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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의 기술 - 고든 스미스 지음
1. 하나님과 춤을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삶의 모든 차원에서 끊임없이 선택이라는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 확신을 가지고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기술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확신 속에서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 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필수적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몇 가지 다른 의견들 첫 번째 견해는 청사진 접근 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관점은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삶에 대한 완벽한 계획, 즉 청사진을 가지고 계신다는 생각이다. 또한 최근 몇 년간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두 번째의 관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어 주시는 지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청사진의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인을 찾고자 하며, 그것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검토한다. 지혜의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본질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우리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 중 어딘가에서 하나님의 의견을 물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말하고 계신다. 우리가 들으려고만 한다면 우리를 격려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그 목소리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들과 교회사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특별하고 도 직접적인 만남을 누렸으며 그분의 목적과 뜻에 관해서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가 단지 일 반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의미에서 우리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게 될 선택과 결정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나님과의 사귐 우리는 하나님과 독특하고 인격적이며 역동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는 추종자인 동시에 친구로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에 우리 자신 의 소원과 의지, 인격, 문제, 사귐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은 자유 로운 두 의지 사이의 만남이다. 더욱이 삶의 전환점, 즉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우리가 하나님을 좀 더 깊이 만나고 알 수 있으며, 우리 자신에 대해 좀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가 삶의 위기 한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그 위기를 맞는다. 우 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만남으로 변화된 자들로서 하나님과 더불어 행동하다.
분별과 인도하심 분별은 결정해야 할 그 때에만 제한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경험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 분별이란 하나님의 말 안에 있는 말을 듣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대로 살려고 하는 한 사 람 한 사람에게 주시는 구체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 접근 방식에서는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기도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귐은 기도 안에서 유지되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알 수 있는 것도 기도 안에서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지와 동기, 소원, 우선순위에 대해서 말하실 수 있는 것도 기도 안에서이다. 분별, 그리고 사귐에 기초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과의 만남에 관해 우리는 순전히 실용적인 태도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분은 우리 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과의 사귐이라는 모델은 두 가지 의지와 두 가지 자유, 즉 하나님의 것과 나의 것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소통이라는 현상을 가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나 의 반응, 특히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응답은 순종적이어야 한다.
분별의 기술을 개발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보다 앞서갔던 이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 그들은 성경의 의 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많은 점에서 나는 이 책이 우리보다 앞서 갔던 이들이 전해준 축적된 지혜를 모으려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2. 최선의 선택
분별은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서로 경합하는 선택 가능성들 중에서 차별적인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 신앙에서의 분별은 우리의 신앙과 겸손 속에서 신중하게 사고하는 것이며, 그것 을 통해서 우리는 좀 더 온전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될 수 있고 사랑의 사람들이 되라는 부 르심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선택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결정들이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첫째, 하나님의 의도나 그분의 뜻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때가 있다. 둘째로 이그나티우스는 분 별이 필요 없는 선택의 또 다른 사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 우리 자신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으며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서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느낀다. 그러나 이 책의 주제 가 되는 선택은 그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토저가 지적한 것처럼 성경은 선택의 종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며, 우리는 두 가지의 선한 선택 사항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할 순간이 있다. 바로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많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이럴 때에 우리는 주께로 향하여, 하나님께서 그분께 묻는 이들에게 지혜를 주실 것이라는(약1:5-6) 확신 속 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한다.
