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2.土. 흐림
2015년 12월31일 보내기.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누구나 해마다 12월31일 보내기를 하고 있고 또 해왔을 것이다. 나도 어쩌다보니 한해의 마지막 날 보내기의 그런저런 쌓임이 벌써 꽤 되어버렸다. 12월31일이 들어있는 달력을 차곡차곡 쌓아놓는다면 아마도 내가 앉아있는 책상높이 만큼 올라올는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에는 대부분 12월31일을 친구들과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든지 함께 배낭을 챙겨 들고 겨울 산으로 향했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모여앉아 음식과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와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는 가족들과 새해 해맞이를 보러간다고 해돋이 명소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고 또한 시기적으로 남방지역을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라 인도의 부다가야나 바라나시에서 새해를 맞이하기도 했는데, 한 십여 년 전부터는 12월31일이 되면 송년철야정진送年徹夜精進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절을 한 군데 정해서 참배를 갔다. 주로 서울 시내와 근교에 소재하고 있는 봉은사나 불암산 사찰로 많이 다녔었다. 밤새 신도님들과 정진을 하고, 새벽에는 하얗게 김 오르는 떡국을 먹고, 아침에는 눈부신 해맞이도 하게 되니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라 이제는 12월31일이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걸로 되어버렸다. 그런데 지지난해부터는 거리를 좀 더 멀리 넓혀서 고북면 천장암으로 12월31일 철야정진을 다니기로 했다. 그렇지만 말이 좋아 송년철야정진이지 아내와 둘이서 오붓하게 정진을 했던 전전년도 12월31일에는 새벽2시경에 나는 방으로 내려온 뒤 아내 혼자 새벽예불까지 모시고 나서 방으로 내려왔고, 지난 12월31일에는 웬일로 아내가 새벽1시반 경 방으로 먼저 내려간 후 내가 두 시가 조금 지나고 방으로 내려갔다. 아마 강남의 봉은사나 불암산의 큰절처럼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신도님들과 함께라면 해맞이를 하는 아침까지 철야정진을 훨씬 잘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역시 혼자 혹은 두세 명이 하는 철야정진은 처음부터 시간표를 정해놓고 이렇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법당에 들어가지 않는 한 시간이 지나가면서 다소 지루하거나 싱거워지기 쉬운 모양이었다. 이런 경우에 잘 적용이 되면서 사람의 긴장緊張과 이완弛緩사이의 마음상태를 알려주는 좋은 예例가 되는 우리말 속담俗談이 하나 있다.
‘한 사람이 소 한 마리를 먹을 순 없지만 백 사람이 소 백 마리는 먹을 수 있다.’ 는 대중의 함께 하는 힘을 보여주는 좋은 속담이라고 하겠다. 정진이나 기도도 이와 같아서 역시 혼자 보다는 두 사람이, 두 사람보다는 백 사람이 한 자리에서 더불어 기도와 정진을 할 때 서로 격려도 하고 의지도 하면서 신행信行의 응집력을 발휘할 수가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기도나 정진도 떼로 해야만 좋은가? 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일 적보다는 좋은 도반들과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함께 하는 수행이나 정진이 더 힘이 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밥도 혼자 먹을 때보다는 여럿이 함께 먹을 때가 훨씬 맛나고, 김장을 담글 때도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힘을 합할 때가 일도 즐겁고 김치 맛도 좋을 가능성이 높다. 상품으로 연극 티켓이나 음악회 표를 줄 때도 한 사람에게 두 매 이상을 주는 것을 보면 수준 높은 문화를 감상할 때도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할 때가 감상의 질이나 정서적 친밀감을 더 높여준다고 생각을 해서가 아닐까한다. 부처님께서도 법을 전하러 갈 적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말씀하셨지만 안거수행을 할 적에는 승가僧伽를 이루어 공동생활하기를 권하셨던 것이다. 여하튼 그랬다.
