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A매치에서 신태용호가 성과를 낸 4-4-2 포메이션은 스웨덴이 더 잘 다듬어온 전술이다.
[한준의 티키타카] 축구 팀의 전력은 상대성이 있다. 잘 나가는 팀도 강점을 드러내기 어려운 전술 구조의 팀과 경기하면 고전하는 경우가 있다. UEFA 챔피언스리그나 월드컵 유럽, 남미 지역 경기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팀을 만날 때 강 팀이 지는 경우가 있다. 전술 상성 차이가 선수 구성 만큼 중요하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은 꽤 어려운 조에 속했다. 포트1에서 FIFA랭킹 1위, 전 대회 우승국 독일을 만났다. 포트2에서는 6회 연속 월드컵 16강에 오른 북중미의 맹주 멕시코가 들어왔다. 포트3에서도 유럽 예선전에서 네덜란드, 유럽 플레이오프에서 이탈리아를 꺾은 스웨덴이 합류했다. 스웨덴은 유럽 예선전에서 프랑스에 패배를 안긴 팀이기도 하다.
한국은 11월 A매치에서 세계적으로 재유행하는 4-4-2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콜롬비아, 세르비아를 상대로 좋은 경기를 했다. 안방에서 치른 경기였지만 상대 중원 플레이를 무력화한 전방 압박과 두 줄 수비가 인상적이었다. 이번 대회 예선전에서 상대적으로 전력이 열세에 있다고 평가된 상당수 팀 들이 4-4-2 구조를 통해 본선 티켓을 얻었다.
애석하게도, 한국이 F조에서 만날 세 팀은 전술 상성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기 쉽지 않다. 신태용호는 많이 뛰고, 4-4-2로 수비하며, 상대에 따른 맞춤 전술 수립이 강점이다. 이 세 가지 특징은 F조 상대국 세 팀 모두 갖고 있는 점이다.
◆ ‘첫 상대’ 스웨덴의 4-4-2, 더 강하고 더 단련됐다
첫 경기 상대인 스웨덴도 기본 포메이션이 4-4-2다. 한국 보다 오랜 시간 이 전형을 다듬었고, 이번 유럽 예선에서 최대치의 완성도를 냈다. 한국이 쓸 4-4-2 구조를 감독과 선수 모두 잘 꿰고 있다.
스웨덴은 신체조건이나 체력에서 모두 한국 보다 우월하다. 공격 전개 시 킥 정확성과 마무리 능력도 앞선다. 측면을 타고 전개하는 선 굵은 공격은 한국의 중원 압박을 무력화할 수 있다. 스웨덴 투톱은 마르쿠스 베리와 올라 토이보넨. 두 선수 모두 월드컵에 만 32세가 되는 베테랑이다. 신체 능력은 감소하지 않았다. 토이보넨은 189cm, 베리는 184cm로 높이에 강점이 있고, 잘 뛴다. 결정력도 준수하다.
한국의 4-4-2 포메이션은 중앙 지향형 선수를 측면 미드필더로 두는 것이 특징. 스웨덴 역시 우측 미드필더 빅토르 클래손, 우측 미드필더 메일 포르스베리가 중원, 측면, 전방을 넘나든다. 투톱이 베테랑이라면 좌우 측면은 20대 중반의 팔팔한 나이대 신진 선수다. 클래손은 러시아 크라스노다르에서 뛰고 있어 개최국 분위기가 익숙한 또 다른 장점도 있다.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를 괴롭힌 에밀 포르스베리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세바스티안 라르손과 알빈 에크달도 중앙과 측면을 두루 소화할 수 있으며, 정밀한 킥 능력을 갖췄다. 시원시원한 패스와 크로스 패스로 압박을 무너트릴 수 있는 젖줄을 만들 수 있다. 크라스노다르에서 뛰는 주장 안드레아스 그랑크비스트를 중심으로 한 포백 수비의 규율도 좋다.
