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은 빠르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현기증 날 만큼, 순식간에 기억은 이십 여 년 전쯤의 익숙한 공간에 가 닿고, 그 기억의 통로를 지나는 순간 나는 잠시 한기 같은 것을 느낀다. 내 어깨를, 내 등을 스쳐 지나가는 서늘함. 오랜 동안 발설하는 일을 스스로 삼가고 살아온 터에 새삼스레 반추라니.
정녕 시대가 바뀌었을까. 주변은 아직 어수선한데, 이 아슬아슬한 평화의 원판 위에서 살아가는 처지에 이제는 소리내어 말해도 좋은 것인가. 아니 말하라고, 노래하라고, 주문하는 이 봄, 가는 봄치고는 너무나 눈이 부시다. 눈이 부셔 내 망막은 희끄무레한 사물 하나 맺을 수 없다.
그때는 무엇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렸을까. 그래, 다들 멀쩡한 눈과 귀를 어디다 두고 스스로 장님이 되고, 농아가 되고, 벙어리가 됐을까.
내 남루한 기억들, 그 한 귀퉁이, 누렇게 삭은 보자기처럼 버려져 있는 그 안에 세 사람의 흐릿한 실루엣이 들어있다. 그들의 어깨 위에 망토처럼 내려앉은 어둠, 다들 입을 굳게 다물고 그들은 슬금슬금 내리는 어둠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 한 명 입을 떼는 일 없이 목을 길게 빼고, 수상한 일이 벌어지는 담장 밖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세 사람은 그렇게 어둠의 일부로 함몰돼 갔다. 한 사람은 나였고, 다른 두 사람은 어머니와 동생이었다.
내 빛나는 이십대의 첫 봄을 그렇게 짓밟히고 있었다. 가끔 흠흠, 목을 고르는 여자의 소리만 들려올 뿐, 다른 두 사람은 이 소리에 어떠한 소리도 보태지 못한 채 석상처럼 앉아 있었다. 다른 두 실루엣에 비해 어깨가 넓고 살이 많은 몸피의 그녀는 어머니였다.
오십대의 첫봄을, 하늘의 뜻을 안다는 그 첫해의 봄을, 그렇게 보내는 여자. 그 앞에서 애써 몸놀림을 줄이고 말을 아끼며 있는 실루엣의 주인공은 나와 여동생이었다. 신산 했던 세월의 풍파를 엷은 무늬로 얼굴에 담고 있는 어머니가 오십대의 첫봄을 그렇게 보냈다면, 나는 내 찬란한 이십대의 첫봄을 그렇게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애써 말을 삼가고 있었다. 입을 열면, 그만 스르르 주저앉을 것만 같았을까. 도대체 오빠와 언니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이 살육의 도시 안, 어느 곳에 꽁꽁 숨어 무사히 숨줄이나 보존하고 있는지.
그랬다. 그 해 봄에. 그 도시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나는 그 어둠이 답답했다. 빛 가운데 서 있어도 목을 죄어오는 공포 때문에 명치 끝이 먹먹하거늘, 어둠이라니.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스위치를 찾아 벽을 더듬었다. 탁. 파드득. 불빛에 어둠은 이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랬다. 나는. 요 며칠 간의 기억 또한 불빛에 어둠이 무화되 듯 그렇게 말끔하게 지워내고 싶었다.
맥없이 죽어나가던 사람들. 그들은 방금 전까지 살아 펄펄 뛰던 사람들이었다. 죽음이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그랬기에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풀썩 풀썩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고서도 다들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아니, 죽음을 생각하기 앞서, 분노가 승해 다투어 앞으로 달려나갔다.
아카시아 꽃 흐드러지는 날, 아카시아 꽃 비린 향기가 핏빛 냄새였음을 아는 데는 이십 년이 걸렸다. 그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왕복 사차선의 도로를 점령하고 목청껏 내지르던 노래는 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가로수에 내 걸린 석탄일의 플래카드는 또 왜 그렇게 바람에 흔뎅거렸는지.
