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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마지막 당부
천 영 대
성경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1~8)」
엄히 명함
사도는 주님께서 주신 직분을 수행하다가 로마에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 감옥에 갇혀 죽어가면서 그의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중의 한 부분이 상기의 내용이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는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가 갇힌 것을 부끄러워했고(딤후 1:8), 어떤 무리들은 사도를 버리고 떠나갔다.(딤후 1:5, 4:10∼16) 이러한 가운데서 주님의 몸된 교회는 하강하는 국면에 처해 있었고, 사도는 그 감옥에서 얼마 있지 아니하면 죽게 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딤후 4:6) 이러한 가운데서 그의 사랑하는 디모데가 사역하고 있던(딤전 1:3)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는 어떤 이들이 사도가 가르친 말씀과 다른 교훈을 가르치고 있었고(딤전 1:3, 6:3), 디모데가 연소함으로 이를 업신여기는 자들도 있었고(딤전 4:12), 또 어떤 자들은 사도를 심히 대적하기도 했다.(딤후 4:14, 15)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사도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가운데서(고후 11:28), 그 교회에서 어떻게 사역해야 하는 가를 편지로 알려줬다. 그리고 그 뒷부분에서 사도는 아주 강력하게 그에게 명령했다. 왜냐하면 주님의 몸된 교회가 하강하는 것은 믿는 자들이 주님과 그의 말씀을 사랑며, 따르지 않고, 육신을 좇아 세상 임금(요 12:31, 14:30)인 마귀가 활동하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주님과 그의 말씀을 듣고 따르지 않고 육신이 원하는 것을 따라 세상을 사랑하고 좇아간다. 이로 인해 교회는 주님과 우리의 대적자요, 원수이며,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역사로 계속 하강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님과 그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사도는 디모데에게 아주 강한 톤으로 명령했다. 디모데후서 4장 1절에서는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고 했다. 선한 양심 가운데서 엄히 명령할 때는 그 내용이 엄중하고, 긴박하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명령한다고만 할 것이다. 그런데 사도는 감옥에서 죽어가는 가운데서 엄히 명한다고 했는데. 곧 하나님 앞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히 명한다고 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명할 때는 별것 아닌 것, 거짓된 것을 두고서는 감히 그렇게 할 수 없다.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시며, 심판 주이신 주님 앞에서 엄히 명하는 것은 사도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원하는 것이기에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6장 13, 14절에서는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고 했다. 사도가 말씀의 명령을 지키라고 한 것은 그 말씀이 참으로 중요하고, 확실하고, 주님께서 원하는 것이기에, 디모데를 사랑하고 위하는 가운데서 명령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가 전한 말씀, 특별히 명령한 말씀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따라야 한다.
말씀을 전파함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는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엄히 명령했는데,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1, 2절에서는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했다. 사도가 디모데에게 명령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때가 이르는 데 그때는 사람들이 바른 교훈(건강한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도는 이 내용의 말씀 이전에 성경에 대해서 말했다.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에서는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성경말씀은 이렇게도 놀랍고 위대하기 때문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파하라고 명령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역사하는 마귀의 활동에서 우리를 지키고, 견고케 하고, 그 악한 마귀를 대적하여 이길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 주님과 그의 말씀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20장 28∼32절에서는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했다. 흉악한 이리가 주님께서 피의 값을 지불하고 사신 교회 안에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까지 아니할 것이고, 또 교회 안에서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도는 장로들을 주님과 그의 말씀께 부탁하는데 그 말씀이 그들을 능히 든든히 세워 기업이 있게 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어떤 것이 거짓의 아비이며, 대적자인 마귀의 역사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든든히 세우는 것이 아니고 주님과 그의 말씀이 그렇게 한다고 했다. 이렇게 놀라우신 주님과 그의 말씀이 교회가 하강하고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은 듣지 않고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 데서 지키고 세우기 때문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다. 예레미야 20장 7∼9절에서는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했다. 선지자는 주님과 그가 주신 말씀을 전파함으로 많은 고난과 핍박을 당했다. 이로 인해 그것이 너무 힘들어 다시는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리라고 마음을 먹으면, 선지자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고 마음을 먹으면 자신의 중심이 불붙는 것이 골수에 사무쳐 답답하여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선지자는 주님께로부터 말씀을 받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는 자인데, 그것으로 인해 핍박과 고난을 당함으로 이를 피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면,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 답답하여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주신 직분을 여러 가지 이유로 수행하지 아니하면 주님의 안식이 없는 가운데서 이러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직무를 다함
사도는 주님의 역사하심 가운데서 주님의 복음전파를 위해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의 직분을 받아 그 임무를 충성스럽게 수행했다. 그러한 사도는 그러한 임무를 마치고 감옥에서 죽어가는 가운데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사랑하는 아들, 많은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있는 디모데에게 그 자신과 같이 고난을 받는 가운데서도 그가 맡은 직무를 다함으로 영광을 얻도록, 상급을 얻도록 하기 위해 권면하고 권했다. 사람들이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 지라도, 디모데 너는 그렇게 하지 말고 말씀을 전파하는 전도인의 임무를 다하라고 했다. 디모데후서 4장 5절에서는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했다.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며, 전도인(복음 전파자)의 일을 하고, 말씀의 직무를 다하라고 했다. 그러한 가운데서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직무를 이루라고 했을 뿐만아니라, 그의 동역 자이신 아킵보에게도 그러한 말을 했다. 골로새서 4장 17절에서는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고 했다. 우리는 주님께로 부터 받은 직무를 중차대한 것으로 알고 감사하면서 충성스럽게 이행해야 한다. 에베소서 3장 6∼9절에서는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이방인들이 다른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고 했다. 비록 유대인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이방인으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복음으로 말마임아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거듭난다면 그 안에서 함께 유대인 믿는 자들과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가! 사도는 이 놀라운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고 했다. 주님께서 은혜로 사도를 그 은혜로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라고 했다.