최고를 구하라 우리가 최고의 선택을 찾는다고 할 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화롭게 하는 것을 구하고 있음을 가 정한다. 분별은 이전에 내렸던 결정과 헌신에 비추어서 최선의 것을 추구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 결정한 근본적인 헌신들이나 전제를 어기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이 원칙은 과거를 존중한다. 하나님 은 변덕스러운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우리 역시 변덕스럽거나 자신의 결정을 쉽게 바꿔서는 안 된다. 분별은 언제나 현재에서 최선의 것을 추구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면, 우리는 가장 어려운 때일 지라도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리석음과 실수를 그대로 인정해야 함을 의 미한다. 스스로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을 또 하나의 새로운 날로 맞을 수 있으며, 과거의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최고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
분별은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의 문제이다. 분별은 결정을 위한 것이며, 내적인 평화와 확신 속 에서 그 결정을 내리기 위한 것이다. 분별은 인격적이고 개인적이며 상황적인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이 들을 위해서 그들의 상황을 분별해 줄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말하시는 것은 그분께서 또 다른 사람에게 말하시는 것과 동일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비슷한 상황일지 라도 각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인도하신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모든 종류의 상황에서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간단명료한 지침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스 스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의 것을 분별하기로 결심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서로를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하며, 또 한편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시키는 다른 이들의 억압적인 판단이나 기대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음성 구별하기 분별이란 이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들과 사탄의 거짓 증언으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해 내는 것이 다. 물론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또한 적인 분별의 기술을 개발해야만 한다. 구약의 신자들에게 있어 분별은 주로 거짓 예언으로부터 참된 예언을 구별해 내는 것을 의미했다. 신약의 신자들도 거짓 교사들과 참된 교사들을 분별하는 법을 배 워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성령의 증언을 인식하는 분별의 행위가 특히 중요하다.
웨슬리는 성령의 내적 증거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참된 기독교란 진심에서 우 러난 하나님과의 만남과 그분에 대한 응답에 뿌리박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가정하다. 웨 슬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들은 연합을 이루며 그 속에는 조화와 이해가 있다고 믿었다. 이러 한 성령의 내적 증거가 언제나 외적인 사인을 가지고 있다는 확고한 신념은 웨슬리 교리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과 연합해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두 가지 사인을 강조하고 있다. 첫 번째 사인은 확신,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다. 두 번째 사인은 인격, 즉 성령과의 연합의 열매로 우리가 도덕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기쁨과 선을 행하려는 소망, 악으로 부터 돌이킴 등의 변화가 내적 실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 다는 내적인 기쁨과 확신은 반드시 도덕적인 개혁을 수반하게 된다.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그것 은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의 내적 증언을 알아듣고 그분의 격려하심을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성령 께서는 첫째,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주신다. 둘째,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신다. 셋째, 우리를 진리로 이끄신다. 마지막으로, 성령께서는 우리가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할 때 우리를 인도하신다.
기도의 중요성 분별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도를 통한 그분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 우리는 관계라는 맥락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우리가 하나님과 적으로 사귈 수 있는 통로인 기도를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 기도는 듣는 기도가 되어야 한 다. 너무나도 많은 경우에,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기도를 위해서 때로는 우리가 그저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침묵을 지켜야 할 때도 있다. 토머스 그린은 분별을 기도와 우리가 세상 속에서 하는 행 위들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라고 말하다.
3. 분별의 기초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우 리는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최고의 것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사의 모든 시대에 등장했던 적 대가들은 이 문제, 즉 우리의 근본적인 헌신이라는 문제의 중요 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그나티우스는 이러한 자세는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의 문제이며 그리스도의 존재 근거와 그분의 가치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하다. 분별에 있어 가장 큰 위험은 우리의 교만과 이기심으로 인해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분별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의로움을 추구하 며 하나님의 광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다. 최선의 것은 단지 우리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거룩한 사람들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최선의 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의(義)에 대한 근 본적인 헌신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다.
성경에 의해 새로워진 마음 만약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은 주로 성경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분별에 있어 성경이 첫 번째 객관 적 기준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주관적인 성령의 증언은 객관적인 성경에 비추어 평가 를 받아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그 말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 것인가를 전 달해 주신다. 이는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이 우리 안에 풍성히 살아 있게(골 3:16) 하지 않는다 면, 성령의 충만함(엡 5:18)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마음이 성경에 완전히 젖어야 비로 소 우리는 무수한 소음들 가운데에서 성령의 목소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연구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신자는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 뜻과 그분의 목적을 좀 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또한 우리 삶 속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에 최 고의 것을 분별하도록 도와준다.
공동체 속에서의 삶 분별을 시험할 수 있는 두 번째 객관적인 기준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에서의 삶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인 신앙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이다. 다른 성도들과 교제 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심각한 적인 위험에 처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얻은 감이나 통찰력, 인 식들을 평가받아야 한다. 우리가 받은 감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우리는 신앙의 공동체가 주는 격려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공동체로부터의 견제와 균형도 필요하다.
