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는 홍수 후에 삼백오십 년을 더 살았는데 이 시간이야말로 자신을 철저히 발견하며 근본된 토지를 가는 참된 인간 경작의 시간이었습니다. 홍수 전에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칭함받을 만큼 흠없고 온전해 보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둘러놓으신 영적인 빛 안에 머물고 있는 상태에서였지요. 아직 근본에 내재된 육의 속성들이 드러나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행함이나 모습은 완전해 보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홍수 후에 빛이 거두어지면서 근본에 내재되어 있던 육의 속성들이 드러나자 노아는 이때부터 마음 깊은 속까지 개간하는 본격적인 인간 경작을 받아나가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노아는 삼백오십 년을 경작받으면서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분량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바로 근본에 내재된 육의 속성까지 다 벗어내는 온전한 성결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그처럼 하나님 앞에 충성했고 홍수 이후에 새로운 인간 경작의 출발점이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영광은 얻지를 못했지요. 결국 3천층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오해해서 안 되는 것은 노아는 비록 성결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온전히 악의 모양을 다 버린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3천층에 갈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3천층은 온전히 성결되어야 간다고 했는데 여기에는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와의 차이점이 있음을 알아야 하지요. 구약 시대는 아직 성령께서 마음 안에 내주(內住)하시던 때가 아니므로 마음에 있는 죄를 행함으로만 나타내지 않으면 그것이 죄라 인정되지 않던 때였습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았던 사람들은 성신의 능력을 힘입어 마음에 할례해 나가므로 근본에 내재된 육의 속성까지도 해결한 경우들이 있지요. 그렇지만 육의 할례를 했던 구약 시대의 사람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마음에 할례를 할 수 있는 신약 시대의 사람에게 성결의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비록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성결의 분량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3천층의 영광이 주어지게 된 것이지요.
노아는 그의 생을 마감하는 순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많은 후회를 남기게 됩니다. 아들 함을 저주했던 자신의 모습도 후회되었을 것이고 홍수 이후 육의 질서상 가장 머리라는 위치로 인해 자신의 부족된 모습을 더 온전히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지난 날들이 후회되었지요. 여기서 우리는 머리되면 될수록 더욱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깨어 부지런해야함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아부하며 듣기에 좋은 말만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듣기에 싫은 말이라 할지라도 진실을 말할 수 있고 내 영혼에 유익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을 가까이 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말을 할 때는 항상 선으로 해야겠지만 진정 선한 말이란 단지 듣기에만 좋은 말이 아니라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를 발견하여 변화될 수 있도록 깨닫게 해주는 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한 말이야말로 잠 16:24에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말씀한 것처럼 듣는 사람의 마음에도 달뿐만 아니라 그 영혼에 양약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당시 육의 질서상 가장 머리에 있던 노아는 이처럼 뼈에 양약이 되는 선한 말을 해줄 사람이 없었고 또 설령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해도 자신의 교만 속에서 그 말을 받지 못했기에 결국 생(生)을 마치는 순간 이처럼 후회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후회한다해도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도 정녕히 새예루살렘을 소망하신다면 지금 주어진 이 시간을 결코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고 새예루살렘을 향해 힘차게 전진해 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은혜의 시대요, 성령 시대인 지금은 마음 안에 있는 악은 그 모양이라도 다 버려야 3천층 이상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드렸고 충성하는 삶을 살았다해도 그 마음 안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의 모양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새예루살렘은 물론이고 3천층에도 들어갈 수가 없지요. 이러한 사실을 명심하셔서 여러분의 마음에 '나도 온전한 성결을 이루겠노라' 다시 한 번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