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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게시판 스크랩 명약중 명약 장생도라지의 효능
이상필 추천 0 조회 66 13.09.19 23:22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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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약중 명약 장생도라지(1),

못 고치는 병이 없다.(불,난치병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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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공부를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여러해 동안 아는 약초에 대하여 한가지 한가지 다 각도로 많은 자료를 읽으면서 효험,부작용사례를 살피면서 보니 많은 약초중에서 가장 효험이 빠르고 높고 다방면에 효험이 나타나는 약초가 도라지, 장생도라지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다른 약초도 효험이 높은 것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여러 체험을 하였지만 유난히 장생도라지라는데에 시선이 갑니다.

그간 카페를 통해 제게 전화로 쪽지로 자문을 구하신 분도 여러분이 계셨고 그 질병이 어떤 질병이든 난치,불치성 질병인 경우에는 주된 약초가 되었든 부수적인 약초가 되었든지 장생도라지를 구해 타 약초와 더불어 쓰시라고 하였고 반드시 꿀에 담든 올리고당이든 설탕이든 효소로 이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담궈 드실 때까지는 약차를 이용하시라고 하였는데

오늘 약선풀피리님이 위험한 바위벼랑에서 캐신 훌륭한 장생도라지를 보고 도라지에 관한 글을 다시 올려봐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자료를 뒤지다 보니 예전에 보았던 황종국 부장판사가 지은 책이 다시 보이고 이 책 내용이 오로지 장생도라지로 효험본 사례만 묶여 있음을 알고 소개해 봅니다.

책에 보면 49가지나 되는사례가 나옵니다. 생각컨데 이 분의 내용은 아무래도 지리산 도라지 이성호(초인이라 극찬)등을 비롯한 분들로 부터 자료를 구하고 실제 효험을 본 분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확인을 한 후에 하였을 것으로 보아 신뢰도가 매우 높습니다.

판사란 직업은 사실의 인정을 철저하게 증거로 하므로 이러한 효험사례를 내고 그 제목을 의사,한의사가 이런 병을 고칠 수 있느뇨? 라고 자신있게 부쳤으므로 혹여 오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옷을 벗고 혹세무민하였다는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신뢰도가 99%이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래 효험사례를 하나하나 제목만이라도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장생도라지로 못고치는 병이 무엇인가요.

물론 통계적으로 난치,불치병자중 장생도라지를 먹고 몇%나 치유가 되었는지는 잘모르겠지만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약초로 치유한 암등 치유효험사례가 대부분 가뭄에 콩나듯 하고 사실상 어쩌다 한번 있는 기적적인 효험이었다고 할 때, 물론 이것만 해도 큰 희망이겠지만 장생도라지의 아래 효험사례와 지리산 도라지 이성호씨의 효험사례를 종합해 보면 참으로 명약중에 명약이라 할 것이고 도대체 이보다 나은 약초가 무엇인가 묻게 됩니다.

우리는 물,공기처럼 보편적으로 흔하면 그 가치를 모릅니다. 그래서 약초도 예전에는 이름도 듣지 못한 항암버섯인 차가버섯, 아가리쿠스, 티벳버섯, 꽃송이버섯, 노루궁뎅이버섯,티벳항암약초라는 홍경천등 별의별 항암약초로 다 등장하고 기존의 상황,영지버섯등 항암약초는 퇴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기존 항암약초가 항암효과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사실은 눈과 귀로 들어 아는 만큼 암에 써도 암치유에 금방 효험이 안나오거나 확신이 없어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경각에 달렸다 할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가족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산물에 장사치의 교활한 상술도 한몫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항상 강조드리지만 우리 귀와 눈에 익은 도라지,영지같은 약초가 가장 좋은 약초임이 분명하다고 봅니다.

결국 아래 책에는 불치,난치병을 앓는 분에게는 큰 희망을 던져주는 것이고 여타 횟님들에게는 이런 뛰어난 약초가 도라지였다니 하는 것과 함께 발밑에 명약이 있음을 다시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쉬운 약초부터 한가지라도 제대로 알고 찾고 복용하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가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렇다고 이것 하나만 써서 효험이 있다고 생각지 마시고 흔히 쓰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인 자연산 당귀,천궁,잔대,더덕,둥굴레,백창출,복령,영지,작약등과 같은 약초중에서 약성을 잘 살핀후 도라지와 서로 궁합이 어느 정도 맞겠다고 보이는 약초 4-5가지를 골라 구입하여 함께 섞어서 쓰시되 자신의 건강상태도 고려하여 주의깊게 쓰시기 바랍니다.

건강유지를 목적으로 한다면 꼭 장생도라지가 아니라 유기농으로 3년마다 옮겨심은 오래된 재배도라지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책소개

민간 의술 사례집. 이 책은 장생도라지를 이용한 난치병 치료 사례서로 민중 의술에 대한 힘을 세상에 알린 '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의 저자의 신작이다. 20년 넘게 자란 장생 도라지의 비밀과 치료 사례, 장생 도라지의 의미와 교훈, 50여 명의 치료 실례를 통해 민간의술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전달한다.

또한 장생도라지의 효능과 약효, 가치, 민중의술살리기 국민운동에 관한 내용도 함께 담았다.

목차
엮는 말 / 펴는 말

한국의 대표민약 1 장생도라지

01. 도라지타령에 숨은 비밀
02. 빛나는 치료사례들
03. 초인(超人)이성호
04. 성공보다 위대한 겸손과 헌신
05. '과학'이 밝혀낸 약성
06. 장생도라지의 의미와 교훈

치료사례

01. 더 이상 항암주사를 맞을 수가 없어서 병원치료를 포기하고 - 위암
02. 의사선생님이 수술 하자는 것을
- 식도암, 비소세포성폐암, 승모판막폐쇄부전증, 부정맥, 심방성 서맥, 고혈압
03.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으로 - B형 간염, 간암
04. 사형선고에서 무죄 석방 - 구강암
05. 수술받고 심신이 피폐하여 거의 포기한 심정에서 - 직장암, 담낭결석, S상 결장암
06. 천하가 아득한 어두운 안개 속에서 울부짖고 있다가 - 갑상선 유두암
07. 아버지랑 같이 입원했던 몇 명은 모두 죽었다고 - 소세포폐암
08. 병원에서 3개월 내지 6개월밖에 못산다고 했는데 - 비소세포폐암
09. 평생 치료받으라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 폐결핵
10. 눈알이 튀어나오기 시작하더니
- 당뇨병, 좌안신경초중, 당뇨병성망막증, 녹내장, 저혈압
11. 암 세표가 몸 전체에 퍼져 있어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다하여 - 비토스킨성 림프종
12. 이제 죽는구나 했는데 - 골육종, 고혈압, 폐쇠성폐질환, 심부전
13. 암이 없어졌다고 - 간암
14. 심한 복수와 흑달로 치료가 어렵겠다고 하는 것을 - 간경화, 복수
15. 많이 살면 6개월이랬는데 - 기관지폐암
16. 눈물이 앞을 가려 땅을 치고 탄식하던 중 - 대장암, 만성위장병, 신경성혈압, 악성변비
17. 약물치료와 방사선치료를 견디기 어려워 - 소세포암
18. 제초제 근사미 농약을 소주에 타서 마셨는데 - 농약중독
19. 암 수술을 받은 친구들이 한달 사이에 3명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을 보고 - 위암
20. 전 세계 인류에게 알리는 글
- 당뇨병, 고혈압, 폐결핵, 고콜레스테롤, 만성신부전, 긴장성두통,
우울증,심장방실차단(부정맥). 심장박동기 삽입, 기관지확장증
21. 산소호흡기를 달고 고향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를 - 폐질환, 천식
22. 8년간 병원약과 한약을 먹으면서 눈물만 - 갑상선
23. 늘 심신이 피곤하고 가슴이 답답하였는데 - 만성피로증후군, 결핵, 편두통
24. 현대의학이 진행성 불치병으로 선언한 병을 - 파킨스씨병
25. 아침 저녁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고 약도 먹었는데 - 소아당뇨
26. 한약과 신약이 떨어질 날이 없었는데 - 당뇨병
27. 측정조차 안 되는 높은 혈당치에서 - 당뇨병
28. 발병진단서와 완치진단서를 같이 송부합니다 - 급성뇌경색, 중풍
29. 신기하기 그지없고 행복합니다 - 당뇨병
30. 별의별 약을 복용하고도 - 당뇨병, 당뇨성 망막증, 하지무력증
31. 치료 불가하다고 장애 1급 4호로 판정받았는데 - 관절염, 경추간판탈출증
32. 물건을 들다가 허리를 다쳐
- 전신쇠약증, 요추결핵, 양고관절 결핵, 간경화,
심근경색, 신장결핵, 양 고관절파괴증, 양하지 조절상실
33. 수 년 동안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 협심증, 고혈압, 당뇨
34. 15년간 만성기관지염으로 죽을 고생을 - 기침, 만성기관지염
35. 7~8년 쏟아 부은 정성과 돈 그리고 세월 - 기관지천식, 결핵, 호흡곤란
36. 폐결핵으로부터 해방, 다시 찾은 활기찬 생활 - 폐결핵
37. 천하에 좋은 약이 없었다 - 만성 폐쇄성 폐질환
38. 그 악몽 같은 시간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아토피성피부염
39. 항상 숨결이 하고 때때로 어지럽고 허기증이 나면서 - 심부전, 지방간
40. 고막을 뚫고도 낫지를 않아서 - 삼출성중이염, 잔기침, 아토피성피부염
41. 집에서 죽는 날만을 기다리던 중 - 뇌경색, 당뇨병, 협심증, 고혈압
42. 갑상선 약을 3년간 먹었는데도 부작용만 - 갑상선기능저하증
43. 기운이 없고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던 - 당뇨, 가래
44. 누워서 자지 못하고 앉아서 밤을 지새기도 - 폐결핵, 기침, 가래
45. 더 이상 약을 먹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하여 - 알레르기 피부염
46. 이것은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 치매, 뇌위축 및 뇌경색
47. 선생님의 지도와 신약이 없었다면 - 당뇨병성 족부괴저, 궤양
48. 45년 묵은 만성기관지염을 고쳤으니 - 만성기관지염
49. 10년 고생한 병 - 11개월 복용하니 증세가 사라져 - 기관지확장증
50. 진작 장생도라지를 복욕하였더라면 - 폐암 말기의 남편을 보내고 - 폐암 말기