떠날 기약이 가까움
사도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들을 했다. 그것은 일종의 유언과 같은 마지막으로 하는 말씀, 참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말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간절한 것이고, 진실된 것이고, 긴요한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6절에서는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라고 했다. 이 용에서 ‘관제’는 민수기 15장 5∼7절에서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한 힌의 사분 일을 예비할 것이요 수양이면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한 힌의 삼분지 일을 섞어 예비하고 전제로 포도주 한 힌의 삼분지 일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롭게 할 것이요”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재물이 어린양이면 전제도로 포도주 한 힌 사분의 일을 예비 할 것이요 라고 했고, 또 수양이면 소제로 고운가루 한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한 힌의 삼분지 일을 섞어 예비하라고 했다. 이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제나, 관제는 번제나, 소제나,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기본 제물들에 더해진 것이다. 출애굽기 29장 40, 41절에서는 “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에바 십분 일과 찧은 기름 힌의 사분 일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힌의 사분 일을 더할찌며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리되 아침과 일반으로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찌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한 어린양에 고운 밀가루 에바 십분 일과 찧은 기름 힌의 사분의 일을 더하여 전제를 드리는 것이다. 전제(관제)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의 제물 위에 더하여 드리는 제물이다. 이처럼 사도 또한 관제(전제)로서 자신의 피를 흘림으로써, 성도들의 믿음 위에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 제물로 부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가 벌써 부음이 되는, 피를 흘리고 죽어가고 있다는, 순교하고 있다는 것이다. 빌립보서 1장 20∼23절에서는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떠나는 것은 떠나는 것은 사도의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는 끝까지 주님의 길을 감으로 관제(전제)로 부으지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존귀케하고 확대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 5∼8절에서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다. 사도 또한 주님과 하나된 가운데서 죽기까지 주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았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킴
사도는 그리스도를 본 받아 죽기까지 주님께 순종하여 주님의 길을 갔다. 그는 주님께서 주신 직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의 말할 수 없은 수모와 고난과 핍박을 받았지만, 굽히거나, 피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의 길을 갔다. 그러므로 사도가 간 길을 언급하면서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 또한 그러한 길을 감으로 그 또한 사도 자신이 받는 상급을 받기를 원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에서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했다. 사도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했는 데, 그것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고 믿음의 선한 싸움, 주님의 역사를 따라 주님의 군사로서 악한자를 대적해 싸우는 것이다.(엡 6:10∼20) 사도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기 때문에 디모데 또한 그러한 길을 가기를 바랬다. 디모데전서 1장 18, 19절에서는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고 했다. 선한 싸움을 싸우되 혈과 육의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6장 11, 12절에서는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도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는 가운데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다. 육신을 좇아 혈기와 분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를 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믿는 자들은 모두가 다 주님의 군사로서 악한 자를 대적해 싸우는 자들이다.(딤후 1:3, 4) 사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을 뿐만아니라, 그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했다. 사도는 주님께서 주신 직분을 수행하므로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 달려가야 할 길을 다 마쳤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경주하라고 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믿음의 경주를 인내로써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달려갈 길을 중단하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그 길을 달려가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믿음을 지켜야 한다.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서는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했다. 믿음에 관하여 파선하지 않고 계속해서 믿음을 가지고 지켜야한다. 디모데후서 3장 8절에서는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고 했다. 우리는 얀네와 얌브레처럼 믿음에 파선함으로 주님의 권위, 곧 주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도는 많은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이것은 주님께서 가신 길이다. 누가복음 13장 31∼33절에서는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서 십자가에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가 해야할 일들을 끝까지 행했다. 그렇게 함으로 주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영광스럽게 했다.(빌2:5∼11)
상급이 주어짐
사도는 아들 디모데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운데서 그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킴으로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의의 면류관을 예비한 것처럼, 디모데 또한 여러 가지고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행했던 것처럼 한다면 자신을 위해 주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예비한 것처럼, 디모데를 위해서도 그러한 상급이 예비되어 있음으로 끝까지 그가 간 길을 가라고 독려하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7, 8절에서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으로서 우리가 행한대로 갚아주신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다. 상을 받을 자에게는 상을 주시고 심판을 받을 자에게는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6, 7절에서는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라고 했다. 사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의의 면류관은 사도 자신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고 그가 살았던 삶을 살고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신다고 했다. 이것은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주시는 상급이다. 빌립보서 3장 13, 14절에서는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