4. 하나님의 평화
이제 분별에 있어서 하나님의 평화를 아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검토해 볼 것이다. 이를 위해서 는 감정의 문제를 다시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항 종교개혁(Counter Reforamation) 시기의 스페인 신비가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는 모든 시대와 전통, 문화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분별의 필수적인 원리를 발견하고 이를 정식화하다. 그는 『신수련』이라는 책으로 가장 잘 알 려져 있는데, 이 책 속에는 분별을 위한 규칙들이 포함되어 있다.
감정은 중요하다 이그나티우스의 첫 번째 통찰은 분별이란 우리 마음속에, 특히 우리의 감정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 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 양심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정들, 우리 마음에 남겨진 인상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하신다. 마음의 움직임 을 지각하고 그것을 제대로 평가함으로써 그분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다.
위안과 절망 이그나티우스의 두 번째 통찰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감정들은 위안과 절망이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 눌 수 있다는 것이다. 위안은 평화, 기쁨, 만족, 평온함의 감정으로서, 행복함과 무사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절망감이란 분노, 억압, 낙담, 내적 혼란 등의 감정이며, 때로는 무기력의 감정일 수도 있고, 구체적인 느낌이나 반응이 아닌 단지 내적인 불안감일 수도 있다. 이그나티우스는 우리의 감정 적인 기복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성찰하는 훈련을 하게 되면, 그것의 중요성을 바로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반복적인 양식이나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묵상 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질서 있게 처리할 수 있고 우리의 내적인 반응 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되며 사건에 대해 제대로 반응할 수 있게 된다.
절망스러울 때 결정을 미루라 이그나티우스의 세 번째 통찰은, 절망감을 느낄 때에는 어떠한 결정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양한 모 습으로 나타나는 절망감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욥과 예레미야, 혹은 다른 이들에게 그러셨듯이). 절망감을 느끼는 동안에는 행동의 방향을 변경하거나 어떤 결정도 내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는 내적인 능력과 용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우리는 평화로운 가운데서만 행동해야 한다. 우 리 마음이 혼란의 와중에 있을 때에는 행동을 취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위로받고 있을 때 점검이 필요하다 이그나티우스의 네 번째 통찰은 위로받고 있을 때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안의 마음은 하나님 께서 주신 것일 수도 있고, 선으로 가장하고 있는 사탄의 속임수일 수도 있다. 사탄은 그것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그나마 좋은 것, 차선을 선택하고 그것에 만족하라고 우리를 부추기고 있다. 우리가 경계 해야 하는 거짓 평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우리가 최고가 아닌 평범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우리 자신의 완전한 잠재력을 다 펼치지 못한 채로 살게 만드는 위안이나 평화이다. 둘째, 자기중심적 인 이유로 분주히 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은 자신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줄 알고 자기기만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그나티우스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의 처음과 중간, 마지막을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스펙트럼의 각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의도가 참된 것인지, 그 동기가 순수한 것인지, 우리의 목적이 오직 하나님의 광만을 추구하고 있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린은 이 스펙트럼의 세 지점 을 검토해볼 수 있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있다. 처음 단계는 우리가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구할 생각을 하게 된 정황이나 배경이다. 이 배경이 참되고 선한 것이어야 한다. 중간 단계는 우리가 실제로 기도하는 시간에 적용된다. 처음의 단계, 즉 그 정황이 선한 것이라면 기도를 하게 동 기를 부여했던 생각들은 겸손과 섬김에 근거한 것인가, 아니면 헛된 동경이나 분노의 마음, 좌절감이 나 두려움에 근거한 것인가? 마지막 단계는 행하라고 격려를 받았던 행위에 관한 것이다. 그 마지막 이 분명히 악한 것이라면, 그 뱀의 꼬리가 보일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 자체로는 선하지만 우리 개 개인들에게는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동기의 문제 동기의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러 동기 중에서 다음의 세 가지를 특히 중요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것은 명예에 대한 욕망과 부에 대한 욕망, 안전에 대한 욕망이다. 이들 각각은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뜻을 제 대로 분별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자기기만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 의 동기를 철저히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느끼고 있는 평화의 처음에 대해서, 중간에 대해 서, 마지막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동기에 대해 점검할 때 자신에게 솔직해지라. 그럴 때에만 자신 에 대해 공정할 수 있고, 참된 분별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조건부의 평화 분별은 칼뱅주의적인 자기회의나 웨슬리적인 자기신뢰 사이에서 건전한 균형을 이루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할 수 있으며, 죄 많은 존재들이고, 우리의 동기 는 결코 순수할 수 없다. 반면에, 우리는 주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며, 하나 님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계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확실히 믿고 있다. 어떤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절대적인 확실성이 없을지라도 자신의 선택을 해 나간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는 어리석게도 자신이 느끼고 있는 평화의 의미를 과대평가한다는 점이 다. 우리는 그 평화가 제한적이며 조건부의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절대적인 확신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평화를 누릴 수 있으며 주저하지 않고 행동하기에 충분 한 자신감을 가질 수는 있다. 우리는 자신의 동기를 점검하는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하 나님의 평화를 구할 수 있으며,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선하시 고 온전하신 뜻을 반하고 있으며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최선의 것이 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정직하게 우리 자신과 자신의 동기를 점검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실 것이다.
