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기차도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고 프린터하여 다니고 실제 역에가서 역무원을 붙들고 해봤자 휴대폰으로 예약한 사람을 따르지 못한다.
비둘기호가 없어진지 오래되어 시골 간이역은 영업을 중단한 곳이 많고 있다한들 타는 사람이 적어 기차에 타서 승무원에게 표를 사는 경우가 많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 보냈던 곳에도 아담하고 멋진 역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역사만 있고 기차는 다니지 않는다.
간혹 다큐나 영화 혹은 드라마에 나오는데 그곳의 이름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과거 양주군 와부면) 능내인데 그 유명한 정약용 선생이 태어나고 노후를 보낸 마재가 내가 태어난 곳이다. 이분의 정기를 받았다면 뭔가 되었을 텐데...
어릴적엔 이런 유명한 분이 계시다는 것도 몰랐었다. 이유는 당시 마을에는 선생의 능묘를 관리하는 문제 보다는 한강주변의 풍광과 서울에서 나들이 오는 방문객을 상대로 매운탕과 술을 파는 곳이 많았고 유사시 한강 이북의 병력을 철수하거나 이동하기 위한 기능을 위해 군부대가 있었고 아버지는 이곳에서 근무하셨다.
부대까지 레일이 있었고 70년대 초 대홍수가 나고 팔당호가 만들어 지며 부대는 한강이남으로 이동을 했지만 전두환 정권때 까지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시범식을 했었다.
지금은 수도권의 대표적인 상수도 원이라 많은 것을 규제 관리하는데 몇년전 강변의 텃밭이나 하중도의 농경지도 많이 사라졌다.
근처에 양수리가 있어 어릴적 나들이를 가면 시장에서 뻥튀기를 얻어 먹기도 하고 아이스케키도 사먹었었다.
능내에서 양수리 쪽을 보면 멋진 철교가 보였었고 90년대 전원일기라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영남이 (남성진 분) 가 근무하는 곳이 양수파출소였고 금동이 (임호분) 가 여친과 뛰던 곳이 내가 어릴적 동네 형들과 고기잡고 놀던 곳이었다.
강건너엔 광주군 소속의 분원리가 있었는데 가마터로 유명했고 나룻배로 건너기고 하고 겨울에 한강이 꽁꽁 얼면 걸어서 이동했고 썰매를 타기도 했었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중앙선에 전철이 다니는데 전철의 기반은 오래전에 되어 있었고 과거 동란시기 원주에서 춘천을 가려면 도로를 이용하기 보다는 원주에서 서울 다시 춘천으로 가고 반대로 이동하기도 했었다.
아무튼 중앙선의 전철통행으로 팔당과 양수리 사이의 구부러진 철도는 폐선되고 자전거 길이 되어 또 다른 정취를 느끼게 한다.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능내역 주변 열차표를 운좋게 구할 수 있었는데 다름아닌 어린이날 철도 박물관에서 였다.
지금의 표완 달리 딱딱한 종이로 손에 딱 쥐기 좋고 역무원이 집게같은 도구로 잇빨자국을 내서 검표하던 기차표은 90년대까지 일부에서 사용했었다.
철도 동호회 회원들이 정성스럽게 모아 정리한 기념첩을 주었는데 받아보니 양수리발 능내.덕소.도농행 기차표가 있었고 경춘선 기차표. 교외선 증기기관차 기념승차권이 있었고 안쪽엔 장항선에서 쓰던 학생정기승차권에 홍성.삽교등 귀에 익숙한 지명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철도 약사가 있었다.
미국이 만들기 시작한 경인선이 일본에 양도 되고 경부선 경의선등 대륙을 치기 위한 일본의 약욕을 위해 철도가 부설되고 군산선 호남선등 수탈을 위한 철도부설 역사가 지금은 대륙을 향한 철도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시대는 바뀌는 것 같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섬같은 곳이다.
의정부에서 백마고지까지만 다니는 기차표를 보면서 경원선이 연결되어 철원쯤 가서 금강산도 가보고 철령넘어 관북지방 연해주를 갈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