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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죄가 사해진 후로 모든 것이 변하였습니다
빅터 아부카이 목사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던 어린 시절 저는 빅터 아부카이 목사이고 44세입니다. 제 아내의 이름은 수산이며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아들은 22살로 목사이며 딸아이는 19살로 간호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제 딸이 공부를 마치고 구원받게 되면 의료 선교단에서 일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제 부모님은 기독교인이며 침례교의 신도입니다. 아버지도 목사이셨는데 지금은 73세가 되셨습니다. 저는 신앙을 갖고 계신 부모님을 두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제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주일마다 주일학교에 가려고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자라는 동안 저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게 한 이유이고, 구원받기 어려웠던 이유입니다.
저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의 일은 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제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싫어하셨기 때문입니다.
1975년, 부모님은 제 구원에 대해 염려하고 계셨기 때문에 제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구세주로서 예수님을 받아들이라며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수년이 지난 뒤 제 삶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제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1978년에 저는 다시 예수님을 제 구세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해 이후로 저는 제가 구원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사가 되었으나 1979년,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침례 신학원에 등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학원에서 제 아름다운 아내 수산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동급생이었고 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저는 5년간의 공부 끝에 신학 학위를 받고 졸업했습니다.
1985년 졸업하기 한 달 전, 작은 침례교 협회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전담 목사가 되어달라는 요청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 아이들을 포함하여 30명의 신도가 있는 작은 교회의 목사로서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신도들이 가난했기에 교회는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제 월급도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1년 후에는 교회가 성장하여 100명 이상의 신도가 모였고 교회 건물도 콘크리트 건물로 다시 지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신학 교수들과 다른 목사님들, 신도들로부터 명성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좋은 목사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거의 20년 동안 많은 교회들에서 일했던 이유입니다. 그것은 제게 있어 명예였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저를 추천하였고 목사가 없는 교회에 소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1999년, 저는 전담목사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일을 수년 동안 하는 것에 싫증이 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쉬고 싶었고 하나님께 다른 일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그만두지 않기를 바랐지만 저는 사람들에게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그만두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시간 동안 제 마음속에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고, 제 마음이 제 미래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대학을 진학할 때 일어날 일들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저는 제가 아이들을 부양할 수 있을지, 그리고 제가 나이가 들면 제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죄로 가득 찬 제 모습에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쉽게 화를 내었는데 특히 제 아내에게 화를 자주 내었습니다. 아내는 자주 울었고 저는 다시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아내에게 계속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도 제 모습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제 모습에 지치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 양심은 죄 때문에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사업 실패로 죽고만 싶었던 그 해저는 목사 일을 그만두고 1999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시작한 첫 사업은 기독교 학교였는데 아내는 첫 교사였습니다. 두 번째 사업은 가금류나 닭의 알 생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사료 공급업을 하였습니다. 저는 소를 키우는 사업을 하는 큰 회사에 사료를 공급하였습니다.
그때 그들은 15,000마리의 호주산 소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이익을 냈으나 얼마 있지 않아 환율이 올라 소를 수입했던 회사는 손실을 입었으며, 소의 수입량 또한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사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제가 마지막으로 한 사업은 유기농 비료업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민다나오 섬 전체 지역에 유기농 비료를 독점적으로 공급하였습니다.
저는 제 돈과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투자하였습니다. 첫 해에는 경영 성과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품을 선전하기 위해 아내와 민다나오 섬의 여러 도시와 지역을 방문하여, 땅에 해를 입히고 건강을 파괴하는 화학비료와 비교하여 유기농 비료를 사용했을 때의 장점을 알렸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농부들과 회사들에게 강의를 하였습니다. 사업을 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교회가 조직될 때까지 저희 기독교 학교에서 주일마다 모임을 가졌습니다.
저희는 자유침례회(Liberty Baptist Church) 라고 교회의 이름 지었는데, 신도들의 숫자가 거의 100명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선교 사업을 시작했고 선교사들을 지원하였습니다. 저희 교회는 자영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교회나 단체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6년의 일입니다. 저는 회사가 망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경쟁업체들이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해 왔고 사업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출 받았던 돈도 갚지 못했고 집도 저당을 잡힐 수밖게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등록금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은 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2006년은 암흑의 해이기도 하지만 또한 암흑에서 빛을 본 때이기도 합니다. 2006년 8월에서 10월까지 저는 집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와 방에만 머물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제 삶을 붙들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아내와 함께 끊임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문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제 삶에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제 자신과 하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고 죽고만 싶었습니다.
