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3. 2026. 8. 9 구역, 이름 :
2026-33 구역예배를 위한 말씀
-본문 : 마태복음 18:21~22
-찬송 : 254장, 214장
-제목 :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말씀 : 마태복음 18장은 ‘교회공동체’에 대한 가르침으로 제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바로 앞 구절에서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어떻게 그를 회복시켜야 하는지 절차를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계속해서 죄를 짓는 형제를 어디까지 용서해야 하는지를 물은 것입니다. 당시 랍비들은 3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쳤기에, ‘일곱 번’을 제안한 베드로는 스스로 매우 관대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라고 답하시며 용서에 한계가 없음을 선언하셨습니다. 문자적인 490번이 아니라, 무한함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무한한 용서는 우리가 받은 은혜의 크기를 알 때만 가능합니다. 용서는 받은 은혜에 대한 순종입니다.
복음으로 함께 : 인간의 용서는 계산을 합니다(21절). 베드로의 질문은 인간적인 용서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용서에 횟수를 기록하고 한계를 정하고 싶어 합니다. ‘세 번까지는 참아도 네 번째는 안 돼’라며 손익을 계산합니다. 베드로가 제안한 ‘일곱 번’은 당시 랍비들의 가르침(세 번)보다 훨씬 너그러운 횟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베푸는 관용’이라는 계산적인 틀에서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용서를 베풀 때 마음속으로 횟수를 세고, 상대방의 태도를 저울질하며, 어디까지 참아주어야 하는지를 계산합니다. 용서는 내가 베푸는 관용이나 아량이 아닙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무한한 용서’를 결단하게 합니다(22절).“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는 예수님의 대답은 인간적인 계산의 틀을 뒤집는 ‘무한함’의 선언입니다. 이것은 ‘끝없이 용서하라’는 명령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용서의 주체가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근거는 ‘나의 관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용서의 은혜’에 있어야 합니다. 용서는 우리가 받은 은혜의 크기를 알 때 비로소 가능하며,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순종할 때’ 결단할 수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일백 데나리온 빚진 형제를 용서할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삶 나누기 : 받은 상처의 크기를 생각할 때, 하루아침에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용서는 감정이 아닌, 자신이 받은 은혜에 순종하기로 하는 결단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향한 비난 멈추기, 하루 한 번씩 그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기 등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입니다.
▣ 말씀문답
1. 본문을 읽고 아래의 질문에 답을 써주세요.
① 예수님께 일곱 번 용서하면 되냐고 물은 제자는 누구입니까?(21절)
답 :
②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몇 번까지라고 하셨습니까?(22절)
답 :
2. 본문을 읽고 아래의 ( )안에 정답을 써주세요.
①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 )하여 주리이까 ( ) 번까지 하오리이까.
②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 ) 번뿐 아니라 ( )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3. 본문을 읽고 뒤죽박죽 된 말씀을 바르게 정리해서 적어주세요.
“베드로가 그때에 나아와 이르되”
답 :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주여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답 :
결단과 기도 : 한없는 은혜로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은혜를 망각한 채 작은 상처와 억울함에 매여 형제를 용서하지 못했던 완악함을 회개합니다. 성령 하나님, 우리에게 미움이 아닌 긍휼의 마음을 부어주사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하는 주님의 제자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역은 작은 교회입니다. “구역예배”와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위의 빈 칸에 정답을 기록하여 연말에 제출하시면 시상합니다.
※예배 후에는 전도하고 심방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