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리던 비가 자정께부터 함박눈으로 바뀌면서 때맞춰 불어온 북픙과 손잡고 산과 들판 그리고 집과 차량의 지붕 위로 수북이 쌓였는데도 그치긴 커녕 더욱 거세지는 듯하다.
귀찮긴 하지만 빗자루로 자동차의 윈도우와 차창을 쓸어내고 트라제의 지붕은 걍 놔둔 채로 갠신히 어린이집 등원시각을 맞췄다. 물롱...손자는 할매가 사 둔 앙징맞은 파카로 중무장 상태.
오후엔 다소 뜸해질까 하는 기대로 갓 수확을 미루고 오랜만에 할매랑 둘이서 율암온천에 가 기침을 달래며 온천욕을 즐겼는데 점심식사를 하면서 보니 눈발은 쉬 멎을 눈치가 없고 설상가상으루 기온이 자꾸 내려가 내일 아침엔 영하 6℃로 뚝~ 떨어질 거란 예보다.
늦여름 부터 가을내내 긴 가뭄 속에서 알탕갈탕 물을 뿌려가며 기른 청갓이 자칫하면 밤 새 얼어버릴 염려가 있기에 부랴부랴 내려가서 흙덩어리가 뭉청뭉청 달려 나옴에도 아랑곳 않고 갓 수확을 서둘렀다.
초기에 병이 들어 시든 잎이 많이 나타나기에 눈에 뜨이는 대로 잘라주다 보니 별로 무성하겐 보이지 않았는데 워낙 오랜 기간 자란 탓인지 잎이 돌산갓처럼 두텁고 너른데다 길이도 50㎝ 내외로 충분하게 길어나면서 남은 잎새가 더 벌어진 까닭에 양이 보기보다 많아 수레로 네번을 날랐다.
한데, 이러는 과정에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밭에 나와본 적이 없던 할매가 밭에 나타난 건 물롱..수확에 적극 개입한거다. 어쩌다가 이런 기적같은 일이 발생했을까? 수년동안 파종에서 수확에 이르도록 전혀 거들떠보지 않던 할매가 손에 칼을 쥐고 마당에 내려와선 흙이 달라붙은 뿌리를 잘라내고 맹물이 이발하러 간 사이에 3층 계단까지 날라 놓기까지 했기에 오삽과 빗자루로 널브러진 흙덩이를 치우는 간단한 작업으로 상황 종료.. 이런 기적에 힘입어 자칫 얼어버릴뻔했던 갓을 가까스로 거두었다.
이제 밭에 남은 거라곤 상추와 대파 뿐인데다가 양도 많지 않아서 그냥 놔두고 먹다가 얼어도 아쉬울 게 없고 부추도 애매한 키라서 손 대기에 망서려지는 정도이니 만큼 눈이 더 내린대도 찜찜할 게 엄따.
밭이야 그렇다 치고... 여지껏 지내오면서 첫눈이 함박눈인데다가 폭탄처럼 쏟아져 쌓이는 풍경은 난생 처음 보는 건데 이런 날씨라면 지난 겨울부터 지속되던 가뭄도 이로써 끝인 셈인가?
해갈이라면 올 듣던 중 젤 반가운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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