아직도 얼룩강아지들은 저 어둠 속을 활보하고 다닐 것이다. 쥐처럼 숨어, 다시 노래 부를 기회만 기다리는 사람들을 좇아 그들은 잘 벼리어진 대검을 꽂고 숨줄을 끊어놓을 총으로 무장 한 채 이 골목 저 골목을 뒤지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무슨 누리를 보겠다고 같은 형제를 도살할까.
소문은 무성했다. 당장에, 아니, 새벽에, 그 얼룩강아지들이 몰살의 지령을 안고, 몰살을 복창하며 이 도시로 진군해 올 것이다. 아마도,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거라고, 이 도시는 폐허가 될 거라고, 봄날의 소문은 죽음이 부패해 들어가는 냄새만큼이나 지독했다.
"아무래도 잘못된 게야. 틀림없어. 그러지 않고서야 얘들한테 이리 소식이 없겠느냐."
형광등의 파리한 불빛을 머리에 이고 있던 어머니에게서 문득 울음 같은 소리가 새나왔다. 며칠, 불면으로 밤을 지새운 어머니의 음성은 탁했다. 목이 늘어난 보랏빛 셔츠를 입고, 허리께에 고무줄이 물린 발회목에 닿는 길이의 검은 통치마를 입은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기함할 것처럼 기력이 없어 보였다.
"어딘가 잘 있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살아있다면 아직 연락이 없겄냐."
"말이 씨 된다잖아요. 그럼요. 별일 없을 거예요."
사실, 나도 자신이 없었다. 모성을 자극하는 그 무한한 상상력을 일시에 소거시킬만한 그 어떠한 확신이나 단서도 내밀지 못한 채 그저 의례적인 허사들로 어머니의 불안을 달래고만 있었다. 내 마른 입술을 빠져나오는 그 말들의 허약함에 내 스스로도 마음을 다치고 있을 때 어머니는 또 다시 깊은 탄식과도 같은 말들을 내뱉었다.
"분명 일이 생긴 거야."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밖으로 나가 이제껏 돌아오지 않는 아들과 딸을 찾으러 나갈 듯한 태세였다. 다른 젊은 사람들이 꽃 같은 목숨을 함부로 내버릴 때 자신의 아이들만 무사하게 건사하는 것이 죄짓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그 이기적인 모성을 다독이던 어머니가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인공 때도 이러진 않았다. 이렇듯 죄 없는 사람을 개 패 듯 죽이진 않았단 말이다."
그 참혹한 주검들이 어머니에게서 인내와 스스로를 지탱해 줄 자위의 조건들을 앗아가는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과 유신체제를 관통해 살아온 어머니가 그렇다고 증거하면, 사실인 것이다. 역사는 늘 증언자들에 의해 새롭게 뼈가 발라지고 새로운 살이 입혀지지 않던가.
그랬다. 어제와 그제, 그그저께. 나는 어머니를 닦아세우는 그 혹독한 불안으로부터 어머니를 구출하기 위해 희대의 사냥터로 나갔다. 나는 금남로에 그토록 많은 꽃이 피었던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다양한 꽃의 형태들. 벽에서부터 시작해 바닥으로 흘러내린 자국과 바닥에 흥건히 고여 부클부클 기포가 맺혀있는 것들, 어디론가 끌려간 듯 거친 붓 자국의 형태로 길게 한 획으로 사라진 것들…
그 꽃들 역시 참혹했던 순간들을 전해 주고 있었다. 매캐한 매연을 내뿜으며 체증을 일으키고, 간혹 아슬아슬 신호를 받으며 사거리를 질주해 나가는 차들로 늘 분주하던 거리에는 차들 대신 달리기를 멈춘 채 새까맣게 탄 차의 형해만 여기저기 을씨년스럽게 뒹굴고, 격렬했던 싸움의 잔해처럼 돌멩이만 수북히 쌓여 있었다. 차라리 포도가 아닌, 자갈밭이었다.
