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 엘리아십(Eliasib)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유다스(Judas)가 대제사장직을 승계했다. 유다스가 죽자 그의 아들 요하난(Johanan)이 대제사장이 되었다. 요하난의 동생 예수아(Jesus)는 페르시아 왕의 군대장관 바고세스(Bagoses)의 친구였는데, 바고세스는 예수아에게 대제사장직을 빼앗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바고세스의 후원을 믿고 예수아는 성전에서 요하난과 말다툼을 벌였고, 요하난의 분노를 사게 되어 살해되었다. 바고세스는 예수아의 살해소식을 듣고 즉시 유대로 와서, “네 놈들은 성전에서 살인을 할 정도로 뻔뻔하단 말이냐?”라고 소리치며 성전에 들어가려 하였다. 이에 유대인들이 바고세스를 제지하자, 그는 “내가 성전에서 살인한 자보다 깨끗하지 못하단 말이야?”라고 반문한 후, 성전에 들어갔다. 바고세스는 유대인들에게 매일 상번제를 드릴 때에 숫양 한마리 당 50세겔(or 드라크마)의 세금을 내라고 명령했고, 이 세금은 무려 7년 동안 지속되었다. 살인사건으로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인들에게 포로가 되었고, 성전은 이방인들의 출입으로 더럽혀졌다.
요하난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야두아(Jaddua)가 대제사장직을 승계했다. 야두아에겐 므낫세(Manasseh)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한편,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 다리우스 3세(BC336~300)가 사마리아총독으로 파견한 산발랏(Sanballat)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구다인(Cuthean) 출생이었으나 족보를 따지면 사마리아인도 되었다. 산발랏은 정략결혼으로 그의 딸 니카소(Nicaso)를 늙은 므낫세에게 아내로 주었다. 이때에 마케도니아(Macedon) 왕 필립(Philip:BC359~336)이 오레스태 가문 출신인 케라스테스(Cerastes)의 아들 파우사니아스(Pausanias)의 반역으로 에게(Aegae)에서 살해당하고, 그의 아들 알렉산더(Alexander:BC336~323)가 왕위에 오른 것은 바로 이무렵이었다.
한편, 예루살렘의 장로들은 므낫세가 이방여자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야두아와 함께 대제사장직을 맡고 있음을 매우 언짢게 여기고 므낫세와 언쟁을 벌였다. 대제사장 야두아도 백성들과 함께 므낫세에 대해 분노했으며, 그를 제단에서 쫓아냈다. 그러자 므낫세는 장인 산발랏에게 가서 “제가 장인의 딸인 니카소를 사랑하지만 제사장직을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직은 저의 나라에서는 최고의 영예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의 집안에서도 쫓겨나기 싫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산발랏은 므낫세가 니카소를 아내로 데리고 있으면 제사장직을 계속 누리게 해주고, 아울러 자기가 다스리고 있는 사마리아의 총독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산발랏은 사마리아에서 가장 높은 그리심산(Mount Gerizzim)에 다리우스 왕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성전과 같은 성전을 지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므낫세는 산발랏의 약속에 매우 흥분되었고, 다리우스 왕이 직접 대제사장직을 준다는 제안에 장인과 함께 살았다. 산발랏은 예루살렘백성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 돈을 주고, 경작할 땅을 주고, 거주할 땅까지 주었는데, 그들은 여전히 므낫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리우스 왕이 알렉산더가 헬레스폰트 해협을 건너 그라니쿰 전투에서 페르시아군대를 무찌르고 계속 진격 중이라는 소식을 접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이에 다리우스 왕은 마게도니아인들이 전아시아를 공격하여 손아귀에 넣기 전에, 이를 막아보기 위해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잇수스(Issus)에서 전투를 하였다. 그러나 대패하여 왕은 수도를 버리고 도망을 쳤고, 왕의 모친과 처자식들은 모두 알렉산더의 포로가 되었다. BC330년6월 다리우스 왕은 자신의 부한 베수스(Bessus)에게 암살당하면서 페르시아는 끝을 맞았다. 다리우스 3세를 추격하던 알렉산더는 다리우스의 시신을 확인하고, 왕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이어서 알렉산더는 수리아를 침공하여 다메섹을 점령하였고, 시돈을 장악한 후에는 두로를 포위하였다. 알렉산더는 이때 유대의 대제사장 야두아에게 서신을 띄워 원군과 물자를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제사장 야두아는 다리우스 왕에게 반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였기 때문에, 다리우스 왕이 살아 있는 한 이 맹세를 깨뜨릴수 없다는 답신을 보냈다. 알렉산더는 힘들여서 두로를 함락시키고, 일을 마무리한 후에 가자(Gaza)를 공격하였다.
