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자올레길18-1
일시: 2019.1.29.09;30분 제주항 출발 시작:10:43분. 종료:15:53분
소요시간: 5:10분. 휴식 총15분 (3회)
이동거리:20,82km.
누구와: 올레길에 만난 한기섭씨외 1명 3명이 같이.
2019.1.28일 김포공항에서 19:05분 출발하는 제주항공 예약을 했다.
이번 여정에서는 올레길 동반지인 학문 친구가 탁구를 치다가 다리를 삐끗해 부득이 일정을 같이 못하고 항공권예약을 해지하여 혼자 나서게 되었다. 지난해 여름 올레길 끝내려 항공권예약 해놓고 태풍이 불어 예역취소 했고 배편으로 완도에서 가려던 계획도 일기가 나빠서 실행치 못했다. 지난번 항공권예약취소로 위약금 39,000원 물고 못갔는데 이번에 또 취소하면 언제 끝내게 될지 알수가 없어 홀로라도 먼저 끝낼 결정을 했다. 집에서 17:20분 나와서 공항에 도착하니 18:30분 발권을 하고 검색대를 통과하여 기다리는데 출발이 늦어진다. 19:15분에 탑승시작 19:30분이 되어서 출발했다. 제주공항에 내리는 20:32분. 택시를 타고 도두해수사우나로 갔다. 택시요금은 6400원이 나왔다. 2017년에는 사우나가 9천원을 받았었는데 1만원으로 인상이 되었다. 입장하여 신발과 배낭을 사물함에 넣고 샤워를 하고 나서 찜질방으로 올라갔는데 불을 적게 땠는지 썰렁하고 바닥은 미지근하다. 잠 잘자리를 찾아 남자수면실에 들어가니 두사람이 안쪽에서 취침중. 문앞자리에 콘센트가 있어 그곳에 자라잡고 매트리스 깔고 1000원 주고 덮을 타월을 받아서 덮고 누웠다. 폰충전기를 꼽아 충전을 해놓고 취침. 그런데 30분쯤 지나 한 뚱뚱한 남자가 내 발쪽 반대편에 눞더니 얼마 안되어 심하게 코를 골며잔다. 1시간이 지나도 그치지않는 요란항 코골음 소리. 견디다 못해 밖으로 나와 먼저 왔을때 자던 창문옆 자리에가서 누우니 춥다. 다시 안쪽으로 자리를 옮기니 20대 젊이이가 불도 켜놓고 TV도 켜놓고 전화통화를 길게한다, 관리인에게 TV꺼달라하고 불도 껐다. 잠사 후 이 젊은이가 다른 곳으로 가서 그냥 자는데 추운건 담요를 덮어도 마찮가지다. 6시가 되어 일어나 사우나에 가서 샤워를 하고 7시까지 기다려 가져간 스프를 컵에담아 뜨거운 물울 붓고 타서 빵과 같이 먹고 7:20분 나와서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서 중앙로4거리까자 가는 버스를 탔다. 30분쯤 달려 중앙로4거리에서 내려 재주항으로 걸어간다.
천천히 걸어도 25분 정도면 갈수 있는 거리이다. 바닷가 쪽으로 걸어갔다. 도착하니 08:05분 출발은 09:30분이니 오래 기다려야 한다.
중앙4거리에서 제주항
추자올레길 18-1 코스(상추자항-묵리-상추자항)
18코스들머리 파란색 안내판 옆으로 올라가는 길
마실물을 한 병 배낭에 넣어 왔는데 비행기에서 빠져 버렸다. 그래서 물을 사려고 밖으로 나와 도로를 건너 편의점에가서 물 두병을 샀다.
