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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11(주일) ◈ 창 8:1-22 여전히 악하나, 주님과 함께함이 쉼이다.
창 8:1 그 때에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에 함께 있는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을 돌아보실 생각을 하시고, 땅 위에 바람을 일으키시니, 물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창 8:2 땅 속의 깊은 샘들과 하늘의 홍수 문들이 닫히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그쳤다.
창 8:3 땅에서 물이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서, 백오십 일이 지나니, 물이 많이 빠졌다.
창 8:4 일곱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러 쉬었다.
창 8:5 물은 열째 달이 될 때까지 줄곧 줄어들어서, 그 달 곧 열째 달 초하루에는 산 봉우리들이 드러났다.
창 8:6 사십 일이 지나서,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서,
창 8:7 까마귀 한 마리를 바깥으로 내보냈다. 그 까마귀는 땅에서 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이리저리 날아다니기만 하였다.
창 8:8 그는 또 비둘기 한 마리를 내보내서, 땅에서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를 알아보려고 하였다.
창 8:9 그러나 땅이 아직 모두 물 속에 잠겨 있으므로, 그 비둘기는 발을 붙이고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하여, 그냥 방주로 돌아와서, 노아에게 왔다.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 비둘기를 받아서, 자기가 있는 방주 안으로 끌어들였다.
창 8:10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그 비둘기를 다시 방주에서 내보냈다.
창 8:11 그 비둘기는 저녁때가 되어서 그에게로 되돌아왔는데, 비둘기가 금방 딴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으므로, 노아는 땅 위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았다.
창 8:12 노아는 다시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비둘기가 그에게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창 8:13 노아가 육백한 살 되는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 땅 위에서 물이 다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니,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창 8:14 둘째 달, 곧 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다 말랐다.
창 8: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창 8:16 "너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방주에서 나가거라.
창 8:17 네가 데리고 있는, 살과 피를 지닌 모든 생물들, 곧 새와 집짐승과 땅 위에서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데리고 나가거라. 그래서 그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게 하여라."
창 8:18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을 데리고 나왔다.
창 8:19 모든 짐승, 모든 길짐승, 모든 새,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것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바깥으로 나왔다.
창 8:20 노아는 주님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집짐승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다.
창 8:21 주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 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창 8:22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 은혜가 왕 노릇하는 복음
1. 사람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여 에고의 눈이 밝아지고, 선악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1)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 여자의 자손을 통한 구원이 선포되고, 아담은 생명을 외쳤고,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
2) 죄악이 세상에 가득해지자, 심판을 통하여 다시 세우는 구원의 길을 노아를 통해 여신다.
3)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고, '언약'을 맺은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준행한다.
2. 7장에는 “방주로 들어갔다”는 구절, 특히 “노아와 함께 방주로 들어갔다”는 말씀이 강조된다.
1) 노아(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방주(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은 살아 남았다(생명 얻었다).
2) 잘 났으나 못났으나, 의를 전파한 노아(그리스도)와 함께 방주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요, 노아와 함께 방주 안에서 살아가는(거하는) 것이 생명이요, 평안이다.
3. 하나님이 방주 안에 있는 동물들을 돌아보신다.
8:1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에 함께 있는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을 기억하셔서, 땅 위에 바람이 불게 하시니, 물이 줄어들었다.
1) "하나님이 기억하셨다"에서 '기억하다(자카르)'는 잊었던 것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언약에 근거하여 행동을 시작하시다’는 뜻이다.
2) 노아나 동물들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언약의 약속대로 은혜를 베푸신다.
3) 성경은 의도적으로 “노아와 방주에 함께 있는”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돌봄을 받는 대상이 “노아와 함께 있는 대상”임을 강조한다.
4.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해야 할 일은 “노아와 함께 있는 것”이다.
1)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물론, 노아와 함께 방주 안에서 음식을 먹고, 동물의 배설물을 치우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다.
2) 예수님과 함께 있기만 하면,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있어도, 홍수 심판이 나도, 방주 안에서 떠돌아다녀도, 안전하며, 돌봄을 받는다.
5. 홍수 심판 후에 다시 질서가 회복되는 '새 창조'의 과정이 진행된다.
창 8:4 일곱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러 쉬었다.
1) 물이 빠지자, 방주가 산에 정박했는데, 성경은 의도적으로 ‘쉬었다(누아흐)’는 표현을 쓴다. 노아라는 이름은 ‘안식, 쉼’이라는 뜻인데, 방주가 마침내 쉼을 얻는다.
2) 방주 안에 들어가서 구원받은 자가 누리는 것이 “안식, 쉼”이라는 것이다.
3) 8장에는 “방주가 쉬었다(4절)” 이후에도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9절)”라는 표현이 나온다. “쉼”은 구원의 열매를 누림이고, 쉬지 못함은 가인이 받은 저주로, 구원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함을 뜻한다.
6. 노아가 물이 말랐는지를 알려고 까마귀를 내보내자 “이리저리 날아다니기만” 하였고, 비둘기도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온다.
