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산타야나 미론 요약
핵심 한 줄
아름다움 = ‘객관화된 쾌’ 내가 느낀 즐거움(쾌)이 마음 속 처리 과정을 거쳐 대상의 성질처럼 보이도록 투사된 것. (예: 아름다운 꽃을 볼 때, 즐거움이 꽃 자체의 속성처럼 느껴짐.)
왜 산타야나인가
자연주의(과학·심리) + 주관 관념론(의식·연상)을 정교하게 절충해, 실제 우리가 아름다움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
그의 미학은 미술뿐 아니라 스포츠, 음악, 사진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 가능.
철학적 배경(두 시기)
1. 초기: 『미감(1896)』, 『이성의 삶(1905-06)』
인간의 미경험을 기술적 심리학으로 분석(자연주의 성향 강함).
2. 후기: 『회의론과 동물적 신념(1923)』, 『존재의 여러 영역(1927–40)』
더 엄밀한 존재론적 구분을 도입(플라톤적 색채). ➡️ 그러나 초기/후기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 자연주의적 토대 위에 체계 보강.
미의 본성: ‘객관화된 쾌’
미는 가치이며 본질적으로 쾌(즐거움) 이다. 이 쾌는 정신 작용을 거쳐 사물의 성질처럼 보이게 된다 → 객관화.
지적·도덕 판단과 구별: 미적 판단: 즉각적·긍정적·향유 지향. 도덕 판단: 주로 부정(악의 회피)과 효용 고려.
무관심성/보편성 비판: 미적 쾌는 이해관심과 분리되지 않으며, 각자 다르게 느낀다(배제성).
다만 미를 추구한다는 경향 자체는 보편적(비개인성).
‘객관화된 쾌’를 만드는 3요소
1) 재료 (materials) - 미의 근본 토대. 인간 신체·심리 기능에서 유래. 생동적 기능: 활력, 상상력, 기억 등 (예: 상쾌한 아침 공기에서 느끼는 쾌). 성적 본능: 사랑 열정으로 모든 사물에 관심 확산. 감각: 시각(탁월), 청각(다양성), 후각·미각(한정적). 자연주의적: 신체 기능이 미적 쾌의 기반.
2) 형식 (form) — 재료의 배열·통일. 미적 경험의 가장 중요한 요소. '다양성의 통일': 감각 요소들의 종합 (마음의 활동). 특징: 대칭(균형 쾌), 곡선(편안함). 생리학적 (눈 근육 등). 문제점 피하기: 불명료(모호함, 인상주의 비판)나 과도 명료(지루함) 피하고 조화 추구. 관념론적: 마음이 재료를 통합해 미 창출.
3) 표현 (expression) — 간접적. 주관 경험(연상)이 대상에 재투사됨. 과정: 과거 심상(예: 구름 → 부드러움 연상)이 현재 대상에 덧입혀짐. 구분: 표현성(잠재력) vs. 표현(실제 미적 가치). 두 사항 조화: 표현하는 것(현재 대상) + 표현된 것(연상 심상). 관념론적: 주관-객체 상호작용 강조.
의의와 함축
자연주의 × 관념론의 생산적 결합: 미경험을 심리학적으로 치밀하게 기술하면서도, 형식·표현 같은 정신적 차원을 중시.
현대 예술·스포츠·음악·사진 등에서 실제 감상 행위의 구조(재료–형식–표현)와 관람의 이유를 설명하는 틀 제공.
미적 경험은 도덕·행위의 삶과도 연결(이상 추구, 삶의 통일성).
초간단 정리 카드
미 = 객관화된 쾌 직접 기여: 재료(감각·정동) + 형식(다양성의 통일) 간접 기여: 표현(연상·재투사) 좋은 형식 = 명료성 ✕ 여백의 균형, 리듬·대칭·곡선 포인트: 느낀 쾌가 대상의 성질처럼 보이게 만드는 마음의 일이 곧 미경험.
한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는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가 남긴 가장 우아하고 깊이 있는 사유의 기록이다. 이 책은 미라는 개념을 단지 예술 작품이나 심미적 판단의 영역으로만 한정짓지 않고, 그것이 인간의 정신 전체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하였다. 산타야나는 아름다움을 “즐거운 감각 경험에 의미가 덧입혀진 것”이라 정의하며, 미의 문제를 철학과 심리학, 예술 이론의 관점에서 동시에 조망하였다.
시 창작에 바로 쓰는 체크리스트
재료: 감각을 선명하게(시각·청각 중심, 촉발점은 정동). 형식: 이미지들을 질서 있게 묶되 해석 여지를 남겨라. 표현: 개인사의 연상 네트워크를 의식적으로 호출해 대상 위에 재투사하라.