제주항
건너와 대합실에 오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와있는데 배냥을 멘 사람들이 많아 보여 올레길을 같이 걸을 사람이 많은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천주교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이고 올레길를 걷는 사람은 5명 뿐이었다. 올레길 스템프를 찍는 사람들로 확인했다. 여기서 배를 타기전 표를 사는데 13400원 받는다. 내가 올레길자료를 보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보고 있었나 보다. 시간이 되어 배를 타려고 나가는데 누가 부른다, 추자올레길을 가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고 걸어나와 퀸스타2호에 승선했다. 10:43분 상추자항 도착하여 걸어나오니 바로 올레길 안내표지석과 스템프박스가 보인다. 스탬프는 이곳에서 시작점과 종점을 같이 찍었다.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100m 쯤 올라가다가 우측으로 올라가면 학교가 나오고 학교 우측으로 조금 올라가면 최영장군 사당이 나온다.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경치가 멋지다.
상추자항 19-1코스 지도
스템프 찍고 부지런히 좌측도로 따라가다가 보니 코스가 아님. 다시 돌아와 우측으로 올라감.
도로표지판이 보이는곳까지 갔다가 되돌아 옴
스템프박스 시작점과 종점 스템프가 같이 있음
최영장군 사당
최영장군이 어떻게 추자도에 왔었을까?
고려 말 시대의 최영 장군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장수이다. 최영 장군이 반란 진압 차 제주에 들어왔던 것은 1374년이었다. 때는 원나라가 망해가고 명나라가 흥해가던 격변의 시기, 명나라는 고려에 말 2천 필을 요구했고, 고려는 제주의 말을 징발하려 했다. 그러나 제주에서 말을 키우던 원나라의 목호들은 자기 황제들의 말을 명나라에 줄 수 없다고 거부하며 난리를 피웠다. 이게 목호의 난이다.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제주 정벌을 계획하고 최영 장군을 탐라로 보냈다.
최영 장군이 목호들을 토벌하러 제주로 들어가던 중 풍랑을 만나 후풍을 위해 추자도로 피신하였던 것은 8월 24일이었다. 최영 장군은 추자도에서 5일 간을 머물렀다. 그리고 한 달 후 목호의 난을 진압하고 제주를 떠날 때에도 추자도에 들렀다. 이때는 9월 23일부터 10월 17일까지 25일간을 머물렀다.
추자도에 머물던 최영 장군은 추자도 앞 바다에는 고기가 많으나 주민들이 궁핍하게 사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에 최영 장군은 주민들에게 그물 만드는 법과 그물로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물로 고기를 잡게 되면서 추자도 주민들은 비로소 궁핍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최영 장군의 조그만 개혁이 추자도에 일대 변혁을 불러 온 것이다.
이 일을 잊지 못했던 추자도 주민들은 최영 장군의 은덕을 기리고자 사당을 지었다. 그리고 해마다 음력 칠월 보름날과 섣달그믐날에 풍어와 풍농을 빌며 제사를 지내 왔다.
최영 장군 사당은 추자면 대서리 추자초등학교 뒤편 동산 기슭에 세워져 있다. 대서리에 있는 추자초등학교는 제주와 왕래하는 추자항에서 5분 거리일 정도로 가까운 곳이다. 사당으로 가려면 초등학교 교정 한편으로 학교 운동장을 건너야 한다. 학교 뒤편으로 돌아가면 약간의 경사를 가진 시멘트 계단이 나타나고, 사당은 그 계단 끝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사당이 있는 곳은 목호 토벌 당시에 고려군의 주둔지였다고 한다. 최영 장군 사당으로 가는 길은 올레길 18-1코스가 시작되는 길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한기섭씨 파란 자켓과 인사를 나누고 세 사람이 함께 올레길을 걸었다.
사당을 지나 올라서서 바라본 능선에서 조망
상추자항 전경
능선에 올라서니 처음 나타난 헬기장
봉골레산 정상
봉골레산에서 건너다본 해군기지.
돌탑과 산불감시초소
등대
이곳에서 배낭을 놓아두고 나바론 절벽을 구경간다.
처음엔 올레코스였는데 지금은 변경이 되어 빠져있는데 경치가 너무 좋아 그냥 가면 안되지!
저 계단까지 올라갔다 온다.
바닷가 바위 위에도 정자가 있다. 시간만 충분하면 갔다오면 좋지만 너무 시간이 부족하다.
나바론 절벽에서 내려다본 상추자항
참치 양식장이라고 한다.
등대를 지나고
이제는 저 다리를 건너 갑니다.