**뜻밖의 방문으로 찾게 된 진리 그러던 중 2006년 11월 3일, 노엘 아코스타 목사가 저를 보려고 저희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저희 집에 한 번밖에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의 방문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볼 것을 권했고 저는 얼마 후 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했고 그 자리에서 저는 정형제님을 만나 제 연락처를 알려 주었습니다.
일주일 후 그는 마닐라에서 열리는 성경 비디오테이프 집회에 저를 초대했는데, 저는 놀랐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내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 보는 것이었고, 제 아이들이 다니는 타이타이 침례 신학원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2006년 11월 13일이었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타갈로그어로 된 <성경은 사실이다> 비디오테이프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말씀 테이프를 본 후에 저는 권 목사님의 비디오테이프 강연이 좋아졌습니다. 그가 자신의 간증을 했을 때 우리가 같은 경험을 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권 목사님이 유명한 한국 사상가인 함석훈이 쓴 글을 인용했을 때 더욱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는 창녀는 먹고 살기 위해서 몸을 팔고 선생은 지식을 팔고 목사는 도덕을 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들 사이에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저는 살기 위해서 도덕을 팔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 말씀에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후 성령 안에서 태어나는 것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저는 다시 한번 감동을 받았고, 개인적인 결정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서 받아들여 받는 구원에 대한 제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권 목사님은 스스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해도 그것이 실제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은 위험하다고 하였습니다. 개인적인 결정은 저로 인한 것이지만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제 개인적인 결정이 하나님께서 내게로 오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결정’할 때가 아니라 그의 말씀 안에서 진리를 깨달을 때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리를 깨달을 때 오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믿음을 받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예수께서 우리의 마음에 받아들여지신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믿으며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은 단지 개인적인 결정일 뿐입니다.저는 그때 제가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진정한 기쁨과 평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죄가 가득한 제 모습과 육신의 정욕 때문에 발버둥쳤습니다. 그리고 제 미래에 대해서도 자주 걱정했습니다. 저는 제 문제를 직면할 힘이 없었습니다. 제가 열한 번째 비디오테이프를 보았을 때는 2006년 11월 16일 오후 2시 30분이었습니다. 저는 제 구원에 대해 분명히 해야 하며, 제가 죄인이고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비디오테이프에서 2천 년 전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희생의 그림자로서 구약 시대에 성전에서 희생된 동물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구원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저를 영원히 속죄하시려고 그 피를 흘리셨습니다. ‘제 모든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치 않으시리라’고 히브리서 9장 12절과 히브리서 10장 1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5장 11절에서 31절, 방탕한 둘째 아들의 이야기는 제 마음과 양심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방탕한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방황하였고 돼지우리에서 먹고 일할 때까지 삶과 돈, 모든 것을 낭비하였습니다. 그는 실패와 고난으로 고통 받았고 어느 날 자신의 죄를 깨닫고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라고 말하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리고 일어나 아버지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직 멀리 있는데도 아버지는 그를 보고 달려와 자신의 팔로 그를 안고 그에게 입 맞추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 이야기 속의 방탕한 아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죄 때문에 제 삶에서 무척 방황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무척 사랑하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저를 찾고 죄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 죄와 걱정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제 죄가 용서받은 이후로 모든 것이 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이후로 모든 것이 변하였습니다. 지금 제 발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예수의 피를 통해 속죄되었습니다. 죄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신 하나님은 저의 구세주이십니다.하나님께 영광을! |
첫댓글 구원간증을 읽을때 더욱 정신차려서 읽어야 겠다고 생각이 됩니다. 검증이 아닌 찬란한 화답이 되기에...귀한 간증을 읽으며 삶의 여정속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봅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만 주님을 만나 뵙게 됨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거짓 선지자가 되실 뻔 하셨는데 그렇지 않고 죄로 부터 자유함을 얻으신 아부카이 목사님께 늘 주님의 보호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
영광과 찬양을 우리 하나님과 주예수그리스도께 돌리세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주예수그리스도께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찬양을 드리세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4장23절 글 읽으면서 그저 감사 할 뿐입니다.
구속의 기쁜 노래는 하늘에서 흘러 내리고~~ 땅에서는 기뻐 하심을 입은 사람들에 평화로다....."죄로 부터 자유롭게 해 주신 하나님은 저의 구세주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마치 곡조가 붙지 않은 찬양노래 같습니다. 복된 고백 입니다. ~~반갑습니다^^
1975년과 1978년 두번이나 구원이라 했던것이,,,아닌것을 알기 까지 28년이나 걸렸네요 정말 우리를 안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
이 사실 모르고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로서 일생이 갔으면 정말 함석헌옹의 말대로 먹고 살기 위해 지식을 파는 자가 될 뻔 하셨습니다. 변화된 모습으로 성경을 전하게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