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대한 산봉우리가 싹둑 잘려나갔다. 왜일까?...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 석회석을 캐내는 충북 단양의 한일시멘트 광산이다. ⓒ 신병문
커다란 산봉우리가 싹둑 잘려나갔다. 잘린 산봉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곳은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 석회석을 캐내는 충북 단양의 한일시멘트 광산이다. 갱도를 파고들어가는 석탄과 달리, 대한민국의 석회석 광산은 산봉우리부터 통째로 잘라내는 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 도시의 아파트 숲은 강원도의 산봉우리가 잘려나간 대가이다. ⓒ 최병성
하늘 높이 솟아오른 도심의 아파트. 콘크리트 덩어리인 아파트 숲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파트가 올라간 만큼, 아파트 숲이 더 넓게 펼쳐지는 만큼, 강원도와 충청북도 어딘가의 산봉우리가 잘려나간 것이다.
우리는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에 살고,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걷고, 시멘트로 지어진 건물의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 하루 24시간을 시멘트와 가까이 하면서도 우리는 시멘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알지 못한다. 시멘트가 어디서 오는지 한번 살펴보자.
우리나라엔 강원도 동해에 쌍용양회, 삼척에 삼표시멘트, 옥계에 한라시멘트, 영월에 한일현대시멘트가 있고, 충북 단양에 한일시멘트와 성신양회가 있다. 삼표시멘트가 1957년, 쌍용양회가 1962년에 시멘트공장을 시작했으니, 대한민국의 시멘트공장 역사는 약 60~70년에 이른다.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60~70년간 석회석을 채굴해온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광산 모습은 어떨까?
잘려나간 백두대간
▲ 백두대간 중심부인 자병산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 최병성
강원도 동해와 정선 사이에 있는 자병산의 한라시멘트 광산이다. 무릉계곡 입구에 있는 동해 쌍용시멘트를 지나 백복령 고개를 굽이굽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다른 석회석 광산과 개발 형태가 다르다. 대부분의 석회석 광산은 하나의 봉우리를 싹둑 잘라내는 형태로 산봉우리부터 아래로 채굴해 내려온다. 그런데 한라시멘트는 산봉우리는 살려두고 측면을 끝없이 채굴한다. 이렇게 자병산의 가로 3km가 훼손됐다.
영월 배거리산에 있는 한일현대시멘트 광산 길이가 1.3km, 영월 주천면 다래산 아세아시멘트 광산 길이가 1.7km이고, 단양의 한일시멘트와 성신양회 광산 둘을 합해 4.4km에 불과하다.
한라시멘트의 시멘트 생산량이 많기 때문일까? 아니다. 한국시멘트협회 홈페이지의 시멘트 생산량 자료에 따르면, 한라시멘트의 연간 시멘트생산량은 쌍용양회, 삼표시멘트, 성신양회에 이은 4위에 불과하다. 그런데 석회석 채굴로 인한 산림 훼손 면적은 가장 심각하다.
▲ 한라시멘트 시멘트 생산량. 개별공장 단위로 계산하면 생산량이 거의 골찌라고도 할 수 있다. ⓒ 한국시멘트협회
이유가 무엇일까? 석회석 품질이 낮기 때문이다. 한라시멘트가 능선을 따라 길게 채굴하는 이유는 아래로 깊이 파들어 갈수록 석회석의 품질이 떨어져 시멘트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표피만 채굴하다보니 산림 훼손이 심각해진 것이다.
우리나라가 가진 자원 중 가장 풍부한 것이 석회석이다. 그런데 국내 제철소들은 매년 많은 양의 석회석을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수입한다. 철을 만드는 용광로에 석회석이 투입되는데, 국내 석회석은 품질이 낮아 고품질의 석회석을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시멘트의 발암물질 전환율은 20~30%로 일본(10~15%)에 비해 두 배나 높다. 석회석 성분 중에 좋은 시멘트가 되는 칼슘 성분이 낮고, 발암물질로 전환되는 알루미나 성분이 높기 때문이다.
자병산은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다. 하지만 지금은 복구 불가능할 만큼 망가졌다. 시멘트공장은 석회석을 캐내 돈을 벌었지만, 자병산은 흉물스럽게 망가졌다.
한반도 지형 주변도 망가져
▲ 혹시 만화영화에 나오는 마의 성일까? ⓒ 신병문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한 영월 서강변 한일현대시멘트 광산으로 가보자. 서강이 휘감아 흐르는 배거리산 정상을 싹둑 잘라냈다.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아 보인다. 우측 산봉우리가 남아 있다. 잘린 면이 초록으로 마치 잘 복원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겨울이 되어 초록 잎이 떨어지면 흉물스런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복원을 한 것이 아니라, 등나무 덩굴로 한 여름에만 살짝 가린 것이기 때문이다.
