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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천하의 YS가 ‘부산의 아들’로 돌아가는 것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속상하게 한다. YS는 대한민국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루 빨리 할 일을 찾아야 한다. 등산은 건강을 위해서만 하고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모범적 시민이 되어야 한다.전인권 <정치평론가> “김 대중 대통령은 독재자다. 우리나라 독재자 중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 ….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독재정권과 싸워 이 땅에 민주주의를 찾는 데 최선을 다하자.”
이는 지난 4월6일 김영삼 전대통령이 퇴임 후 최초로 행한 공개적인 정치 발언이자, 퇴임 후 첫 지방나들이에 나선 경남 통영의 만찬모임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퍼부은 독설이다.
이튿날에는 한 술 더 떴다. “국민이 힘을 합쳐 나라를 바로잡는 데 최선을 다하면 이런 독재자는 하루 아침에 물러날 수 있다”며 김대중 대통령의 하야를 거론하더니, 4월8일 부산에서는 “부산이라 특별히 이 말을 하겠다”고 강조한 뒤 “경상도 사람들이 다 쫓겨나고 (그 자리에) 특정지역 사람들이 갔으며 빅딜이라는 이름으로 부산·경남 지역의 재벌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며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작년 2월 퇴임 후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YS의 화끈한 사자후(?)였다. 만약 역사의 시계가 유신 말기에 머물러 있다면 모든 국민의 가슴이 시원했을 것이다. 그의 발언은 유신타도를 선언하던 그 연설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다만 역사의 시계가 그때로부터 꼭 20년이 흘렀으며, 우리의 정치환경도 상전이 벽해가 되듯 바뀌었으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YS를 수행했던 측근들도 그런 발언이 나오는 순간 표정이 어두워지며 경악했다고 하니 말해서 무엇하랴.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YS 발언은 영남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고 한다. YS는 부산·경남 방문에 앞서 핵심 측근들에게 “다음 정권은 반드시 영남이 되찾아야 한다. 내가 부산에서 사람을 키우겠다”고 미리 공언했으며, “PK는 무주공산이기 때문에 내가 나서면 따라오게 돼 있다”는 정치적 계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정치재개 구상의 실현 여부는 두고 보아야 하겠으나, 그가 김대중 정부를 작심하고 공격한 것은 분명하다.
또한 전두환 전대통령을 비롯한 5공세력도 사실상 정치재개를 선언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전 전대통령은 그의 분신인 장세동씨를 내세워 대구·경북에서 5공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은 이를 간접 지원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또한 강민창 전치안본부장은 “10명 정도 선거에 나가면 우리 중 7, 8명은 당선이 가능하다”고 했으며, 김주호 전농림수산부 장관은 아예 “나도 경남 함안 고향에서 출마한다고 써달라”며 기자에게 특별주문까지 했다고 한다. 바야흐로 전직 대통령들의 정치계절이 찾아온 듯하다.
5공세력의 정치재개는 그렇다치고, YS의 발언과 정치재개 구상을 접하면서 실망과 서글픔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추하게 늙어버린 옛 애인이 아직도 스무살 처녀 때처럼 아름답다고 착각하며 교태의 미소를 던진다고 해도 이처럼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인 YS가 지닌 역사의 무게와 오늘의 발언 사이에 놓여 있는 크나큰 괴리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YS는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마음에 씁쓸함을 남겼으며, 만약 그의 결심이 행동으로 구체화된다면 역사에 씻지 못할 오점을 남길 것이다.
돌이켜 보면 YS는 참으로 큰 복을 타고난 사람이다. 그의 부친 김홍조옹이 생각난다. 김옹은 아들 나이가 60이 다 되도록 ‘민주 멸치’를 공급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다. 그분은 아직도 건재하셔서 이번에도 “야당 시절 비가 내려도 (네가) 밖으로 나가면 날씨가 좋아졌는데 오늘도 날씨가 맑아졌다”고 아들에게 덕담을 하셨다. 세상에는 복도 많지만, 정치인으로서 그런 부친을 둔 것은 참으로 큰 복이다.
YS는 부친의 기대에 부응한 아들이었다. 그는 김옹의 아들에 머물지 않고 부산의 아들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들로, 훌륭한 정치인으로 성공했다. 그것이 어제의 김영삼이었다. 또한 그는 엄혹한 독재의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커다란 정치적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는 참으로 복이 많았다.
복많은 사람이란 평가는 그의 성공이 행운에서만 비롯되었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김영삼의 최대 장점은 정치적 승부에 대한 동물적 감각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신의 특장이며, 그 특장을 바탕으로 한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는 유신정권의 말기에 유신타도를 선언하고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여기가 독재정권과의 승부처’라고 생각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앞으로 나갔다. YS가 가는 길에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79년 5·30 전당대회 ─ YH 신민당 농성 사건─ 제명처분 ─ 부마 민중항쟁 ─ 10·26 등 79년 하반기의 정국을 주도하며 유신체제에 조종을 울린 진정한 주역이었다.