의사와 학자들이 확인한 장생도라지의 효능
01. 의사들이 확인한 치료 효능
02. 학술 논문에 나타난 악효

사회적 평가와 산업재산권으로 밝혀지는 장생도라지의 가치

명약중의 명약 장생도라지

스테미너증진사례(기력회복,자양강장이 초점)

0000님 | 10.05.16 19:29

몇년전 일이다. 마누라가 양손에 무었인가를 들고 신나게 집으로 달려 오는 것이 보였다. 6년근 인삼인듯한 뿌리를 서너뿌리 들고 자랑스레 펼쳐보였다. 마누라가 들고있는 것은 인삼이 아니라 몇십년묵었다는 도라지였다. 바로 우리집 앞에 정미소 부인이 주었단다

정미소 아들이 기침을 심하게 해서 달여먹일려고 방앗간 부인 친정동네에서 많이 얻어와서 먹어보라고 몇뿌리 울마누라한테 주었단다. 나는 퍼뜩 서울에사는 막내 동생이 생각났다. 허구헌날 기침을 달고살고 좋다는 약 다 써보고 유명한 병원 다 다녀봐도 기침이 낫질 안았다. 도라지를 동생에게 달려먹이고 싶은 욕심이생겼다

그래서 부리나케 방앗간으로 달려가 방앗간 부인을 ?았다. 도라지를 더 구할수 없냐고 물으니 친정동네에 친구가 있는데 아들 기침한다고하니 비료푸대로 하나 가득캐서 주더란다

나는 사정사정했다 도라지좀 구해달라고 동생 약하는 데 쓸려고한다고..방앗간부인은 마지못해 친정동네 친구를 핸드폰으로 내게 소개시켜주었다. 나는 얼른 차를 몰아 방앗간집 친정동네로 그녀를 ?아갔다. 울집서 차로 7분정도 거리의 산골마을이였다

사정이야기를 하니 그녀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난감해했다. 시아버님이 심어 놓은것인데 시아버지는 지금 해외여행 가시고 부재중이라서 여쭈어 보지도 못하고 안된다고 손사레를 친다. 그래도 사정사정 무릅꿇고 빌다싶이했다. 동생 아픈거 고치는데 자존심이고뭐고 없었다

한 30분가량 사정을하니 마지못해 도라지 밭을 안내해주고 파가라고 허락해주었다. 나는 삽으로 얼른 도라지 뿌리를 캐기 시직했다. 도라지 밭은 한 100여평정도 되는데 줄기와 잎사귀는 보잘것 없는데 뿌리는 무척 크고 실했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다른밭에서 캐다가 옮겨 심은지 십년은 넘었다고들했다. 그러니 그 도라지는 적어도 십년이상은 묵은 산삼과 같은 도라지들이다

한참을 신나게 캐서 동부화학 비료 푸대로 꾹꾹 눌러담았다. 그리고 10 만원짜리 수표 서너장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집으로 왔다. 그녀는 한사코 파는물건이아니고 방앗간집 부인친구로서 친구의 부탁을 들어준것 뿐이니 수표를 도로 돌려주는걸 뿌리치고 얼른 도망나왔다

나중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해외여행에서 돌아오신 그녀의 시아버님한테 삼박사일로 되지게 혼이났다고한다 ㅎㅎㅎ

아무튼 나는 서울에 연락을 해서 동생내외를 불러들여 밤꿀 서너병과 그 도라지를 절반이상 주어보냈다. 그리고 나머지 도라지를 편으로 썰어서 유리항아리에 밤꿀을 넣어 재어두었다. 헌데 웬걸 이삼일 지나니 꿀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기 시작했다. 난감했다. 아까웠다. 돈이 얼마나 들었고 양심을 저버리고 비겁하게 순진한 여자를 꼬드겨서 구해온 도라지인데ㅠㅠ

나는 알른 장에가서 지금보다 두배나 큰 유리항아리를 구해와서 도라지와 밤꿀이 섞인 끈적끈적한 액체를 다시 붓고 독한소주를 많이 사다가 들이부었다. 나는 사실 술을 즐겨먹지는 않는다. 다만 그 귀한것을 버리는게 아까워 그리했을뿐이다. 그리고 그 유리항아리를 창고에 처박아두고 몇년이 흘렀는데 내가 살던 그집을 친구에게 팔게되었다

그 집은 내가 주식투자를 실패한 곳이고 부부 싸움도 지겹게 한 집이라서 대지가 1200 평이고 건평는 40평이되는 내가 직접 지은 집인데 그 집이 싫어 미련없이 팔아버렸다. 그 문제의 도라지 주는 그 집을 팔고 이사 과정에서 새삼 발견된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그 도라지주를 못먹는 술이지만 홀짝 홀짝 한잔씩 마신다. 오로지 아깝다는 생각에서,,,,

헌데 한달쯤 마시기 시작해서 내 몸에 이상이 생기기시작했다. 사춘기 소년도 아닌 데 몸이 스물스물하고 새벽마다 아랫도리가 뻐근하게 힘이주어진다. 지나가는 여자들 엉덩이만봐도 가슴이 벌렁벌렁 도무지 주체를 못하겠는거라. 나 이러다가 대형사고치게생겼다. 누구 나좀 말려주시구려.. 못참겠다니까 힘이 뻗혀 소리치고 싶다.

나 산삼봤다 -------아니 도라지 봤다 --------

명약은 발밑에.../장생도라지 예찬

아래 치료사례는 지리산도라지로 유명한 이성호씨께서 그의 책에 밝힌 내용을 간추려 본 것입니다. 이성호씨는 너무 유명하니 구체적인 것은 생략하지만 개략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이 분은 만난고초끝에 21년생 지리산도라지를 키워 성공하신 분으로 뿌리당 5-60만원씩에 일본에 수출하고 일본에서는 이 도라지로 암을 완치시킨 사례가 있고 경남도에서 신지식인상을 탄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공인하는 분이기도 하지만

이 분은 그간 자신이 키운 장생도라지로 온갖 불치,난치병을 고쳐왔고 고친 사례를 자서전적인 책을 통해 밝혀 놓았으며 이 책을 읽어 보면 상상도 못하는 효험이 도라지에 있음을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인터넷을 중심으로 약초에 관한 관심이 크고 많은 분들이 약초카페에 가입하여 약초세상이 활발히 형성되어 있지만

산삼이 복마전이듯 여타 약초들도 일부 비양심적인 약초꾼들에 의해 오도되고 과장되어 혼란자체이고 그 병리현상이 매우 심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약초를 키우는 분이나 구입하는 분이나 그저 한의서에 나온 내용만으로 약초를 보려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어떤 약효가 있는 것인지를 제대로 분별하고 취사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21년생 장생도라지재배로 성공한 이성호씨의 글에 보니(직접 검색요망)

열네살 되던 해인 1942년 폐결핵과 천식으로 고생하던 동네 머슴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발견한 '묵은 도라지'를 캐먹고 병을 고치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를 두고 당시 마을 어른들은 "오래된 도라지가 산삼보다 낫다"는 말을 자주한 것을 계기로 도라지 재배에 인생을 걸기로 결심하여 파란곡절끝에 성공을 하였다고 하였으며

특히 일본 수출이 많다는데 일본 시사지인 '주간 신조(新潮)''주간 아사히(朝日)''주간 분쑨(文春)' 등 일본 언론이 '경이의 자연생약'이라며 30여 차례 소개하면서 여성지인 '세븐'은 지난해 3월 폐암 말기 환자가 3개월 복용한 뒤 종양이 사라진 CT 사진을 싣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성호씨가 지은 책을 보면 인후폐경뿐만 아니라 갑상선,당뇨,난소암,대장암,파킨슨병,치매,고혈압,뇌경색,간암,간경화등 온갖 난치 불치성 질환을 이 장생도라지로 큰 효험을 본 사례가 실려 있고 이분들의 이름과 주소까지 올려져 있군요. 이 책을 읽어 보면 과연 도라지가 상상이상 효험이 있는 약초라는것을 금방 알게 되며 난치,불치병을 앓고 계신 분들에게 분명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라지는 주로 인후,폐경에 작용하며 이성호씨의 이야기에 의할 경우, 아래 많은 효험사례에서 보듯 수십년 묵은 도라지는 온갖 난치,불치병과 암치유 효과까지 있으니 쓰기에 따라서는 상상 이상 효험을 지닌 건강식품이자 훌륭한 약제일 것입니다.

