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역에서 만난 할아버지 / 공선옥
이따금 차를 몰고 도시로 나갈 때가 있다. 시골의 국도나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그런대로 안심하고 차를 몰 수 있다. 그런데 도시의 입구에 딱 들어설 때부터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도대체 내 차를 어디로 집어넣어야 할지, 어떻게 내 차의 앞머리를 들이밀어야 할지. 나는 내가 가야 할 목적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직 달리는 저 차들 속으로 어떻게든 내 차를 끼워 넣어야 한다는 오직 그 한 가지 일념으로 두 눈을 잔뜩 부릅뜨고 입술을 앙다물곤 한다. 나는 언제나 출발이 늦고 속력이 낮은데 조금만 꾸물대도 뒤에서 요란한 경적 소리가 나고 그 소리는 나를 겁나게 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나같이 어쭙잖은 촌뜨기 기질을 가진 사람하고는 도대체 맞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중략)
십이월 중순 무렵 서울에서 공부하는 남편이 방학을 맞아 시골집으로 온다기에 기차 시간에 맞춰 역으로 나갔다. 밤 기차였으므로 큰 아이들은 재워 놓고 막내만 차에 태워서 나갔다. 막내아들 녀석은 오밤중에 자다가도 내가 없으면 난리를 치며 울기 때문이다.
곡성역사는 지은 지 한 오십 년은 족히 넘었을 낡디낡은 건물이다. 지금은 거개가 알루미늄 섀시라는 것으로 창문과 출입문을 해달았지만 곡성역사의 문들은 모조리 나무틀 문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영화같은 데서 가끔 보게 되는 사각형의 나무틀 안에 또 나무로 가로세로 십자 모양으로 가로질러 사 등분된 유리창이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다. 게다가 아이엠에프 시대라 그런지 예전에 쓰던 장작 난로를 가져다 대합실 한가운데에 설치해 놓았다. 난로 안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장작이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난로 주위에 낡은 나무 의자들이 빙 둘러서 놓여 있었고 거기 할아버지 한 분이 고즈넉이 앉아 불을 쪼이고 있었다. 남편이 탄 기차가 오려면 한 이십 분가량 더 기다려야 했으므로 나는 울 아기와 함께 할아버지 맞은편에 앉았다. 역사 안에는 할아버지와 우리 모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표 파는 역무원이 매표소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뿐.
할아버지의 입가에 낯익은 미소를 띠며 우리 아기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어디 가세요?”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서울 아들네.”
“어디 사세요?”
“목사동 대곡.”
대곡이라면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보성강 건너의 마을이다.
“거기서 여기까지 오시기가 여기서 서울 가는 길보다 더 힘드셨을 텐데요.”
시골의 교통편이라는 게 말할 수 없이 옹색하다는 것을 잘 아는 나는 할아버지가 대곡에서 여기 읍내 기차역까지 오신 그 여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에 이상하게 가슴이 아렸다. 더군다나 할아버지는 시골 노인네들 특유의 짐들을 바리바리 싸 짊어지지 않았는가. 나에게는 일면식도 없었던 할아버지지만,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나에게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그 할아버지가 시골의 우리 부모님들하고 똑같은 모습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다 열거해서 무엇하랴. 그 흙빛 같은 살빛이며 나뭇등걸 같은 손, 그냥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나는 그래서 가슴이 아렸다. 내 부모님 같아서, 그 영감님이 그냥 내 부모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게 느껴져서. 그런 내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할아버지는 예의 그 화롯불같이 따스한 미소를 입가에 묻히신 채로, “괜찮어.” 했다.
‘괜찮어. 자식 보러 가는 길인데 뭐가 힘들어? 하나도 안 힘들어.’ 하지 않은 뒷말은 아마 틀림없이 그런 말들이었을 것이다.
“대곡에서 어떻게 오셨는데요?”
“대곡에서 석곡 가는 차가 다섯 시. 네 시 반에 저녁 먹고 다섯 시 차 타고 석곡 왔지.”
“그래서요?”
나는 침을 꼴딱 삼켰다.
“석곡서 읍내 가는 버스가 일곱 시에 있어서 기다렸다가 타고 왔지.”
할아버지는 천진하게 말했다. 천진무구하게.
“하나도 어려울 것 없어. 차 시간에 맞춰 타고 왔지 뭐.”
“서울 가는 건 몇 시 기차예요?”
물으면서도 나는 자꾸만 왜 이렇게 니 아부지 탄 기차가 안온다냐고, 말할 줄도 모르는 아들 녀석에게 푸념처럼 말을 건넸다. 자꾸 역사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 할아버지와의 대화에 슬슬 재미가 일고 있었다.
“열한 시 사십 분.”
세상에나! 일곱 시 삼십 분에 역에 도착하여 그때부터 아홉 시 사십 분인 지금까지 줄창 이 자리에 이대로 앉아 계셨단 말인가. 그러고도 또 앞으로도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아버지가 타고 갈 기차가 온다. 나는 그만 억장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아니다. 눈물이 다 나올 것만 같았다. 오후 네 시 반에 저녁을 잡숫고 출발하여 대곡에서 석곡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석곡에서 곡성 읍내까지 또 버스를 타고 와서 읍내 터미널에서 역전까지 또 짐을 짊어지고 걸어와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장작 난로 앞에서 기차를 기다리시는 할아버지. 가슴이 턱 막히는 어떤 느낌. 그것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아,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 여유, 그 너그러움, 그 인내, 그 푸근함, 그 고요. 내가 도시 나가기를 무서워하는 이유가 바로 도시에는 그런 것, 그런 느낌, 그런 것을 가진 사람을 만나 볼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리라.
_출처 『국어교과서 작품읽기, 고등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