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인왕산·도봉산·관악산·남산 등등 서울에는 산도 많다.
세계 유수의 대도시와 차별 짓는 큰 특징이다. 하지만 산이 주는 즐거움보다 산이 주는 버거움이 더 크게 느껴져 쉽게 걸음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청계산 자락의 서울대공원 산림욕장은 버거움 없이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마음 편히 나서도 좋은 곳이다.
깊고 푸른 산림욕장
서울대공원은 은근히 재미나다. 10대들은 친구들과 서울랜드를 찾아든다.
그들은 비명 같은 탄성에 제 답답한 속내를 털어낸다. 후련하겠지.
20대 초반에는 연인과 짜릿한 롤러코스터의 스릴을 탐한다. 연애의 낭만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은 미술관 옆 동물원이나, 동물원 옆 미술관을 걷는다. 간혹 혼자 걷는 걸음도 있다.
동적이거나 정적인 어떤 것들은 다른 듯 닮아서 마음의 감성을 ‘터치’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그렇겠지. 다양한 계층의 다채로운 눈높이가 조우한다.
물론 연령의 고정관념은 어김없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그 공간의 경계를 넘나든다.
때로는 노부부와 서울랜드의 조합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삶을 마주하거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서울대공원 산림욕장을 찾는다.
이리 말하면 산림욕장은 흰머리가 지긋한 어르신이나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 마흔 살을 전후로 인생의 진지한 결단을 내려야 할 나이에 찾아가는,
의미심장한 성지처럼 들린다. 틀리지 않다. 시선이 깊어질수록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진다.
그리고 그 시선은 나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또한 그렇지만도 않다.
삶과 눈을 맞추고 자신을 추슬러보는 데 나이가 유리하기야 하겠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다.
그 방식 또한 미간에 내 천(川)을 그리고서 심각한 표정으로 묵직한 걸음을 내디뎌야만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역시 연령의 고정관념은 어김없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숲에서 환호하고 치유된다.
서울대공원 산림욕장은 지난 2007년 제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숲길’로 선정됐다.
수상이 아름다움의 보증은 아니어도 그만 한 이유는 있게 마련이다. 산림욕장을 걷다보면 어렵잖게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몸이 수긍하고 마음이 이해한다. 서울에는 산이 참 많다. 사방이 푸르고 기운차니 먼발치의 위안이다.
하지만 정작 걸음 닿기 쉽지 않아 마음을 닫는다.
즐겁다기보다 오르는 버거움이 더 크게 느껴지니 그 높은 산길을 오를 여력이 없다.
서울대공원 산림욕장은 조금 다르다. 산림욕장이지만 ‘숲길’이다. 정상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능선을 따라 걷는다.
연약한 영혼도, 나약한 육신도 모처럼 조금은 욕심을 부려봐도 좋겠다.
상념을 즈려밟으며
숲길이지만 또 먼 길이다. 산림욕장의 숲길은 샛길을 포함해 약 7.4킬로미터에 이른다.
서울대공원을 병풍처럼 두른 청계산의 능선이다. 일주에는 두 시간 30분에서 세 시간 정도가 걸린다.
북악산을 오르내리는 시간과 맞먹는다. 그래도 숲길이라니 천천히 마음의 상념을 즈려밟으며,
모조리 걸어보라 말하고 싶다. 열한 개의 테마가 있으니 지루하지 않다.
테마에 따라 숲을 즐기며 걷노라면 세 시간은 그리 무리한 걸음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산이 아닌 숲길이 아니던가. 청계산은 관악산이나 인왕산처럼 거친 바위산이 아니다.
조붓한 흙길의 매혹이다. 게다가 470여 종의 수종과 35종의 동물들이 함께 걷는다. 구간별로 나눠 걸을 수도 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입구로 들어와 왼쪽과 오른쪽 어느 방향이든 무관하다.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동물원 호주관 뒤편에서 남미관 샛길까지가 첫 구간이다.
다음에는 저수지 샛길, 명수사 샛길, 산림전시관까지 차례로 네 개의 구간으로 구분 지어진다.
산림욕장의 약도에는 남미관 샛길까지의 첫 구간이 약 60분, 저수지 샛길까지의 두 번째 구간이 약 50분,
명수사 샛길까지의 세 번째 구간이 30분, 산림전시관까지의 마지막 네 번째 구간이 약 35분 걸린다 적혀 있다
걸음마다 심정마다 시간은 조금씩 늘고 줄지만 그 비율은 대동소이하다.