5. 결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분별은 하나의 기술이다. 책을 읽어서는 배우거나 습득할 수 없고, 오직 경험을 통해서, 직접 분별해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술이다.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우리의 선택에 대해 주도면한 계획을 세우고 일정한 방식을 따르는 식으로 접근할 때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으며, 이 단순한 원리는 적인 분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선택의 가능성들과 장애물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 효과적인 분별은 우리의 환경과 기회, 문제, 장애물, 자원, 능력 등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런 분석을 위해서는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다. 어떤 결정에 대해 각각의 경우의 장단점을 낱낱이 검토하고 평가해 보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적인 능력과 그 밖의 여러 가지 능력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머리로 스스로 사고하는 사람들을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일반적으 로 하나님은 인간의 판단이나 세월의 지혜를 거부하지 않으신다.
효과적인 결정을 위해서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하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거나 예상되는 장애물과 문제들을 고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나 장애물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 우리는 문제나 한계를 정직하게 직시하고 그것이 분별의 관점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받아들 여야 한다. 모든 장애물이나 문제가 우리가 돌이켜 떠나거나 사임하라는 신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많 은 경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장애물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서 그것을 인내하도록 우리를 부 르신다.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 여야 한다. 우리의 삶과 일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은 효과적인 분별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기도와 묵상의 시간
분별의 과정의 두 번째 단계는 기도와 묵상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중 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에는 기도와 묵상을 위해서 적어도 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는 일시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 우리 자신과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 사이에 일정한 거리, 즉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느끼는 압박감으로부터의 일정한 정서적인 거리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또한 다른 이들과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홀로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이 필요 하다. 아래에는 기도와 묵상을 위한 그날에 해야 할 일이 제시되어 있다.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여 정신을 맑게 하고 잘 집중할 수 있게 하라.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우리는 주 님께서 주신 모든 선택 가능한 대안들을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이날의 각 단계의 일부를 떼어서 성경을 묵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 분노와 두려움, 슬픔과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면, 정직하게 인정 하라. 이런 감정적인 부담이 당신의 마음과 정신을 흐리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 앞에 깨끗한 상태로 나아가 알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자신이 행한 잘못을 고백하고 그분 께 용서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감정적인 해소에는 우리에게 잘못을 행한 이들을 용서하는 것도 포 함되어 있다. 우리의 분별의 첫 번째 기초, 즉 우리가 잘 분별하고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전적으로 우리가 자신의 근본적인 헌신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된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라. 당신이 기도하는 중에 얻게 된 인상과 감정, 절망감 등을 기록해 두라. 우리가 만약 하나님과 하나님의 음성을 알기 위한 시간을 기꺼이 내고자 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반드시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이 결정해 주지 않는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결국 우리 자신이 내려야 하는 결정이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정은 우리 혼자서 판단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결정하지는 않는다. 일단 하나님께서 주시 는 것이라 믿고 있는 방향감각이나 인상을 얻게 되면, 그 다음에는 다른 이들이 결정 과정과 결정의 결과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몇몇 친한 친구들의 모임에서 논의하는 것 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형식은 적인 지도자나 멘토, 친구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적인 멘토나 지도자는 우리 대신 분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분별해 준다. 분별의 세 번째 차원은 비록 우리가 여전히 결정에 대해 확신을 내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얻게 된 인상과 우리가 이르게 된 결론에 대해서 다른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는 것이 다.