발끝에 걸리는 그 자갈들을 밟으며 나는, 내 감정의 진공 상태를 경험했다. 어떠한 분노도, 어떠한 환희도, 어떠한 공포도, 절정의 상태로 넘어가면 텅 빈 진공의 상태가 기다리고 있음을 그제야 나는 알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 분노조차 일지 않는 나의 담담함이 외려 당혹스러워 나는 사람들을 훔쳐보았다. 내 앞에서 다가오는 사람들, 내 옆을 스쳐 가는 사람들, 그러고도 부족해 나는 내가 방금 지나온 길을 뒤따라 걷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도처에 우물 같은 표정들뿐이었다. 목청껏 외치던 구호나 노래는 다 어디 가고, 무심한 표정으로 거리를 걷는가.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 어떤 기분이세요? 슬프나요? 아니면 살아서 기쁘나요? 이 피들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그렇지만 나는 한 마디도 입에 물지 못했다. 이 봄에, 이 도시에 말은 너무나 공허한 것이었기에.
서른 살, 혈기 방장한 오빠와 스물 두 살의 언니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산 자들 속에서 오빠와 언니를 만나지 못한 나는 여전히 그 진공의 상태로 죽은 자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주검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상무관과 전대병원 영안실로 가면서 나는 철부지 없는 내 꿈들을, 야심 차게 계획했던 이십 대의 화려한 그 몽상들을 부끄러워했다.
방관자와 주동자, 그 어느 쪽에도 낄 수 없었던 재수생의 신분이었던 나는, 그 봄에 확실한 내 뿌리를 거세당한 기분이었다. 그 어디에도 배속되지 못한 채 나는 살아있으되 죽은 자처럼 언어도, 표정도, 감정도 압수 당한 채 끄덕끄덕 죽은 자 사이를 돌아다녔다.
배꼽 밑에 총구멍이 나서는 몸 안의 피를 모두 쏟고는 잠자듯 누워있는 이십 대의 청년과 거적때기로 몸을 덮은 채 머리카락만 나와있는 정체불명의 주검들 사이에서 익숙한 머리와 옷은 발견할 수 없었다.
주검과 삶이 혼재된 공간에서 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독한 성욕에 시달려야 했다. 진공의 문이 열리고 처음 찾아온 욕망이 성욕이었다니. 이 느닷없는 주검들을 대신할 목숨을 잉태케 하기 위한 내 자궁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설레었다.
오빠와 언니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산 자들 속에서도 없었고, 죽은 자 가운데도 없었다.
"가만, 누가 왔나보다. 누가 왔어."
암울하기 짝이 없는 나의 회상을 깨고 어머니는 대문 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어둠 속에서 푸른 색 대문은 어렴풋하게 형체를 드러내고 있을 뿐 완강하게 닫혀있었다. 열고 닫힐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던 철 대문은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어둠의 일부로 비좁은 마당 한 편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 안 들리니? 누가 왔어."
어머니는 바투 방문 쪽으로 다가앉으며 나와 여동생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 표정 안에, 아마도, 오빠나 언니일지 모른다는, 일종의 동의를 구하는 빛이 역력하게 서려있었다.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요."
동생이었다. 열 다섯, 뒤늦은 사춘기로 이유 없이 사는 것에 대해 불퉁거리던 아이.
"누구요?"
어머니는 동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써 대문께로 나가며 낮게 속삭였다. 언제 날아들지 모를 총알을 염려해 되도록 방안에 들어와 지내라던 어머니는 어둠 속에 대고 재차 물었다. 누구요? 거기 누구 있소? 그제야 나는 담장 밖의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다.
대문을 낮게 두들기는 소리도, 문 좀 열어주세요, 오빠의 음성이 아닌, 낮고 은밀한 남자의 음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황급히 대문을 열었다. 손보다 마음이 바빴는지 문은 평소보다 늦게 열렸고, 대문 밖에는 건장한 키의 한 청년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쉰 목소리로 사정을 했다.
"숨겨 주세요."
