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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의의 <도살풀이춤>
김은희의 <전통굿거리춤>
2016 한국전통춤협회 정기공연 『전신사조, 傳神寫照』
빛나는 전통춤의 현재적 해석
춘분절을 앞둔 3월 15일(화)~16일(수) 양일간 오후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펼쳐진 한국전통춤협회(이사장 채상묵)의 정기공연 주제는 『전신사조, 傳神寫照』(형상을 통해 그 정신을 보다)이다. 이 협회는 4년 동안의 싹 틔움, 그 시간적 모색을 통해 그 이듬해 놀라운 모습으로 우뚝 서는 대나무의 성장과 지조를 읽게 해준다. 현실과 역사를 수용해온 이 단체의 탐미적 춤 작업은 다양한 주제로 늘 관심을 모아왔다.
한국전통춤협회는 ‘편안할 때에 한결 같은 마음으로 훗날을 염려하고, 변고가 생겨도 백번 참고 다시 성공을 도모해야 한다.’는 채근담의 말처럼 현존하는 류파의 한계를 허물고 전통춤의 계보를 잇는 무용가들이 한마음으로 축제의 장을 마련하고, 따뜻한 봄날에 여름의 이글거리는 열기를 춤으로 몰아오곤 했다. 이 단체의 매력은 배신과 기회주의가 넘실거리는 세상에서 열정과 성실로 중심을 잡아가는 데에 있다.
『전신사조, 傳神寫照』는 전통춤의 역사성과 예술성에 집중, 춤의 진정한 가치와 정신을 연희자와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공연이었다. 전통은 늘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전통의 몸체에 연출의 의도에 따라 사운드, 의상, 음악 등의 변화와 구성, 조합에 따라 공연은 전통의 본류를 벗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의 주장대로 전통은 변화를 수용해야만 생명력을 보존할 수 있다.
전통춤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발판은 전통과 전통을 떠받히는 주변 장르의 도움과의 조화로운 만남으로써 가능하다. 쏠림과 들뜸을 경계하고, 각 지방의 대표적인 전통춤으로 무서운 균형의 예형(藝型)을 견지하는 ‘전신사조’적 태도는 기방계열의 춤을 치기적 시선에서 바로잡고, 재인청계열의 춤을 단순 유희에서 예술적 반열로 끌어올리고, 타악중심의 춤으로도 흥신을 북돋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한국전통춤협회의 도전에서 정제에 이르는 놀라운 성취는 특화된 구성의 묘를 보여주었다. 이번 정기공연에서 대구 달성권번의 최희선, 진주권번의 김수악, 김수악의 제자 송화영, 목포권번의 이매방, 대정권번의 김취홍 등 근대시기 권번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던 춤들이 후학들의 춤으로 상제되었다. 흔들리거나 반짝거리며 다가온 춤들, 에로티시즘과 경건함, 농익음과 풋풋함이 어울린 춤들은 시청각의 호사를 뿌렸다.
한국전통춤협회가 선정한 춤들은 대부분 ‘예술을 위한 예술’만을 위한 춤이 아니라 대중들과 어울릴 수 있는 춤들로 짜여 있었다. 새로운 문화 전통의 형성자들의 명무를 수행한 춤 연기자들은 첫째 날에 고명구외 10명의 <호남산조춤>, 정주미의 <이동안류 태평무>, 신미경의 <승무>, 김연의의 <도살풀이춤>, 유경희의 <달구벌입춤>, 임미례의 <12체장고춤>, 문숙경의 <살풀이춤>, 염현주외 8명의 <북춤>을 연기하였다.
둘째 날은 좀 더 묵직한 춤 담론의 대상이 된 진유림외 13명의 <살풀이춤>, 임현선의 <강선영류 태평무>, 오은희의 <승무>, 채상묵의 <한량무>, 김은희의 <전통굿거리춤>, 한혜경의 <소고춤>, 이길주의 <호남산조춤>, 채향순외 6명의 <장고춤>이 공연되었다. 춤이 말을 걸고, 관객이 화답한 춤은 세상의 모든 이치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원소의 배치와 질서를 일깨워 주었다.