스웨덴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브라히모비치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신 진출 실패, 유로2016 조별리그 탈락 이후 대표 팀에서 은퇴했다. 월드클래스 스타가 사라진 스웨덴은 상대 보다 한 발 더 뛰는 조직 축구로 진화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얀 안데르손 감독의 새로운 스페인은 엄청나게 헌신적이고 규율을 중시한다. 라예르베크 감독 시절 스웨덴은 아스널, 유벤투스, 바르셀로나 같은 팀에서 뛰는 선수들이 있었지만 지금 선수들은 덴마크, 그리스, 러시아, 스코틀랜드, UAE 같은 곳에서 뛰는 이들이 많다”며 화려함은 줄었지만 팀으로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프랑스전 승리,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탈락을 이끈 스웨덴의 힘은 신태용호가 11월 최정예 멤버로 나서며 천명한 경기 철학이 같다. 같은 스타일로 붙는다면, 개개인의 능력과 경험에서 앞서는 스웨덴이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브라히모비치가 특급조커로 대표 팀에 복귀한다면 화룡점정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이브라히모비치의 대표 팀 복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발 멤버가 아니라 어려운 순간 조커로 나서 해결사 역할을 하는 정도라면 이브라히모비치에게도, 스웨덴 대표 팀에도 ‘윈-윈’이다. 대표 팀에서 많은 것을 이룬 뒤 은퇴한 스타들이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깜짝 복귀한 사례는 적지 않다. 이브라히모비치가 스웨덴의 특급 조커로 합류한다면 뒷심이 더 강해질 것이다.
스웨덴과 대전 일정이 첫 경기라는 점도 부담이다. 스웨덴은 유럽 예선에서 많이 뛰는 팀으로 기능했다. 체력이 가장 좋을 때 한국과 경기한다. 한국을 잡고 시작해야 멕시코와 2위 싸움에서 유리하다. 한국이 스웨덴을 상대로 해볼 만한 가능성은 우리를 얕보고 나섰을 때 허를 찌르는 것이다. 통상 월드컵은 첫 경기가 제일 중요하다. 한국전 준비 시간이 충분한 스웨덴은 철저히 대비하고 나올 것이다. 현실적인 목표는 무승부가 될 것이다.
◆ ‘두 번째 상대’ 멕시코, 무한한 전술 옵션…연구하는 오소리오 감독
스웨덴이 무시무시하지만, 멕시코는 더 까다롭다. 멕시코와 스웨덴의 2위 경쟁에서 세계 축구 도박사와 전문가들 중 멕시코가 근소 우위를 점한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24년 간 16강에 오르며 조별리그를 통과한 노하우가 있다. 멕시코도 북중미 예선전에서 4-4-2 포메이션을 즐겨 썼다. 이 4-4-2 포메이션을 중심으로 4-2-3-1, 4-3-3, 3-4-1-2로의 변형을 자유자재로 했다.
신태용 감독의 특징이라면 상대 팀에 따른 맞춤 전략을 구사하는 데 능하다는 점이다. 플랜A를 고집하고 밀고 가기 보다 매 경기 적절한 변화를 주며 상대를 공략한다. 멕시코의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은 이 점에서 신 감독보다 수가 높다. 콜롬비아 출신 오소리오 감독은 2016년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2017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치르며 매 경기 스리백과 포백, 원톱과 투톱, 스리톱을 넘나드는 전술을 전개했다. 상대 팀의 전술, 멕시코 선수들의 이탈 상황에 맞춰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오소리오 감독은 축구 연구와 상대 팀 분석, 전술 이론에 탁월한 지도자다.
콜롬비아 출신 오소리오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 연구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남미 출신이지만 영국축구협회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아 UEFA 코칭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영국 리버풀 존무어 대학교에서 스포츠 과학도 전공했다. 네덜란드축구협회에서 지도자 교육을 이어 받았다. 1998년에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한 오소리오 감독은 주로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감독으로 활동했고, 콜롬비아 명문 미요나리오스와 온세칼다스, 아틀레티코나시오날을 지휘했다.
오소리오 감독의 최전성기는 2012년부터 2015년사이 아틀레티코나시오날을 이끌고 리그 3연속 우승, 코파 콜롬비아 2연속 우승을 이룬 때다. 오소리오 감독은 2014년 리그 우승을 끝으로 브라질 명문클럽 상파울루를 지휘하다 멕시코 대표 팀 사령탑에 올랐다. 오소리오 감독의 유산이 남은 아틀레티코나시오날은 2016년에 코파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 사상 두 번째 남미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다.