첫 구간과 마지막 구간의 초입은 6부 능선까지 올라야 하니 약간은 숨이 찰 법하다.
그러고 나면 넘실대듯 적당한 등고의 차가 외려 산행의 적절한 즐거움을 안긴다.
또한 각 구간의 샛길은 청계산의 능선에서 동물원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원하는 걸음만큼 걷다가 샛길을 따라 내려오면 산행의 시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네 개 구간이 간직한 열한 개의 테마 숲도 거창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저 숲길을 걸으며 오감으로 누릴 수 있는 자연과의 교감법이다.
다만 그 구간에 따라 계절의 묘미를 살려볼 수 있다.
봄에는 첫 구간의 ‘선녀못 있는 숲’에서 ‘아까시나무숲’까지가 좋다.
동네 아낙들의 빨래터였던 선녀못은 밤에는 남몰래 몸을 씻는 곳이었다.
정자와 벤치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아까시나무숲은 5월에 걸으면 좋겠다.
그 달콤한 향을 어찌 그냥 스쳐 지나랴.
여름에는 첫 구간의 마지막 ‘자연과 함께하는 숲’에서 ‘쉬어가는 숲’까지가 제격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숲에는 꽃창포나 보랏빛 맥문동이 여름꽃을 피운다. 습지도 있어 생태 학습에도 적합하다.
‘얼음골숲’은 산림욕장에서 가장 시원한 계곡이다.
초봄에도 얼음이 녹지 않는다. 피톤치드 효과도 제일이다. 두 숲 사이의 길에서는 인왕산의 산세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생수 한 병, 책 한 권, 수건 한 장
‘생각하는 숲’에서 ‘쉬어가는 숲’까지에는 여름과 가을이 넘나든다.
특히 ‘쉬어가는 숲’과 ‘원앙이 숲’ 사이에 있는 450미터의 맨발 산책로가 두드러진다.
코끝이 찡한 탄산의 청량감이 발끝에서 춤을 춘다.
황토의 촉감은 뜨거운 여름과 가을의 스산함에 따라 다르나 어느 쪽이 낫다 말하기는 어렵다.
맨발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는 소담한 계곡이 기다리고 있다. 그 물에 발을 씻는다.
중간 중간 단풍빛이 고와 산림욕장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은 앞으로도 유효할까. ‘독서하는 숲’에서는 적어도 그 시늉이나마 내어보기를.
시인들의 시가 적힌 목판들 아래 가만히 책장을 넘겨보기를. ‘망경산막’이라는 쉼터의 이름처럼 먼발치 풍경을 바라보면 시상 한 줄이 떠오를 법하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김현승 시인의 노래가 비로소 가슴에 울린다.
밤송이가 열리면 가을은 완연해지던가. 연인과 함께라면 그 애틋한 마음을 ‘밤나무숲’에서 전해도 좋겠다.
밤나무숲에서 사랑을 고백하면 여자도 마음이 약해져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전해진다. 믿거나 말거나 간절하거나다.
겨울은 ‘사귐의 숲’과 ‘소나무숲’ 사이에 짙다.
소나무는 모든 나무(木)의 윗자리(公)에 있어 송(松)이라 했던가.
늘 푸름이 겨울의 한기마저 밀어낸다.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또 물어 무엇하랴.
그러기로서니 편의로 구분한 계절의 색깔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
숲은 그 자체로 의연한 기백과 유연한 심령을 갖는다.
봄에는 박새와 검은머리방울새가, 여름에는 오색딱따구리와 어치가,
가을과 겨울에는 개똥지빠귀가 숲의 여러 구간을 떠돌며 계절의 노래를 전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낯선 이와 격의없이 인사한다. 이들은 숲의 예절이라도 따로 배우는 것일까.
가끔씩 그저 김밥 한 줄, 생수 한 병, 책 한 권에 수건 한 장을 챙겨 떠나는 나도 덩달아 인사한다.
평온한 마음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반갑고 기꺼운 전염이다.
나무가 뿜어내는 유용한 기운, 피톤치드는 오전 열 시에서 열두 시 사이가 가장 좋다.
아침 일찍 차비를 할 일이다. 혼자 걸으면 저 혼자 떠도는 생각을 잡고 두 사람이 걸으면 마음을 기대겠지. 부디 걸음이 길을 쫓지 않기를.
첫댓글 이런 더운 날씨에 딱 맞는 코스와 멋지고 한가로운 걷기길입니다
동문님들 많이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