집에서 12월31일 오후5시 반 경에야 천장암을 향해 출발을 했다. 서울외곽도로까지 빠져나가는데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을 소비해버렸고 과천-의왕 간 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도 이따금 지체가 반복되었다. 서평택IC에서부터 서해대교까지 9Km 지체라는 전광판 안내문을 본 뒤 화성휴게소에 들러서 저녁을 먹은 다음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결국 당진IC를 지나친 후에야 도로상의 지체遲滯가 말끔히 해소되어 제 속력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밤9시 경에야 천장암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아마 지지난해 12월31일에도 이 시간 즈음에 도착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에는 까만 밤하늘에서 하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해서 법당에서 정진을 마치고 새벽2시 경에 밖으로 나왔더니 온 세상이 하얗게 이불을 둘러쓰고 있는 듯했었다. 차에서 내리자 아직 하현달이 떠오르지 않은 맑은 밤하늘에 눈을 찌를 듯한 별들이 빛나게 자신을 밝히고 있었다. 가만있자 저 별자리가 카시오페아 자리던가? 하고 감탄을 하면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북두칠성을 제외한 다른 별자리 이름들은 제 생김새와 명찰이 전혀 닮아있지가 않아서 빛나는 별들의 이름은 전혀 머릿속에서 빛나지가 않았다. 경사가 급한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고 나면 성우당惺牛堂이 보이고 불이 밝혀있는 1층의 차실이 보였다. 이번에는 도반님들 두 분이 더 오기로 했던 터이라 바로 법당으로 올라가지 않고 차실로 향했다. 차실에는 주지스님과 몇 분 도반님들이 앉아 차담을 즐기고 있었다. 따뜻하고 향기 나는 차를 몇 잔 마시고나서 법당으로 올라갔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영단과 신중단에도 각각 삼배를 올려 송년정진의 시작을 알려드렸다. 그리고 정진을 시작했다.
먼저 4,5십분 가량 입정入定에 들었다가 천수경千手經 독송을 하면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십이 독을 했다. 그러고 나서 관세음보살 정근精勤을 하면서 한 시간 가량 절을 했다. 절을 한참 하다 보니 절도 염불처럼 자아도취력自我陶醉力이 있어서인지 힘이 더욱 솟아나는 것 같아 더욱 기운차게 절을 했다. 시간이 점점 흐를 때마다 몸에서 뿜어나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처음에는 겉옷을 다음에는 긴팔 티셔츠를 벗어부치고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관세음보살 정근과 절을 마쳤다. 뜨거운 몸과 불붙은 마음을 점차 가라앉히고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하나로 모으려고 애를 쓰면서 그 생각의 가느다란 실이 끊이지 않도록 마음을 따라가며 집중했다. 그러다보니 4,5십 분 가량이 지나 새벽 두 시가 넘어있었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촛불을 끄고 법당을 나섰다. 여전히 밤하늘에는 하얗게 반짝이는 차가운 별들이 가득했으나 별들의 이름은 아무래도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 공양시간에는 김 오르는 하얀 떡국에 까만 김 가루를 뿌려먹었다.
아침공양 후에 새해 해맞이를 한다고 해서 주지스님을 모시고 대중들과 함께 연암산 정상에 올랐다. 유속流速 더딘 강물처럼 흐릿하게 번져있는 회색구름들이 산봉우리부터 하늘의 천정天頂까지 맴돌 듯 서로 섞여들면서 덧칠하듯 흐르는 바람에 개운한 일출日出은 표표히 나타나지 않았으나 새 한해를 시작하는 기운찬 붉은 기운은 사방 허공으로 은은하게 뻗쳐 나오는 것을 확연히 볼 수 있었다. 회색의 하늘, 회색의 허공, 멀리 보이는 회색의 풍광들 속에는 수많은 종류의 회색들이 충만해있는 모습들이 나타나있어서 혹시 회색灰色이란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해낼 수 있으면서 원만하고도 깊은 성찰을 담아낼 수 있는 완전한 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해맞이를 준비하면서 아침공양으로 하얀 떡국을 먹고 있던 나와 연암산 정상에 해 맞으러 다녀와 점심공양을 하고 있는 나와 서로 하등 다를 것이 없는 나는 그로부터 세 시간 뒤에는 서울 집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신년 가족들 저녁식사 모임이 있어서 그 나는 또 상봉동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오리 바비큐로 식사를 하고 2차로는 노래방으로 자리를 바꿔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내 차례가 세 번 돌아와 세 곡을 불렀는데, 석별은 89점을, 고래사냥은 100점을, 빗속의 여인은 93점을 받았다. 사실 열창을 한 세 곡 중 가수 홍민이 불렀던 석별이 제일 자신이 있는 노래였는데 내 감성의 우아한 분출과 밀물 같은 정서적 흐름을 감정이 없는 노래방기계가 알아 줄 리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본래 이 모임은 일 년 반 만에 잠시 귀국한 아들아이 환영식을 겸한 자리였으나 술기운 얼큰 도는 몇몇 어른들이 마이크를 잡고 놓지 않는 바람에 아들아이는 어찌어찌 한 곡 밖에 부르지 못했다. 막상 오랜만에 아들아이 노래를 들어보았더니 노래와 술 실력은 아빠보다 두 수쯤 위인 듯하고 돈도 아빠보다 월등하게 잘 벌겠는데, 종교적 열정이나 깨달음을 향한 구도의 염원은 글쎄,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12월31일부터 1월1일까지는 하루 24시간, 1440분의 속도로 그렇게 매 분 매 초 쉬지 않고 그침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 2015년 12월31일 보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