이 분이 좋은 도라지를 생산하지만 재배하는것이지 냉정히 자연산이 아니며 약선풀피리님이 오늘 올린 것처럼 벼랑이나 척박한 환경에서 자연상태로 수십년이상 자란 장생도라지는 아닙니다. 난치불치성 만성질환을 앓는 분들에게 마땅히 소개할 곳이 없어 이성호씨를 찾아가라고 하지만 굳이 이 분에게서 찾을 필요도 없이 카페 횟님중에는 지기님이나 여러 님들이 가끔 장생도라지를 올리므로 이것을 구입해서 복용하면 더 큰 효험을 볼 수가 있을 것이고 가능하면 직접 채취하심도 좋지만 가는 것을 캐서 씨를 말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도라지가 수백,수천년간 조상들에 의해 약으로 나물로 써온 것을 볼 때 약간 독성은 있어도 사실상 부작용이 없는 유익한 초본이 틀림없으며 특히 도라지를 케보면 자라는 곳이 매우 척박한 야생환경을 골라서 수십년 성장하므로 그 억센 생명력이야말로 인후폐경에 작용할 뿐만 아니라 자양강장등 사람의 건강에도 크게 유익할 것으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더 자세한 것은 도라지에 대해 많은 검색을 해서 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성호씨가 그의 책에서 소개한 효험사례(위 황종국 판사의 글과 중복될 것입니다)

난소선암4기 부산 영도 유인산(여,53세)

삼출성중이염 아토피성피부염 경남 김해 강남월(여,13세)

요추 및 고관절 결핵 부산 강서 김춘성(남,62세)

만성 기관지천식,폐손상 경남 합천 박정환(남,79세)

악성 림프종 전남 여수 장성일(남,46세)

급성 당뇨 부산 사하 김석진(남,31세)

대장암 경남 진주 정미자(여,47세)

협심증 경남 진해 김복득(여,76세)

갑상선 유두암 전남 순천 이동애(여,41세)

구강암 전북 고창 박순자(여,66세)

뇌경색,당뇨,고혈압 경남 진주 황신자(여,60세)

간암 부산 부산진구 신왕진(남,53세)

파킨슨병 경북 울진 정도연(여,56세)

간경화 경남 진주 최연남(남,53세)

노인성 치매 경남 사천 정학순(여,76세)

명약중 명약 장생도라지(2), 도라지타령에 얽힌 비밀

명약중 명약 장생도라지, 못고치는 병이 없다(불,난치병의 희망)이라는 제하로 1편의 글을 올려드렸는데 이 글 부터는 기적의 약초 장생도라지라고 부르겠습니다. 왜냐면 현대의 첨단의학에서도 암을 비롯한 대부분의 불치,난치성 질병을 고칠 방법이 별로 없는데 3편에 올려드릴 효험사례에 보듯 도무지 믿기지 않는 기적이 수없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전에 가끔 기적의 00 이라는 뉴스를 가끔 접해왔고 지금도 인터넷에 보면 그 효험을 과장,뻥티기하기위해 기적의 약초이니 기적의 버섯이니 기적의 물질이니 하는 선전을 접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헛것에 불과할 뿐 지금까지 표현대로 기적이었던 것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횟님들 기억에 기적을 팔면서 실제 기적이 있었던 기억이 있었다면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참고로 하고자 합니다.

혹 어떤 횟님은 도라지가 아무리 묵었다고 하여 갑자기 기적의 약초일 수 있는가 항변할 수가 있고 착각과 망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기적이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상황을 가능한 상황으로 변하게 하거나 불가능한 꿈이었던 것이 실현되었을 때를 기적이라 할 수 있다면 다음 글에는 기적이 수없이 이뤄졌음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워낙 불,난치병이나 만성적 고질병을 앓는 분이 워낙 많기 때문에 과장법을 쓴다고도 할 수 있지만 있는 사실 그대로이니 다음 글을 읽고 이에 대하여 달리 보시는 분이 계시다면 얼마든지 반론을 제기해 주셔도 좋습니다. 아니 제가 볼 때는 기적이란 표현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적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경우가 어쩌다 일어난 경우이므로 장생도라지는 그러한 기적이 수없이 일어났으므로 차라리 진실로 명약중 명약이라 함이 옳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올리는 내용은 제가 아니라 부장판사이신 황종국님의 글입니다. 이 분은 1편에서 소개드렸듯 지난 1992년 무면허 침구사에 대한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하면서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이 진정한 의사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장생도라지의 기적같은 효험사례등을 엮어 "의사,한의사가 이런 병을 고칠수 있느뇨?" 라는 저서를 남겨 제도권 의학의 오류와 무능을 꼬집고 비판하면서 반성을 촉구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아래 내용 역시 이분의 저서의 일부입니다.

― 한반도는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약성(藥性)을 가진 땅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안 믿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제 것이 소중한 줄은 지독히도 모른다. 외국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면서 말이다.

- 이 땅의 약성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도, 그래서 한국 땅에서 나는 모든 산물은 식물, 동물, 광물을 막론하고 모조리, 심지어는 ‘개똥’과 부엌바닥의 흙과 대들보 위의 오래된 먼지와 낡은 기왓장까지도 약(藥)이 된다는 것도 당연히 모른다.

- 그러면서 하찮은 병(病)에도 비싸고 사람잡는 항생제를 털어 넣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민중의술살리기 연합은 우리 국토가 가진 천혜의 약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자 이 땅에서 나는 민약의 대표적인 것들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 이 민약들은 기존의 한의학에서 내려오는 것과는 아예 다른 것이거나, 외형은 같아도 그 용법과 약성의 발현 방법을 민중의술이 더 찾아내어 효용을 훨씬 강화시킨 것들이다.

도라지타령에 숨은 비밀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 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가 스리살짝 넘치누나
에헤 에헤요오 에헤 에헤요오 에헤에 야아
에야라 난다 지화자자 좋다
네가 내 간장을 스리살살 다 녹인다

‘아리랑’과 함께 민족의 양대 민요로 구전되어 온 ‘도라지타령’이다. 우리는 조상들이 남겨 놓은 오래된 말 한마디와 단어 하나에 큰 뜻과 이치가 들어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고 깜짝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은데,

이 도라지타령 속에도 참으로 놀라운 비밀 아닌 비밀이 들어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바로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가 스리살짝 넘치누나’라는 구절이다. 도라지 한두 뿌리로 대바구니가 가득 차 넘친다는 것이다.

얼마나 굵고 큰 도라지길래 그럴까! 도대체 그렇게 큰 도라지가 있기는 있단 말인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누구 본 사람이라도 있는가? 아마도 장생도라지가 개발되지 않았더라면 민족의 비약(秘藥) 도라지의 신비는 영원히 묻혀버린 채 도라지타령은 민요로만 남고, 우리 조상들은 애교스런 허풍장이로 치부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 오랜 세월 내려온 민요를 우습게보지 말자. 우리 조상들을 턱없이 허풍장이로 몰지 말자. 심신산골에 가면 한두 뿌리만으로도 대바구니가 넘치도록 큰 도라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민요는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만나면 간장이 사르르 녹도록 좋아서 얼씨구 지화자 춤을 추었던 것이다.

왜 그토록 좋았을까? 그 도라지가 가진 뛰어난 약성, 죽어 가는 병자를 살리고 고질병을 낳게 하는 신묘한 약효, 그래서 값도 만만찮게 비쌌던 그 가치 때문이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산삼을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일이다.

그렇게 큰 도라지는 산삼처럼 귀하고 약성이 뛰어난 물건이었다는 이야기다. 아니, 산삼타령이라는 민요는 없는데 도라지타령은 대표적인 민요로 내려온 것을 보면 산삼보다 더 뛰어난 영물(靈物)이었던 것 같다.

장생(長生) 도라지! 일반 도라지가 3~4년쯤 살다가 죽는데 비해 20년이 넘도록 살아서 그 뿌리가 실로 한두 포기만으로도 능히 대바구니를 넘치게 할 정도로 큰 도라지! 이 도라지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땅에서 재배되고 있다.

옛날 심신산골에 가서야 겨우 운 좋게 캘 수 있었고, 그래서 그것을 만나면 간장이 녹도록 좋아서 얼씨구 지화자 춤을 추었던 그 도라지가 이제 집단으로 재배되어 뛰어난 약성으로 세상을 구하고 있다. 그 내력과 숨은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전에 먼저 장생도라지로 병을 고친 숱한 사례들 중 몇 가지를 들기로 한다.

명약중 명약 장생도라지(3), 그 기적의 치유사례들

(병마와 싸우는 환우,가족은 꼭 읽기 바랍니다)

제게 어제도 말기 식도암으로 물도 못삼킨다며 방법을 물어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이 카페인지 암 승리자 모임 카페인지는 잘 모르지만 꼭 이글을 읽기를 바랍니다. 또한 00암으로 고생하신다거나 몸이 너무 약하다며 고칠 방법이 없냐고 쪽지를 주고 전화를 하셨던 분 꼭 아래 글을 읽고 희망을 찾기 바랍니다.

진리는 눈앞에 있고 명약은 발밑에 있다고 하신 약초전문가 최진규님의 가르침을 생각해 봅니다. 어떤 약초가 이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가 있을까요. 물론 복용하는 분마다 다 낫는다면 이것은 기적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큰 희망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기적이 장생도라지가 꼭 이성호님이 재배하신 것만은 아닐 것이며 카페 횟님들이 깊고 깊은 산속 까지 찾아가 척박한 토양에서 실뿌리도 상하기 않도록 정성을 다해 캔 장생도라지, 절벽바위틈에서 모진 생명력을 이어온 장생도라지는 약효가 더 높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다만 장생도라지 한가지만으로 치유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1편에서 알려드려듯이 주는 장생도라지라면 부수적 약재로 자신의 체질적 조건과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대략 궁합이 맞는 4-5가지를 첨가하여 효소로 약차로 드시기 바랍니다. 특히 몸이 안좋으신 분은 인터넷에서 좀더 공부를 한 후 신중하게 사용하셔서 아래와 같은 기적을 일구시기 바랍니다.

아래 글 역시 부장판사이신 황종국님의 글을 읽기 좋도록 글짜를 크게 하고 잘 정리하여 올리는 것입니다.

장생(長生) 도라지! 일반 도라지가 3~4년쯤 살다가 죽는데 비해 20년이 넘도록 살아서 그 뿌리가 실로 한두 포기만으로도 능히 대바구니를 넘치게 할 정도로 큰 도라지! 이 도라지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땅에서 재배되고 있다. 옛날 심신산골에 가서야 겨우 운 좋게 캘 수 있었고, 그래서 그것을 만나면 간장이 녹도록 좋아서 얼씨구 지화자 춤을 추었던 그 도라지가 이제 집단으로 재배되어 뛰어난 약성으로 세상을 구하고 있다. 그 내력과 숨은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전에 먼저 장생도라지로 병을 고친 숱한 사례들 중 몇 가지를 들기로 한다.



#빛나는 치료사례들


전남 순천에 사는 1961년 생 이동애씨.