창 8:9 그러나 땅이 아직 모두 물 속에 잠겨 있으므로, 그 비둘기는 발을 붙이고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하여, 그냥 방주로 돌아와서, 노아에게 왔다.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 비둘기를 받아서, 자기가 있는 방주 안으로 끌어들였다.
1) 물이 마르지 않았다거나 땅이 없어서라고 표현하지 않고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고 표현한다.
2) 비둘기는 창을 통해 방주 안으로 들어오면 되는데, 노아가 손을 내밀어 비둘기를 자기가 있는 방주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3)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한 비둘기, 아직까지 쉴 만한 곳은 방주 안에 밖에 없다. 그리고 안식이 있는 방주 안은 노아가 받아서, 자기가 있는 방주 안으로 끌어들임으로 안식을 누린다.
7. 믿음이 자랄수록, 예배 안, 교회 안에서만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세상 속에서도 안식(쉼)을 누리게 된다.
1) 그런데 세상에서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하면, 이 비둘기처럼 방주로 돌아와 노아에게 와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우리를 받아 주시고, 예수님이 있는 하나님 나라 안으로 끌어들여,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게 하신다.
히 4:10 하나님께서 주실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 일을 마치고 쉬신 것과 같이, 그 사람도 자기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2) 이 방주에서 쉼을 누리며 노아와 함께하다 보면, 세상에서도 안식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어진다.
8. 비둘기를 내보내, 물이 마른 것을 확인하자, 하나님이 노아에게 가족들과 동물들을 “데리고” 방주에서 나가라고 말씀하신다.
창 8:16 "너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방주에서 나가거라.
창 8:17 네가 데리고 있는, 살과 피를 지닌 모든 생물들, 곧 새와 집짐승과 땅 위에서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데리고 나가거라. 그래서 그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게 하여라."
창 8:18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을 데리고 나왔다.
1) 노아의 아내, 아들들, 며느리는 모두 성인으로써, 자기 스스로 방주를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노아가 “데리고” 방주에서 나가라고 한다.
2) 동물들도 문만 열면 알아서 방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노아에게 “데리고 있는” 동물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하신다.
3) 노아와 그의 가족과 동물들을 ‘목자와 양’의 관계로 말씀하신다.
9. 7장에서는 “노아와 함께 방주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요 생명이요 안식이라고 하였다.
1) 방주 안에서 누린 안식을 이제, 세상에서도 누려서, 방주의 안식을 확장해야 한다.
2) 방주 밖으로 나감은 “새로운 인류의 파송, 빛과 소금으로의 파송”이다.
3)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일상의 삶으로, 학교, 직장, 가정, 사회관계로 나가야 한다.
- 예배는 삶의 핵심이요, 삶은 예배의 연장이다.
10. 구원과 안식을 얻는 핵심이 7장에서의 '노아와 함께 들어가라' 이면, 세상에서 쉼을 누리며 복음을 전하는 길의 핵심은 '노아가 데리고 나가는 것'이다.
1) 노아의 인도를 따라, 노아와 함께 방주 밖으로 나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다.
2) 방주 밖도 하나님의 나라이며, 안식이 있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다.
3) “너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을 데리고 나가거라. 그래서 그것들이 땅 위에서 번성하며...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라”는 창세기 1:28의 문화명령이 다시 선포된다.
4) 노아는 '제2의 아담'으로서 구원받고 안식을 누리는 새로운 인류가 시작된 것이다.
11. 노아와 그가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방주를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예배”다.
8:20 노아는 주님 앞에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서 제물을 골라서,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쳤다.
1) 모든 것이 황폐한 곳에 나온 그들이 한 첫 번째 행위는 집을 짓거나 성을 쌓거나(가인처럼), 농사를 준비하거나, 문명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였다.
2) 교회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예배다. 그리고 가정과 일터로 나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도 예배다.
3) 아침에 1시간 말씀과 함께해도 되고, 출근길에서 잠시 기도해도 되고, 책상에 앉아서 1분간 주님을 바라보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가장 먼저 예배하고 방주 밖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것임을 하나님께 아뢰고, 자신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4) 구원의 목적은 예배(하나님과의 교제, 동행)다. 예배할 때, 방주 밖에서도 쉼을 누린다.
12. 주님께 예배를 드릴 때, 주님은 놀라운 은혜를 마음속으로 다짐하신다.
8:21 주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해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과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1) 홍수 심판, 방주로 인한 구원, 노아와 함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람이 선해지지 않았음을 아신다. 여전히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함'을 아신다.
2) 그리고 마음의 생각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멸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신다.
13. 우리가 노아의 가족들 같은 충격적이고, 역사적인 은혜의 구원을 받아도 우리는 여전히 “마음의 생각이 악한” 존재다.
1) 구원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했다고 해서 선해지는 것이 아니다.
2) 그러므로 구원받은 이후에도 은혜의 복음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야 한다. 은혜가 왕 노릇해야 한다.