정리하자면 분별의 과정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1)선택의 가능성들과 그 장애물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 2)기도와 묵상을 위한 충분한 시간, 3)결정에 대한 평가와 다른 이들과의 논의. 좋은 결정을 내 리기를 원한다면, 이 세 단계가 모두 분별의 과정에 들어 있어야 한다.
6. 분별의 사람
분별의 사람은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는 자로 성숙하게 된 사람이다.
기도와 적 감수성 분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통을 나누는 사람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음성 을 듣는 기도란 어떠한 기도를 말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토저가 묘사한 것처럼, 분별하는 사람은 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서적인 자기 이해 분별하는 사람은 자신의 정서적인 자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사람이다. 분별로의 부르심은 자신의 정 서적 상태를 이해하라는 부르심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에 대해 화를 내고, 슬퍼하고, 낙담하고, 두려 워하고, 불확실해 하고, 실망하는지를 이해하라는 부르심이다. 그것은 적 순례의 길 곳곳에서 만나 게 되는 우리 자신의 내적 고독함과 어두움을 직시하라는 부르심이다. 우리의 이상적인 태도는 자신 과 하나님에 대해 솔직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겸손과 자기인식 그 어떤 특징보다도 분별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겸손은 자신의 한계와 자신의 잠재력, 즉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와 우리 자신이 다른 이들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 는 능력이라는 이 두 가지 측면을 기꺼이 인정하는 태도이다. 냉정히 판단함으로써 우리는 그저 자신 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효과적인 분별을 위해서는 이러한 겸손이 필수적이다. 우 리는 오직 자기 인식 속에서만 우리 삶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인식할 수 있다. 자 기 인식에는 정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 용납이 포함된다. 우리는 변명하지 말 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최고의 것을 발견하고 그에 응답하기 위해 먼저 우리 마음속의 바람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 이처럼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근본적인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토저는 이를 가식으로부터의 자유라고 부른다.
자기 인식과 문화 자신에 대한 앎의 또 다른 측면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 문화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인식하 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모습을 형성시킨 가치들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뒷 받침하고 있는 규범들을 반성해 보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읽어내고, 성경의 증거에 비추어 우 리 문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행동과 태도에 대해 반성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사탄의 전략을 간파하라 우리는 사탄의 술책을 기억하고 단호하게 그에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사탄이 우리로 하여금 선하고 완벽하며 최고의 것을 단념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책임의 구조 당신은 당신을 잘 알고 당신이 계속해서 책임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줄 친구들이 필요하다. 효과적 으로 분별하는 사람들은 독립적이거나 자율적이기보다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에서 세워진 권위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당신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보살피라. 그리고 당신 삶 속에서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 이런 친구들에게 의지하라.
다른 이들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들 우리가 다른 이들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자유롭게 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도 좋 은 선택을 할 수 없다. 우리가 다른 이들의 삶에 간섭하기 시작할 때, 외부를 향한 우리의 관심은 우 리를 무력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잘 분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우리자신이 내릴 결정 들에 대한 집중력을 무디게 만들 것이다. 다른 이들의 삶에 참견하는 것 때문에 우리 자신의 삶을 책 임지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완전하고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 서서히 잠식당하게 된다. 다른 이들의 삶을 대신 살아 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순례 여행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일 이다.