절개된 우측 봉우리를 세어보니 약 25개 층으로 되어있다. 각 층의 가로 면이 좁아 나무를 심어 복원할 수 없고, 등나무 넝쿨로 '눈 가리고 아웅식' 복원 흉내만 낸 것이다. 이 광산은 앞으로 천년, 만년이 흘러도 저 흉물스런 모습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남게 될 것이다.
▲ 채굴한 석회석을 실어나르는 대형트럭들이 매우 작게 보인다 ⓒ 최병성
정확히 20년 전 저 광산 꼭대기를 운전하여 오른 적이 있다. 무려 20여 분을 빙글빙글 올라야 할 만큼 높은 곳이었다. 저렇게 높은 광산이니 사방 어디서든 저 흉물스런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심지어 바람이 불면 먼지 폭풍이 주변 마을로 퍼져 나간다.
한일현대시멘트 광산 발파로 인한 굉음으로 집이 흔들리고, 먼지가 사방에 날린다. 서강이 굽이굽이 휘감고 돌아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곳이지만, 이런 끔찍한 현실 덕에 광산 주변 강가엔 살아가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적다.
▲ 햇살 바르고 아름다운 서강이 흐르는 곳이지만, 시멘트광산으로 인해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 신병문
아름다운 경치 대신 시멘트 분진만
이곳은 충북 단양에 있는 성신양회 광산이다. 성신양회가 1967년부터 공장을 시작했으니 약 50여년간 석회석을 채굴한 곳이다. 둥근 원형으로 중심을 향해 훼손됐다. 이곳 역시 제대로 된 복구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 이 광산 복구 계획은 무엇일까? 시멘트공장에서 하얀 분진이 연기처럼 마구 뿜어내고 있다. 바로 곁은 도담삼봉 관광지인데. ⓒ 최병성
단양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가 남한강에 세 개의 봉우리가 떠 있는 도담삼봉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아가려면 성신시멘트와 한일시멘트공장 앞을 반드시 지나가야만 한다. 시멘트공장에서 발생하는 역겨운 악취는 기본이다. 시멘트공장에서 내뿜는 분진 세례 덕에 목이 따끔따끔하다.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산골의 공기는 꿈도 꿀 수 없다. 차에서 내려 도담삼봉만 흘깃 보고 다시 떠나야 한다. 오래 머물며 아름다운 남한강 경치를 누리기엔 숨쉬기도 고통스럽다.
▲ 도담삼봉이 있는 남한강. 그러나 바로 곁에 성신양회와 한일시멘트에서 시멘트 분진을 뿜어내고 있고, 석회석 광산이 흉물스럽다. ⓒ 최병성
광산 복구는커녕 쓰레기 매립장까지 추진
최근 영월에서는 주민들을 황당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쌍용양회가 지난 1962년부터 채굴한 후 방치해두었던 폐광산에 전국에서 모아 온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쌍용양회'는 영월군 서면 쌍용리에서 시작해 '쌍용양회'라는 회사명을 붙였다. 지금은 쌍용그룹이 해체되었지만, 이곳의 석회석을 파내 시멘트를 만들며 쌍용그룹으로까지 성장했었다.
그러나 시멘트공장을 만들어 쌍용그룹으로 성장하는 동안 쌍용리는 시멘트공장에서 날아오는 분진과 악취로 사람이 살기 힘든 마을로 전락했다.
전국에서 모아 온 쓰레기를 소각하여 쓰레기시멘트를 만들며 뿜어내는 악취와 분진만으로도 견디기 힘든데, 쌍용양회는 폐광산에 산업폐기물 매립장까지 추진 중이다.
▲ 쌍용광산. 이곳에 국내 3번째로 큰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54일간의 장맛비가 며칠만에 빠져 나갔다.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가 위태롭다. ⓒ 최병성
그러나 이곳은 지하에 동공이 발달하는 석회석 지형이다. 그동안 광산을 개발하며 암반 발파를 해와 암반 균열이 우려되는 곳이다. 지난 54일간의 긴 장마로 매립장 예정지 안에 가득 고였던 빗물이 단 며칠 만에 모두 지하로 사라졌다. 이렇게 빗물이 줄줄 새는 지형에 산업폐기물 매립장이라니? 지역 주민들은 물론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까지도 위협받게 된다. 원주지방환경청도 그 위험을 지적했다. 그러나 쌍용양회는 포기하지 않고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심지어 5km 반경 내에 한일현대시멘트와 아세아시멘트가 모여 있다. 여기에 매립장까지 더해진다면 이곳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다.