숨겨달라니. 지금 이 도시는 해방의 공간이 아니던가. 언제 끝이 날지 모를, 한시적 해방이지만, 그래도, 며칠 전 같은 살육의 공포는 없지 않느냔 말이다. 어머니는 청년을 집안으로 들였다. 파리한 형광등 아래 드러난 청년은 포수를 피해 도망쳐온 한 마리 사슴과도 같았다.
대살져 보이는 큰 키. 며칠째 씻지 못한 듯 얼굴은 때 국물이 흐르고, 턱밑으로는 숭숭 수염이 자라나 있었다. 그가 들어선 순간, 훅, 비린내가 맡아졌다. 그랬다. 그에게서 풍겨 나오던 의혹의 정체는 바로 그의 어깨 죽지에 붙어있던 한 정의 커다란 총이었다. 흰 면 티셔츠는 회색으로 변해 후줄근히 늘어나 있고, 맨발은 까맣게 때가 앉아있었으며, 손톱 밑에는 때가 반달형으로 끼어있었다.
그는 시민군이었다. 헌데 어찌하여 우리 집에 찾아 들어 숨겨달라고 간청하는가. 동생 키보다, 아니 동생 키 만한 총이 자꾸만 불온해 보여 나는 청년을 내몰고 싶었다. 가세요. 당신 때문에 어쩌면 우리도 위험해 질지 몰라요. 총을 반납하라는 소리도 듣지 못했나요? 헌데 총이라니요. 나는 청년을 내모는 대신, 여동생을 그 방에서 나가 있게 했다.
사춘기, 아직 세상과 자신의 정체가 혼란스러울 아이에게 총으로부터 시작될 폭력의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없애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말 없이 방문을 닫고 나갔다. 어머니가 쓰는 안방 옆, 언니와 나와 동생이 함께 쓰는 상하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나는 청년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물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내일 새벽, 계엄군이 온답니다. 그래, 무서워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나는 살고 싶어요. 갈 데가 없어요. 어디로도."
청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뚝뚝. 그래, 눈물이 남아있으니 다행이다. 마음껏 울으라. 스포이트로 감정이 모두 빨려나간 듯 덤덤한 사람보다는 아직 나으니, 울고 싶으면 울으라. 아니, 죽느니 보다는 나으니 실컷 울으라. 나는 청년의 울음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래, 문 밖에 감도는 그 이상한 기운은 다시 다가오는 죽음의 그늘이었던가. 죽음의 냄새. 고통과 분노의 기미. 그예,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와 청년에게 대접을 건넸다. 미숫가루를 걸쭉하게 개어 얼음을 동동 띄우고, 우리는 손도 대지 못하게 하던 꿀로 가미를 한 마실거리였다.
"네. 아주머니들이 해 주시는 김밥이랑 바가지에 열무김치 말아 배고프지 않게 먹었습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곳곳에서 나와 김밥을 말고, 화덕을 만들어 장작불을 피워 밥을 짓던 나이든 여자들의 손길이 이 청년한데도 빠짐없이 미친 모양이었다. 목숨 아끼지 않고 무리 지어 자유와 민주를 외치는 아들 딸 생각해 눈물짓던 여자들은 그런 식으로 이 도시를 지키고, 아이들을 지키고, 자신들의 목숨을 지켰다.
기꺼이, 자신과 가족들이 먹을 양식에서 푹, 덜어내 밥을 짓고, 반찬을 부조하고, 빵과 우유와 아이스크림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은 몇 푼 이문에 구차한 행복을 꿈꾸지 않고 자신들의 상품 진열대를 털어내고도 즐거워했다.
"헌데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린가. 내일 계엄군이 온다니."
"벌써 시 외곽까지 들어왔답니다."