한 줄 목표: “독자가 느낀 쾌를 대상의 성질로 착각하게 만들 것.” ---------------------- 산타야나의 미론연구-이은정 미학 산타야나(G. Santayana)의 美論 연구* -『美感』에 나타난 '객관화된 快'를 중심으로 -
이 은 정
[한글 요약]
美에 관한 논의를 필자가 특히 산타야나라는 사상가를 통해서 고찰해 보고자 하는 이유는 '자연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주관 관념론적'인, 즉 절충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지니는 산타야나 특유의 치밀한 기술적 심리학의 논의 방식이, 실제로 美를 경험하는 우리의 의식을 세밀하고 설득력있게 설명해낸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美論이 현재까지 순수 학문의 영역을 넘어서서 스포츠의 각종 종목들 및 음악 감상과 사진 작품활동 등을 미적인 의미에서 이해하고자 시도하려는 학자들에 의해서조차 적절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 즉 미적인 영역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다양한 분야의 시도에 그 입구를 허용한다는 것은 현재의 시점에서 그의 미학 이론을 재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선행 작업으로, '객관화된 쾌'로서의 美의 본성을 논의하는 산타야나의 美論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본고에서는 美의 경험은 쾌이며 긍정적이며 고유한 가치로서, 이 쾌는 다른 감각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에 의해서 사물의 성질로 변형될 수 있으므로 '객관화된 것'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산타야나는 '객관화된 쾌'로서의 美의 의미와 성질에서 더 나아가 '객관화된 쾌'를 산출하는 인간의 심리적이며 생리적인 세 요소들, 즉 재료, 형식, 표현을 구분한다. 우선, 우리는 '재료'에서 생동적 기능이나 정서, 시각, 청각 등의 감각을 통해 대상을 직접 바라봄으로써 美를 느끼게 되며, '형식'에서 우리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이러한 재료를 배열하거나 통합함으로써 또한 美를 느끼게 된다. 따라서 '재료'와 '형식'은 美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그러나 '표현'은 우리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대상과 접촉함으로써 다시 그 대상에 재투사된 것, 즉 주관이 다시 객관에 재투사된 것을 의미하므로 재료나 형식과 구분되며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논의들을 더욱 세밀하게 살펴봄으로써 앞서 언급한 다양한 분야들 속에 적합하고 설득력있게 적용시키는 시도는 앞으로의 남겨진 과제들로서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러한 다양한 분야에서 특히 산타야나의 美論을 선택할 경우, 우리가 흔히 실제로 '관람'하는 방법이나 이유를 깨닫지 않고 언제나 감상했던 각 분야의 민감하고 상상적인 특성들 중의 많은 것들에 관한 美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들의 많은 부분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진정한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각 분야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주제분야 : 美學
주 제 어 : 객관화된 쾌, 미감, 재료, 형식, 표현
1. 머리말
몰턴 화이트 (Morton White)가 언급했듯이 한 시대의 철학자가 끼친 영향력은 그의 사상이 갖는 철학적 가치와 구별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즉 그 영향력은 그의 사상이 갖는 독창성이나 그의 통찰력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죠지 산타야나 (George Santayana, 1863 - 1952)가 거의 60년에 가까운 그의 문필 활동기간 동안 서양, 특히 영미 세계에 끼친 영향력 자체는 그의 고유한 독창성 및 그 통찰력과 견주어 볼 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산타야나 사상의 연구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산타야나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그를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미학자, 심리학자, 문예 평론가, 시인으로서의 그 영향력을 평가하여 성급히 자리매김하기 보다는, 그의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저작들을 이해함으로써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의 哲學史家 타운센드 (L. Townsend)는 산타야나 특유의 세밀하고 설득력있는 치밀한 서술 방식, 優雅하고도 아름다운 문체, 그리고 노출적이면서도 미묘한 여운을 지닌 意味야말로 그의 독자들을 열광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산타야나는 미국철학 내에서 그의 후기 저서들에서보다 초기 저작들을 통해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이러한 초기 저작들이 산타야나의 전 사상에서 훨씬 더 중요하게 다루어 진다. 그리고 그의 후기 저작들도 본질적 가치에 대한 훌륭한 철학적 체계의 力作들로서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산타야나의 가장 심오한 통찰들 중 몇몇은 예술, 문학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미학 이론들을 다룬 비교적 초기 저작들인『美感 The Sense of Beauty (1896)』과『理性의 生活 Life of Reason (1905-1906)』의 제 4권인 {藝術 속에서의 理性}은 미학사에서 영구한 걸작으로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산타야나의 미학은 이와 같이 美와 藝術에 관한 주요한 저서들이 출간되었던 그의 철학 사상의 초기에 잘 나타나 있으며, 특히 산타야나는 그의 대표적인 초기 저서인 {美感}에서 완결된 미학 이론을 추구하고자 시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종래의 미학에서 취해온 것과 같은 단순한 보편적인 美의 이론이 아니라 미의 감각이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며, 또한 우리에게 직접 경험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시도했다. 실제로『美感』은 미학사에서 인간의 미의식과 미적 경험에 대한 심리학적 기원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하나의 결실로서 인정받고 있다.
산타야나는 이러한 비교적 초기 저서들을 통해서, 당시 팽배했던 헤겔주의 사상과 형이상학적 경향에 대비되는 탁월한 견해들을 제시했다. 즉 그는『美感』에서, 당시의 학계에서 헤겔주의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미적 현상에 대해 매우 신선하고 놀랄만한 시도인 심리학적 설명들을 시도했다. 뿐만 아니라『美感』에 뒤이은『理性의 生活』은 19세기 역사의 찬미에 대한 반동으로, 또한 20세기의 논리적 경향과 아주 대조적으로 도덕 철학을 그 중심적 위치에 놓았다. 구체적으로 산타야나는 그와 동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자들인 무어(G. E. Moore)와 크로체(B. Croce)의 입장과 비교된다. 즉 무어는 영국 철학을 분석 철학의 방향으로 이끌기는 하였으나 근본적으로 형이상학에 반대하지 않았고, 크로체는 철학과 역사를 동일시하는 또 다른 하나의 극단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산타야나는 무어와 달리 자신의 철학을 '형이상학'이라고 칭하기 보다 '자연주의 naturalism'나 '유물론 materialism'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역사란 크로체의 경우처럼 철학의 본질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헤겔주의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에 산타야나는 헤겔(G. W. F. Hegel) 과는 달리 인간 이념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을 기술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서구 문명을 도덕적으로 논평하였다.
요컨대, 산타야나의 주된 목표는 형이상학이 아니었다. 고대 유물론자들 -예컨대 에피쿠로스-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은 주로 인생의 중심적 사항들에 대한 의혹을 제거함으로써 강압적인 존재론적 구속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수단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산타야나는 무엇보다도 도덕주의자이다. 그러나 규율을 제정하는 도덕주의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도덕주의자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삶에 성질과 특성을 부여하는 전체성을 스스로 만들어서 모든 단계에 걸쳐서 이러한 이해 관계를 조화시키는 법을 습득해야 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어떤 주도적이거나 중심적인 善을 실현하게 된다. 이와 같이 행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이성의 삶'이다. 이러한 전체적인 틀 속에 미적인 것의 역할을 포함한 것이 산타야나의 『예술 속에서의 이성』에 나타난 예술 철학의 주된 입장이다. 산타야나는 처음에는 미적인 것을 그렇게 광범위하게 살펴보지 않았다. 즉 그는 우선 『美感』에서 일차적으로 미경험 및 그것의 조건들에 대한 심리학적 탐구로서의 미학 이론으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특히 산타야나는 우리가 '美를 느끼는 것'은 우리가 '美를 어떻게 느끼게 되는가'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며, 이러한 美의 경험은 곧 '객관화된 쾌'의 경험임을 강조한다. 실제로 많은 미학자들은 『美感』에 기술된 미적인 것에 관한 이론적 논의들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거론하였으며, 그리하여 산타야나는 미학사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겨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우리의 미의식과 미적 경험을 심리학적으로 매우 체계적이며 탁월하게 설명하여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당시의 학계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례적인 내용과 방식으로 기술된 산타야나의 최초의 미학 저서인『美感』의 분석을 통해 그의 美論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美에 관한 논의를 필자가 특히 산타야나라는 사상가를 통해서 고찰해보고자 하는 이유는 '자연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주관 관념론적'인 경향을 강하게 지니는 산타야나 특유의 치밀한 '기술적 심리학'의 논의방식이, 실제로 美를 경험하는 인간의 의식을 세밀하고 설득력있게 설명해낸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美論이 현재까지 순수 학문의 영역을 넘어서서 스포츠의 각종 종목들 및 음악 감상과 사진 작품활동 등을 미적인 의미에서 이해하고자 시도하려는 학자들에 의해서조차 적절하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산타야나의 美論이 미적인 영역으로 진입하고자하는 다양한 분야의 시도에 그 입구를 허용한다는 점이야말로 현재의 시점에서 그의 미학 이론을 재평가할 수 있는 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본 고에서는 이러한 '기술적 심리학'으로서의 사유에 입각한 산타야나 美論의 형성 배경과 그 특징, 그리고 美의 본성으로서의 '객관화된 괘'의 의미를 살펴보고, 이러한 '객관화된 쾌'가 인간의 심리적이며 생리적인 요소들 -재료, 형식, 표현-을 통해서 산출될 수 있음을 규명할 것이다. 나아가 그의 미학 이론이 현대의 예술 이론에 대해 가지는 함축을 통해서 그의 초기 미학 사상의 특성과 의의를 조명할 것이다.
