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이리 떼다, 이리 떼! 이리 떼가 몰려온다!
파수꾼 가의 손이 번쩍 들려진다. ㉠이리 떼가 나타난 방향을 가리킨다. 망루 아래 파수꾼들은 양철북을 두드린다. 외침과 북소리 계속. 불안이 점점 고조된다. 해설자는 달아난다. 노인 파수꾼 나의 북 치는 모습은 늠름하다. 소년 파수꾼 다는 두려움에 질려서 헛치기만 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납작 엎드려 버린다.
가: 북소리 중지! 이리 떼는 물러갔다.
다: (아직도 겁에 질려서) 이리 떼라구요?
나: 걱정 마라. 이젠 물러갔단다.
다: ㉡저는 아무 것두 보지 못했는데요?
나: 너는 낮은 곳에 있다. 그러니까 보지 못하는 거야. 하지만 저 망루 위에 파수꾼은 아주 높은 곳엘 있지 않니? 그는 멀리까지 바라본다. 너하곤 위치가 다르다는 걸 알아야지.
가: 이리 떼다, 이리 떼! 이리 떼가 몰려온다!
소년 파수꾼 다는 당황해서 다시 엎드리고, 파수꾼 나는 양철북을 두 드린다.
<중략>
해설자, 촌장이 되어 등장. 검은 옷차림. 이해심이 많아 보이는 얼굴과 정중한 태도.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촌장: 수고하시는군요, 파수꾼님.
나: 아, 촌장님, 여긴 웬일이십니까?
촌장: 추억을 더듬으러 왔습니다. 이 황야는 내가 어린 시절 야생 딸기를 따러 오곤 했던 곳이지요. 그땐 이리가 무섭지도 않았나 봐요. 여기저기 덫이 깔려 있고 망루 위의 파수꾼이 외치는데도 어린 난 딸기 따기에만 열중했었으니까요. 그 즐거웠던 옛 추억, 오늘 아침 나는 그 추억을 상기시켜 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래 이곳엘 찾아온 거예요.
나: 잘 오셨습니다, 촌장님.
촌장: 오래 뵙지 못했더니 그동안 흰머리가 더 많아지셨군요.
나: 촌장님두요, 더 늙으셨어요.
촌장: 오다 보니까 저쪽 덫에 이리가 치여 있습디다.
나: 이리요? 어느 쪽이죠?
촌장: ㉢저쪽요, 저쪽. 찔레 넝쿨 밑이던가요…….
나: 드디어 잡는군요!
파수꾼 나 퇴장. 촌장은 편지를 꺼내 다에게 보인다.
촌장: 이것, 네가 보낸 거니?
다: 네, 촌장님.
촌장: 나를 이곳에 오도록 해서 고맙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건, 이 편지를 가져온 운반인이 도중에서 읽어 본 모양이더라. ‘이리 떼는 없구, 흰 구름뿐.’ 그 수다쟁이가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있단다. 조금 후엔 모두들 이곳으로 몰려올 거야. 물론 네 탓은 아니다. 넌 나 혼자만을 와 달라구 하지 않았니? 몰려오는 사람들은, 말하자면 불청객이지. 더구나 어떤 사람은 도끼까지 들고 온다더라.
다: 도끼는 왜 들고 와요?
촌장: 망루를 부순다구 그런단다. ‘이리 떼는 없구, 흰 구름뿐.’ 이것이 구호처럼 외쳐지구 있어. 그 성난 사람들만 오지 않는다면 난 너하구 딸기라도 따러 가고 싶다. 난 어디에 딸기가 많은지 알고 있거든. 이리 떼를 주의하라는 팻말 밑엔 으레히 잘 익은 딸기가 가득하단다.
다: 촌장님은 이리가 무섭지 않으세요?
촌장: 없는 걸 왜 무서워하겠니?
다: 촌장님도 아시는군요?
촌장: 난 알고 있지.
다: ㉣아셨으면서 왜 숨기셨죠? 모든 사람들에게, 저 덫을 보러 간 파수꾼에게, 왜 말하지 않는 거예요?