갑상선 유두암으로 1994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갑상선 완전절제 수술을 받았고, 기도 주위로 암이 전이되어 1998년 재수술을 받았다. 주변의 남은 종양 4개는 수술을 하지 않고 방사선동위원소 치료를 받았는데, 3차까지 받고 4차 치료를 앞두고는 체력이 떨어져 더 치료를 받으면 죽는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자식들, 그리고 천하만사를 두고 세상을 등진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어둡고 아득하여 하염없이 울부짖고 있었단다.

그런데 지나가던 분이 사연을 듣고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진주에 있는 장생도라지를 찾아 가보라고 하였다. 반신반의하며 그 길로 진주를 찾아갔다. 8개월을 복용하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았더니 종양 4개중 3개는 완전히 없어지고 1개가 약간 흔적만 남아있다고 하였다. 1년을 더 먹고 재검사를 받은 결과 질환이 남아 있거나 재발하였다는 증거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1959년생인 기강옥씨(가명. 가명을 쓰는 것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본인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다. 이미 책자 등을 통하여 본명이 세상에 공개된 경우에는 본명 그대로 쓴다).

직장 악성종양, 정확하게는 직장 바로 위에 있는 S상 결장암으로 2002년 10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직장절제술을 받고 6개월간 항암 약물치료를 받아 심신이 매우 피폐해져 치료를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인터넷과 서점을 샅샅이 뒤져 암치료에 관한 각종 자료를 수집 분석하다가 장생도라지를 알게 되었다. 3개월 정도 복용하고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한 결과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복용을 계속하여 1년 반 만인 2004년 8월 세브란스병원에 가서 다시 각종 검사를 한 결과 “무병”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1943년생인 김순옥씨(가명).

1997년부터 협심증, 고혈압, 당뇨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였으나 죽을 때까지 먹어야 된다고 하면서 약만 주더란다. 2001년 7월에 장생도라지를 만나 2개월 정도 먹고 나니 두통이 사라지고 기운이 솟고 잠도 잘 자게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도 사라졌다. 병원 약을 끊었다. 5개월 정도 지나니까 매우 상쾌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 가보니 다 나았다고 하였다.


1938년생인 서조완씨(가명).

2003년 5월 식도암, 폐암(비소세포성 폐암), 승모판막폐쇄부전증, 고혈압 등의 병이 한꺼번에 발견되었다. 기침, 가래, 호흡곤란이 너무 심하여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지내야만 했다. 그 고통은 안 겪어본 사람은 누구도 알 수 없을 정도의 것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의사는 당연히 수술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고 장생도라지를 복용하였다. 27개월을 먹으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였는데, 병이 전부 완치되었다는 진단이었다. 뿐더러 70세의 나이에 20대 못지않은 건강을 되찾았다. 참으로 신비로운 체험이라고 탄복하고 있다.

1939년생인 김춘성씨.

1996년 12월 물건을 들다가 허리를 다쳤다. 몇몇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계속 악화되어 1997년 10월 괴정범일병원(부산)에서 종합검진을 받은 결과, 전신쇠약증, 요추결핵, 양 고관절 결핵 및 파괴증(완전 탈구), 간경화증, 심경색증, 신장결핵 등으로 진단되었다. 양하지가 10센치 단축되었고, 온 뼈마다 결핵균이 침투되어 있어서 양하지 조절능력이 상실되었다.

스스로는 발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을 정도로 온몸이 쇠약해져 거의 전신마비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주일에 알부민 한 병을 맞고 수혈을 두 번 받으며 동시에 결핵약과 가나마이신 주사를 맞는 치료를 일년 반 동안 받았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중증장애인 1급 판정을 받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이 때 질녀가 구해준 장생도라지를 복용하게 되었다. 2개월 정도 지나자 알부민 수치와 혈액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병세가 완화되어 퇴원하였다. 결핵약과 장생도라지를 1년 정도 함께 복용한 뒤에 결핵이 완치되었다. 이후로 결핵약은 끊고 다시 1년 8개월간 장생도라지를 복용한 결과 간경화증과 심근경색도 완치되고, 양고관절 파괴증도 90% 정도 치료되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었다. 이제 잘 걸어다니고 몸도 특별히 아픈 데가 없다.


1931년생인 재일교포 이해석씨(가명).

기침, 가래, 천명으로 고생하며 병원에서 기관지천식, 기관지확장증, 당뇨 진단을 받았다. 심장병도 있었다. 장생도라지를 복용하고 병원에서 호흡 등이 정상이 되고 기침, 가래가 없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심장병도 크게 좋아졌다.

1960년생인 이준영씨(가명).

당뇨병을 16년간 앓으면서 별의별 약을 다 복용하였으나 효과를 못 보고 두 눈의 당뇨성 망막증과 하지무력증으로 고생하다가 친지의 도움으로 장생도라지를 복용하였다. 두세 달 지나면서 서서히 기운이 나고 활기가 넘치면서 몸무게도 늘어났다. 당뇨약을 복용하면서 장생도라지를 같이 먹었는데 갑자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당뇨성 망막증으로 망막에 출혈이 생겨 피가 눈에 고여 그렇다고 하였다.

계속 장생도라지를 복용한 결과 실명된 눈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여 정상으로 돌아왔다. 출혈이 온지 3개월 여 만에 망막증이 완치되어 직장 근무에 지장이 없게 되었다. 이상의 치료사례들은 환자 본인들이 자필한 치료경위서와 초진진단서 및 완치진단서를 필자가 입수하여 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다음은 「이성호 할아버지의 장생도라지 이야기」(국일미디어, 2002년)라는 책에 실려 있는 치료사례들이다.

부산에 사는 53세의 유인산씨.

2000년에 난소선암 4기 상태에서 자궁과 난소, 난관 절제술을 받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암세포를 완전히 떼어내지도 못한 채 항암치료로 육신과 정신이 파괴되고 있었는데, 우연히 병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이성호 원장님과 장생도라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원장님을 만나 장생도라지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항암약물 치료를 겸하면서. 5개월만에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고 입맛이 돌아왔다. 다시 MRI를 찍고 종함검사를 받았다. 상태가 훨씬 호전되었다. 2개월을 더 복용하고는 의사의 권유로 육안확인을 하기 위해 2차 개복술을 받았는데,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암세포가 사라졌다. 의사도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하였다. 1차 암 제거수술 후 7개월만의 일이다.


13살 먹은 여자아이 강담월.

2000년에 감기로 시작하여 중이염이 발병하였다. 동네 의원을 1개월 여 다녔으나 차도는커녕 오히려 병세가 심해져 고막을 뚫었다. 세 번을 뚫었으나 끈적끈적한 농이 없어지지 않았다. 청력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머니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성호 원장님의 책을 보고는 며칠 후 장생도라지를 구입해서 먹였다.

1주일쯤 지나자 아이가 귀에서 “쏴~아”하는 바람소리가 난다고 하였다. 그때부터 병원 약을 끊고 장생도라지만 먹인지 2개월 여 만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깨끗이 나았다는 것이다. 평소에 자주 하던 잔기침도 멎었다. 어려서부터 근 10년을 고질적으로 앓아온 아토피성 피부염도 깨끗이 나았다.


대구에 사는 64세의 김회운씨.

어릴 때부터 기침, 감기로 평생을 고생했다. 병원도 많이 다니고 기침에 좋다는 약은 모두 구해 먹어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1996년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후로도 4년 이상 전국을 수소문해서 폐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을 안 먹어 본 것이 없고 병원과 한의원을 번갈아 다녀도 전혀 차도가 없었다. 심할 때는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호흡이 가능할 정도였다.

기침이 너무 심해 밤에 잠잘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루에 뱉는 가래가 분유통으로 3~4통, 두루마리 휴지 1통이 하루를 넘기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장생도라지 이야기를 듣고 6개월 복용한 끝에 언제 기침 천식을 앓았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기침이 사라지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60년 이상 앓아온 고질병 기침 천식이 이렇게 나았다.

부산에 사는 31세의 학원강사 김석진 씨.

어느 날 갑자기 전신의 힘이 빠지면서 어지럽고 몸을 가누기 힘들게 되었다. 체중도 급격히 줄었다. 병원에 가보니 혈당치가 600mg/dl 이상으로 나와 인슐린을 맞고 혈당치를 내렸다. 본인과 가족들은 앞이 캄캄할 지경이었다. 잘 아는 분의 소개로 장생도라지를 만났으나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복용 보름만에 혈당치가 천천히 내려가면서 기력이 회복되었고 혼미했던 정신도 맑아졌다.


경남 합천에 사는 79세의 박정환씨.

젊어서부터 기관지천식을 앓았으나 병원 한번 안가고 시골에서 일만 했다. 70세가 넘어 병원에 갔는데 폐의 손상이 심한 데다 여러 가지 합병증이 있어 어떻게 손쓸 수도 없어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런데 불효를 절감한 자식들이 돌아가실 때 돌아가더라도 원이나 없게 하자고 결정하여 그로부터 근 10년간 대구와 부산 등지의 유명한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게 했다. 그러나 워낙 고령인데다 병증이 심한지라 결국 78세 때 산소호흡기를 끼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 앰뷸런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마침 같은 고향의 79세 되는 할아버지가 같은 상태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장생도라지를 먹고 살아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로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자식들이 가족회의를 열어 의논한 결과 이성호 선생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아버지를 보여드리고 장생도라지를 복용하게 했다. 물조차 넘기기 힘들어하던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아 기력을 회복하면서 밥을 한 그릇이나 비우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후로 자식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팔순의 나이가 무색한 여생을 즐기고 있다.


인천에 사는 67세의 나종섭씨.

30여년간 천식을 앓아왔다. 1965년 폐결핵으로 폐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후 폐 기능이 약화되어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천식으로 도지기 일쑤였다. 게다가 15년 전부터 혈압까지 높아져 매일 혈압약을 복용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8년 심한 감기로 대학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던 중 급성당뇨까지 발병하였다.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잘먹어야 되는 천식과 음식조절을 해야 하는 당뇨는 상반된 치료를 요하는 것이어서 더욱 난감해졌다.