2. 美論의 형성과 그 특징
산타야나의 철학적 진행은 자연스럽게 주요한 두 시기로 나누어질 수 있다. 이 두 시기 중 그의 美論은 주로 초기에 표명되었던 철학 사상에서 잘 나타난다. 우선 첫 번째 시기는, 『美感』과 『理性의 生活』이 출간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주된 특징은, 자연주의적 경향을 잘 나타내는 '기술적 심리학 descriptive psychology'의 방법을 토대로하여 인간의 정신 기능을 더욱 고양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 시기에 산타야나는 인간의 정신 현상에 대한 이해가 생물학적 진화의 원리에 대한 광범위한 진리와 관련되어 있다고 가정했다. 이 초기의 저서들은 미국 내에서, 특히 '자연주의'로 잘 알려진 철학적 동향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이 시기에 모든 지식을 '표상적 representational인 것'으로 파악하면서 우리의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을 묻지 않았으며, 외부세계의 현존에 대한 문제는 철학적 논증에 의해 증명되고 되지 않고 할 여지가 없는 '자연적 사실'로 간주하였다. 나아가 그의 유물론적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이 인간의 신체로부터 유래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마음은 그것의 생물학적 맥락 속에서 견고하게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산타야나는 마음이 지니고 있는 단순한 생물학적 근원을 문제삼지 않았다. 즉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신체로부터 유래하지만 만약 마음이 이러한 맥락으로부터 독립된다면, 그것은 마음이 가지는 어떤 특수한 존재론적 상태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음의 본래적인 배경과 기능들에 미적 의미와 이상을 부여하기 위한 마음 자체의 능력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또한 산타야나가 취하고 있는 자연주의적 경향은 현대 철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논의의 맥락 속에서도 고찰해 볼 수 있다. 즉 현대 철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존재론적, 방법론적, 그리고 인식론적 측면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자연주의'의 기본 입장은 산타야나의 철학 사상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이러한 자연주의는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과학적 방법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철학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 시기는 산타야나가 『회의론과 동물적 신념 Scepticism and Animal Faith (1923)』과 『존재의 여러 영역 Realms of Being (1927 - 1940)』을 출간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산타야나는 첫번째 시기에서 표명한 입장들보다 더 뛰어난 체계적인 엄밀성이 요청된다고 느꼈으며, 그의 철학이 기초로 하는 근본적인 특징들을 순화하고, 비심리학적 nonpsychological인 방식으로 상술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두번째 시기에서는 정신활동 대상으로서의 존재의 서로 다른 유형들 사이의 존재론적, 즉 비심리학적인 구별에 대한 방식으로 논의들을 전개해 나간다. 예를 들어 상상력은 이제 명료한 존재론적 상태를 지니는 본질이나 추상적 특성과 관련된 것으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산타야나에게서 본질은 일상적인 인간의 활동 세계와는 동떨어지고 대립된, 그들 고유의 초자연적인 영역 내부에 존재하는 '영원한 대상물 eternal objects'로서 설명된다.
몇몇 주석자들은 이러한 산타야나의 전반적인 철학적 흐름 속에 나타난, 즉 그의 초기 입장이 '자연주의'로 기술되는 것으로부터 그의 후기의 입장이 '플라톤주의 Platonism'로 묘사되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로 인해서 그의 전체 철학적 체계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타야나는 자신의 후기 입장에서 제시된 체계는 초기의 입장에서 윤곽을 나타낸 자연주의적 세계관의 궁극적인 철학적 토대로서 이해되기 위한 것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의 미학 이론에서 초기와 후기의 입장에 대한 통일성이 다소 복잡하게 얽혀있음은 인정하나, 두 가지의 다른 체계로 형성되었다는 극단성은 전혀 없으며 기본입장 또한 변화된 방식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후기에서는 초기 저작들의 인식론적 가정들을 더욱 세밀하고 명백히 구성했음을 강조했다. 또한 이 점과 관련해서 그는 "나는 오랫동안 나의 본성의 여러 측면들을 차례로 표현해 왔으며, 나의 本有的 innate 철학의 독특한 여러 부분들을 전개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고 언급한다. 그는 특히 현상과 본질을 절대적으로 구별하는 이원론적 입장을 거부함으로써 그의 사상에서의 일관성이 유지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여러 철학자들은 산타야나의 견해에 동조한다. 실제로 산타야나 철학의 여러 구체적인 논점들에서, 드러난 표현과 실제로 그가 지니고 있는 견해의 차이가 때때로 발생하지만, 그의 저작들이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사상적 체계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극단적이며 정당하지 않다.
산타야나의 전체 철학 체계에서 볼 때 비교적 초기 사상에 해당되며, 그의 최초의 미학 저서인 『美感』에서 그는 보다 더 완전한 미적인 것에 관한 이론을 진술하고자 시도했으며, 실제로 이 책은 미의식의 심리학적 기원과 미적 경험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산타야나가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美의 감각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한다는 점이다. 그는 美의 감각의 중요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우리는 인간의 감각 그 자체와 우리의 미의식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기를 찾아야 한다. ... 美를 '느끼는 것'은 우리가 美를 어떻게 느끼는가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상상력과 취미를 가지는 것, 최선의 것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자연의 관조를 통해 理想 속에서 생생한 신념으로 수행되는 것 등은 우리가 과학에 희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다.