우리 삶의 절차와 질서 우리의 매일의 행위에 어떤 질서가 잡혀 있지 않게 되면, 우리는 분별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평화 와 내적 위로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분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일상의 삶 속의 질서, 즉 기도와 봉사, 노동과 여가 사이의 균형 잡힌 리듬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제시한 분별 하는 사람들의 특징들은 성숙하고 현명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묘사한 것과 다름없다. 효과적인 분별을 위한 조건들을 우리 삶 속에서 길러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7. 분별지침서
1) 분별에 관한 관점 그리스도인들, 특히 복음주의자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분별에 관한 첫 번째 관점은 청사진의 관점이 고, 두 번째 관점은 지혜의 관점이다. 청사진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각 개인을 위한 완벽한 계획, 즉 청사진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바라보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다. 첫째, 어떤 결정은 이런 식으로 해야 하고 어떤 결정은 이런 식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둘째, 우리가 우리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것에 의해서 다른 이들은 어떤 향을 받게 되는가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 관 점에 대해서 가장 우려되는 바는 하나님에 대한 맹목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혜의 관점은 실제로 청사진의 관점에 대한 대응으로 생겨났다. 게리 프레즌은 자신의 책 『의사 결 정과 하나님의 뜻(Decision Making and the Will of God)』에서 이 관점을 잘 제시해 주고 있다. 프레즌 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도덕적 의지를 부여해 주셨으며 우리가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삶 의 원리들(지혜)을 내려 주셨다고 주장한다. 나 자신도 여러 가지 점에서 인도하심에 대한 지혜의 관 점에 공감하고 있으며, 이 관점으로부터 우리의 지혜가 자라게 된다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성화된 정 신으로 그 지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프레즌의 책은 지혜의 방식을 긍정한 점에 서 매우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적 유산을 활용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전통적인 것 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훨씬 더 오래된 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2) 양털뭉치와 이적의 사용 현대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적, 즉 양털뭉치를 하나님의 뜻을 확증하고 그분의 뜻인지를 판단하 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드온뿐만 아니라, 오순절의 역사를 따라 살고 있는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이런 접근 방식은 부적절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사귐의 기초 가 되는 것은 이적이 아니라 그분의 내주(內住)하심과 임재이다.
3) 성경의 사용과 오용 성경은 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그분의 백성을 인도하신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하나의 이적의 책으로 삼아서, 결정의 때를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이 될 만한 어떤 구절을 찾고자 한다. 이런 접근 방식은 복술에 가까운 것이며 성경을 마법의 도구로 사용 하려는 태도이다. 성경이 최초에 쓰인 원래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무비판적으로 우리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오용하는 것이다. 성경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알 고 이해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의 믿음과 지혜가 자라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성경은 결코 구체적 인 통찰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런 통찰을 추구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유익하지도 않다.
4) 문이 열렸다 문이 닫혀 있는지 열려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어떤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 속에 고려해야 할 유일한 요소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일차적인 요소일 수 없다. 두 개의 열린 문이 있 을 수도 있다. 닫힌 문을 만날 때에 그 주위를 돌면서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열 린 문을 발견했지만 우리 마음은 어떤 평화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기회나 열린 문은 분명히 우리의 분별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여전히 분별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광이 라는 견지에서 이 기회가 이 시점에서 최고의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인가? 우리는 여전 히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최선의 것은 무엇인가?
5) 한 번에 한걸음씩 적 분별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원리는 우리의 여정 속에 있는 바 로 오늘, 이 시점과 이 장소에서 최고의 것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한 번에 한 걸음씩 인도하신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바로 다음 단계만 바라보면 된다.
6) 지켜야 할 약속들 적 분별은 본질적으로 상황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약속을 하거나 자신의 의도를 표현할 때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대부분의 결정에서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헌신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에 하나님의 목소리에 응답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잠식하는 약속이나 헌신을 남발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7) 다른 이들과의 경쟁 직업에 대한 성경적 관점은 우리가 출세해야 한다는 생각,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담당하실 만큼 크신 분이시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이기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목적을 분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8) 금식의 장소 금식의 목적은 더 잘 분별하는 데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뱃속이 비어 있을 때 우리의 정신은 더 예리해지고, 우리의 마음은 더 민감해지고 더 열리게 되며 그리하여 더 잘 분별할 수 있게 된다. 금식 은 그리스도인의 적인 여정을 심화시키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훈련으로
여기는 것이 가장 좋다. 그것은 분별의 필수 요건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이 자라나고 있는 그리스도인 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수련의 방편이다.
9) 변화에 대한 편견
우리는 인내심을 기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변덕스러움을 거부해야 하고,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주어진 환경으로부터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떠나야 하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면 우리는 그대로 머물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10) 일기 쓰기의 가치 성령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기록된 일기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 주고, 우리의 믿음과 성령과 우리의 사귐을 성숙시키고 자라게 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11) 남편과 아내 일반적인 경우에 있어서 배우자의 동의를 얻었을 때만 행동하라. 부부는 어떤 선택이나 결정에 관하 여 비슷한 수준의 평안함을 느껴야 한다.
