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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아침에 일어나니 소장님은 뭔가 정리하시고 계셨다. 다른 두분은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바로 씻기로 했다. 먼저 씻어야 나도 편하고 남들도 편하다. 오늘은 일본 최초의 수도인 아스카를 가는 날이다. 짐은 숙소에 놓고 카메라와 가방을 메고 출발했다. 오늘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우산을 챙겨갔다.
뭐 일본 여행이 처음이라서 소장님 뒤를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오사카에서 아스카로 가는 지하철노선은 복잡했다. 갈아도 타야 했지만, 지하철 칸이 분리되는 구간도 있었다. 정확하게 확인하고자 소장님과 일행분이 지하철 안내원분에게 물어보았다. 연세가 많으신 안내원은 분리되는 객차를 설명해주셨다. 내가 지하철 안에서 걸어가다가 잠시 멈췄는데 밖에서 안내분이 바로 안으로 들어와서 더 가야 한다고 손짓해주셨다. 친절한 안내원 때문에 아스카에 잘 도착했다.
아스카 역에서 1일 대여 자전거를 빌렸다. 걸어서 많은 유적을 답사할 수 없고 오사카와 달리 지금 아스카는 시골이어서 교통수단이 좋지가 않다. 자전거로 일반 자전거와 전동자전거 둘 중 하나를 고를 수가 있다. 여행 전부터 비싸기는 하지만 전동자전거(1200엔)를 타기로 했다. 어떤 길을 갈지도 모르는데 무리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사실 여행 전 회사 일로 주말도 쉬지도 못했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에 봤던 기름통이 달려있고 뒷바퀴에 모터가 달린 자전거로 생각했다.
그냥 자전거 아닌가? 뭔지 잘 모르겠음
하여간 사용설명을 들었지만 잘 몰라서 이것저것 헤매면서 조작하면서 기어를 3단을 맞추니.
엉? 뒤에서 누가 밀어준다. 오르막길을 이렇게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니.
전동자전거가 좋다고 말하니 일행 중 그런 짱구애니에서 짱구 엄마가 아빠에게 사달라고 한 에피소드가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검색하니 있었다 출처: 유튜브
너무 편해서 짱구 엄마가 왜 전동자전거 사달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로 간 유적은 키토라 고분 박물관이다.
고구려 계통의 사신도가 그려진 키토라고분은 1983년에 발굴되었는데 이미 도굴꾼이 사신도 한쪽 면을 깨고 들어간 무덤이다.
그런데 그 면의 구석만 깨져서 주작이 그려진 사신도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아서 남았다고 한다.
이것이 그 기적(모조품이지만)
석실 천정에는 천문도가 그려져 있는데 위도상으로는 아스카가 아니라 평양으로 추정되고 있어서 무덤 주인이 고구려계 인물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박물관의 전시는 매우 훌륭했는데 전시실 중간에는 사방에 모니터를 설치하고 사신 그림을 띄우고 확대하거나
키도라 고분의 모습을 사방에서 보여준다.
천정에는 천문도가 그려져 있어서 마치 무덤 안과 밖에 동시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물관에 나와서 키도라 고분의 모습을 확인
이어서 옛날에는 도래인들과 연관이 깊을 것으로 보이는 히노쿠마데라(檜畏寺) 지금은 아미아시신사를 들러서 절터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까마쓰츠카와 고분으로 향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주름치마와 비슷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유명한 다까마쓰카와 고분의 모습.
사실 다까마쓰카와 고분 내부 벽화의 영상은 키토라 고분 박물관에서 보았었다. 키토라 고분 영상물이 끝나면 다까마쓰카와 고분 내부 벽화의 영상이 이어서 나왔다.
이것이 그 주름치마 인데 마지막 아스카자료관에서 찍은 모조품이다.
그리고 소장님께서 다까마쓰카와 고분 박물관은 유료인데 그렇게 굳지 들어갈 정도는 아니라고 하시고 역시 일정이 촉박하여서 고분만 보았다. 근처에 몬무천황릉도 답사하고 바로 다음 장소인 타치바나테라(橘寺)로 이동을 하였다. 이때부터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타치바나테라는 쇼토쿠 태자의 탄생지로 불린다. 본당에는 쇼토쿠태자 상이 안치되어있다. 그리고 본당 옆에는 얼굴이 모양이 다른 이면석이 있었다.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이 함께한 이면석
귤나무가 많다고 하는데 도시촌X이라 어느 것이 귤나무인지.
쇼토쿠 태자가 탔다는 청동 말
비 좀 오지 말라고 시주도 하고 종도 치고.
다음에는 이시부타이 고분으로 이동하였다. 우리가 도착하자 답사팀 같은 20여 명 되는 일본인 일행도 무덤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서로 겹쳐서 답사와 사진찍기는 불편할 것 같아서 우리는 서둘러서 먼저 무덤으로 들어갔다.
젊은 시절에 역사스페셜에서 본 적 있는 고분을 실제로 보니 기분이 묘했다. 영상이나 사진과 당연히 똑같은 모습이지만 실물로 보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맛으로 답사를 다닌다. 이시부타이는 소가노 우마코의 무덤이다. 그는 당시 일본 최고의 실력자였다. 그의 무덤은 백제계 횡혈식 석실묘로 이루어져서 그가 백제계임을 알 수가 있다.
웅장한 크기를 보면 당시 그의 가문의 강력한 힘을 알 수가 있다.
석실 안의 크기도 만만치 않다. 안에는 배수로도 설치되어 있다.
