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 MC특집 이수근편을 보며 많이 울었고, 또 많이 웃었습니다. 어떤 가정이나 사람이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나름의 아픔과 사연이 있다지만, 이수근의 가정사는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충격고백이 이어져서 가슴이 많이 아팠네요. 다 지난 일들이기에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었을 듯한데도, 참지 못하고 한동안 눈물을 흘리고야 말더군요. 이수근이 넉넉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은 방송에서도 많이 나왔고, 이수근이 힘들었던 시절을 애써 포장하지도 않았기에, 솔직히 힘든 시절이야기 우려먹기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은 아닌가, 방송을 보기 전에는 부정적이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처음 예고화면을 보고는 그냥 멍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1박2일을 통해서 그렇게나 오랜 시간 이수근을 봤는데도, 어머니에 대해서 이수근이 별 말이 없었는데 무속인이라는 고백은 다소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방송을 보는 내내 이수근이 저를 부끄럽게 하더군요. 어머니의 직업이 부끄러웠던 게 아니라, 아버지가 싸 준 도시락이 부끄러웠다는 이수근, 어린 나이에도 무속인인 어머니의 인생과 운명을 존중했다는 말에 한 대 얻어맞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이수근의 어머니는 무속인이었지만, 그 일을 거부해서 몸이 많이 아팠다고 하지요. 흔히 신내림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신병이 온다는 말을 하는데, 그 경우였던 게지요. 신내림을 거부하던 이수근의 어머니는 막국수집을 하며 평범한 생활을 하고자 했지만, 손님들에게 막말을 하고 거친 행동을 하는 등 신병의 이상징후들을 내보이기 시작했다지요. 결국 신내림을 받은 이수근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갈 수 밖에 없었고, 아버지의 손에서 자라다 보니 늘 어머니는 그리운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때문에, 방학 때나 아버지가 집을 비우게 되면 친척집에 맡겨지기도 했는데, 그 때 눈치보는 습관이 생겨서 지금도 그 버릇이 나온다고 고백하더군요. 초창기 1박2일에서 멤버들에게도 구박을 받았고, 시청자들에게도 지적받는 습관이기도 합니다. 눈치밥을 먹던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숨겨진 사연은, 그동안 시청자로서 안좋게 봤던 것이 미안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친척집에서 더부살이를 한 탓에, 늘 생활에 불안을 느껴야 했던 이수근은 신경성 두통으로 두통약을 먹어야 했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신경쓰이는 일이 있으면 잠을 못이룰 정도고요.
철이 들어서는 가정생활기록부에 어머니의 직업을 솔직하게 무속인이라고 썼다는 이수근, 어머니가 무속인이라는 것이 잘못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고 말하더군요. 그 때문에 선생님들로부터 면담도 많이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머니가 무속인이어서 창피한 게 아니라, 엄마가 싸주지 않은 도시락이 부끄러웠다는 말이 어찌나 짠하던지요. 아버지가 싸 준 콩자반 도시락은 하교길에 형과 함께 먹고 아버지를 마음 아프게 하지 않으려 했다지요.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를 속상하게 하지않으려 했던 두 형제의 마음이 기특하면서도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와 어린 나이에 떨어져 지내야 했던 이수근때문에, 아버지와 형의 젖꼭지가 크다는 웃지못할 사연도 고백했는데요, 웃어서는 안되는 슬픈 사연인데도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어머니가 항상 그리웠던 막내 이수근이 아버지와 형의 가슴에서 어머니를 느끼려 해서 유난히 커졌다고 하지요. 몰래 온 손님으로 자리를 함께 한 이수근의 아버지와 형의 입담 역시 뛰어나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소탈하고 꾸밈없는 이수근의 가족, 아버지와 형이 들려주는 이수근의 어린시절 이야기에 많이 웃었는데요, 사실 웃을만한 사연들이 아니었는데도 즐겁게 그 시절을 회상하는 낙천적인 모습이 참 보기 좋더군요.
아버지의 유두와 얽힌 이수근의 오즘싸개 비화에 모두 자지러지게 웃고 말았는데요, 잠결에 아버지 유두를 요강 뚜껑손잡이로 생각하고 들고는, 아버지 얼굴에 그대로 실례를 해버렸다는군요. 자다가 뜨거운 것이 얼굴에 콸콸 쏟아졌으니 아버지가 얼마나 놀랬을지, 아버지의 얼굴에 오줌을 싸고는 자는 아들을 혼낼 수도 없고, 그냥 닦았다고....
이수근이 고백한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의 만남은 이수근도 울고, MC들도 울고, 시청자도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들었습니다. 어려서 헤어진 어머니였으니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 수근과 네살 위인 형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 아버지에게 주소를 물어 찾아 간 곳은 군산이었다고 합니다. 양평에서 군산까지 8시간여를 차를 타고,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형(이수철)이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고 하지요. 어머니를 찾아가는 어린 두 형제의 모습이 드라마의 한장면처럼 그려지기도 해서 울컥해지더군요. 얼마나 어머니가 그리웠을까, 어머니에 대한 상상으로 얼마나 설레였을까...등등의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전라도 백반을 시키고는 스무가지가 넘는 반찬에, 괜히 잘못시켰나 걱정이 되어 밥을 먹고는 뒤도 안보고 도망쳤다는 순진한 아이들, 그러나 그렇게 먼길을 찾아 가서 만난 어머니는 이수근이 생각했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이수근,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당시의 기억에 눈물만 훔치는 이수근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집안(법당)이 난장판이었고, 집을 치우고 있던 어머니는 두 아들을 보고는 놀라 3천원을 주면서 얼른 가라고 했다지요.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아프다'라고 느낄 정도의 처참하게 살고 있었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수근이 어린 시절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하더군요. 그 후로는 정말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았었다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면 그렇게 그리던 어머니를 더 보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목이 매여오더군요.
이수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부끄러웠던 것은, 그런 모습을 본 이수근이 어머니와 어머니의 직업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저였다면 감당하기 힘들어서 감췄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일 겁니다. 성공한 방송인이 된 지금도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가정사를 이수근이 당당하게 밝히는 모습은 시청자를 숙연하게 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생활기록부에 어머니의 직업을 상업이라고 적었다는 이수근, 철이 들고는 어머니가 무속인이라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어머니 직업을 무속인으로 썼다는 말은 용기있는 이수근으로 다가 오더군요. 물론 이번 승승장구에서 방송을 통해 공개한 것도 마찬가지였고요.
어머니의 인생과 운명을 존중하기에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이수근에게 가장 어울릴 듯한 말이 떠오르더군요. 용기있는 효자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은 어머니때문이었다며, 감사하는 이수근, 어찌보면 치부일 수도 있는 가정사를 이수근은 부끄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의 성공과 행복을 기도하는 어머니, 무속인이든 다른 종교인이든 어머니라는 이름은 변하지 않는 안식과 믿음의 근원지지요. 그런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어머니의 삶과 운명을 존중해 주는 이수근, 당신은 정말 용기있고 멋진 효자입니다.
무명시절의 배고픔, 어려운 가정형편, 그리고 아픈 가정사를 이기고 정상에 우뚝 선 이수근,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웃기는 놈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는데요, 이수근은 웃기는 놈이 맞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놈 이수근은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웃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가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부인, 그리고 안타깝게도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둘째 아이때문에 말이지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더 강하게 시련을 이겨내라고, 이수근에게 힘내라는 말밖에는 마음을 전할 길이 없네요. 부인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 울지 못하는 가장 이수근, 이제는 시청자가 아니라, 그가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인과 아들 모두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