한편 산발랏은 자기의 뜻을 펼 수 있는 호기가 왔다고 생각하고, 다리우스 왕을 배반하고 부하 7천명을 거느리고, 두로 공략을 시작하고 있던 알렉산더 왕에게 가서 말했다. “제겐 야두아 대제사장의 동생인 므낫세이라는 사위가 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성전과 같은 성전을 소유하기를 갈망하는 저의 백성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대인들의 힘을 둘로 분산시켜 놓으면 왕께도 유익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국가가 한 마음으로 연합이 되어 있으면 반역을 꾀할것 아닙니까? 전에도 이 때문에 앗수르 왕들은 곤욕을 치르곤 했습니다.” 이에 알렉산더 왕은 산발랏에게 성전을 지으라고 허락을 했다. 산발랏은 온갖 심혈을 기울여서 그리심산에 성전을 지었으며, 므낫세를 제사장으로 임명했다. 산발랏은 자기 외손자들이 제사장의 영예를 얻게 될 것이 무엇보다도 즐거웠다. 그러나 알렉산더 왕이 두로 공략 7개월이 끝나고, 이어서 가자 공략을 시작한지 2개월이 지난 후에 산발랏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편 알렉산더는 가자를 함락시킨 후 즉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대제사장 야두아는 백성들에게 자기와 함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간구의 기도를 드리라고 지시했다. 그가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같이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라. 예루살렘을 치장하고 성문을 열라. 백성들은 흰 옷을 입고, 너와 제사장들은 제사장 옷을 입고 왕을 영접하라. 내가 너희들을 섭리로 보호할 것이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 야두아는 알렉산더 왕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을 알고 제사장들과 주민들을 거느리고 행렬을 지어 나갔다. 이 행렬은 장엄했으며 다른 민족들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 행렬은 사파(Sapha)라는 곳까지 다다랐다. 사파는 헬라어로 번역하면 전망(prospect)이라는 곳이다. 이곳에 서서 예루살렘과 성전을 내려다보면 전망이 무척 좋았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더 왕의 뒤를 따르는 베니게인들과 갈대아인들은 왕이 화가 났으므로 도시를 약탈하고 대제사장을 찢어죽이도록 허락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와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알렉산더는 흰 옷을 입은 백성들과, 자주색과 주홍색의 옷에다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진 금패가 달린 모자를 쓴 대제사장의 모습을 보고는, 손수 가까이 나아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먼저 대제사장에게 안부를 물었다. 유대인들은 모두가 한 목소리로 알렉산더 왕을 문안하고 그를 빙 둘러쌌다. 종군하고 있던 수리아의 왕 외에도 여러 지역의 왕들과 병사들은 알렉산더 왕이 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가 정신이상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때 파르메니오(parmenio)가 알렉산더 왕에게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왕을 찬양하는데 왕은 어째서 유대인의 대제사장을 찬양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알렉산더 왕은 이렇게 답변하였다. “나는 대제사장에게 경배한 것이 아니라, 그를 대제사장으로 삼으신 하나님께 경배한 것이네. 내가 마게도냐 디오스(Dios)에 있을 때, 꿈에 이 사람이 이런 복장을 한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일세. 그때 내가 어떻게 하면 아시아를 제패할 수 있을까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을 때 이 사람이 나타나더니, 자기가 군대를 인도해서 페르시아를 정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지체하지 말고 즉시 바다를 건너가라고 나를 격려했었네. 그 후로 나는 그런 복장을 한 사람을 본 적이 없네. 그런데 이제 그 복장을 한 이 사람을 보고 내가 꾸었던 꿈을 회상해 보니, 내가 군대를 이끌고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인도였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것일세. 따라서 나는 앞으로 다리우스 왕을 격퇴하고 페르시아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며, 내 마음의 소원은 무엇이나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네.”
알렉산더는 대제사장에게 자기의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에 대제사장은 알렉산더 왕과 나란히 말을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했다. 알렉산더 왕은 성전에 올라가 대제사장의 지시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을 매우 존중하였다. 한 헬라인이 페르시아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다니엘의 예언이 적혀 있는 성경 「다니엘」를 보게 된 알렉산더 왕은 그 헬라인이 바로 자기라고 생각했다. 이에 마음이 흡족해진 알렉산더 왕은 백성들을 해산시켰다. 그 다음날 그는 다시 백성들을 불러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대제사장은 자기들은 조상들의 율법을 지키기를 원하며, 매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에 내는 조공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알렉산더 왕은 원하는 대로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백성들은 또다시 바빌론과 메대에 사는 유대인들도 그들 고유의 율법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하자, 알렉산더 왕은 그것도 쾌히 승낙했다. 알렉산더 왕은 유대인들이 자기의 군대에 들어오면 조상들의 율법대로 살 수 있도록 허락할테니, 누구든지 원하면 쾌히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많은 유대인들이 알렉산더 왕의 군대에 들어가서 전투를 하겠다고 자청했다.
알렉산더 왕이 12년간 나라를 다스리다 죽자(BC323) 그의 왕국은 분열되었다. 왕의 부장들은 서로 세력 확장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우느라 전쟁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따라서 전에는 수리아전역이 낙원의 대명사처럼 불렸으나 이집트를 손에 넣은 톨레미 때문에 그 반대가 되고 말았다. 톨레미는 예루살렘도 정복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거짓과 사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는 안식일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것처럼 가장하여 예루살렘에 들어온 후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성을 점령하였다. 유대인들은 방심하고 있다가 대항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유대인들이 톨레미를 의심하지 않은 데도 원인이 있지만, 안식일은 안식과 쉼의 날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톨레미는 유대산지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인근 지방과 그리심 산 주변의 주민들을 애굽에 포로로 잡아간 후에 그 곳에 강제로 정착시켰다.
그러나 세겜에 있는 그리심 산에 세워진 사마리아인들의 성전은 계속 그대로 남아 있었다. 따라서 예루살렘 주민으로서 부정한 것을 먹었다거나, 안식일을 범했다거나, 그 외의 이와 비슷한 일들로 정죄를 당한 유대인들은 세겜으로 도망가서, 자기는 부당하게 정죄 당했다고 핑계를 늘어놓았다. 대제사장 야두아가 죽고 그의 아들 오니아스(Onias)가 대제사장직에 오른 것은 이 무렵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