봉토 없이 무덤이 석실만 덩그러니 있는데 을사의 변으로 소가씨가 멸문된 후 훼손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이 먼저 둘러보고 무덤을 나간 뒤에 일본인 일행이 이어서 들어왔는데 무덤 안에 불행한 사고가 있었다. 한 여성분이 급하게 들어가다 넘어진 것이었다. 비가 내려서 미끄러진 모양이었다.
이 부분에서 넘어진 듯했다.
나는 뒤돌아 있어서 소리 밖에 못 들었는데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소장님께서 앞으로 넘어졌다고 말씀하셨고 사람들이 모여서 그녀를 일으켰는데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다. 유적 관리 직원이 소식을 듣고 왔다. 그리고 응급차를 부르는 듯했다. 우리는 멀리서 걱정하고 있다가 내가 다음 곳으로 가자고 했다. 그녀를 돕는 사람도 많이 있고 외국인이 멀리서 쳐다보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걸어가면서 답사할 때는 몸조심해야 한다고 서로 말을 나누었다. 한 명이 다치면 모든 일정이 그대로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다치면 여러 가지 복잡해진다. 하여간 답사 때는 몸조심이 최우선이다.
오후 1시
우산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비가 왔다. 구름이 끝도 안 보이니 이건 오후 내내 내릴 듯했다. 이제는 몇 군데 보지도 못할 것 같았다. 이동 수단이 자전거라서 비를 맞으면서 가야 했다. 일단 여기서 밥을 먹느냐? 답사를 먼저 하느냐? 말이 나왔는데 나는 답사를 먼저 해야 하는 쪽이었는데 다들 밥을 먹자고 해서 인근 식당에 들어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스카 일대는 시골이라서 식당이 안 보였다. 그때 들어가서 밥을 먹은 것은 옳은 생각이었다.
식당은 상가를 겸하고 있었는데 밥을 먹고 다들 우비를 샀다. 좋은 우비는 아니지만, 일단은 비가 와도 답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장소는 판개궁이다. 판개궁은 일본 역사에 중요한 앞서 말한 을사의 변과 이어서 다이카 개신이 시작된 곳이다.
혁명이 이루어진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하는 소가노 일족에게는 쿠데타이겠지만
비가 계속 내리는 관계로 소장님이 답사는 비를 피할 수 있는 만요문화관으로 변경했다.
만요문화관은 만엽집을 소개하는 박물관인데 위층은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아래층은 당시 만엽집 시대 문화를 보여주는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만요문화관 위층에서 들어가다 보면 유리창 아래쪽으로 유적 하나가 보였다. 동전을 생산하던 유적인데 일본인 가이드가 와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이드도 우리 한국인들에게 어떻게든 설명을 해주려고 애는 쓰셨다. 주위에 무슨 말인가 물어보았는데 관산성 전투 당시 성왕이 기술자를 보내주고 왜군을 지원받았다는 내용이라고 하였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만요문화관 위층은 전혀 사진을 찍지 못했다. 비를 맞아서 정신도 없었고 사진 촬영이 안 되는 곳이 많았던 것 같았다.
동전을 주조한 유적
만요문화관 아래층에 유적에 대한 자료와 당시 생활을 알 수가 있다.
옛날이야기를 4장의 그림으로 그려서 회전하는 기계로 만들었다. 아이들이 좋아할 듯한 기계이다.
다음은 아스카데라로 이동하였다.
백제에서 온 공인들이 건설한 사찰로 지금은 작아 보이는 사찰이다. 이유는 일본이 아스카에서 나라도 천도하면서 일부 건물만 두고 간고지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발굴된 유물들
아스카데라 옆에는 수총이 있는데 을사의 변에 죽은 소가노 이루카의 머리가 묻힌 곳이다.
다음은 마지막 일정인 나라문화재연구소 아스카자료관이다.
이 당시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막바지로 왜국에서도 외교전을 펼치던 상황이었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는 승려나 공인들을 보내서 아스카 건설에 도움을 주었다. 일본서기 기록에 따르면 신라 왕족이자 외교관인 김춘추도 아스카를 방문했다.
당시 수도 아스카 모형
한국과 밀접한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아스카시대
이 감견산 중턱에 소가노 에미시, 소가노 이루카 부자가 살던 저택이 있었다.
을사의 변 당시 아들 소가노 이루카의 시신을 확인한 에미시는 저택에 불을 지르고 자결했다.
이 박물관 지하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유물이 있다.
옛날에 산전사(야마다레라)가 불타면서 회랑 벽면이 그대로 넘어지고 땅속으로 묻혔다.
그것이 1982년에 발견된 것이었다. 그때 발굴된 것을 그대로 조립해서 이곳에서 세워둔 것이다.
이제 하루의 답사 일정이 끝났다. 저녁까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스카 역으로 돌아가서 자전거를 대여하신 분에게 돌려줬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숙소인 오사카로 돌아갔다.
오사카에서 라면을 먹었다. 라면집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에는 오사카 G20 행사가 한창이었다. 이어서 날씨 소식이 뜨니 태풍이 지나갔다고 했다. 참 고난의 여행었다. 신발과 가방 모두 젖었다. 내일은 나라 답사 일정인데 내일도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비바람을 뚫고 다친 사람 없이 아스카를 답사했다니 평생 기억에 남을 듯 했다. 오사카 시내를 둘러보고 숙소로 들어갔다
. 일행분이 숙소 담당자에게 방에 곰팡이가 말했는데 숙소를 아래층으로 바꿔주셨다. 숙소 짐도 옮기고 신발과 가방을 닦고 습기를 제거하려고 안에 가져온 휴지를 넣고는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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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세한 답사기 감사합니다..
답사기 잘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