"세상에. 그 흉악한 놈들이 아예 이 도시를 없앨 모양이구먼."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청년의 표정은 지쳐 보였다. 삶과 죽음의 그 경계에 각기 한 발씩 담근 채 여기까지 온 청년은 금방이라도 쓰러져 잠이 들 듯 고단하고도 기진 해 보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머니의 질긴 모성은, 그 청년에게서 연락이 닿지 않는 오빠와 언니를 찾고자 했다. 어디에 있었는가,로 시작된 어머니의 탐문에 청년은 처음엔 카톨릭센터 근방에서 데모대와 합류했고, 이후에는 도청에도 있었으며 치안을 돌보느라 시내를 돌았다고도 했다.
"그랬단 말인가? 도청에도 있었고, 시내도 돌아다녔어?"
어머니의 얼굴은 모처럼 반색이 돌았다. 온갖 불온한 상상력으로 야금야금 희망을 갉아 먹던 어머니에게 청년의 대답은 새로운 희망의 서곡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오빠와 언니의 앨범을 가져오도록 시켰다.
"혹시 말이야. 이 애들 본 적이 있던가? 집을 나갔는데 여지껏 소식도 없으니 걱정이야."
어머니는 청년의 무릎 앞으로 앨범들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되도록 최근에 찍은 사진 중에 얼굴이 크게 나온 사진을 골라 청년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한참동안 오빠와 언니의 앨범을 번갈아 가며 들춰보던 청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청년이 보내는 부정의 신호에 어머니는 금세 시르죽은 표정이 되어서는 다시 한 번 앨범을 들춰 보이며 말했다.
"그럼 죽은 사람들 틈에서라도 보았는가, 다시 한 번 봐 줄란가?"
지친 표정의 청년은 어머니의 사정에 다시 한 번 앨범 속의 사진들을 훑어보았지만 대답은 같았다. 그제야 어머니의 표정에서 안도의 빛이 머물다 사라졌다. 어머니와는 반대로 잠깐동안이나마 마음 둘 데를 찾았던 청년은 다시 침울한 얼굴이 되어서는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무엇이 자꾸만 청년의 등을 떠미는 양, 앉아서도 진득이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이지 못하고, 청년은 불안하게 눈을 굴린 채 목을 빼고 방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들 방에 가서 좀 쉬지. 깨어나면 따뜻한 밥 지어줄 테니 걱정말고 잠 한 숨 자."
어머니는 마치 당신의 아들에게 말하는 양, 자분자분하고도 친절했다. 청년은 일어서려다 아읏, 짧게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았다. 고통으로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머니는 황급히 청년에게 다가앉으며 그의 다리에서 바지를 걷어 올렸다. 무릎께에 커다란 상처가 나있었다. 검 보라 빛으로 든 멍 가운데 자줏빛 피딱지가 앉아있는 양이 커다란 모란을 보는 듯했다.
그랬다. 모란은, 청년의 무릎에도 피어 있었다. 김영랑의 모란이, 5월, 광주의 아들, 그 청년의 무릎에 피어 있었다. 어머니는 당장에 약을 가져오라고 했다. 연고 말이다, 연고. 아니, 소독도 좀 해야겠다. 머큐롬하고 연고하고 붕대하고 반창고도 가져와라. 솜도 잊지 말고. 우리 집에 그 상비약이 있던가. 빠짐없이 비상약을 준비해놓고 그때그때 때를 놓치지 않고 치료하고, 발랐던가. 더욱이 청년은 감기 몸살까지 있다고 했다.
"네가 약국엘 좀 다녀와야겠다."
"죄송합니다."
청년이 어머니의 옆에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고 있어? 어서 다녀오라니까."
어머니는 치마 주머니에서 곱게 접어둔 지폐를 꺼내주며 짧게 말을 끊었다. 나는 무서웠다. 저 문을 나서면 죽음의 사자가 기다렸다는 듯 나를 잡아갈 것만 같아. 다들 문을 꽁꽁 닫아걸고, 외부인의 출입을 경계하는 판국에 약국이 곱다시 문을 열고 약을 팔기나 할까.