이틀 동안 공연된 총 16편의 춤 가운데,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은 군무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작품들은 독무로 진행되었다. 이 가운데 3회 정기공연에 이어 연속으로 출연한 춤 연기자는 채상묵, 한헤경, 김은희, 정주미, 임미례였다. 전체 출연자 중 남성 무용수는 채상묵이 유일하였다. 동일한 레퍼토리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작품들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춤 연기자들의 미적 표현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호남산조춤보존회(고명구외 10명)의 군무 <호남산조춤>과 이길주의 독무 <호남산조춤>, 채향순외 6명의 <장고춤>과 임미례의 <12체장고춤>, 진유림외 13명의 <살풀이춤>과 문숙경의 <살풀이춤>은 군무와 독무가 주는 춤의 묘미를 비교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정주미의 <이동안류 태평무>와 임현선의 <강선영류 태평무>, 신미경의 <승무>와 오은희의 <승무>, 김연의의 <도살풀이춤>과 문숙경의 <살풀이춤>의 비교는 류파와 지역에 따라 변형된 춤을 살펴 볼 수 있게 하였다.
공연된 춤에 대한 개별적 언급은 각 작품과 연희자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삼가한다. 그 중 임미례의 <12체장고춤>, 문숙경의 <살풀이춤>을 제외한 첫날 몇 작품의 인상과 이전의 연희자에 대한 논평을 수록해본다. 해마다 반복되는 춤은 해마다 피는 봄꽃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듯이 그 분위기, 구성, 음악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같은 듯 다른 의미를 준다.
호남산조춤보존회(회장 고명구)의 <호남산조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47호로 지정된 춤으로 호남의 판소리와 시나위를 바탕으로 한 산조음악에 맞추어 추는 입춤 형식의 춤이다. 진양조부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까지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몰아가는 선율 속에서 장단과 장단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과 흥, 그리고 신명을 자유롭게 승화된 섬세한 몸짓으로 구현하는 춤이다. 특히, 이 춤은 호남지방 기방춤의 성향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인위적 기교나 정형화된 움직임보다는 천지인(天地人)의 조화와 절주(節奏)를 따르는 몸의 기(氣)와 리듬을 춤으로 자유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봄날 고운 춤결로 만난 호남산조춤보존회의 춤은 디딤, 불림, 사위에 어울리는 침화된 슬픔을 표현해내는 연기력이 탁월하다. 그들의 춤은 심연의 희망을 탑재한 교태와 관객을 흡인하는 매력이 있다. 환한 표정 연기가 그들을 ‘달’ 이거나 ‘꽃’으로 만든다. 고비를 넘기고 푸른빛을 잉태한 춤, 호남산조춤의 매력이다.
정주미(재인청 전통무용전승회 회장)의 <이동안류 태평무>: 화성 재인청 도대방이었던 이동안(李東安, 1906∼1995)은 세습 재인집단의 아들로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했다. 14살 무렵 남사당패를 따라 가출하여 일년 남짓 줄타기와 땅재주를 배웠다. 줄타기의 김관보, 대금, 피리, 해금의 장점보, 태평소의 방태진, 남도잡가의 조진영, 재담의 명인이었던 발탈의 박춘재 등에게 전통예능을 학습 받았으며, 광무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발탈, 줄타기의 기능 외에도 기본무, 태평무, 진쇠춤, 승무, 살풀이 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 등 17가지 춤에 능했다. <이동안류 태평무>는 문관이 입는 당상관복인 남색 조복에 사대관모를 하고 힌색 바탕에 빨간 끝을 한 한삼을 끼고, 경기도당굿 장단에 맞추어 춤사위를 연기한다. 정주미는 피리가 선도하는 사운드에 오렌지색 사각 조명에서 춤을 춘다. 구음이 열정을 도포하고, 경쾌하고, 약간은 익살스럽게 보일 정도의 춤으로 당당하게 태평성대를 희구한다.