12) 분별의 조건부적인 성질 분별에서는 개인의 양심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매우 유사한 환경에 처한 두 사람을 완전히 다른 방 식으로 이끄시기도 한다. 분별은 개인적인 성질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기만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다른 이들은 동일한 상황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조건부적으로, 즉 잠정적인 방식으로 분별하는 것이 좋다.
13) 꿈 나는 로널드 반즈의 관점이 분별에 있어서 꿈이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하는 데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반즈는 꿈을 이해하는 것은 자기인식을 추구하는 데 매우 유용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적 성장과 분별의 보조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14) 권위와 공동체의 결정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의 권위 때문에 분별의 필요성이나 결정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공동체가 양심을 대신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어느 누구도, 그가 우리보다 뛰어난 사 람일지라도, 우리를 대신하여 분별해 줄 수는 없다. 우리는 복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복종 이 우리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참된 성숙이란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 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15) 과거의 결정으로부터 배우기 우리는 과거에 내렸던 결정을 되돌아봄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의 성격과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에 대해 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결정을 돌아봄으로써, 우리는 자신에 대한 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숙련된 분별의 기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16) 잘 만들어진 결정의 틀 결정의 과정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때나 분별을 통해서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때의 문제는 문제를 잘 규정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첫째, 우리는 선한 것과 악한 것 사이에서가 아니라, 선한 것들 사이에서 가장 선한 것을 분별하고자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 째, 그 둘이 동등한 자격의 대안인지 확인해야 한다. 셋째, 진심으로 모든 적절한 대안들에 대해 개방 적이어야 한다. 넷째, 너무 많은 결정들을 동시에 하려고 하면 그런 결정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서 우 리는 혼란에 빠지고 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기본 적인 결정, 즉 우리가 기도하고 분별해야 하는 가장 시급하고 즉각적인 결정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8. 분별의 장애물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은 항상 존재한다.
육체적인 장애물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 데 있어서 질병 이외의 두 가지 육체적인 장애물은 무리한 활동으로 인한 피 로감과 활동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나태함이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지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 을 잘 분별할 수 없다. 우리는 휴식을 취했을 때 더 잘 기도할 수 있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는 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체적으로 느끼는 바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능력에 반드 시 향을 끼친다.
심리적 장애물 골즈버리는 상상력의 부족이 분별에 대한 심리적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때때로 우리가 그 가능성에 대해서 개방되어 있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 다.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 데 있어 또 다른 심리적 장애물은 두려움이다.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결합되어 있으며, 이는 언제나 사람들을 무 력하게 한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가 가장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 되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 별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과정에 강력한 걸림돌이 되는 또 다른 종류의 두려 움이 있다. 그것은 이전의 어렵고 힘들었던 경험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또 다른 장애물은 완벽주의이 다. 사실 완벽주의자의 문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 우리의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인정해야 한다.
심한 스트레스는 신중히 생각하고, 다른 대안들을 고려하며, 있을 수 있는 결과를 검토하면서 평안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손상시킨다. 분노와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언제나 분별에 장애가 된다. 자신의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슬픔도 분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냉소 는 분별을 방해하는 또 다른 감정적 장애물이다. 냉소는 낙심한 마음이 회복되지 못해서 생기는 감정 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깨달아야 한다. 감정 은 우리가 내리는 최종적 결정과 그 결정에 이르는 과정 둘 다에 향을 미친다. 감정적인 동요는 명 확한 판단을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인식하여 그 음성에 담대하게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을 일그 러뜨릴 수 있다.