하지만 나의 이런 의문은 계속되는 어머니의 핀잔에 밀려 결국 대문을 열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골목으로 나섰다. 기이한 정적이 골목 안에 하수처럼 흐르고 있었다. 누구의 그림자도 없는, 을씨년스러운 골목 안에는 내 발자국 소리만 크게 울렸다. 나는 무서웠다. 두려웠다.
그리고 죽기 싫었다. 나는 이십 대의 첫봄을 맞고 있었으므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 갈 날들이 더 찬란하고 아름다울 터이므로. 예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총알 한 방에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탁탁탁. 나는 골목 끝에 위치한 산수약국의 안 집 대문을 두드렸다. 탁탁탁.
"저예요. 김선생댁, 셋째에요."
그랬다. 김 선생은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아버지의 구별언어였고, 나는 셋째로 타인과 변별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약이 필요해요."
"무슨 약인데."
우리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은밀하게 속삭였다.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한 사태에 대비해 자그맣고 예쁜 얼굴을 지닌 산수약국의 여 약사는 절대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 문에 대고 말했다.
"몸살이 있어요. 온 몸이 아프고, 미열도 있어요. 그리고 붕대와 머큐롬과 연고도 필요해요."
"기다려."
약사는 약국으로 들어갔는지 조용했다. 그 잠시 동안 나는 어둠 속에 혼자 내버려져 있었다. 그랬다. 그 골목 안에 나 혼자 뿐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 혼자라는 느낌은, 공포였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혼자 맞이해야 한다는 거다.
그 완벽한 단독의 느낌. 나는 청년의 눈물을, 청년의 공포를, 그 죽음의 사지에서 홀로 도망쳐 나온 비겁함을 이해했다. 비교적 죽음으로부터 일정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이 공간에서조차 나는 두려워 어쩔 줄 모르는데, 하물며 그 세계에서야.
며칠 전 나 역시 간발의 차로 죽음을 비켜간 적이 있었다. 시민들과 얼룩강아지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 나는 도청 앞에 운집한 군중들 사이에 있었다. 누군가 나를 이끌었다. 눈을 부릅뜨고 죽어간 이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목청을 찢는 비명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나는 그때 도청 앞에 있었다.
우렁우렁, 마이크에서 시민대표의 요구사항이 울려나오고, 내 머리 위에서는 타타타타, 헬리콥터가 선회하고 있었다. 광주시민 여러분, 해산하십시오. 해산하지 않으면 여러분을 향해 발포하겠습니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와 왕왕왕 쏟아내는 도지사의 마이크 소리가 시민대표의 요구사항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아무도, 파리처럼 낮게 나는 헬리콥터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였다. 헬리콥터에서 총성이 났다. 이어 두두두두, 한 여름, 양철지붕에 소나기 듣는 소리가 날아왔다. 군화발 소리. 순식간에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 역시 들숨을 멈춘 채 달음질쳐야 했다. 하지만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골목으로 숨었지만 나는 그들의 훈련된 속도를 이길 수 없었다. 그 순간, 바닥에서 조금 올라간 가게의 셔터가 눈에 밟혔다. 저 구멍이 살길이겠다고 직감한 나는 몸을 굴려 그 안에 숨었고, 주인은 기다렸다는 듯 셔터를 황급히 내렸다.
숨 한 번 내쉬자 셔터문 밖으로 예의 소낙비 듣는 소리가 지나갔다. 아찔했다. 고맙다고, 살려줘서 고맙다고, 주인에게 인사를 하려는데, 소리가 명치끝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주인 역시 서늘해진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깊은 날숨을 내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은, 살아 돌아가는 그 길은 내가 걸었던 길 가운데 가장 먼 길이었다.
"여깄다."
"얼마죠?"
"필요 없다. 그냥 가져 가."
"그래도…."
"됐어. 어서 가."
탁. 문이 닫히면서 약사의 음성도 사라져 버렸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발소리를 죽인 채 잰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숨을 고를 사이도 없이 어머니는 내 손에서 약 봉투를 뺏다시피 받아들고 청년에게로 다가갔다.