그때 KBS TV ‘6시 내고향’ 프로에서 장생도라지가 방송되는 것을 보고 이를 구해 복용하였다. 1개월 정도 지나니 기침이 현저히 줄었다. ‘옳다, 이거면 되겠구나’싶어 퇴원 후 6개월간 꾸준히 복용하였다. 혈당치는 계속 낮아졌고, 환절기마다 걸리던 감기도 잘 걸리지 않게 되었고, 기침도 눈에 띄게 줄었다. 1999년 8월부터는 혈당강하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와 15년 먹은 혈압약도 끊었다. 30년 가까이 앓아온 천식은 폐 절제수술 후의 2차 천식이라 병원에서는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장생도라지를 복용한 후로는 기침이 거의 나지 않았다.

부산에 사는 53세의 천두삼씨.

6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 다리가 불편하게 지내던 중 1993년에 목과 허리에 통증을 느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온 몸에 마비가 오면서 꼼짝 못하게 되었다. CT촬영을 한 결과 경추디스크, 요추관협착증 등으로 진단되었다.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장애인 판정까지 받게 되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짜증이 엄청 늘고 성격이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조그만 옷가게도 잘 되지 않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빠져들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장생도라지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깟 도라지가 무슨 약이 되겠느냐고 코방귀를 끼었다.

그러나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자주 마비증상이 오면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절박해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장생도라지를 복용하게 되었다. 1개월쯤 먹었는데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마비증상도 점차 없어지고 밥맛도 돌면서 삶에 대한 애착이 생겨나고 성격도 차츰 명랑해지기 시작했다. 2개월 남짓 더 복용하고는 혈액순환도 잘되고 운전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여수에 사는 46세의 장성일씨.

1999년 5월 간 뒤쪽과 등뼈 사이에 달걀 크기의 종양이 확인되어 절제수술을 받고 림프암 4기로 판정 받았다. 이후 7개월간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골수까지 암이 전이되었다. 무서운 고통과 절망, 아내와 자식들 걱정에 하루하루를 눈물과 한숨으로 보냈다. 그러던 차 친구가 ‘한국경제’ 신문에 실린 이성호 원장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장생도라지를 복용하였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인 탈모와 식욕부진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차츰 건강이 회복되었고, 거의 완치되어 피곤한 줄도 모르고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 사는 65세의 이만우씨.

평소 당뇨병을 앓아 왔는데 합병증으로 신장이 점점 나빠지면서 한쪽 발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장생도라지를 복용하면서 장생도라지 삶은 물에 발을 담그는 요법을 시행했다. 약 4개월이 지나 다리 썩는 것이 다 나았고 혈당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전북 고창에 사는 66세의 박춘자씨.

1997년 어느 날, 목에 심한 통증이 와서 인근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구강암으로 진단되었다. 목 울대에 생긴 암이라 치료가 안 된다고 하였다. 서울 큰 종합병원으로 갔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2개월을 입원하여 치료받았으나 더욱 악화되었을 뿐, 병원에서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초상 치를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듯 싶다고 가족들에게 말할 정도였다.

죽을 날만 기다리며 고향집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동네사람들이 문병을 와 한두 마디씩 거드는 중에 진주의 장생도라지가 암에 좋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남편이 한달음에 진주에 가서 장생도라지를 구해왔다. 그러나 그때의 상태는 목 울대가 퉁퉁 부어 물조차 삼킬 수 없었기에 장생도라지를 먹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남편은 이성호 원장님이 시키는 대로 매일 세 차례 이상 장생도라지 달인 액을 조금씩 입안에 발라주었다.

1개월을 꾸준히 바르고 나니 목에서 피와 농이 흘러나왔다. 심하게 토해내고 나니 목안이 시원해지면서 뚫린 느낌이 들었고, 그 다음에 물도 넘기고 장생도라지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5개월이 지나니 거짓말처럼 목이 편안해지며 통증도 사라지고 아픈 데가 없어져 음식도 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 가보니 암세포가 많이 없어졌다고 했다. 장생도라지를 더욱 열심히 복용하여 3년이 지날 때까지 수 차례 정밀검사를 해 본 결과 암세포가 전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진주에 사는 38세의 김진규씨.

1999년 2월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 결과 비토스킨성 림프종이라는 악성 임파종, 즉 암 선고를 받았다. 서울의 권위 있는 종합병원에서 재검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암세포가 몸 전체에 퍼져 손 쓸 방도가 없고, 수술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형 종합병원 두 곳을 더 다녔으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친구가 전해준 장생도라지를 먹고 1년이 지나 체력이 좋아지고, 급격히 빠졌던 몸무게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전에 갔던 종합병원 두 곳에서 다시 암 검사를 받은 결과, 전신에 퍼졌다던 암세포가 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진주에 사는 60세의 황신

자씨. 뇌경색에 당뇨병, 협심증, 고혈압까지 겹쳐 1개월을 넘기기도 힘들겠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장생도라지를 1개월 복용하고는 힘이 나고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고는 8개월을 더 먹고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부산에 사는 53세의 신왕진씨.

1995년 3월 B형 간염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의사 소견이 완치는 거의 불가능하고 대부분 10년 전후로 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시키는 대로 꾸준히 치료를 받았으나 5년 만인 2000년 12월 간암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의사에게 매달려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다가 우연히 장생도라지 이야기를 듣고 그 길로 복용하기 시작했다. 3개월을 살려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먹고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해 본 결과 놀랍게도 암이 나았다는 진단이었다.


경북 울진에 사는 56세의 정도연씨.

건강하게 열심히 살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발가락이 떨리고 아프면서 다리에 마비증세가 오더니 점차 상반신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용하다는 한의원과 약방을 전전하다가 종합검진에서 ‘파킨슨병’으로 진단 받았다. 불치병이고, 뇌가 손상되면서 점점 나빠져 종내는 온몸이 마비되어 죽는다는 말을 듣고 충격과 두려움, 고통과 슬픔에 싸여있었다. 우연히 남동생이 텔레비전에서 봤다면서 장생도라지를 권유했다. 현대의학도 못 고친다는 병을 이깟 도라지가 무슨 소용이랴 싶어 별로 반갑지 않으면서도 복용하였다. 몇 개월 후 거짓말처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계속 많이 좋아져 평소처럼 바쁘게 살아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경남 사천에 사는 76세의 정학순 할머니.

9남매를 길러내고 기력과 기억력기 갑자기 감퇴하면서 자식들도 못 알아보게 되었다. 일면 ‘치매’라 불리는 뇌 위축과 다발성 뇌혈관경색증. 거기다 퇴행성 척추증과 제2요추 압박골절, 저혈압이 겹쳤다.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별 효과 없이 대소변을 받아내는 지경에 이르러 퇴원하였다. 간병하면서 절망에 빠진 자식들이 우연히 장생도라지 이야기를 듣고 그 길로 도라지를 구해서 먹였는데, 단 두 번을 먹고도 기운을 차리고 음식을 잘 드시는 등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1개월 후 기억력도 많이 좋아졌다. 2개월 정도 지나서는 거짓말처럼 몸이 좋아져서 들에 나가 일을 할 정도가 되었다. 자식들은 정말이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본다.


진주에 사는 58세의 최승현씨.

발병하면 사망률이 아주 높다는 소세포 폐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다가 견딜 수 없어 자포자기 상태에 있던 중 우연히 이웃에서 장생도라지 이야기를 들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도라지를 복용한지 4개월만에 암 종괴가 없어졌다.

그 외에도

일반 당뇨병, 고등학생의 소아성 당뇨병, 16년된 당뇨환자의 당뇨성 망막증, 76세 할머니의 협심증, 78세 할아버지의 퇴행성관절염, 15년을 고생한 심한 만성기관지염과 천식, 대장을 10cm 잘라낸 대장암, 태어날 때부터 8년 이상 고생한 9세 여아의 아토피성 피부염, 복수가 심하게 차고 흑달까지 온 간경화, 온 몸이 쑤시고 손이 떨리는 갑상선 질환, 서른 살에 찾아와 약을 먹어도 점점 악화되던 결핵 등 완치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명약중 명약 장생도라지(4),

초인(超人) 이성호(부장판사 황종국)|

아무리 21년산 장생도라지를 개발하고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한 무수한 불,난치환자를 고쳐 기적을 이뤄냈다고 하여도 부장판사란 신분으로서, 공인으로서 한 개인에게 초인, 즉 수퍼맨이란 칭호를 한다는 것은 잘못하면 여론의 뭇매와 사회적 비난을 받기 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판사님이 이성호씨를 일컬어 초인이라 부르니 얼마나 그 분의 노력과 결실에 감동하였겠는지 충부히 이해가 됩니다. 우리사회는 조금만 잘못해도 트집을 잡아 헐뜯기 일 쑤입니다. 한 개인, 그것도 성공한 사업가를 향해 장생도라지 효험사례를 중심으로 광고하는 듯한 책까지 낸 것은 참으로 용기있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판사신분으로 어찌보면 무모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 만큼 황판사님의 책이 불,난치병에 걸려 병마와 싸우는 수많은 환우와 그 가족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건강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란 대의명분과 철학이 있고 사회적 생명을 건 용단이 있었기에 가능하리라 봅니다. 또한 그 내용이 객관타당성이 있고 조금의 거짓이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가능하겠지만 의사,한의사 협회에서 판결에만 충실해야 할 판사가 특정인을 두둔하고 의사,한의사를 폄하한다고 비판을 해댄다면 과연 자리를 보존할 수가 있을까요. 참으로 용기있는 처신에 찬사를 보냅니다.

카페에서도 귀농하여 약초농사를 하시는 분도 몇 분 계신데 이성호씨를 귀감삼아 부디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초인(超人) 이성호

장생도라지를 개발한 이성호 선생님. 올해 76세시다. 공식 직함은 주식회사 장생도라지 회장님이시지만, 필자는 뵐 때마다 항상 선생님으로 부르고 싶은 느낌이다. 실제로 회장님은 ‘선생님’이라는 칭호에 딱 어울리는 그런 분이시다.