그때의 김영삼은 독재정권 골리앗에 대항해 싸우는 다윗이었으며,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한 마리 사자였다.
그는 정치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인이었으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열화와 같은 국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정치인이다. 그는 많은 복을 타고났으면서도 정의로웠다.
그러나 오늘의 YS는 좌충우돌하고 있다. 그는 지금 총체적 불만을 두서없이 표출하고 있다. 우선 YS는 재임 당시 벌어진 IMF 환란에 대해서 어떤 책임의식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는 그가 정치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망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김영삼 전대통령은 이번 고향방문 연설에서 “재임 5년간 내 자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적 책임이란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면책되는 것이 아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는데 건설부 장관이 “나는 내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면 말이 되는가. 하물며 4000만 국민의 안전과 민생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대통령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IMF 환란으로 수많은 서민의 가정이 파탄나고 실업자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YS가 이것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YS는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고 있다. 그의 발언 내용을 뜯어보면 결코 김대중 대통령을 향한 독설만은 아니다. YS는 야당에 대해서도 상식을 벗어난 방식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YS의 독설 자체가 야당의 존재를 능멸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 옛날의 ‘관제 야당’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1년 넘게 김대중 정부와 대치정국을 이끌어온 거대 야당이다. 그러한 한나라당조차 김대중 정부에 대해 독재정권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YS의 발언은 야당의 공격수위를 훨씬 넘어섰다는 점에서 야당의 발언공간에 혼선을 초래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여야 모두를 ‘물먹이는’ 발언이다.
실제로 YS는 수행한 의원들이 서상목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하자 “아이고 웃기고 있네. 여야가 짝이 맞아서…”라며 정치권 전반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군사독재·쿠데타에 의해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물론 차별화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차별화가 총체적인 부정과 연결돼 있을 때는 듣기 민망한 것이다.
이쯤 되면 YS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분명해 보인다. 그의 발언내용을 시시비비하는 것조차 무의미해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체제부정적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호! 통재라. YS여, 우리의 YS여, 지금 어디로 가시나이까. 쿼바디스!
여기서 발언 당사자가 국민의 사랑을 받던 YS란 사실은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최고 권력에 앉았던 사람들은 퇴임 후 심각한 좌절과 분노를 겪는다고 한다. 지금 김영삼 전대통령은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지금 YS의 처지는 다른 사람의 경우처럼 “그래도 남는 장사를 했다”고 자위할 근거마저 없다. 30년 동안 이 나라 정치의 한 축이었으면서도 이렇게 처참해진 YS를 생각하면, 그에 대한 비판과 상관없이 나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우리네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12년간 영국 총리를 지냈던 마거릿 대처 여사는 퇴임 후 TV 인터뷰에서 “아직도 나는 총리에서 물러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차를 타고 런던 남부의 집에 돌아갈 때는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로 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당시 그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퇴임 후 그녀는 가까운 친척을 잃은 사람처럼 실의에 빠져 있었으며, 불만과 좌절, 분노와 슬픔 속에서 보냈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녀는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총리인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실의와 좌절에 빠졌다.
지금 우리의 YS도 그런 고통과 분노, 좌절과 실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IMF 사태로 표출할 수 없었던 분노가 뒤늦게 폭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YS의 발언은 우리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서는 벗어났다는 또 다른 안도의 징후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YS의 시련과 불만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YS의 고통과 시련은 왜 이런 식으로 표현되는 것일까. 이것은 YS의 퍼스낼리티와 깊은 관련이 있으리라. YS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그는 아들 이미지가 강한 정치인이다. 나는 95년 2월1일자 신문을 보고 약간 놀란 적이 있다.
거기에는 설을 맞아 부친 김홍조옹에게 세배를 한 후, 김옹으로부터 1만원짜리 세뱃돈을 받고 즐거워하는 김 전대통령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사진은 세뱃돈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 모두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김대통령이 그렇게 즐거운 아들 노릇을 한 것은 그때만이 아니다. 그는 92년 ‘대통령 당선자증’을 받아들고 맨 먼저 아버지에게 달려가 “이것 받으려고 지금까지 고생을 했다”는 보고를 했다. 그때의 YS는 장목초등학교 반장에 당선된 김영삼 어린이를 연상케 했다. 사실 YS는 자신의 부친에게 세배하고 문안 전화 드리는 것을 유난히 많이 공개한 정치인이다. 물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런 행태가 한 나라의 어른인 대통령이 되고, 나이 70이 넘은 상황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아들의 마음이 많음을 증명하는 것 아닐까.