신학적 장애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을 방해하는 다양한 신학적인 요소들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견해 가 그 한 가지 예이다. 소명에 대한 견해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중요한 향을 미친다. 하나님 의 사랑과 용서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또 다른 신학적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대개 하나님께 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에 관해 잘못 생각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신학적으로 혼란스러워 한다. 때때로 해결을 요하는 당면한 문제가 분별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 는 어떠한 신학적 편견이나 감정적인 버팀목에 기대고 있으며 우리 안에는 이러한 것들을 반하고 있는 기질, 혹은 장애물이 있다. 효과적인 분별을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9. 함께 하는 공동체
공동체 안에서의 분별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기대를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에 그릇된 선택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분별의 과정에서 공동체가 차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해야 한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선물은 선택을 잘 할 수 있는 시 간과 장소, 격려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이를 도울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상황과 관계 속에 정기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다른 이들을 자유케 하라 우리는 선택의 문제에 대해서 서로를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각자가 스스로 하나님께 응답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며, 서로에 대해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거나 자신은 이웃을 향한 하나님 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하나님 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을 때, 그리고 서로에 대한 기대를 하나님의 음성과 동일시하지 않을 때, 우리는 분별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상대방을 향해 어 떠한 제안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 다고 서로에게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제안은 언제나 열린 마음과 상대를 자유롭게 하는 태도 로 이루어져야 한다.
솔직하게 나를 알아가기 하나님에 대해, 서로서로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해질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때에 만 우리는 분별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솔직하지 않은 태도만큼 분별에 장애가 되는 것도 없다. 우 리는 서로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서로를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한다. 또한 솔직한 분위기를 조성하 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 인지, 자신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솔직할 수 있도록 서로를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정직함이 서로에게 아첨하기를 거부할 때 우리는 분별하는 공동 체가 될 수 있다.
서로에게 소망이 되기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잘 분별할 수 없다. 낙심은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우리 앞에 펼쳐진 가능성들을 바라보는 능력을 가로막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격려이다. 우리가 다른 이를 격려하는 한 가지 방식은 진심으로 공감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서로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이야기해 줌으로써 서로를 격려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서로를 축복할 때 이것은 친구나 동료를 격려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정직함과 분별의 공동체를 키워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 공동체에 필요한 솔직함과 개방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이며, 이런 신뢰를 쌓아가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다.
10. 하나님을 기다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두 가지 특성, 즉 지혜로우심과 자유로우심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이 두 가지 속성을 새로이 알게 된다면, 우리는 기도와 분별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는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을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임을 알게 된다.
고통의 실재 그리스도인의 모든 경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의 필요성을 이해할 수 없고 그 고통이 전혀 납득되지 않을 때, 우리가 겪는 역경은 우리의 믿음에 대한 시험이 될 것이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하며 우리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드시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전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런 개념은 당연히 그리스도인들 이 역경과 고통, 심지어는 실패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한다. 편안함에 치우친 생각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전체적인 차원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우 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이러한 신뢰는 효과적인 분별에 있어서 근본적인 요소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역경, 실패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할 때에만 우리는 자유롭게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이성적으 로 따져 보는 것은 분별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그 자체는 분별의 첫 번째 단계일 뿐이며, 결 코 우리의 결정을 좌우하는 요소가 될 수 없다. 이 첫 단계 이후에는 더 어렵고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도 않은 길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라고 하시는 길인지 분별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직면해 있는 상황 속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다고 해서 분별의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분노와 두려움, 실망과 낙심으로부터 자신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평화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평화 속에서 최선이 무엇인지, 이 상황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 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세상을 향한 그분의 선하고 완전하신 뜻을 이루시는 수단으로써 역경을 허락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어려운 시간에조차도 그분의 선하심이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 는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께서는 서두르지 않으신다. 분별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여기시는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히려 서두르는 마음이나 공황에 빠지는 것 때문에 그분의 목소리를 인식하는 능력이 망 가지고 만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때와 그분의 지혜를 신뢰한다면, 자유롭게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분별에 있어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혹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계와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 앙의 본질이며, 이 신앙은 분별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전제조건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용히 하나 님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후기 결정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묘사할 수 있는 하나의 이미지나 단어, 개념과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적 감수성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적 감수성은 변명하지 않으 며, 다른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두려움이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겸허히 인정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 존재의 근원이 되는 깊은 곳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내가 바라는 나 자신의 모습을 그분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그분께 맡겨드 리는 것이다. 나 자신을 그분께 산 제물(롬 12:1)로 바치는 것이다. 또한 적 감수성은 우리가 스스로 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적 감수성은 우리가 그분의 지혜와 선하심에 우리 자신 을 의탁하며 하나님의 때와 그분의 주도권을 인정해 드리는 것을 뜻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