연구하는 오소리오 감독은 한국과 같은 조가 되기도 전에 한국 대표 팀의 경기를 봐둔 상태였다. 연령별 대표 팀을 거쳤다며 신태용 감독의 이력도 알고 있었다. 신 감독 부임 첫 경기인 이란전에 쓴 5-4-1 포메이션을 언급했고, 11월 A매치에서 처음 시도한 4-4-2 포메이션으로 한 경기도 알고 있었다. 조주첨 이전에 한 조에 속할 가능성이 있는 팀들을 면밀히 살피고 분석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폴란드 원정에서 승리한 멕시코. 벨기에 원정에서도 전술적으로 앞선 경기를 했다.
멕시코는 11월 A매치에서 벨기에와 원정에서 3-3 무승부, 폴란드와 원정에서 1-0 승리를 거두고 왔다. 벨기에 미드필더 케빈 더브라위너는 멕시코가 전술적으로 더 뛰어난 팀이었다며 벨기에 대표 팀의 쇄신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소리오 감독의 멕시코는 본선까지 전술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더 발전할 여지가 충분하다.
신 감독이 즐겨 쓰는 변형 스리백은 멕시코에서 확산됐다. 멕시코 대표 팀을 이끌었던 리카르도 라볼페 감독이 미드필더를 센터백 지역으로 내려 전개한 빌드업 구조를 발전시켜 ‘라볼피아나’라는 명칭이 붙었다. 멕시코 축구는 오래 전부터 스리백을 썼고, 공을 다루길 즐겨왔다. 체구는 작지만 기민하고 격렬한 플레이로 유럽 팀들과 맞섰다.
최근 멕시코는 유럽 진출 선수가 늘고, 체격 조건이 좋은 선수들도 늘었다. 센터백 엑토르 모레노는 수비 축구의 본산 이탈리아의 명문 AS로마로 2017-18시즌 이적했다. 89회 A매치를 경험한 베테랑이다. 스페인 라리가 레알소시에다드와 에스파뇰에서 뛰었고, 포르투 소속인 수비수 디에고 레예스는 189cm의 장신에 패싱력을 겸비했다. 북중미 예선 트리니다드토바고전, 컨페더레이션스컵 뉴질랜드전, 에는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임시배치되어서도 좋은 경기를 했다.
2017-18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로 임대 이적한 카르로스 살세도는 186cm의 체구에 센터백과 풀백을 오갈 수 있는 힘있는 수비수다. 라이트백과 스리백의 우측 자리를 맡아 측면 공간을 지배할 수 있다.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부상을 입었으나 지난 9월 회복해 분데스리가 경기를 뛰고 있다. 부상 복귀 이후 그가 뛴 9경기에서 멕시코와 프랑크푸르트는 1패 밖에 당하지 않았다.
장신 수비수 레예스와 장신 공격수 히메네스. 멕시코는 더 이상 작고 기술 좋은 팀이 아니다.
중원과 공격진도 창조성과 치명성을 갖춘 선수들이 많다. 치차리토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전바 골잡이 하비에르 에르난데스를 비롯해 64회 A매치를 뛴 카를로스 벨라,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영웅 오리베 페랄타가 건재하고, 장신 공격 옵션 라울 히메네스, 최근 떠오르는 기술자 이르빙 ‘처키’ 로사노가 서로 다른 장점을 갖고 있어 다양한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중원의 구심점은 30대에 접어든 뒤 측면에서 중원으로 주 포지션을 바꾼 주장 안드레스 과르다도가 맡는다. 142회 A매치를 뛴 과르다도가 라파 마르케스의 뒤를 잇는 정신적 지주다. 멕시코는 신태용 감독이 연령별 대표 팀에서 시도한 전술을 모두 습득하고 있고, 그 이상의 전술 옵션을 갖고 있는 팀이다. 공 소유와 전개, 공수 전환, 지역 방어와 대인 방어 등 전술적으로 모든 면에서 능하다. 이런 바탕이 멕시코가 오랜 기간 16강의 단골손님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멕시코는 독일과 첫 경기를 한다. 승리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한국과 경기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일정이다. 최종전에서 핀치에 몰려 만났던 2016년 히우지자네이루 올림픽 당시보다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 그리고 경기에 집중된 상태로 한국 전에 임한다. F조의 대진표는 상대 팀 뿐 아니라 대진 순서도 한국에 유리하지 않다.
