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신문 > 제 1369호 세상을 보는 창. 말(言)이 끌고 가는 인생. 잠18:20-21
젊은이!
말(馬)이 끄는 수레를 본 적이 있나? 말이 제멋대로 가는 듯 보이지? 그러나 그렇지 않네. 말은 주인이 고삐를 어느 쪽으로 당기느냐에 따라 방향을 정하고 속도를 정하지. 곧 고삐에 따라 목적지가 달라진다는 거야.
우리 인생도 똑같다네. 말이 인생을 끌고 간다는 거야. 다만 수레를 끄는 말(馬)이 아니라 우리 말(言)이라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종착역, 도착지가 달라진다네. 그런데 그 말은 고삐를 쥐고 있는 자의 생각으로부터 나오지.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살아가거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다윗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사도 바울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 요셉
“죽으면 죽으리이다” - 에스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예수님
그리고 “세계는 내 교구다!”라고 외쳤던 이초석 목사의 말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향해 삶을 이끌어 간 믿음의 고백이었네. 이들의 말은 단순한 긍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선언이었고, 그 선언이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목적지로 이끌었네.
말이 끄는 수레라고 하니까 너무 옛날이야기 같나? 그렇다면 자동차로 비유해 봄세. 자동차는 운전자에 의해 움직인다네. 아무리 수천 마력의 엔진을 가진 최고급 자동차라도 운전자가 핸들을 꺾는 방향으로 갈 뿐이야. 목포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면서 부산에 도착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지.
인생도 마찬가지라네. 우리 생각은 운전대고, 말은 액셀이야. 생각이 방향을 정하면 말은 그 방향으로 인생을 가속한다네. 그래서 늘 실패를 말하는 사람은 실패를 향해 속도를 내고, 늘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은 가능성을 향해 달려가는 거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는 메뚜기 같다”, “우리는 죽는다”고 말했다네. 자꾸 그쪽으로 핸들을 꺾으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반대로 핸들을 꺾으려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며 애를 썼네. 그러나 다수가 그쪽으로 핸들을 꺾으니 그걸 누가 막겠나. 계속 그 방향으로 달린 거지. 결국 그 말이 현실이 되어 다 광야에서 고꾸라져 죽었네. 반대로 꺾은 여호수아와 갈렙만 살고.
젊은이! 일부러 떨어질 벼랑으로 수레를 몰 게 뭔가? 일부러 절망의 나락으로 자동차를 몰 게 뭔가? 인생은 일생(一生)인데 한 번 멋지게 살다 가야 하지 않겠나?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내가 몰고 가는 수레요, 자동차인데, 내 생각대로, 내 말대로 된다는데 그걸 못한다면 말이 되겠나?
부디 불평보다 감사의 말을, 두려움보다 믿음의 말을, 포기보다 도전의 말을, 저주보다 축복의 말을 선택하게. 세상은 운명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자네 믿음의 말을 통해 역사하신다네. 자네 생각을 바꾸면 말이 바뀌고, 말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네.
오늘도 핸들을 잘 붙잡게나. 괜히 잘못 생각해서 이상한 데로 가지 말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나는 할 수 있다”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젊은이! 말(言)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자네 인생을 끄는 말(馬)이라네. 생사화복이 자네 말에 달려 있으니 오늘도 믿음의 말을 붙들게. 그 말을 타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최고의 목적지까지 힘차게 달려보게나!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0~21).
2026. 7. 붕우 이초석 목사
♣ 은혜로운 찬양 목록
https://m.cafe.daum.net/ssj0643/fOBb/125?svc=cafe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