다리 건너기전에 있는 올레길 안내판
다리를 건너 능선으로 올라서고 여기서 묵리마을 방향으로
묵리마을로 내려서니 완두콩이 꽃도 많이 피고 열매도 많이 달려있네요.
묵리슈퍼앞 18-1 중간 스템프 박스
황경한의 묘 (천주교 성지)
황경한은 누구인가?
지금은 천혜의 관광지로 빼어난 풍광과 온화한 날씨로 찾는 이로 하여금 이국적인 정취마저 느끼게 하는 제주도는 조선 시대에 중죄인을 세상과 격리시키는 유배지였다. 추자도는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섬으로 상 · 하추자, 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1271년(고려 원종 13년)까지 후풍도(候風島)라고 불렀으며, 그 후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면서 추자도로 개칭하고 1910년 제주에 속하게 되었다. 바로 이곳 하추자도에 황사영의 아들 황경한(黃景漢)의 묘소가 있다.
백서(帛書) 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黃嗣永)은 1790년 진사시에 급제한 해에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丁若鉉)의 딸인 정난주(丁蘭珠, 본명 命連)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여 1800년 아들 경한을 낳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백서 사건으로 체포되어 11월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후 홀어머니는 거제도로, 부인은 제주도로, 외아들 경한은 추자도로 각각 유배되고, 가산은 모두 몰수당해 한때 명문 세도가였던 가문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남편을 잃은 정난주가 아들을 데리고 하염없이 뱃길을 가야 했던 곳이 바로 제주이다. 게다가 겨우 두 살 난 젖먹이 아들 경한을 데리고 떠나는 유배의 길은 너무나도 외롭고 고통스런 일이었다. 죄인으로 제주 땅을 밟으면 자신은 물론 아들마저 죄인의 자식으로 평생을 멸시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정은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궁리를 거듭하던 정난주가 호송선의 뱃사공에게 뇌물을 주어 매수하고 사공은 다시 두 명의 나졸에게 술을 먹여 역시 그들을 매수한 뒤 젖먹이를 하추자도 예초리(禮草里) 서남단의 황새바위에 내려놓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나졸들은 뱃길에서 아이가 죽어 수장(水葬)했노라고 보고함으로써 이 일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하추자도에 남겨진 경한은 오씨(吳氏) 성을 가진 한 어부의 손에 의해 거두어졌다. 경한이 추자도에 떨어뜨려졌을 때 그가 입고 있던 저고리 동정에서 나온 이름과 생년월일에 의해 그가 바로 황경한임을 알게 되었고 오씨의 아들로 키워졌다고 한다. 오씨의 집에서 장성한 경한은 혼인하여 두 아들 건섭(建燮)과 태섭(泰燮)을 낳았는데, 그 후손이 아직도 추자도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낯설고 외로운 유배지에서 생을 다한 황경한은 사망한 후 신양리 남쪽 산의 중간 산등성이에 묻혔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하추자도에서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추자도에서는 오씨와 황씨가 결혼을 하지 않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하추자도의 황경한이 살던 오씨 집은 1965년 불타 없어졌고, 그때 그 집안에서 간직해온 경한의 젖먹이 때 옷이나 가첩 등도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성록”(日省錄)이나 “사학징의”(邪學懲義) 등에 의하면 황경한이 추자도로 오게 된 것은 “나이가 2세 이하로 어려 법에 따라 교수시키지 않고 영광군 추자도에 노비로 유배시킨다”는 판결문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정난주는 젖먹이 아들이 평생 노비로 사는 것을 피하고자 유배를 가던 도중 추자도 예초리의 바닷가 바위 위에 아들을 남겨 놓았고, 다행히 오씨 집안사람에게 발견되어 그 집에서 성장하게 된 것이다.
1900년에 제주 선교를 위해 파견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라크루(Lacrouts, 具瑪瑟) 신부가 추자도를 왕래하던 중 1909년 황경한의 손자를 만나 전후사정을 알게 되었다. 라크루 신부는 샤르즈뵈프(Chargeboeuf, 宋德望) 신부에게 서한을 보내 순교자 황사영의 아들 경한과 그 후손들의 비참한 생활을 알렸고, 샤르즈뵈프 신부는 이 사실을 전교잡지에 소개했다. 그 후 라크루 신부는 프랑스 은인들의 후원금으로 황경한의 손자에게 집과 농토를 사주었다.