독일은 주력 멤버 대부분을 빼고 치른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전술 실험을 하며 우승했다.
◆ 후보 나와도 막강한 독일, 대진 순서도 한국에 부정적
마지막 상대인 독일의 전력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 가지 희망으로 꼽는 것이 일정이다. 독일이 2승을 거두고 한국을 만나면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독일이 첫 두 경기 중 한 경기만 비겨도 1위를 장담하기 어렵다. 더구나 F조 2위는 E조 1위와 16강전을 해야 한다. E조 1위가 유력한 팀은 우승후보로 꼽히는 브라질이다. 독일은 브라질을 확실하게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과 최종전을 대충 치르지 않을 것이다.
2경기 만에 1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해도 독일의 강점이 ‘더블 스쿼드’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독일은 지난 여름 월드컵 리허설 성격으로 러시사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 마누엘 노이어, 마츠 훔멜스, 제롬 보아텡, 토니 크로스, 메주트 외질, 투토마스 뮐러, 일카이 귄도안, 마르코 로이스, 자미 케디라, 르로이 사네 등 주력 선수들을 여러 이유로 소집하지 않고 젊은 선수들,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새로운 선수들로 구성한 대표 팀이 출전했다. 그러고도 우승했다.
율리안 드락슬러와 레온 고레츠카는 이 대회를 통해 중원에서 존재감을 높였다. 3-3-2-2 포메이션을 실험한 독일은 투톱 뒤에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로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를 배치해 전방 4인 블록으로 구조적 압박, 공격 패턴 플레이 다변화를 끌어냈다. 티모 베르너와 라스 슈틴들도 이 대회를 통해 대표 팀에서 입지를 다졌다. 독일은 누가 나와도 강하다. 오히려 이 선수들이 나서면 경기에 대한 의욕은 더 강해진다.
외질, 크로스, 드락슬러가 동시에 나오는 독일 1군을 버텨내기는 어렵다.
◆ 못 이겨도 좋은 기회…신나게 경기하고 배우자
상대 전력과 전술 상성, 대진표 흐름으로 본다면 한국이 3전 전패로 탈락하는 것도 가능성이 충분한 시나리오다. 세간의 평가도 그렇다.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이 받는 부담이 덜하다. 한국은 잃을 게 없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독일, 스페인과 한 조가 됐을 때 스페인과 2-2로 비길 것을 예상한 이들은 없었다. 스웨덴과 첫 경기에서 의외의 결과를 낸다면 F조에서 이변이 발생할 수 있다.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지만, 축구 경기 결과에 미치는 변수는 다양하다.
굳이 16강에 오르지 않더라도 월드컵에서 전술적으로나 선수 육성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인 세 나라를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독일은 우승 전력, 스웨덴도 최소한 8강을 바라볼 수 있는 흐름이고, 멕시코는 16강 단골 손님이다. 이 세 팀을 연이어 상대하는 것 만으로 월드컵 토너먼트 급 경기 경험을 선수들이 쌓게 된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지만, 이런 경험이 쌓여야 그 다음 대회를 준비하고, 축구 발전을 위한 자산이 된다. 어려운 대진표지만, 압도적 강호가 없는 조에 들어 주목 받지 못한 대회를 치른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보다 의미있는 대회가 될 수 있다. 월드컵은 세계 최고의 스포츠 제전이다. 배울 게 많은 팀을 만나 한국 축구의 현 주소를 파악하고, 발전의 동력을 찾을 수 있다면 즐기기는 충분하다.
스웨덴전은 2018년 6월 18일 월요일 밤 9시, 멕시코전은 6월 23일 밤 12시, 독일전은 27일 수요일 밤 11시에 킥오프한다. 세 경기 모두 보기 좋은 시간대에 열린다. 참가국의 축구 수준이 역대 최고라 평가 받는 월드컵을 만끽할 수 있는 일정이다. 즐기다 보면, 뜻밖의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다. 한국 축구은 언제나 가장 큰 위기라고 불릴 때 기막힌 반전을 이뤄냈었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