격이 하락하자, 직주근접(職住近接)을 선호하는 젊은 계층의 도심 회귀가 늘어나고 있다. 같은 값이면 도심 외곽의 자기 집보다는 도심에 가까운 임대주택에 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일본은 우리와 달리 단독주택 선호 성향이 높아서 같은 외곽이라면 아파트 단지보다 단독주택을 선호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미 아파트 단지라는 것이 중심적인 주거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건설되는 아파트는 단지 내 조경과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 넓은 지하 주차장 등 매우 편리하고 쾌적한 주거공간을 갖추고 있다. 우리의 아파트 주거양식은 상당히 진화했고 그만큼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주거유형으로 유지될 것이다.
다만 문제는 앞으로 일본과 같이 주택 가격이 정체되고 인구 감소, 고령화, 1~2인 가구 증가라는 변수들이 심화될 경우, 신도시에 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의 몰락 현상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90년대에 건설된 1기 신도시들은 노후화로 인한 주거환경 문제들이 점점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재건축 또는 리모델링을 통해 변하지 않는 경우 슬럼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단지의 경우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개발 이익이 전제되지 않으면 주민의 동의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더욱이 주민의 상당 부분이 고령자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일본의 아파트 단지 슬럼화의 전형적인 이유다. 이러한 문제들을 생각하며, 향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재생 정책과 주거유형의 다양화 유도라는 정책적 이슈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