『美感』에 나타난 산타야나의 美論은 미적 판단들이 '마음의 현상들, 그리고 정신의 전개 evolution의 산물'로서 간주되는 심리학적 탐구로 특징지워진다. 구체적으로 비평적 판단에 대한 실제적 훈련과 다양한 예술 형식들의 전개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구별하기 위한 탐구로 진행된다. 그는 이러한 탐구는 특히 형이상학적 논점들과 도덕적 의식에 대한 관심과는 독립적으로 실행되어야 함을 강조했으며, 자연 과학과 특히 진화론에 따른 생물학에 의해서 사유되는 인간 본성 속에서 미적 경험의 토대를 명료하게 형성해야 함을 강조했다. 따라서 『美感』은 어떤 대상들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또 다른 대상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한 심리학적이며 생리학적인 설명들에 관해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美感』은 미적 경험에 대한 자연주의적이며 실제적인 고찰로 전개된다. 그러나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책에 나타난 산타야나의 미적 이론이 '완전히' 자연주의적인 것은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되고자 의도적으로 시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연주의적 미학에는 해결해야할 두 가지 과제가 있는데, ①첫째는 美가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며, ②둘째는 美가 어디서, 혹은 언제 발생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주의는 이러한 첫번째 과제에 대해서 美 그 자체를 정의하고자 시도한다. 그리고 두번째 과제에 대해서는 美의 발생 조건을 나타내기 위해 미적 경험의 발생 근거와 그 범위를 규정하고자 시도한다. 산타야나의 미학은 이러한 논거에서 볼 때, 첫번째 과제에 대해서는 결코 면밀히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타야나는 실제로 나타나는, 즉 직접 경험되는 美의 본질 속에서 그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 시도했으므로 자연주의자라고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점을 간과하게 된다면 그의 초기와 후기의 공식들을 모두 잘못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산타야나의 첫번째 미학 저서인 『美感 The Sense of Beauty』에서 'Sense'를 '의미'로 파악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즉 산타야나는 결코 美의 의미, 다시 말해서 정의 definition를 규정하고자 시도하지 않았다. 요컨대 그의 미학에 관한 후속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美感』의 전 체계는 美가 경험된다는 전제 속에서 美의 조건들에 대한 면밀한 연구로 한정되어 있다. 산타야나는 이후에 "나의 첫 저서는 변증법적 관계들 속에서의 실제적이거나 善한 것에 대한 연구서가 아니다. 나는 단지 美에 대한 감각에 관해서 서술했을 뿐이다." 라고 언급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산타야나의 첫 저서 -『美感』- 의 제목은 결코 '美의 본질'이나 '美라는 단어에 대한 의미'로 파악될 수 없으며, 그것은 '美가 나타난다는 전제 속에서의 美의 유기적 organic 구조와 그 조건들', 혹은 '美를 느끼는 인간의 능력' 또는 단순히 '미적 경험' 등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객관화된 쾌'를 느끼는 일종의 인간 경험을 기술하고 있으며, 美 자체의 정의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니다.
3. 美의 본성으로서의 '객관화된 쾌'
산타야나는 美의 본성을 규정하기 위해 우선 그에 따른 부적절한 요소를 배제해 나간다. 그는 이러한 각각의 배제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규정에 도달할 때까지 인간 경험의 영역을 축소한다. 이 때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경험이 객관화된 쾌의 경험이다. 우선 이러한 분석을 위해 지적이며 도덕적인 판단이나 가치를, 미적인 내재적이며 직접적인 판단이나 가치로부터 분리한다. 그리고 나서 지각의 또 다른 유형을 분석한다. 즉 '가치'의 문제에서 이러한 가치보다 더 적은 유형의 문제인 '쾌'의 문제로 넘어가는 것이다.
첫째로 '美'와 '가치'의 문제를 살펴보자. 우선 산타야나에 의하면 美의 哲學은 비평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왜냐 하면 아름다운 대상은 단순히 어떤 규준들을 비교하거나 신중하게 판단하는 대상이라기 보다 오히려 느끼고 향유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美가 일종의 가치이며, 이러한 가치의 의미와 조건은 우선적으로 숙고되어야 할 사항임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인간의 의식과 분리되어 있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즉 가치는 지각력 있는 창조물이 '어떤 것' 속에서 흥미를 야기시킬 때 산출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즉 인간의 의식이 결여될 경우에는 가치의 '가능성'조차 있을 수 없게 된다. 다음으로 그는 가치와 결부된 이러한 의식이 '정서'를 결여한채 단지 이성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경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이 때의 의식을 배제하기에 이른다. 즉 우리는 그가 의미하는 '순전히 지적인 경향'을 지닌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존재들은 의식을 지닐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지식을 획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치있는 경험을 할 수 없다. 또한 가치는 도덕적인 것과 미적인 것에 대한 주관의 평가를 벗어날 수는 없다. 따라서 가치는 정서적 의식과 결합하는 것이 그 조건이 된다. 이처럼 가치는 지성이 아니라 정서에 그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생동적 충동에 대한 직접적이며 불가해한 반응에서 나타나며, 인간 본성의 비합리적인 부분으로부터 발생한다.
따라서, 美의 정의에 대한 일차적 접근은 사실이나 관계의 문제에 대한 판단인 모든 知的 판단을 배제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예컨대 우리가 역사적 맥락이나 타당한 분류를 위해서 과학적으로 예술 작품에 접근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 작품에 미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만약 미적으로 접근하게 될 경우, 그것의 자료나 작가에 대한 발견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연상에 직접적인 효과를 부여함으로써 우리의 미적 인식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만약 직접적인 효과가 결여된다면, 우리는 대상 그 자체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된다. 그리고 산타야나는 美의 本性을 규정하기 위해서 도덕적 판단과 분명히 구분되는 미적 판단에 관해서 기술한다. 그는 미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의 관계는 서로 밀접한 관련성을 지님과 동시에 분명히 구별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먼저 이 두 판단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미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은 지적인 판단과는 대비되어 분류된다. 다시 말해서 미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은 모두가 가치 판단인 반면에, 지적 판단은 사실 판단이다. 다음으로 그는 미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의 차이를 세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미적 판단은 충동의 직접적인 반응에서 발원하고, 인간 본성의 비합리적인 부분으로부터 발생하는 가치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도덕적 판단이나 사실에 대한 합리적 판단인 지적 판단과는 구별된다. 둘째, 미적 판단은 주로 긍정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반대로 도덕적 판단은 주로 부정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 셋째, 美의 지각에서의 판단은 내재적이며 직접적인 경험에 근거하고 있고, 결코 의식적으로 대상의 궁극적인 유용성의 관념을 토대로 하지 않는다. 반면에 도덕적 가치 판단은 그것이 긍정적일 때 객체의 효용이 포함된 의식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그 둘을 구분해 볼 수 있다.