"집에 계실 부모님 생각해 허튼 생각 말게. 약 먹고 한숨 자. 다시 나갈 생각 말고. 한 사람 더 죽고 덜 죽는다고 달라질 건 없어."
내가 없는 동안 청년과 어머니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 모양인가. 청년을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조금 전보다 더욱 자상해져 있었다. 하지만 청년의 얼굴은 밀랍처럼 굳어 있었다. 저금 전에 보았던 지친 표정도, 공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의 손은 청년의 상처를 더듬고, 어머니의 정성은 청년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지만 청년의 표정만큼은 어떻게 풀어놓을 수 없었다.
"나간다는 말은 하지 말게. 여기 있어. 조용해질 때까지. 다른 생각 말고."
어머니의 은근한 협박에도 불구하고 청년의 표정은 좀체 풀리지 않았다. 그랬다. 청년은 나가면 안됐다. 살아, 훗날, 이 참혹한 날들을 증언해야 했다. 그게 이 청년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역할이었다.
한 알의 총알받이보다 한 명의 증언자가 더 필요할 날이 머잖아 올 터이므로. 청년의 무릎에 난 상처에 연고가 발리고, 붕대가 발리고 나서 어머니는 청년에게 내가 지어온 약을 먹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침묵과 얼마간의 대화와, 염려와, 불안과, 안쓰러움과, 고마움이 점철된 시간이 지나자 청년은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어머니는 벌떡 일어서는 청년을 향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고, 청년은 만져서는 안 될, 금단의 물건처럼 구석 자리에 치워둔 총으로 다가갔다.
사실, 우리 모두는 청년이 저 위험한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들, 애써 확인하는 일을 삼가고 있었지만, 그 침묵 속에 일종의 묵계 같은 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보게. 개죽음 당하려고 그러나? 아서. 부모님 생각을 해."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청년에게 사정을 했다. 돌아오지 않는 오빠에 대한 모성이 온전히 그 청년에게로 향해 있었다.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만약 산다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청년은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덜컹, 대문이 닫히고, 사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정적과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 새벽, 한 여자의 애절한 절규를 들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오고 있습니다. 모두 나와 광주를 지킵시다….
나는 귀를 꼭꼭 틀어막고,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제발, 저 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사이렌의 소리처럼 죽음으로 인도하는 저 소리가 제발 그치기를 기도하며 나는 이불 속에서 낮게 거위침을 삼켜댔다. 죽음의 광기는 도처에서 재발되고, 그 광기에 수많은 목숨들이 속절없이 지고 있었다. 쾅. 따르르르르. 쾅, 쾅. 따르르르르. 따꿍. 따꿍….
죽음으로 인도하는 저 축포들. 차라리 죽음이, 살아 겪는 삶의 치욕보다 더 명예롭다면, 저 소리들은 죽음으로 들어서는 자들에게 바쳐지는 축포이리라. 그 날 새벽, 어머니와 나와 동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 한 마디도. 내 기억이 온전하다면, 우리는 말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말을 잊은 것이다.
끝내 청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망월동에도 그는 없다. 그래, 그는 어디로 갔을까. 새가 되어 다른 세상으로 날아갔을까. 아니면, 그 저녁, 다른 길로 접어들어 목숨을 부지했을까. 살아있으면 다행이다. 어떻게든 삶은, 살아남은 자의 승리이므로.
오빠와 언니는 그 날 이후,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의 등에는 군화자국이 선명하게 멍으로 남아있었고, 언니는 시 외곽으로 갔다가 차가 끊겨 돌아올 수 없었다고 했다.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노라, 며칠간을 재워주고, 먹여주고서도 제 딸처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 청년도 그랬을까. 혹여 살아있다면 집에 돌아가서 자신의 아들처럼 따듯하게 대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술회했을까.
첫댓글 넘,길어요,ㅠㅠㅠㅠ 죄송.읽다 말았어요.발전을 위한 비판:이코너하곤 웬지.
진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우리와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평뚝! . 읽어보겠습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