추자10경 안내판
올레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지만 보고 갑니다.
아기 황경한의 동상과 눈물의 십자가가 저 아래 있어요.
돈대산 정상이 이곳에서는 제일 높은듯. 올라오는 길이 고도는 별로 높지않아도 힘들어...
오름길이 힘드네요. 오늘 물마실 시간도 축소해가며 시간이 바듯하여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오름길에 운동부족으로 쥐가 나려고 몇 번 신호가 왔는데 다행히 잘 넘겼습니다.
상추자항 도착
드디어 상추자항에 도착했습니다. 5시간 만입니다. 이제는 16:30분 퀸스타2호 타고 제주항으로 가야 합니다. 시간이 오후 4시,시간이 조금 남아있어 편의점에가서 캔맥주2개, 음료수1개 사서 셋이 나누어 마시고 타고 제주로 갑니다. 제주에 도착하니 6시가까이 되어 이제 서귀포 올레인증센터로 갑니다. 버스를타고 서귀포에 도착하니 19:40분 올레패스포트 제시하고 완주확인 받습니다. 확인하는 동안 시원한 맥주를 1컵씩 주문하여 마십니다. 다마시고 나니 인증확인되어 완주증신청서에 기재하여 주니 인증서를 작성해서 주고 완주 메달도 줍니다. 그리고 완주자의 벽앞에서 사진도 찍습니다.
이로서 제주 올레길 완주가 모두 끝 났습니다.
2016.10.18일에 서작하여 2017년 9.12. 16:40분 21구간 종달 바당에 도착하여 제주 본섬코스를 모두 마차고 이런 저런 사유로 한해를 넘기고 2019.1.29일 16:15상추자항에서 올레길을 마감했습니다.
제주올레길 인증센터에서 완주기념 촬영
추자올레길을 함께 걸었던 갑장 친구 한기섭씨(경주)
인증을 마치고 나와서 제주흑돼지 연탄구이집에서 시원한 맥주와 같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게 600g 한근에 56,000 하네요. 그리고 나와서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 있는 워터파크에서 쉬기로하고 버스로 이동. 그곳은 시설과 서비스가 좋습니다. 뜨끈한 해수탕에서 피로를 풀고 편안하게 잘 자고 아침에 다시 샤워하고 스프를 타서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경기장앞 버스터미널에서 친구는 공항으로 가는 버스로 나는 성산 일출봉을 가려고 버스를 타려고 가나 버스가 조금 전 출발 5분쯤 기다리니 공항가는 버스가 먼져들어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이어 나도 버스를 타고 성간 일출봉으로가서 들머리로 가니 입장료를 받네요.
다음날 30일 성산일출봉을 올라갑니다.
경노우대 무료로
광치기 해변에 유채가 피었는데 입장료를 받는다고 하네요.
성산일출봉 분화구
성산일출봉에서 본 우도
경로는 무료입장시켜주어 들어가서 잘보고 내려오니 10:00. 아래 해녀짬봉집에서 짬뽕과 우도땅콩막걸리로 아침 해결하고 201번 버스타고 제주시외버스 앞에서 내려 공항까지는 택시로 가서 31일 출발하기로 한 예약을 해지하고 30일 12:50분 출발하는 제주항공 편으로 돌아 왔습니다.
본래 계획은 30일 한라산 등반할 계획 이었으나 다음 학문 친구와 가려고 일정을 바 꾸었지요.
첫댓글 추자올레길을 끝으로 제주올레길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진작에 끝나셨을것을.. 공백기로 이제야 마무리한 셈이었군요.
나바론 절벽을 비롯하여 섬풍광도 이국적이고 함께 하신 분들로 정겨움도 나누셨구요.
오랜만에 접하는 성산일출봉도 반갑기만 합니다.
멋진 한라 모습 담아주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