둘째로 '美'와 '쾌'의 문제를 살펴보자. 산타야나에 의하면 모든 쾌는 우리의 지각에 의해 산출되며, 본질적으로 가치있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렇지만 그는 모든 쾌가 美의 지각은 아니며, 쾌 중에서 어떤 것은 미적인 것 그 자체가 식별될 수 있기 이전에 배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산타야나가 '물리적 쾌' 혹은 '신체적 쾌'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미적 쾌와는 달리 신체적인 쾌를 느낄 때 가장 두드러지게 되는 대상은 그 쾌가 발생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그가 언급하는 물리적이거나 신체적인 쾌는 어떤 신체적이거나 물리적인 '조건'을 지니는 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적 쾌는 눈과 귀 그리고 기억과 뇌의 관념작용의 기능들의 활동에 의존한다. ... 미적 쾌가 관련된 관념은 그것의 신체의 원인에 대한 관념이 아니다." 그리고 신체적 쾌는 우리 자신의 신체의 어떤 부분에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즉 물리적 쾌는 우리의 주의를 신체 기관 그 자체에로 집중시킨다. 반면에 "미적 쾌를 위한 신체 기관들과 물리적 조건들은 곧 투명성이며, 외적 대상으로 집중하는 우리의 주의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의를 외적 대상에 직접 이르게 한다." 그리고 산타야나는 미적 쾌의 특성인 육체적 쾌의 이탈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육체에서 이탈된 환영은 매우 유쾌한 반면에, 육체로 몰입하는 것과 어떤 기관에 국한하는 것은 우리 의식에 이기적인 상태를 부여한다." 요컨대, 긍정적이고 직접적인 미적 쾌는 신체적인 쾌와는 달리 신체의 기관에 속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미적 특질을 지닌다. 따라서 미적 쾌는 우리에게 '비실체성 immateriality'이라는 환영과 정신적인 자유를 제공한다.
그리고 산타야나는 미적 쾌에 대한 '무관심성'과 '보편성'이라는 전통적인 특성은 자유로운 세계로 유동하는 미적 쾌의 독특한 특성을 적합하게 설명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미적 쾌의 특징으로서 주관의 감각 작용의 요소가 사물의 성질로 변형되는 '객관화'의 심리적 현상에 주목한다. 그에 의하면 우선 美는 무관심적이지 않다. 그는 '미적인 만족'이 이기적인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무관심성이라는 관념을 거부하고, 미적 즐거움은 다른 쾌와 마찬가지로 적극적이며 이기적으로 '추구'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만약 어떤 대상이 어느 누구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없다면, 그것은 아름다울 수 없다. 즉 모든 인간에게 영원히 무관심한 美는 명백히 모순된다. 따라서 미적 쾌는 무관심한 것을 특성으로 하지 않는다. 요컨대, 우리 자신이 파악한 美는 또 다른 사람에게 달리 인식되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우리가 美를 향유하고자 하며 추구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공통적인 사항이다. 다시 말해서 미적 쾌 자체는 개인마다 각각 달리 지각되지만 우리 자신의 관심이 보편적으로 무엇에든지 개방되어 있을 때 지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미적 쾌는 '비개인성 imper- sonality'을 지닌다.
미적 쾌의 두번째 특성에 대한 요소는 보편성과 대비되는 '배제성'이다. 이 때의 보편성은 美에 대한 무관심성과 상반되는 인간의 관심에 대한 보편적 방향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이 표출된 '미적 향수'의 측면이다. 그에 의하면 미적 향수가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이며 공통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음의 경우와 같다. 즉 "우리가 어떤 사물을 아름답다고 판단할 때, 그 판단은 사물이 본래 아름다운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거나, 그 사물이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것으로 보여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산타야나는 이렇게 될 경우, 미적인 지각은 불가능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독단적이며 부정확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왜냐 하면, 인간의 기원, 본성, 상황으로 인한 유사성은 우리의 판단과 감정 속에서 '동일성'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으나, 무엇이 어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것이며, 그것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아름답게 되어야만 하는가를 말하는 것은 독단적이며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만약 어떤 대상에 대한 감각이 우리에게 유사한 연상과 성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느껴진다면, 분명히 그 대상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산타야나는 지각을 통해서 우리가 대상을 분류하거나 구별하거나 향수하는 것은 각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두 사람 A와 B는 어떤 대상에 대해 동일한 미적 향수를 지닐 수 없으며, 대상들 역시 정확하게 두 가지의 동일한 가치를 소유할 수 없다." 따라서 신분, 성격, 환경 등과 같은 조건의 유사성은 판단이나 감정에 일치감을 부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적 향수는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인간 취미에 대한 통일성은 원칙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미적 향수와 창조, 이 모두의 특성은 매우 특수화되고 배제적 exclusive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의 배제성 속에서 상상력을 훈련시킨다면 그 상상력은 어떤 미적 특성을 획득할 것이다." 요컨대, 각 개인이 모두 미적 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한다는 사실은 보편적이며 비개인적이다. 따라서 미적 쾌는 비개인적인 성질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 미적 향수는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A의 미적 향수는 B의 미적 향수와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미적 향수, 즉 미적 쾌는 배제적인 성질을 지닌다.
산타야나에 의하면 美의 경험은 쾌이며, 긍정적이며 고유한 가치이다. 그리고 이 쾌는 다른 감각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에 의해서 사물의 성질로 변형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쾌는 '객관화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만약 우리가 보는 美를 다른 사람들도 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美가 색깔, 비례 혹은 크기와 마찬가지로 대상 속에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판단은 어떤 외부의 존재,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실재적인 탁월함에 대한 지각과 발견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근본적으로 불합리하고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美는 오로지 우리의 지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각되지 않는 美는 느껴지지 않는 쾌와 같으며, 모순된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중심 입장이 나온다. 즉 美는 우리의 지각을 통해 형성되는 어떤 사물의 특성으로 간주되는 쾌이다. 다시 말해서 '객관화된 쾌'이다.