신미경(예술단 ‘결’ 단장)의 <승무>: ‘승무’는 우리나라 민속춤의 정수라 할 만큼 가장 품위와 격조가 높은 춤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이매방’선생의 ‘승무’는 유려하게 흐르는 춤의 조형적 선, 고고하고 단아한 정중동의 춤사위로 인간의 희열과 인욕의 세계를 그려낸 춤이다. 선생의 ‘승무’는 춤사위에 따라 무거운 업(業)은 타령, 업을 벗는 과정을 도드리, 속세와의 완전 결별을 굿거리, 해탈하는 희열을 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미경의 ‘승무’는 그녀가 풍기는 검사(劍士)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부드러움을 여성적 ‘고뇌의 미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사바세계의 감각이 남아있는 ‘저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구어 내지못한 아쉬움인지 진청 속에 칼날 대신 단봉(短棒)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부드러움(승무)과 강함(검무)의 중간, 그녀의 심사를 표현하는 고민의 정점, 화사를 삼키고 자신을 촛농처럼 녹여가는 과정은 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김연의(김숙자춤보존회 대전지부장)의 <도살풀이춤>: ‘도살풀이춤’은 도당 살풀이를 줄인 말로써 민속무의 하나로 행해지고 있는 살풀이춤의 원초형으로 경기도당굿의 뒷전거리에서 추어지던 춤이다. 이 춤은 흉살과 재난을 소멸시켜 안심입명, 나아가 행복을 맞이한다는 종교적 소원에서 비롯되었다. 자연스럽고 소박하여 삶의 깊은 뜻을 가지고 있으며 긴 수건에 의한 공간상의 유선이 매우 다양하여 선이 그려지는 형태가 하나의 소박한 화폭과도 같다. 이 춤은 각기 정중동, 동중정의 신비스럽고 자유로운 춤사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고한지 25주년이 되는 김숙자 선생, 다양한 장단에 맞춘 김연의의 김숙자류 도살풀이춤은 긴 천이 특징으로 자리 잡고 백색제의의 매력이 있다. 코리언 발레블랑 살풀이춤은 이 춤의 지역, 쓰임 간에 다양한 변위(變位)를 거쳐 예술로의 승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김숙자의 제자, 김연의의 연기는 걸치고 흔들고, 던지는 긴 천의 비주얼, 구음이 복합시킨 처연한 슬픔을 침화시키고 있고, 풋풋한 연기력은 유희적 낭만을 잠재우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
유경희(국악고 무용과 교사, 대구시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춤 이수자)의 <달구벌입춤>, 이 춤은 달성권번의 박지홍이 만들고, 최희선으로 이어지며 다듬어진 춤이다. 다소곳하면서도 흥이 이는 이 춤은 ‘수건춤’, ‘덧배기춤’이라고도 불리는 교방놀이춤이다. 조심스럽게 흩날리는 수건과 태평소 등 라이브 악단의 활기찬 사운드에 허튼 춤이 조화를 이룬다. 춤이 시작되면 진녹색 저고리에 분홍치마의 유경희는 소고가 놓인 자리까지 진전한다. 모범적이며 창의적 춤은 춤 연기뿐만 아니라 조명 디자인 구사력, 음악 활용에 까지 이른다. 근래에 부쩍 접두어처럼 붙은 ‘달구벌-’춤에 오락성이 가미되고, 관객들과 소통을 이룬 이 춤은 인기레퍼토리로 자리하고 있다. 익히 알려진 허리춤 ‘천’을 이용한 연기적 구사, 열정을 부추기는 신명의 춤은 환호를 불러오고, 세련된 춤꾼이 환기시키는 <달구벌입춤>의 ‘어울림’에 동참하게 만든다.
염현주외 8명의 <북춤>: 박병천류 진도북춤은 화려한 북장단과 춤사위를 기본으로 양손에 북채를 들고 자유자재로 장단을 구사하며 멋들어진 춤사위와 신명으로 춤을 이끌어 나간다. 마치 커다란 독수리가 허공을 나는 듯 노니는 듯, 천길 낭떠러지로 물줄기가 내리꽂히는 듯 웅장하고도 멋스런 춤사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아의 경지로 빠져들게 한다. 강렬한 북가락과 함께 다양하고 유연한 장구가락을 동시에 갖고 있어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섬세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흥과 멋을 함축하고 있는 춤이다. 모두가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춤, 흥과 신을 부르는 이 춤은 모두가 선호하는 춤이다. 예술적 연기에 치중하다보면 지루할 즈음에 등장하는 이 춤은 요란한 음악이 분위기를 선도하면 빨간 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입은 임수정은 북을 메고 신명으로 질주한다.