굵은 인생을 먼저 사시고 그 속깊은 경험으로 후학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계신 시대의 어른, 바로 그런 ‘선생님’이심에 틀림없다. 소설보다 더 기이하다할 수밖에 없는 선생님의 일생을 더듬어보면 맹자(孟子)가 한 다음의 말을 저절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장차 큰 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天將降大任於斯人也)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必先勞其心志)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苦其筋骨)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餓其體膚)
그 생활을 빈궁에 빠뜨리며(窮乏其身行)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하느니라(拂亂其所爲)

선생님이 걸어온 길은 위의 말에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다. 참으로 사람으로서는 갈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형극의 길을 일심으로 걸어온 의지와 신념, 노력과 정성, 그것이 마침내 하늘을 감복시키고 뜻을 이루었다. 뒤돌아보면 처음부터 하늘이 예정한 것이었고, 선생님은 초지일관 오로지 한 뜻으로 그 길을 걸으며 하늘의 바램에 부응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분명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하늘이 내려준 이 시대의 초인(超人)이자 이인(異人)이 아닐 수 없으리라. 장생도라지와 선생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선생님의 살아온 행적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하면서 반추해본다.

#비법 터득에 걸린 20년 고난의 세월

선생님은 1931년 경남 진양군 나동면 귀곡리에서 7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남의 논을 부쳐 생활해야 했던 가난에 일본의 전쟁물자 조달을 위한 수탈까지 겹쳐 그야말로 굶기를 밥먹듯이 해야 했던 시대였다. 초등학교도 갈 형편이 못되어 어린 나이 때부터 농사일을 거들고 품을 팔았다(머리가 좋아 글을 어깨너머 귀동냥으로 익혔다).

그러나 그 덕에 자연을 저절로 배우게 되었으니 길게 보면 그것도 하늘의 원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은 소년 이성호가 오래된 도라지를 만나는 기연을 맺게 되는 것이 산에 꼴 베러 가서였음에서부터 벌써 드러나고 있다.

14세쯤이었을까. 초여름 어느 날, 한 마을에 살던 아저씨와 함께 나무하러 가게 되었다. 그 아저씨는 기관지천식과 폐결핵을 고질병으로 앓고 있어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입냄새도 심하여 53세가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혼자 살고 있었다. 나무를 하다가 아저씨가 무언가 캐서 먹고 있는데, 보니 아주 크고 오래된 도라지였다.

아저씨는 그것을 칼로 벗겨 한 뿌리를 다 먹고 나더니 바로 잠이 들었다. 소년이 나무를 한 짐 해 놓고 아저씨를 흔들어 깨웠으나 도통 깨지 않았다. 해가 지도록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년은 할 수 없이 혼자 나무를 지고 산을 내려왔다. 그러고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이틀이 지나 다시 그곳에 나무를 하러 가게 되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3일 전 모습 그대로 여전히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흔들어 깨워 보았으나 되질 않았다. 다시 나무를 한 짐 해놓고 저녁이 되어서 흔들어 깨웠더니 그제야 일어나면서 “아~함! 한숨 잘 잤다.”하는 것이 아닌가. 사흘 반나절을 정신없이 자고는 한숨 잘 잤다니, 황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리둥절한 건 아저씨였다.

도라지를 먹고 나니 무척 졸려서 잠깐 잔 것 같은데, 그새 사흘 반이 지났다니! 그런데 몸이 아주 개운하고 날아갈 것 같이 가볍다고 하면서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그때부터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그 아저씨는 더 이상 기침도 하지 않고 피를 쏟지도 않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니 가래도 싹없어지고 혈색이 돌면서 기운이 펄펄 나는지 일을 더 많이 하였다.

동네 어른들은 이를 보고 “오래된 도라지가 산삼보다 낫다”거나 “저 양반, 불로초 먹었군” 하였다. 후에 더위도 추위도 타지 않는 건강체질로 바뀐 아저씨는 장가들어 자식도 낳고 80세까지 장수하였다. 소년은 어린 나이지만 그 놀라운 일을 통해서 오래된 도라지의 신비하고도 충격적인 약효를 체험하였다.

26살에 군대를 제대하여 살길을 찾던 선생님은 사람으로 태어나 국가사회와 후세를 위하여 한가지 좋은 일을 해 놓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인생이라는 생각 하에 어려서 체험했던 ‘산삼보다 낫다’는 그 도라지를 길러서 병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각오를 한다.

이름 없는 초목도 저마다의 수명이 있건만, 존귀한 사람의 생명이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갖은 병으로 죽어 가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해 5천 평의 밭에 도라지를 심었다. 그런데 3년 정도 아무 탈없이 잘 자라던 도라지가 뿌리가 썩어 들어가며 죽었다.

한 포기도 캐 내지 못하고 밭을 갈아엎었다. 다시 5천 평의 밭에 도라지를 심었다. 이번에는 거름도 충분히 주고 제초제도 뿌려가며 더욱 정성껏 길렀다. 그런데 또 3년이 되기 전에 전부 썩어버렸다. 그렇게 수없이 도라지를 심고 썩어서 내버리기를 15년을 반복하였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번번이 3~4년째가 되면 어김없이 썩어버렸다.

기가 막히고 억울해서 도라지 밭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도 많이 했다. 도와주던 친척들도 차츰 외면하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동네 아이들까지 ‘도라지 또라이’라고 놀렸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생활은 물론 5남매의 아이들 공부도 뒷전이었다. 가족과 친척들이 번갈아 찾아와 미친 짓 그만 두고 포기하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죽어야 하는 안타까운 생명을 구하자. 그 길은 오로지 오래 묵은 도라지를 길러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라는 의지가 더 생겼다. 41세. 빚 때문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동네에서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 혼자서 야반도주를 했다. 어느 정도 자란 도라지와 씨앗, 솥단지 하나와 소금 한 자루만 달랑 들고 혼자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려 보낸 그 삼신산 중의 하나가 지리산 아니었겠는가 싶어 그곳에서 도라지를 제대로 다시 한번 키워보자는 결의였다. 지리산에서도 가장 깊은 골짜기, 사람의 발길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움막을 치고 먹을 것을 산에서 구했다. 가재, 개구리 따위를 잡아먹거나 나무껍질, 칡뿌리, 솔잎 등 먹을 수 있는 것을 다 식량으로 삼았다.

겨우 연명할 정도만 먹으며 도라지 씨앗을 여러 군데 나누어 심었다. 맨손으로 흙을 파헤쳤다. 대화할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이 외로움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눈뜨고 나서 해질 때까지 산도라지를 캐서 옮겨 심거나 온갖 방법으로 도라지를 키우고 관찰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어느새 머리는 길대로 길어 치렁거리고 가져간 옷도 다 헤져 말 그대로 거지꼴이었다.

산열매를 따먹고 기르다 망친 생도라지를 한 광주리씩 삶아 먹고 견뎠다. 특히 겨울에는 소금 한줌과 계곡물로 허기를 달래야 했다. 머리는 하얗게 세어 어쩌다 약초꾼이나 땅꾼들과 마주치게 되면 그들이 선생님의 괴상한 몰골에 놀라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기 일쑤였다. 몇 해 동안 대화할 상대가 없어 말을 잃어버릴까 싶어 저녁이면 혼자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두고 온 처자식 생각과 죄책감에 밤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모질게 맘을 다잡아먹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 따지고 보면 내 식구는 몇 명에 불과하지만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로 생명을 구할 사람은 수백 수천 명이 될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외로움과 죄책감도 도라지에 대한 열망을 꺽지 못했다.

누구나 사람의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 생각하니 죽자고 달려든 그 일 외에 다른 길은 애초부터 없었다. 험한 산짐승도, 살을 에는 추위도, 끝없는 굶주림도 사람의 굳은 심지보다 무서울 순 없었다. 그렇게 도라지를 키우는데 신명을 다 바쳤다.

그러나 지리산에서도 3년쯤 되자 도라지 뿌리가 썩기 시작했다.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후회와 두려움과 절망감으로 괴로웠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더 미친 듯이 도라지를 돌보고 이것저것 실험을 계속해 나갔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이 오면 ‘내가 하는 일은 결코 의미 없는 일이 아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십 년이 걸리든 백 년이 걸리든 반드시 죽지 않는 도라지를 키워내리라 거듭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막힌 발견을 한다. 불과 한 달 전에 옮겨 심은 움막 옆 황토, 시뻘건 황토, 거름기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땅, 도라지는커녕 잡초도 자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옮겨 심은 그 곳에 새순이 무성하게 돋아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 옮겨 심은 것보다도 생기 있고 탐스러웠다. 조심스레 뿌리를 캐보자 도라지는 썩은 상처를 밀어내고 새살을 돋아내듯이 뿌리가 새로 생겨나고 있었다. 엄청난 발견이었다. 온갖 정성을 다해 좋은 흙에 심은 도라지는 뿌리가 썩어 다 죽었는데도 황토에 심은 도라지는 썩지 않고 자란 것이다. 황토는 다른 식물이나 씨가 자라지 못하는 땅인데 도라지만은 건강하게 자란다.

마침내 비밀을 흔연히 깨달았다. 도라지는 땅의 기운을 먹고살지 거름기를 먹고사는 식물이 아니었다. 오로지 땅의 기운을 흡수하여 그 성분을 자신의 뿌리에 영양분으로 고스란히 쟁여 놓는다. 따라서 뿌리가 썩지 않도록 키우려면 거름기 없는 척박한 땅에 심고 비료와 거름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고도 3년쯤 지나면 땅의 기운을 도라지가 모두 흡수해버리므로 다른 땅으로 옮겨 심어야 한다. 그리고 줄기가 지나치게 자라지 못하도록 가끔 줄기를 잘라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수십 년, 수백 년을 키워도 뿌리가 썩지 않는다. 이토록 간단한 원리를 20년 각고의 세월, 그 숱한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 끝에 찾아내었구나.