그리고 산타야나에 의하면 미적 가치는 악의 지각이 아닌 善의 현존에 대한 의미이며 부정적인 가치와 대비되는 긍정적인 가치이다. 또한 그는 미적 악은 미적 선에 다만 상대적일 뿐임을 강조한다. 즉 "악은 단지 선의 결여에 불과하며, 따라서 미적 선의 결여는 도덕적 악이 된다." 그리고 美는 궁극적인 善이며, 미적 가치와 대비되는 도덕적 가치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산타야나는 도덕성은 악의 회피와 善의 추구에 관련되어 있고, 美學은 단지 향유와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美의 감정 그 자체는 아무것도 구성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기여 하지 않는다. 즉 "美의 感情 그 자체는 즐거움과 안전, 고통, 꿈, 순수한 쾌에 관한 정신의 영향"이다. 따라서 "美 역시 우리가 느끼는 것이며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美는 우리 본성의 공통적인 원리에 대한 본질적이며, 때때로 최상의 표현이다.
4. '객관화된 쾌'를 산출하는 세 요소
산타야나는 이와 같이 美의 본성이 '객관화된 쾌'임을 밝히고, 이러한 '객관화된 쾌'를 산출하는 세 요소들을 규정한다. 즉 그 요소란 재료 materials와 형식과 표현이다. 특히 이러한 세 요소들 중 재료와 형식은 美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며, 표현은 다른 두 요소들과 결합하여 단지 간접적으로만 美에 기여하게 된다.
4-1. 재료 materials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산타야나가 의미하는 美는 '객관화된 쾌'이고 근본적으로 대상을 지각하는 주관의 반응이기 때문에, 이러한 쾌를 산출하는 美의 재료 역시 어떤 외부적인 실체가 아니라 대상을 지각하는 주관의 심리적, 생리적 기능들의 결과이다. 우선, 산타야나는 美의 재료를 설명하면서 그것이 주로 인간의 신체적 기능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때 신체적 기능 자체는 인간의 마음이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일종의 자연적 요소로 존재하며, 그것이 美의 재료가 된다. 이 지점에서 그의 논의는 자연주의적 경향을 띤다. 그에 의하면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모든 기능들은 미적 효과를 산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능들이 모두 동일한 미적 효과를 산출하는 것은 아니다. 즉 미의 감각에 대한 직접성과 중요성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객관화된 쾌'를 산출하는 '재료'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생동적 vital 기능'과 그 영향으로 산출되는 '상상력과 기억', '性的 본능', 그리고 '시각, 청각 등의 감각' 으로 구성된다.
우선 생동적 기능은 여러 감각 작용들 중에서도 근본적이며 중심이 되는 것으로서 인간 신체의 動因이 되는 기능이다. 이러한 생동적 기능의 영향으로 인해 인간의 마음의 모든 기질과 상태, 열정에 대한 힘, 습성의 파악과 연관성, 주의력, 상상력, 기억, 공상, 감정의 활기 등이 산출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동적 기능들은 순수한 쾌를 포함하는 활력을 구성하며 추진력을 결정하고 놀이와 예술과 사색으로 소모되는 잔여분의 에너지를 제공한다." 이러한 기능들은 특별한 기관이 없는, 자유로우며 인간의 신체 속에 내재되고 감추어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의식 속에서 구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대상에 흥미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흥미와 美에 적합한 매력을 산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동적 기능들은 우리의 美의 감각을 증진시킬 수 있다.
또한 산타야나는 이러한 생동적 기능들의 미적 가치는 그것의 생리학적 수반물들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관념작용에 적합한 수반물들의 경우에는 관조의 쾌를 더욱 증진할 수 있게 되며, 따라서 美의 감각과 사고의 흥미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게 된다. 반면에 생동적기능들의 생리학적 수반물들은 그것의 생리학적 원인으로 인해서 관념작용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미적 활동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게 된다. 그는 이와 관련하여 '가벼운 졸음'과 '보다 더 완전한 嗜眠 lethargy 상태'라는 이중의 효과가 이러한 두 현상의 차이를 잘 설명해 준다고 언급한다. 우선 가벼운 졸음은 그것의 나른함의 정도에 의해 외부 감각 속으로 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약 그 정도가 깊은, 즉 완전한 수면 속으로 빠져들지만 않는다면, 더욱 풍부해지는 공상의 세계 속에 머무를 수 있으며 보다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하게 된다. 흔히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름다운 心象들이 암시되거나 나타나게 된다. 특히 이러한 순간에도 아름다운 싯구가 떠오를 수 있으며 창안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보다 더 완전한 嗜眠 상태에 이른다거나, 마치 심한 과식을 했거나 지나친 신체 훈련을 받고 난 후의 경우들처럼 우리의 상상력이 방해받게 되는 경우에는 '미적 무감각 insensibility'의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산타야나는 순수하고 상쾌한 공기에서 야기되는 상쾌한 기분 역시 우리의 감상에 현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언급한다. 특히 이러한 상쾌한 기분은 대체로 오전의 美에서 느낄 수 있으며, 오후에는 이와는 전혀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모든 기능들의 상반된 상태는 외견적으로 유사한 상황에서의 상반된 정서이며, 이와 같은 상반된 정서로 인해 매우 다른 각각의 美를 산출하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산타야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야기되는 쾌를 비롯하여 인간의 가장 높고 초월적인 이상과 관련된 열망의 쾌는 무수히 많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순간의 쾌는 절묘함과 숨막힘 그리고 敬畏를 수반하며, 직접적인 인상을 주는 목과 폐를 통한 실제적인 감각 작용의 순환의 영향으로 산출된다.