그동안 시멘트공장들은 석회석을 캐내 부를 축적해왔다. 서울과 전국에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가 쑥쑥 올라가고, 도로를 만들며 화려한 도시들로 성장했다. 그러나 시멘트공장이 있는 마을들은 분진과 악취로 시달리며 진폐증에 걸리고, 흉물스런 광산의 굉음에 시달리며 눈물로 살아가는 퇴락한 마을로 전락했다.
▲ 쌍용양회가 축구장 25개 면적의 국내 3번째로 큰 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 인근에 쌍용양회뿐 아니라 아세아시멘트, 한일현대시멘트 공장이 있다. 주민들은 살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 신병문
주민의 절규...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나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가래를 꺼내고 싶다."
벌써 수년이 흘렀지만, 피눈물로 외치던 주민들의 절규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시멘트 분진으로 인한 가래를 항상 목에 달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뱉고 싶어도, 아무리 뱉으려 노력해도 목구멍 저 안쪽에서 그렁거리며 나오지 않는 가래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었다.
내가 시멘트공장의 환경 개선을 위해 15년 넘게 싸우는 이유다. 쓰레기시멘트 문제는 전 국민의 건강을 위한 일인 동시에 시멘트공장 지역 환경 문제이며, 힘없는 주민들을 위한 정의와 인권의 문제다.
▲ 시멘트공장들은 1450도 고온이라 공해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듯 백연 이외의 비정상적인 환경오염 물질이 계속 배출되고 있다. ⓒ 최병성
단양군의 경우 2014~2018년 5년 동안 비산먼지와 악취 그리고 소음진동 관련 총 66회의 민원이 발생했고, 총 22회의 개선명령과 경고 등의 행정처분이 내려졌다. 영월군은 2018년 6월 한일현대시멘트 악취 발생에 대해 2000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하기도 했다. 동해시는 쌍용양회가 일으키는 비산먼지 등으로 인해 동해항 주민들이 집단이주를 청원하기도 했다.
강원연구원은 "시멘트 생산에 따른 지역의 피해규모 추정"(2017.5.)에서 시멘트공장의 시멘트 생산으로 인해 주변 지역에 연평균 3245억 원의 피해를 야기시키고 있으며, 그 중 정신적·건강적 피해규모만도 약 1192억 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시멘트공장들은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며, 시멘트 판매뿐 아니라, 쓰레기 처리비로 막대한 이윤을 남겨왔다. 심지어 시멘트공장들은 쓰레기시멘트를 만들며 전국의 쓰레기를 치워준다는 이유로 환경부로부터 온갖 배출가스 특혜를 누려왔다. 전 세계 시멘트 공장 중에 대한민국 시멘트공장과 같은 배출가스 특혜를 누리는 곳이 없다.
그 덕에 '전국의 오염물질 배출량 다량 배출사업장' 상위 20개 중에 쌍용양회 동해공장(8위), 삼표시멘트(10위), 한라시멘트(11위), 한일시멘트(13위), 성신양회(15위), 아세아시멘트(17위), 한일현대시멘트(19위), 쌍용양회 영월공장(20위) 등 총 8개 공장이 포함되어 있다.
산업국가인 대한민국에 공장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10개도 안 되는 시멘트공장들이 전국의 굴뚝자동측정기(TMS)가 부착된 사업장에서 배출하는 총 대기오염 중 무려 22%를 차지하고 있다.
▲ 시멘트공장 뒷편 산엔 시멘트 가루가 하얀 눈처럼 덮여 있다. 이러고도 TMS는 항상 정상이다. 공장 너머의 광산들이 흉물스럽다. ⓒ 신병문
더 심각한 문제는 지난 기사 <이상한 눈이 펑펑...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해요>(http://omn.kr/1ql8b)에서 보았듯이 시멘트공장들은 굴뚝자동측정기(TMS)가 없는 곳에서도 온갖 분진들을 뿜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불법으로 뿜어낸 분진들을 모두 포함한다면 시멘트공장들의 환경오염 배출 순위는 더 올라갈 것이다.
언제까지 시멘트공장의 환경오염을 방치할 것인가? 시멘트 공장들은 일부 석회석 광산에서 복원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채굴 종료 후 복원이 가능한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손가락을 넣어 가래를 꺼내고 싶다는 주민들의 절규가 멈출 수 있도록 정부와 관계 기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첫댓글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가래를 꺼내고 싶다."는 주민들의 절규가 멈출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