임현선(한국전통춤협회 교육분과위원장, 대전대 무용과 교수)의 <강선영류 태평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어있는 태평무는 한성준이 왕십리 당굿의 무속장단을 바탕삼아 무대춤으로 구성한 것으로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의젓하면서도 경쾌한 춤사위와 가벼우면서도 절도 있게 몰아치는 발 디딤새는 신명과 기량의 과시가 돋보이게 하는 춤으로 손색이 없을 뿐 만 아니라 정중동의 미적 형식을 가진 완벽한 춤이라 할 수 있다. 음악은 진쇠장단을 비롯하여 낙궁, 터벌림, 도살풀이 등 다양한 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공의 소유자 임현선이 보여준 ‘태평무’는 곰삭은 연기로 화려한 ‘왕국의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춤은 서울, 대전을 오가며 중부 지역의 정형을 보여준다. 혼돈의 춤판에 포근한 향수와 아름다운 춤길로 ‘춤의 존엄’을 상제한 춤은 ‘삶의 고단’을 살포시 밟고, 고통의 기억을 삭제한다. 그녀가 뿌리는 ‘태평무’ 씨앗은 안전하고 건강한 흙에 착지하여 뿌리를 내리고 햇살을 받을 것이다.
채상묵(한국전통춤협회 이사장, 한국무용협회 고문)의 <한량무>: 한량무는 대표적인 남성춤으로써 선비의 의연한 기품과 내적 자유로움을 암시하는 절제된 춤사위로 정중동의 응축미를 바탕으로 한 우리 춤의 충일한 정신세계를 드러낸다. 채상묵은 남성 7인의 무사(舞士)들을 대동하고, 남성적 역동성과 고수의 유연함을 섞어 시대의 담론을 창출한다. ‘동행’, ‘같이 가는 삶’의 또 다른 형태는 비움이었다. 자신을 털어내고 호쾌하게 춘 춤은 선인(仙人)의 달관에 이른 겸허함이 돋보였다. ‘식자들의 의식’이나 ‘억지 존중’의 ‘체’념을 배제하고 자연에 합일된 듯 한 춤은 마초의 울타리를 벗어나 나비처럼 자유로운 ‘한량의 의지’를 보인다. 채상묵, 정착의 묘(妙)를 모르는 그가 전통으로의 춤 기행을 꿈꾸는 한량무는 시나위의 선율과 즉흥 춤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연상시킨다. 선비의 내면을 표출시키던 남사당패의 연희적 투사(投射)가 이루어진 채상묵의 ‘한량무’는 채상묵 다운 구성과 신명, 운치가 전통의 깊숙한 고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길주(호남춤연구회 이사장)의 <호남산조춤>:이 춤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47호로 지정된 춤으로 호남의 판소리와 시나위를 바탕으로 한 산조음악에 맞추어 추는 입춤 형식의 춤이다. 진양조부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까지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몰아가는 선율 속에서 장단과 장단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과 흥, 그리고 신명을 자유롭게 승화된 섬세한 몸짓으로 구현하는 춤이다. 특히, 이 춤은 호남지방 기방춤의 성향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인위적 기교나 정형화된 움직임보다는 천지인(天地人)의 조화와 절주(節奏)를 따르는 몸의 기(氣)와 리듬을 춤으로 자유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호남산조춤 보유자, 이길주의 춤은 즐거움과 쾌락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고, 도취감(ecstasy)에 이르게 하는 완벽한 무술(舞術) 퇴적층의 문양과 무늬를 보여준다. ‘즐겁다. 아름답다. 또 보고 싶다.’가 결론이다.