선생님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에 크게 고함을 지르다가 마침내 땅바닥에 주저앉아 실성한 사람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46세 때의 일이다. 선생님은 그 때의 일을 뒤돌아보면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영감과 도움을 받은 듯 하다고 한다.

#한의학 공부에 또 10년

장원급제한 사람의 심정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그러나 모습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깡마른 몸에 호호백발이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였다. 집안 꼴도 말이 아니었다. 자식들 공부는 고사하고 겨우 빌어다 먹는 처지에 빚쟁이들의 성화가 대단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장생도라지를 맘껏 내다 팔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 도라지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고 그 성분이 인체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이 궁금했다. 사람들이 물으면 자신 있게 설명해주고 혹시 전문가를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고 싶었다. 그래서 한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1981년에 1억7천만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었는데, 빚쟁이들에게서 하루가 멀다고 고소장이 날아들고 멱살잡이를 당하고 경찰서, 검찰청, 법원을 수시로 불려 다니는 형편에서도 한의학 공부를 했단다. 『동의보감』『방약합편』 등의 옛날 의서를 옥편을 뒤져 한자를 배워가며 겨우겨우 읽어 내려갔다.

진단법, 인체의 구조와 생리작용, 갖가지 질병의 원인과 증상, 온갖 약재의 성분과 효능 등을 공부했다. 빚쟁이를 피해 숨어 지내면서도 손에서 노트를 놓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쯤하고 나니 웬만한 이치엔 통달했다 싶을 만큼 자신이 생겼다. 그 동안 만든 노트가 370권이었는데, 거기에 적힌 분량은 3,700권 깜이었다.

돈이 없어 공책 한 권마다 깨알같은 글씨를 귀퉁이까지 여백이라고는 없이 빽빽하게 썼기 때문이다. 한의학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래 묵은 도라지가 정말 귀한 물건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죽음 직전에 체험한 21년생 도라지의 약효

선생님은 도라지로 실험을 해보고 싶어 묘안을 짜다가 1년생부터 21년생까지 연차별로 따로 유리항아리에 담아 술을 부었다. 그런데 2개월쯤 지나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 동안 몸을 돌보지 않아 엉망이었던 것이 다 터져 나온 것이다.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 가고 몸져누웠다. 짐작에 병명이 수십 가지 될 것 같았다.

꼼짝없이 누워서 앓기를 열 달, 스스로 생각해도 나을 가망이 없었다. 절망감이 엄습했다. 지칠 대로 지쳐 죽을 준비를 하고 싶었다. 제 죽은 뒤는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그 동안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정리해둔 공책 370권을 가지고 산골짜기로 들어가 모두 불살랐다.

그리고 다음날 도라지 술병을 모두 폐기 처분하려고 방 안쪽에 있는 비밀창고로 들어갔다. 그런데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1년생부터 20년생까지의 도라지가 든 술병은 색깔이 모두 같았으나, 유독 21년 묵은 도라지가 든 술병은 진한 노랑색의 황토빛을 띠고 있었다. 20년생까지의 도라지 술은 빛깔에 변화가 조금도 없는데

단 1년 차이인 21년생 도라지의 술만 완전히 다른 빛깔이다? 참으로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그 도라지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그 약효가 어떨지 좀더 연구하고 공부해서 밝혀야 할 일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다시 가슴속에서 열기가 끓어올랐다. 일단 21년생 도라지의 술을 마셨다. 한 달간 매일 그 술을 조금씩 마셨다. 그러는 동안에는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온 몸이 쑤시던 것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달 쯤 지나자 몸이 훈훈해지면서 기운이 나고 살 것 같았다. 몸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다리에 힘이 생기고, 마침내 거뜬히 일어나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8개월을 꾸준히 먹었다. 나날이 몸이 좋아지면서 흰머리가 다시 검어지고 머리숱이 늘기 시작했다.

체력도 무척 강해져서 피곤한 줄 모르고,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하늘이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 감사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다고 싶으니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빛을 보다

장생도라지를 키울 수 있는 비법을 개발했고 약효도 스스로 확인했다. 그런데 그 도라지를 세상에 전하려면 뭔가 확실한 근거가 필요했다. 전문가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기로 하고 1년생 도라지와 25년생 도라지 2뿌리를 들고 전국의 유명한 한의원과 약재상과 박사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문전박대를 당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도 많이 받았다. 사람들은 25년생 도라지를 보고 오히려 “이게 도라지가 맞습니까?”하든가 도라지가 25년을 살 수도 있느냐고 되물었다. 신기해 하기는 했지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2년 가까이 그렇게 전국을 돌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의 소개로 법률신문사를 찾아가 사장을 만났다. 한 달을 따라다녔다. 〈법률신문〉에 기사가 실렸다.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서서히 입소문이 나면서 팔리기 시작했다. 가져간 사람들마다 효험을 보았다며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어 자연히 홍보가 되었다. 경상남도 생약연구소 소장인 경상대 교수 성환길 박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성박사는 도라지를 보더니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하다면서 1년 동안 여러 가지 기초실험을 했다. 그 결과 20년 넘은 도라지에는 일반 도라지와는 전혀 다른 성분이 들어 있고, 그런 성분이 혈액순환장애와 당뇨병, 고혈압, 만성위염, 폐결핵, 피부염, 기관지 천식에 탁월한 효능을 있음을 밝혀냈다.

그 반향은 참으로 커서 박대하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방송에도 여러 번 초청 받아 나갔다. 전문가들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연구를 자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석·박사 연구원들이 다양한 연구를 했다. 장생도라지에 관한 석·박사 논문도 적지 않게 나왔다.

지금까지도 연구가 끝나지 않을 정도로 무궁무진한 비밀이 이 도라지에 숨겨져 있나 보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동인당한방병원, 대구 중앙병원 등 여러 병원에서도 임상에 장생도라지를 활용하여 많은 성과를 보고 있다.

60세가 되던 1990년 ‘성호장생도라지’ 상표를 등록했다. 그리고 주요 일간지 27개 신문에 ‘20년생 도라지의 약리 성분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1991년에는 ‘다년생도라지 재배법’으로 세계 최초로 특허를 받았다. 영농기술로서는 국내 첫 특허다. 1993년에 국립 경상대학교와 진주전문대학 등 4개 기관을 연계한 ‘다년생도라지연구소’를 운영하게 되면서 체계적인 사업에 나섰다.

1995년에는 ‘성호장생도라지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도라지 뿌리를 자연 그대로 판매하다가 1997년에 현대식 가공공장을 만들어 추출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1998년 장생도라지 추출물로 4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항균성 및 염증성 질환 치료제, 고지혈증 치료제, 당뇨병 치료제, 암 치료제. 그 추출물이 항균활성작용, 지질대사개선작용, 혈당강하작용, 암세포접착저해활성작용, 면역증강작용, 항관절염작용 등에 있어서 기존 약제나 2~4년근의 일반 도라지에 비해서 월등한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1999년 주식회사 장생도라지를 설립했다.

일본 도쿄, 오사카, 홍콩에 총판을 설립했다. ISO 9001 국제품질인증을 획득하고 벤처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200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애틀란타, 뉴욕 등 3곳에 지사를 설립하고 하와이에 총판을 두고 대미 수출을 시작했다. 이는 호놀룰루에 있는 한·양방 종합병원인 고려종합한방병원이 장생도라지를 이용하여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의 기관지 천식 환자를 5개월여 만에 완치 단계에 이르게 한 임상결과를 얻고 나서이다.

그리고 ‘장생도라지 재배법’을 국제특허 출원했다. 그해 10월 경남 우수벤처기업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농림부와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세계농업기술인상’ 대상을 받았으며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고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2년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제12회 ‘일가상’(민족을 일깨우고자 헌신하신 일가 김용기 선생의 유지를 기려 제정한 상)을 받았고, ‘장생도라지 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장생도라지연구회도 발족하였다.

경상대학교 자연과학대학장 성낙주 박사, 대구 중앙요양병원장 송국평 박사, 서울 동인당한방병원장 김관호 박사, 한국화학연구원 생명의학연구부 김영섭 박사와 천연물연구실 유시용 박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지질대사연구실장 이현선 박사, 진주국제대학교 식품생명과학부 정영철 박사, 조선대학교 약학대학 정혜광 박사, 장생도라지 생명과학연구소장 노성환 박사 등의 쟁쟁한 전문가들이 국내연구진으로 포진하고 있고, 일본과 미국의 해외연구진도 있다.

2003년 4월 선생님은 대구중앙병원, 중앙요양병원, 한중한방병원의 상임고문 겸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그해 10월에는 장남인 (주)장생도라지 이영춘 대표이사가 제1회 경남과학기술대상을 수상했다. 지역특화산업으로 지정되어 정부지원을 받아 2005년 공장과 사무실 건물을 신축했다. 현재 서부경남 진주 근방 230여 농가 15만여평에 위탁재배를 하고 있고, 1년에 지급하는 영농비가 6억여원에 이른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겸손한 노력

세계에서 유일한 휘귀한 생명 신소재를 손에 쥐었다. 세상의 인정을 받고 외형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이렇게 되면 보통 안일에 빠지거나 향락을 누리거나 씨족적 아성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대부분의 경향일 터이다. 그런데 장생도라지는 이러한 해이로부터의 자기관리가 엄격하기 이를 데 없다.

오래된 도라지로 세상을 살리겠다는 그 초심이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 전개되고 있을 뿐, 한 치의 헛점도 없다. 이는 장생도라지의 재배단계부터 완제품 출시와 판매의 전 과정에 그대로 배어있다.