촌장: 말해 주지 않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다: 거짓말 마세요, 촌장님! 일생을 이 쓸쓸한 곳에서 보내는 것이 더 좋아요? 사람들도 그렇죠! ‘이리 떼가 몰려온다.’ 이 헛된 두려움에 시달리는데 그게 더 좋아요?
촌장: 얘야, 이리 떼는 처음부터 없었다. 없는 걸 좀 두려워한다는 것이 뭐가 그렇게 나쁘다는 거냐?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이리에게 물리지 않았단다. 마을은 늘 안전했어. 그리고 사람들은 이리 떼에 대항하기 위해서 단결했다. 그들은 질서를 만든 거야. 질서, 그게 뭔지 넌 알기나 하니? 모를 거야, 너는. 그건 마을을 지켜 주는 거란다. 물론 저 충직한 파수꾼에겐 미안해. 수천 개의 쓸모없는 덫들을 보살피고 양철북을 요란하게 두들겼다. 허나 말이다, 그의 일생이 그저 헛되다고만 할 순 없어.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고귀하게 희생한 거야. 난 네가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만약 네가 새벽에 보았다는 구름만을 고집한다면, 이런 것들은 모두 허사가 된다. 저 파수꾼은 늙도록 헛북이나 친 것이 되구, 마을의 질서 는 무너져 버린다. 얘야, 넌 이렇게 모든 걸 헛되게 하고 싶진 않겠지?
다: 왜 제가 헛된 짓을 해요? 제가 본 흰 구름은 아름답고 평화로웠어요. 저는 그걸 보여 주려는 겁니다. 이제 곧 마을 사람들이 온다죠? 잘됐어요. 저는 망루 위에 올라가서 외치겠어요.
촌장: 뭐라구?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킨 후에 웃으며) 사실 우습기도 해. 이리 떼? 그게 뭐냐? 있지도 않는 그걸 이 황야에 가득 길러 놓구, 마을엔 가시 울타리를 둘렀다. 망루도 세웠구, 양철북도 두들기구, 마을 사람들은 무서워서 떨기도 한다. 아하, 언제부터 내가 이런 거짓 놀이에 익숙해졌는지 모른다만, 나도 알고는 있지. 이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다는 걸 말이다.
- 이강백, 「파수꾼」 -
44 ㉠~㉤에 대한 연출자의 지시로 적절한 것은?
① ㉠: 파수꾼 ‘가’가 가리킨 지점에서 관객들이 이리 떼를 볼 수 있도록 소품을 준비해 주세요.
② ㉡: 이리 떼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모습으로 상대 배우에게 질문해 주세요.
③ ㉢: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음흉스러운 태도로 연기해 주세요.
④ ㉣: 촌장이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것이 드러나도록 말하세요.
⑤ ㉤: 망루에 올라가서 진실을 외치겠다는 파수꾼 ‘다’의 반응을 예상한 듯한 표정을 지어 주세요.
45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이 작품에서 핵심 공간은 ⓐ망루, ⓑ황야 그리고 ⓒ마을이다. 물리적으로 본다면 이 공간들은 무대 안과 밖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공간들은 ‘이리 떼’라는 정보의 전달로 연결되기도 하고 때로는 분할되기도 하며, 이로 인해 다양한 사건이 발생한다.
① ⓒ에 있는 사람들은 ⓐ에서 전달되는 정보로 인해 ⓑ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군.
② 무대 안의 ⓐ에 의해 무대 밖의 ⓑ에 대한 정보가 무대 밖의 ⓒ의 사람들에게 전달된다고 볼 수 있군.
③ 촌장은 ⓑ에 대한 진실된 정보가 ⓒ의 사람들에게 전달되면 ⓐ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다고 볼 수 있군.
④ ⓐ를 통해 촌장은 ⓒ의 사람들에게 ⓑ에 대한 거짓 정보를 조장하나 파수꾼 ‘다’는 진실된 정보를 알리려 한다고 볼 수 있군.