그리고 우리의 근본적인 유기체의 기능인 性的인 본능도 우리가 美를 지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인간은 이 세계의 서로 다른 다양한 양상들에 대해 민감하기 때문에, 상반된 성에 관해서 끊임없이 반응하고 갈망하게 되므로 성적 본능 그 자체는 근본적인 것이며 미적 경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적인 본능에 의해 산출되는 '사랑의 열정'으로 인해 인간은 모든 사물들에 대해서도 부드러움과 관심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산타야나는 주로 감상적인 인간의 미적 감정의 많은 부분이 성적인 본능에서 대체로 기인한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만약 인간에게 남성과 여성이라는 性의 구분 -차별성-이 존재하지 않고, 性的인 본능으로 인한 '재생 reproduction'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인간의 삶의 정서는 현재와는 급격하게 달라질 것이다. 즉 산타야나는 이러한 상황을 매우 부정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왜냐 하면 서로 다른 性에 대한 관심으로 산출되는 쾌는 단순한 생물학적 욕망을 넘어서서 미적인 것으로 승화될 수 있으며, 따라서 애초에 자신과 상반된 性을 지니고 있는 대상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의 열정은 확산되어 주변적인 것, 혹은 모든 사물에까지 널리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청각을 통한 소리의 세계에는 인간의 감각을 계발시키는 무한한 다양성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감각의 무한한 확장이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소리의 세계는 물질 세계 못지않게 인간에게 흥미로움과 정서를 자극하는 힘을 제공할 수 있다. 나아가 산타야나는 시각을 '탁월한 par excellence 지각'으로 본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엇보다도 시각적 매체와 시각적 사항을 통해서 대상을 가장 쉽게 인식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시각은 우리에게 쾌를 가져다 주며, 우리는 이 쾌로부터 美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의 효과는 대상의 殘餘物이라기 보다 오히려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각 속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즉시 美의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후각과 미각은 본질적으로 청각과 마찬가지로 공간적인 spatial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볼 때 큰 불리함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후각과 미각은 자연의 표상을 제공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자연의 표상은 그 자체를 단지 '공간적 사항 terms'으로서만 정확하게 사유하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후각과 미각은 소리처럼 동일한 구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소리는 본질적인 공간적 특성이 없는 하위의 감각들로 나누어져 있다. 따라서 소리는 당연히 추상화된 외부 세계의 한 요소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소리의 음률에는 탁월하고 연속적인 단계적 변화가 있으며, 그것의 음량에는 측정 가능한 연관성이 있다. 따라서 소리는 공간적 특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인 반면에, 다른 비공간적인 감각작용들은 대체로 측정할 수 없다. 그리고 물론 소리는 그 자체의 범주 속에서만 측정 가능하다. 즉 소리는 비교될 수 있는 음률과 지속성을 지닌다. 반면에 후각과 미각은 인간에게 매우 흥미롭게 음악과 견줄만한 어떠한 주관적인 감각 작용의 역할도 제공해 줄 수 없다. 음악의 형식은 그것의 영속성과 복잡성에 의해 객관화되며, 이 형식은 단어들처럼 사회적 매체 속에서 존재하며, 공간적으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미적일 수 있다. 그러나 미각은 이처럼 정확하게, 그리고 보편적으로 분류되거나 구분될 수 없다. 즉 이러한 감각작용의 매개는 귀에서 행해지는 것과 같은 훌륭하고 안정된 구별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하위의 감각들도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재료와 같이 상상력을 제공함으로써 미적 대상의 쾌에 포함될 수도 있다.
요컨대, 산타야나는 인간의 생명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생동적 기능'과 그것의 영향으로 인해 산출되는 '상상력, 기억, 감정의 활기 등'과 인간의 더욱 근본적인 유기체의 기능, 즉 '성적인 본능'과 '시각, 청각'은 우리의 미의 경험에 크게 기여하는 '美의 재료들'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이러한 美의 재료는 우리에게 쾌를 가져다 주며, 우리는 이 쾌로부터 美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美의 재료는 우리의 미의 경험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며, 또한 '美의 형식'에 대한 토대가 된다.
4-2. 형식
산타야나는 그의 전체 哲學에서, 특히 형식의 문제를 매우 관심있게 다루고 있다. 그에 의하면 美學에서 가장 특징적이며 주목되는 문제가 바로 '형식'의 美에 대한 문제이며, 인간의 미적 경험의 가장 중요한 요소 역시 '재료' 자체가 아니라 '재료의 배열 및 그것의 방식'이다. 이것이 곧 형식이다. 그리고 '다양성의 통일'로서의 형식은 서로 별개의 구성 요소처럼 보이는 감각적인 성질들의 집합 aggregation 혹은 종합이다. 형식의 美는 재료가 그 토대를 이루며, 표현과도 결합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형식에는 재료와 표현의 미적 효과와는 다른 그 자체의 독특한 성질이 있다 즉 재료와 구별되는 형식의 독특한 성질 중의 하나는 그것이 재료를 근원적인 감각적 요소 이상의 어떤 것으로 형성하는, 즉 재료의 방식 및 배열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형식은 어떤 연상이나 외부의 대상과의 관련성과는 거리가 먼 미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표현과도 구별된다. 산타야나는 형식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요소 elements와 표현 사이에는 보다 더 신비스러운 '매개적 효과'가 있으며 보다 독특한 美의 효과가 있다. 이러한 효과는 그 자체로서는 무관심한 감각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쾌 -주체와 객관적인 대상이 서로 결합된 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로 결합될 때 발견된다.
이러한 '매개적 효과'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형식'이다. 그리고 산타야나에 의하면, 우선 형식의 美를 요소의 美로 환원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요소의 美를 통해 산출되는 단조로운 효과는 형식의 美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효과와는 구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장 단순한 선들 -요소-의 관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야기되는 효과의 창조성과 다양성은 단조로우며 너무나 쉽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요소의 미가 주는 효과의 창조성과 다양성은 예컨대 모든 대리석 -요소-으로 만든 집들은 똑같이 아름답다는 통속적인 안일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흔히 요소의 경우와는 달리 형식의 美를 표현에 귀속시키는 것을 타당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고 언급한다. 예컨대 만약 의미없는 짧은 선들을 택하여 주어진 방식 내에서 그 선들을 배열함으로써 인간의 얼굴을 표현하고자 시도한다면, 거기에는 즉시 현저하게 다른 미적 가치가 나타난다.
산타야나에 의하면 이 세 가지 형식들 중 ①과 ③의 경우, 서로 뚜렷하게 구별될 수 있을 정도로 기묘하며 나머지 ②는 대략 평범하게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효과 -기묘하거나 아름다움-는 선의 '표현'에서 산출된다. 왜냐하면 그는 이와 같은 선의 표현은 우리들에게 아름답거나 추한 얼굴들을 생각하도록 유도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얼굴들이 그것들의 형식이 아니라 표현에 의해서, 즉 다른 유형들에 대한 생동적이며 도덕적인 연상에 의해서 실제로 아름답거나 추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산타야나는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서 형식의 美는 표현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형식의 美는 '재료의 요소'를 통해 산출되는 美로 환원시킬 수 없으며, 그것은 또한 예컨대 인간 얼굴의 어떤 형식 구조를 연상할 수 있는, 즉 도덕적 성질을 '표현'하는 것으로 환원시킬 수도 없다.