3) 죄가 더한 곳에 더욱 은혜가 넘치는 대상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4) 그러므로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노력하지 말고, 여전히 악한 나를 인정하고, 은혜의 복음으로 주님이 다 이루어 주신 은혜, 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14. 하나님은 노아의 제사에서 장차 오실 완벽한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셨다.
1) 우리가 여전히 악함에도 불구하고 심판받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드리신 향기로운 제사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 생명 얻기”
만약 하나님(성경)이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놀라운 기적과 구원을 체험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변했을 거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흔히, 우리는 아주 놀라운 체험을 하면 마음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줄 알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체험을 하였다. 그런데 나의 기대와 달리, 내 마음의 생각의 악함은 동일했다. 아니, 나이가 들수록 더 세상과 죄들을 더 알면서 더 악해져 갔다. 그리고 나보다 더 놀라운 체험을 한 분들도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함을 알게 되었다. “변했다”는 간증이 많다. “변하라”고 외치고 “변했다”고 세미나를 해서 “우리들처럼 변하라”고 한다. 그런 현장을 많이 보았고, 나도 변하고자, 다른 사람들을 변화 시키고자 온 힘을 다했다. 관점에 따라 변하는 건 맞다. 그런데 마음의 생각, 즉 에고는 또한 변하지 않았다.
변하는 기준에 따라 구원 체험, 성령체험, 기적체험, 공동체 체험이 변화를 가져온다. 그런데 정말로 그가 변했다면, 그것은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가 그에게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의로운 욥조차 울타리를 거두자, 생일을 저주하고 하나님과 다툰다. 감히 누가 하나님의 임재를 거두고, 울타리를 거두면, 계속 “나는 변화된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윗도 철저히 무너졌었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이 변했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삶은 초자연적으로 변하였는데, 그 자신은 성도 중에서도 작은 자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하였다. 즉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왕 노릇이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임하고 있는 삶임을 알았다. 그 은혜의 지배가 강력하게 지속되면, 사도들처럼 살고, 순교도 기쁨이 된다. 그래서 참된 순교자들은 자신들의 결단이나 변화됨으로 순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로 인하여 순교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순교를 해도 자랑할 것이 없다. 순교조차 주님의 은혜였기 때문이다. 이 은혜를 아는 바울은 영광을 세세 무궁토록 주님께 돌렸다.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말을 마음에 두고도 나는 여전히 변화를 좋아한다. 미치도록 변하고 싶었고, 사람들을 변하게 하고 싶었고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불쑥불쑥 변화를 갈망하고, 노력한다. 헛된 수고다. 나는 변화되지 않는다. 내 삶이 변화되어져 간다면 그것은 주님의 은혜가 왕 노릇하여,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 나의 에고는 동일하지만, 나의 영이 드러나 영을 따라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 때 “내가 노력해서 변했다”고 착각하는 순간 죄의 세력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변하지 않았음을 계속해서 보여주셨다.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면서 간증을 했었지만,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모두 주님이 은혜로 돌보신 사건과 역사들이었다. 여전히 나는 골수 탕자요, 골수 바리새인이요, 골수 고멜이다. 그런데 한없는 주님의 은혜가 나를 덮고, 안아주며, 돌보아 주신다.
영적 무지와 착각이 너무 많아서 다 거두어 낼 수가 없다. 다만, 은혜의 복음이 나를 온전하게 했고, 나를 존귀하고 사랑받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였다. 주님이 나를 데리고 방주에 들어갔고, 주님이 나를 데리고 방주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항상 함께하신다. 내가 있는 이 모습 이대로,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 나는 주 안에 있고, 주는 내 안에 사신다.
◈ 교제의 기도
주님, 석가도 괴로움의 이유가 집착과 무지라고 하였는데, 저는 여전히 집착하고, 무지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 나를 알지 못하는 무지가 생명의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종교주의 본성, 노력해서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본성, 주님의 복음에 무언가를 보태서 더 좋게 하려는 무지가 계속됩니다. 주님이 전부이고, 복음이 다 이루었다는 선포를 입술로만이 아니라, 제 마음과 전인격으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복음으로 안식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제 마음의 생각의 악함으로 정죄하거나 낙심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은 제 마음의 생각이 악하다고 하셨고, 다 아십니다. 제 마음의 생각이 악하고 어리석을 때마다 주님이 아시고, 십자가로 구속하셨고, 은혜로 덮으셨고, 그리스도로 옷 입혀, 존귀하게 하였음을 믿게 하옵소서. 은혜의 복음을 더 알고, 깊이 맛보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주일입니다. 세상의 홍수에 떠밀려 다니던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안식을 누리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비둘기처럼 주님께 돌아와, 주님이 받아 주시고, 안식으로 끌어들이므로 쉼을 얻고, 주님과 함께 방주 밖으로 나가게 하소서. 예배와 식탁 교제, 셀모임, 섬기는 이들, 이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게 하소서. 영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며, 교제하게 하옵소서. 죄에게 속고, 자신에게 낙심하고, 정죄 가운데 있는 교우들을 주권적 은혜로 찾아가 주셔서, 회복시키시고, 만나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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