채향순(채향순 무용단 대표, 중앙대 무용과 교수)외 6명의 <장고춤> : 우리 전통예술에는 신명의 미학이 존재한다. 은근히 흥을 돋우다가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는 한국적 신명의 미학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장고춤 ‘신명의 휘모리’이다. 느린 장단으로 흥청거리며 장고춤을 추다가 빠른 장단으로 몰아 도약하면서 흥을 돋우는 이 작품은 한국적인 신명을 대표한다고 할 만하다. 장고에 정을 싣고, 춤의 연에 고마워하면서, 관객들에게 공감을 뿌리는 장고는, 수범적 절제에서 화려한 녹색 페레이드에 이르는 상큼한 진동을 선사한다. 채향순의 장고춤은 그녀의 몸내로 매혹시킨 관객들에게 채향순 특유의 춤이 보여주는 ‘몸의 미학’과 ‘몸에 관한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정열과 청정의 상징, 붉은 치마, 청저고리에 사운드가 합세하여 놀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 가는 ‘채향순의 춤의 여정’으로의 동참은 ‘향채(香菜)의 짙은 미감을 떠올리게 하는 공연이었다. 기합과 함성으로 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존중의 서사‘를 써 내려간 그녀의 작업은 성공적 수행으로 비춰진다.
진유림외 13명의 <살풀이춤>, 오은희의 <승무>, 김은희의 <전통굿거리춤>, 한혜경의 <소고춤>에 대한 분위기는 기 언급된 작품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중진 여성 춤 연기자들의 전통춤 계승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는 의식, 춤 이면의 춤 사상을 해석해내며, 자신들의 춤 개성들을 최대한 표현해낸 춤, 필생의 춤들은 전통춤의 신명과 심도를 높이면서 춤 원형에 밀착되는 기회 제공과 품격을 보여주었다.
이번 춤들은 집중과 몰입을 요하는 전통춤의 보편적 가치를 재인식시키고, 탁월한 춤 연기자들의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춤 지식체임을 밝히는 춤들이었다. 모두가 승자가 되는 춤의 엄정한 균형이 돋보인 여성 춤연기자들의 춤의 향기, 그 가운데 남성 독무로 선보인 한량무, 춤구성과 진법의 묘미를 읽게 해주는 교본은 배경에 높고 낮음이 없이, 모든 춤이 평등한 가치를 갖는 자유영혼이 번득이는 춤들이었다.
영혼에 대한 위로, 평강에 대한 염원, 신명으로 하나 되는 춤들의 힘과 지성이 돋보이는 춤들이었다. 주제와 양식에 맞춘 음악과 춤은 서로가 주인공이 되었고, 모두 생음악으로 현장감을 살린 연주였다. 이번 공연은 작품의 내용처럼 슬픔 속에서도 불안해하지 않고, 요염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자유로우면서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엄숙함과 참여성을 견지, 균형감각을 잃지 않은 엄숙한 공감을 일구어내었다.
춤이 아니면 생존하지 못할 희귀성을 지닌 분들, 춤이 있으면 모든 것을 풍성하게 보는 분들이다. 춤으로 자신을 격상시키는 ‘알라존’족 들이다. 그들의 소박한 아이러니들이 만든 춤들은 ‘죽은 사람들의 제단’을 아름다움으로 대체시키고, 그 고결한 미의식으로 사자들을 웃게 만들 수 있는 능력자들이다. 연구자들의 관심을 끈 전퉁 춤의 새로운 가치는 규모와 소품의 다양성, 인물과 진법의 차이에서 발견될 수 있다.
전통춤의 향연은 전통속의 변화를 모색하는 기획의 ‘묘’(妙)가 있어야 한다. 탁월한 리더십, 안정된 기획력, 차분한 연출력, 고품격 연기, 스텝들의 분주한 노력들이 결실을 이룬다. 춤의 무조(舞調)는 자중이 구축된 시적 비화(悲話)와 신명의 울타리를 넘나들어야 한다. 전통춤의 미토스는 특화된 공연으로 ‘춤꾼만이 낳을 수 있는 꿈’의 세계를 이어갈 것이다. 화창한 봄날, 『전신사조, 傳神寫照』는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