아들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다. 그것은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다. YS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당당함이 있다. 그 당당함은 바로 그가 강한 아들 기질을 가졌다는 것에서 나오는데, 그것은 강한 계승자 의식과 권리의식 및 승부근성을 수반한다. 그리하여 그는 이미 중학생 시절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자신을 정의할 수 있었다. 또 그처럼 어린애 같은 순수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아들 기질─그는 외아들이다─은 한 가정과 나라의 살림을 책임지고 관리하거나 어른 역할을 하는 데는 불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면서도 경제정책에 실패한 것은 관리자 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김영삼 전대통령의 실정이 그 자신의 부정부패가 아니라, 주변인물 관리의 실패에서 초래된 것이란 점도 그의 아들 기질과 관련이 있다.
지금도 김 전대통령은 충족되지 못한 아들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투철한 아들 의식은 권리를 주장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타인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데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그리하여 전후좌우를 모두 부정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영남정권 재창출론과 후계자론으로 나타났다. 지금 그는 자신을 이어줄 또 다른 아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YS의 정치재개 여부는 주변상황에 달려 있다. 지금으로선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전직 대통령이란 대한민국 어른의 자리를 팽개치고, 특정지역을 대표하는 정권을 창출하겠다며 ‘부산의 아들’로 돌아가려 한다는 점이다. 그것만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오호! 애재라. YS여, 우리의 YS여, 지금 어디로 가시나이까.
최근 전직 대통령들의 활동 재개와 관련하여 전직 대통령 문화에 관한 논의가 분분하다.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은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란 얘기도 많이 한다. 그는 퇴임 후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과 빈민을 위한 주택건축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국제분쟁 방지를 통해 평화추구와 인권신장 활동 등으로 재임 때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불발되긴 했지만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적도 있다. 왜 우리에겐 이런 전직 대통령이 없느냐는 개탄의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미국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좀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겠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전직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YS의 경우라면 낙동강 수질개선이나 부산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여론 창출 문제에 신경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우리에겐 교육문제, 환경문제, 교통문제, 지방자치 문제, 관료조직 개편문제, 사법개혁 등 시급한 문제가 많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여러 계층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개혁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는 국가권력도 해결하기 어렵다. 국가권력은 이해당사자에게 ‘형식적 평등권’을 보장할 수밖에 없는데, 일부에서는 그 평등권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키려 한다.
이 경우 전직 대통령은 유력한 대안 리더십이 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은 퇴임했으므로 공식적 권력이 아니다. 따라서 전직 대통령은 형식적 평등권을 넘어서서 진정으로 개혁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실질적인 힘을 몰아줄 수 있다. 전직 대통령들이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한 가지씩 맡아준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밝아질까. 그러다가 자신이 총애하는 후배 정치인을 슬쩍 도와준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전두환 전대통령은 국민화합에 관심이 많다니 말로만 국민화합을 외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해당 지역민들과 더불어 국민화합에 신경을 쓴다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화합을 위한 민간단체를 만들어도 좋고 상대지역 주민과 공동사업을 펼칠 수도 있다. 물론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겠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갈등은 잠시요, 커다란 명예가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은 퇴임 후에도 병정놀이에 바쁘다. 패거리를 지어 이리 저리 몰려다닌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한나라당 지도부와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면서 한나라당 의원이나 재임 당시 청와대 비서진을 상도동 자택으로 불러 안방정치를 하더니, 결국 이런 일을 벌이고 말았다. 전두환 전대통령 역시 골프니, 등산이니, 법회니 하면서 세 과시에 여념이 없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마지막으로 김영삼 전대통령에 대해서 한마디 해야겠다. 지금 세상에선 YS에 대한 원성이 드높다. “IMF 경제위기를 초래한 책임자로 고통받는 국민을 생각하며 자숙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지역정서에 영합해 정치를 재개하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이란 참여연대의 성명은 절대로 일부의 주장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한국 민주주의와 YS를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YS가 가졌던 아름다움을 숨죽여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건드리면 깨져버리는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 애정과 아름다움에 더 이상 상처를 내서는 안 된다.
천하의 YS가 겨우 부산의 아들로 돌아가는 것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속상하게 한다. YS는 대한민국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루 빨리 할 일을 찾아야 한다. 등산은 건강을 위해서만 하고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모범적 시민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YS가 영원히 사는 길이다. YS여, 우리의 YS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지금 가시는 그 길은 길이 아닙니다. |
첫댓글 나이가 들면 철이 든다고 하던데 오히려 자신을 망가뜨리는 YS를 보며, 훗날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ㅠ 8년 전의 글이라서 최근의 YS를 평가하는 데 참고가 될 것 같아 올렸습니다...강삼재가 무죄로 풀려난 뒤 기자가 안기부 돈 1천억의 출처와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자 "어~ 덥다!"로 답하던 YS였습니다..그런 YS가 통일의 선구자이자 평화의 전도사 김대중을 비판하는 자체가 코미디이지요..
지난날 민주화 운동을 했던 YS가 맞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노망이라는말이 왜 생겼겠습니까?
코미디프로에 출연하라고 등좀 떠밀어줄까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