⑤ ⓐ는 ⓑ에 대한 정보가 위와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유되어 있다는 점에서 ⓑ와 연결되어 있으나 ⓒ의 사람들에게는 차단되어 있다는 점에서 ⓒ와는 분할되어 있다고 할 수 있군.
44 ③ 45 ⑤
극 [44 ~45 ]이강백, 「파수꾼」
해제
이 작품은 우화를 빌려 진실이 왜곡된 사회 현실을 풍자하는 단막으로 된 희곡이다. 이 작품은 철책 너머에는 흰 구름만 있을 뿐 이리 떼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리 떼가 왔다고 외쳐야만 평화로울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담고 있다. 작가는 권력자인 ‘촌장’과 그를 돕는 ‘파수꾼’들이 조장한 ‘이리 떼’라는 공포의 존재, 진실을 알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떠는 어리석은 ‘마을 사람들’, 진실을 알게 되지만 결국 촌장에게 설득당하는 파수꾼 ‘다’를 통해 당대 현실을 우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제 진실이 왜곡된 사회 모습에 대한 비판
황야에 세워져 있는 망루 아래에서 파수꾼 ‘다’는 이리 떼의 습격을 감시한다. 파수꾼이 양철북을 두드리면 마을 사람들은 습격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어느 날 파수꾼 ‘다’는 다른 파수꾼이 잠을 자는 사이 망루에 올라가게 되고, 그곳에서 이리 떼는 없고 흰 구름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파수꾼 ‘다’는 그 사실을 편지에 써서 촌장에게 알린다. 망루까지 파수꾼 ‘다’를 찾아온 촌장은 이리 떼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리 떼로 인해 마을에 질서가 유지되고 있으므로 진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파수꾼 ‘다’를 설득한다. 결국 파수꾼 ‘다’는 촌장의 설득에 넘어가 파수꾼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44 _ 갈래별 특징, 성격 답 ③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③ 음흉스러운 태도
㉢은 촌장이 덫에 이리가 치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파수꾼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음흉스러운 태도로 연기해 달라는 연출자의 지시는 적절하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이리 떼를 볼 수 있도록 소품을 준비
파수꾼 ‘가’는 이리 떼가 나타난 지점을 가리키지만 사실 이리 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리 떼를 나타내는 소품을 준비하라는 지시는 적절하지 않다.
② 안도하는 모습
파수꾼 ‘다’는 이리 떼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겁을 먹지만 이리 떼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리 떼가 사라졌다는 말에 의아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리 떼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모습으로 질문하라는 지시는 적절하지 않다.
④ 절망하는 것
㉣에서 파수꾼 ‘다’는 촌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왜 진실을 알리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지만, 촌장이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지는 않다.
⑤ 예상한 듯한 표정
파수꾼 ‘다’가 망루 위에 올라가서 진실을 외치는 행동은 촌장이 원하고 예상했던 행동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상한 듯한 표정을 지어 달라는 연출자의 지시는 적절하지 않다.
45 _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답 ⑤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⑤ 정보의 공유, 차단
황야에 대한 진실된 정보를 망루 위에 있는 파수꾼은 알 수 있지만, 망루 아래에 있는 파수꾼은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황야에 대한 정보가 위와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유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황야에 대한 정보가 망루의 위와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유되어 있다는 점에서 망루가 황야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상은 적절하지 않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두려움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망루에서 전달되는 ‘이리 떼가 몰려온다!’는 정보로 인해 황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② 무대 안과 밖
망루, 황야, 마을 모두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공간이지만, 망루는 무대 안의 공간이고, 황야와 마을은 무대 밖의 공간이다.
망루를 통해 ‘이리 떼가 몰려온다!’는 황야의 정보가 마을의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③ 진실된 정보
촌장은 이리 떼가 없다는 황야에 대한 진실된 정보가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망루는 마을 사람들이 들고 온 도끼에 의해 부수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④ 촌장과 파수꾼 ‘다’
촌장은 망루를 통해 이리 떼가 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황야에 대한 거짓 정보를 조장한다. 하지만 파수꾼 ‘다’는 이리 떼는 없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흰 구름만 있는 황야의 진실된 정보를 망루를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