우선 위탁재배를 하면서도 도라지 재배과정부터 이성호식 재배법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한다. 3년 이후부터 20년이 넘기까지 각각의 시기마다 민감한 기술적 요소들은 물론, 하나 하나의 재배이력을 세밀하게 관리한다. 채 갖추어지지 않은 10년, 15년 짜리 저년근이 유통되어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도라지 추출액을 만드는 가공공정도 엄격하기 짝이 없다. 식품을 만드는 과정은 치밀하게 설계되고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원칙 하에 항공기 생산방식에서 도입한 선진적인 공정관리 방식을 구축하여 품질과 위생의 모든 요건을 까다롭게 관리하고 있다.

이 방식은 일반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작업표준보다 진일보한 적극적인 공정관리방식으로, 언제 어디서 누가 작업을 하더라도 공정의 기준이 지켜지고 일정한 품질이 생산될 수 있도록 한다. 제품생산이 이루어지는 전체 공간은 위생상의 문제 요소들을 사전 차단하는 폐쇄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원료 및 반제품이 노출되는 공정은 밀폐된 특별구역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며, 먼지가 발생할 수 있는 포장공정은 전처리실과 최종포장실로 구분되어 있다. 추출공정의 경우, 유사제품을 생산하는 식품공정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추출탱크와 포장기를 위생배관으로 연결하고 센서를 부착하여 추출이 완료되면 자동으로 이송되어 포장되도록 개조하였다.

이는 재공중인 원료용액이 공기중에 노출되어 위생을 저해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장생도라지 제품의 가공공정은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고찰, 설계되었다.
이렇게 엄격한 과정을 거쳐 나온 추출물도 최종적으로 선생님의 입맛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말짱 도로묵이 된다.

추출탱크가 한번 작업을 마치면 50명이 한달 동안 먹을 추출액(가격 7,500만원 상당)이 생산되는데, 그 액을 선생님이 먼저 한 국자 떠서 먹어 보고 맛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가차없이 폐기해버린다. ‘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 선생님의 변함없는 소신이다. 생산된 완제품은 아직 수요에 비해 물량이 부족하다. 재배기간이 20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 한정된 물량을 배분하는데도 기준이 있다. 급한 환자 먼저, 내국인 먼저다. 하루 일정 중에서도 가장 우선인 것이 환자 면담이다.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보더라도 환자가 찾아왔다는 연락이 오면 바로 사무실로 달려간다.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하루 5시간 이상 자지 않고 공부하고 노력한다.

본인 스스로 나이를 잊고 산다고 하신다. 옆에서 보기에도 그러하다. 장생도라지의 무궁무진한 비밀을 더 밝히기 위해서는 시간이 짧을 뿐이라고 한다. 주식회사 장생도라지의 사훈은 ‘자연사랑 인간존중’이다.


#‘과학’이 밝혀낸 약성

장생도라지의 뛰어난 약성은 그 동안 많은 학자들과 의사들, 대학과 연구소들이 다양하게 연구하여 상당히 밝혀냈고 지금도 계속 연구되고 있다. 그 결과의 일단만 여기에 옮겨 적어본다. 일반도라지와 장생도라지는 인삼과 산삼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20년이 지나면 그냥 먹어도 쓴맛이 없고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향기도 산삼의 향기와 비슷하다.

장생도라지의 주성분은 인삼과 마찬가지로 사포닌이다. 21종의 사포닌이 들어 있다. 이눌린도 장생도라지의 주성분인데, 특이하게 GF2와 GF3 함량이 높은 이눌린이 검출된다. 사포닌과 이눌린의 구조와 함량이 6년근 도라지와 다르다. 특히 보통 도라지에는 들어 있지 않은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고, 아직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물질도 들어 있다.

이는 장생도라지의 성분이 기존의 과학으로는 밝혀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으로, 서양식 분석과학의 한계를 드러냄인 동시에 장생도라지의 신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런 성분들이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을 깨끗이 청소해 주고 중성지질을 분해하는 등 노폐물을 없애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피를 맑게 하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

이것이 어떤 병도 낫게 하는 근원이다. 여기에 나쁜 균을 죽이는 항균작용까지 있어 염증을 없애고 세포들을 활성화시키는데 탁월하다. 면역력을 크게 증강시켜 면역세포가 늘어나게 하고 T-임파구 등의 정상세포를 활성화시킨다.

기관지천식에 백발백중이고, 기관지확장증, 기관지염, 페결핵도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고 잘 나으며 고혈압, 동맥경화증, 협심증 등도 치료효과가 높다. 항암작용이 우수하면서 독성과 부작용이 없어 이상적인 천연 항암약물로 친다(특히 폐암에 두드러진 효과가 있다). 암 전이를 억제하고 암환자의 통증을 가볍게 해주는 효과도 분명하다.

어떤 진통제를 써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던 말기 간암 환자가 장생도라지만 5일분 먹고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경우가 있다. 2~4년생 보통 도라지도 상당한 항암작용이 있지만 장생도라지는 몇 배 더 뛰어나다(22년생 도라지가 2년생 도라지에 비해 면역증강 활성이 5배 이상 높다).


『동의보감』에는 도라지가 정력을 감퇴시킨다고 적혀 있으나, 이는 보통 도라지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20년 이상 된 도라지는 그 성질이 판이하게 달라져서 오히려 찬 성질을 덥게 하는 보양제가 되어 정력을 높여준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키는 활성이 높다. 그래서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병의 치유에 그만이다.

보통 1개월이면 기력을 회복시키고 2~3개월 안에 증상이 사라지게 한다. 빠른 경우는 복용 4~5일 만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맞던 인슐린 주사를 끊을 수 있을 정도로 혈당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선생님은 당뇨병이 심해져서 눈이 잘 보이지 않거나 손발에 염증이 나서 진물이 날 정도로 악화된 환자도 복용 6개월쯤 지나면 거의 완치에 가깝게 낫는 걸 많이 보았다고 한다.

아무리 심한 당뇨병 환자라도 1년이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낫고, 재발 방지를 위해 2~3개월 더 복용하면 그 이후로는 장생도라지를 안 먹어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이다. 이는 장생도라지가 단순히 혈당치만 낮추는 것이 아니라 췌장의 기능을 정상화시켜줌으로써 당뇨병을 근본적으로 치유시켜주기 때문이다.

장생도라지에는 음양이 화합되어 있다. 일반 도라지는 성질이 차기 때문에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고 할 수 있으나, 도라지가 20년 이상 되면 그 성질이 바뀌어 더운 성질과 찬 성질을 함께 지닌 약초로 변하기 때문에 몸이 찬 사람은 따뜻하게 해주고 몸이 더운 사람은 열을 식혀주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경우에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적으로’ 분석한다고 해도 소위 말하는 ‘과학’은 생명의 신비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이렇게 과학이 이르지 못하는 영역은 오히려 경험과 실증이 말해준다. 선생님은 장생도라지를 연구하면서, 그리고 온갖 난치병 환자를 접하면서

경이로운 일을 무수히 경험했다고 한다. 과학적인 검증보다 앞선 이런 사례들을 통해 장생도라지의 무궁무진한 치유능력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위에서 든 질병들 외에도, 관절염, 신경통, 골다공증, 만성 간염, 간경화증, 중풍, 산후증, 냉증, 부인병, 우울증, 아토피성 피부염, 무좀, 재생불량성 빈혈, 중이염, 늑막염, 비만증, 변비, 불면증, 두통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갖가지 난치병들이 치유되거나 호전되었는데, 탈모, 충치, 백납 외에는 모든 병이 낫더라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다. 장생도라지 회사에는 요즘 의사들이 많이 찾아온단다. 그들의 병원에서는 치료되지 않는 환자가 장생도라지를 먹고 분명히 살아나니까.
이렇게 탁월한 약효를 가진 장생도라지도 고발을 당한 적이 있다.

대구 약전골목에서 집단으로 고발을 했단다. 선생님은 수사를 받으며 수사관에게 이렇게 따졌다고 한다. “물에 빠진 사람 1명만 구해도 영웅이 되는 세상인데 나는 병원에서 못 고치고 내버린 쓰레기들을 구해 놓았는데 뭘 잘못했노?” (펌)

"장생 도라지 란"

산도라지. 그중 장생도라지란 수령이 약 21년을 넘어서야 장생 도라지라 불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로 장생을 키우는곳이 한군데 있다하더군요.

도라지를 저두 나름대로 캐고 있습니다. 먼저 채취 시기가 중요합니다.

장생도라지는 10월이후(씨방이영글고 단풍이지는시기) 에서 4월 싹이 오르기전까지가 약성으로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그중 12월에서2월까지가 가장좋은시기임)

(절벽위의 장생도라지)

또한 토양에따라 많은 약성차이가 있습니다. 흙에서크는 도라지들은 대부분이 나이에비해 많이 비대합니다.

또한 절벽에서 큰다고해서 모두 좋은것이 좋은것은 아니지요.

절벽의 난간위에 부옆토나 흙이많이쌓이는곳에 대형 도라지가 나옵니다.

이는 토양이 기름지고 배수가 잘되는곳이라서 이또한 나이에비해 몸집이 많이 크는것입니다.

지금껏 저의경험으론 절벽이나 바위틈의 깊은곳으로 위쪽 노두부분은 흙과 부옆토로 덟히면서 뿌리를 바위틈으로 길게 뻗은후 아침이슬과 땅에서 올라오는 수분만 섭취하며 오랜세월 살아가는 장생도라지라야 가장 가치있는 장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벽 바위틈으로 뿌리내린 장생도라지)

대부분 흙에서 크는 도라지는 뇌두가 길게 뻗고 몸통이 잘 썩는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노두의 턱수에서 다시 몸통을 많들기도 하지요.

(일반 흙속에서자란 장생도라지)

위의 도라지는 노두가 보이지 않아 년수는 어찌볼수가 없네요.

노두가 길다고해서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데로 바위틈 작은 흙을 안고 사는 장생들은 노두를 올리지 않게 하기위해 최대한 노두를 아래로 눌리면서 살아가지요. 이는 겨울철 추위에 견디기 위함입니다.

저의 작은 소견입니다. 혹시나 틀린점이 있다하여도 너무 질책은 하지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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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3.09.19 23:22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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