따라서 "형식의 특성을 표현의 특성인 연상에 기인한 것으로 간주한다면, 이는 예컨대 배멀미를 난파의 공포로 설명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매우 단순한 선에서도 흔히 유일미 singular beauty라고 할 수 있는 명료한 성질과 가치가 있다는 사실은 선의 형식을 지각하는데 본질적인 것이다. 따라서 형식의 본질적 가치는 그 형식의 정서적 색조와 그것의 독특한 가치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형식은 그 자체의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재료에 대한 고유한 美의 유형을 제공하는 방식에 기여한다.
이러한 형식은 '다양성의 통일'로서 정의된다. 그러나 형식은 절대적인 통일이 아니며, 절대적인 다양성도 아니다. 우선 형식은 재료의 구성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통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로 관련성 있는 구성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 효과는 단순한 감각 작용에 불과하며, 형식이 될 수는 없다. 형식은 또한 절대적인 다양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형식은 감각적인 자극이나 추론적인 연상의 연속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통일로서의 형식은 서로 별개의 구성 요소처럼 보이는 감각적인 성질들의 '집합 혹은 종합'이다. 이 때 형식을 구성하는 종합은 마음의 활동이다. 요컨대 통일은 의식적으로 산출되며, 각각 분리되어 -개별적으로- 지각되는 민감한 요소들의 연관성 속에서의 통찰을 의미한다.
산타야나는 이러한 형식의 독특한 가치 중의 하나는 눈과 귀와 같은 지각 기관에서의 근육 기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언급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눈은 그 신체적 구조 때문에 우아하고 흐르는 듯한 곡선을 -다른 선들에서 보다 더 쉽고 편안하게- 따라간다. 따라서 곡선은 대체로 다른 선들 보다 -직선의 단조로움 없이- 훨씬 더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된다. 산타야나는 인간에게 존재하는 어떤 크기, 리듬, 그리고 量을 관찰하는 '생리학적 과정'을 통해서 '本有的이거나 자연스러운 쾌'를 느끼게 된다고 암시한다. 따라서 일정한 음악의 양식과 리듬, 선과 색의 배열 등은 그 자체로서 즐거운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감각 기관은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매우 유쾌하게 자극받기 때문이다. 산타야나는 이러한 기본 입장을 가지고 생리학적 과정을 통한 '공간 지각'과 '곡선의 효과'를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생리학적 원리들에 대한 중요한 범례를 대칭 symmetry의 매력에서 찾을 수 있다고 언급한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떠한 이유에서든지간에 우리의 눈이 문이나 창문이 열려있는 지점, 제단과 무대, 또는 벽난로 등의 어떤 한 지점에 습관적으로 향하게 될 때, 반드시 정면을 바라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고 그에 따라 혼란스럽고 주의가 산만하게 된다. 만약 이 때 대상이 우리 눈의 伸張力이 균형잡힐 수 있도록 정돈되어 있지 않다면, 시각의 중심은 그 시각의 범위 내에 위치해 있는 어떤 한 지점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대상에서 左右同形의 대칭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상하 관계의 수직적 대칭은 크게 요구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눈과 머리는 주로 사물을 좌우면으로 훑어보는 것이 일반적이지 상하로 훑어보는 경우는 좀처럼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하면의 불균형은 움직임의 동일성, 즉 동일한 활동성을 산출하지 않는 반면에, 우리의 정면에 있는 대상의 좌우면의 불균형은 동일한 활동성을 산출한다. 그러므로 眼 근육의 균형으로 인해 산출되는 편안함과 효율성은 대칭의 가치를 형성하는 근원이 된다. "이러한 대칭의 장점은 우리에게 어떠한 자극도 없이 즐거움을 주며, 온갖 종류의 무절제에 뒤따르는 지쳐버린 감각을 환기시키는, 다시 말해서 馴化된 내면적 평화의 세계로 되돌려 놓는 완전성에 기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대칭에서 산출되는 靜的인 美의 내면성 inwardness과 견고성은 그것을 구성하는 쾌의 본질적인 특성으로부터 산출된다."
산타야나는 형식의 문제를 다루면서, 특히 미적 향유에 그다지 적합하지 못한 두 가지 유형에 관해서 지적한다. 즉 '불명료한 구성'과 '과도하게 명료한 구성'이 그것이다. 여기서 불명료한 구성은 불완전하며, 과도하게 명료한 구성은 지나치게 추론적이다. 즉 불명료한 구성은 지나치게 재료에 의존하며, 과도하게 명료한 구성은 표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불명료하게 구성된 대상들은 막연하고 일관성이 없으며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이러한 불완전한 성향을 지닌 예술가는 그가 스스로 충분히 습득하지도 않은 주제를 어떤 분명하고 정확한 방식으로 명료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불명료한 형식을 택한다. 이러한 예술가들은 "그림의 윤곽을 세울지는 모르나 결코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러한 그림을 보는 관찰자는 모호하고 막연하게 암시된 그림 속의 존재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그 자신의 나름대로의 해석 능력을 사용하도록 강요되는 것이다. 산타야나는 대부분의 풍경화가들과 특히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은 대체로 불명료한 형식으로 구성되므로 열등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들의 작품은 자연 풍경뿐만 아니라 그것의 표상을 통해 우리의 시야를 무분별하게 배회하도록 허용할 만큼 각양각색의 무수한 조망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자연 풍경과 그것의 표상은 불명료한 대상이기 때문이며, 풍경은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의 공상과 변덕스러운 선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미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이 요소들의 명료한 통일성을 위해서는 관찰자의 종합적인 활동이 요청된다. 극단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은 더 나아가 구성요소 속의 형식을 분해한다. 이들은 그림을 그리는데 '하나의 절대적인 순간의 광경'을 표현하고자 시도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은 분리된 인상으로 관찰자를 깜짝 놀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작품이 관찰자로하여금 그 자체로 완전한 것으로서 보이도록 유도한다. 이 작품을 분명하게 보기 위해서 관자는 그가 이전에 경험해온 어떤 것과 유사한 것으로 현재의 재료를 재편성해야하며, 통일성을 이러한 형식 속에 명확하게 나타내야만 한다. 요컨대, 이러한 작품은 극도로 공허하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산타야나는 두 번째 유형, 즉 과도하게 명료한 형식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추론적인 풍경화의 효과로서 과도하게 명료한 구성을 언급한다. 즉 이러한 구성은 각각의 장면을 무익할 정도로 명확하게 형성한다. 불명료한 형식과는 달리 과도하게 명료한 구성은 관찰자로 하여금 감각적인 호소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장점이 결여되어 있다. 또한 특별한 장면에 대해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관찰하여 그 장면의 개요를 충분히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과도하게 명료한 구성에 대한 묘사는 더욱 완전히 명료하고 분명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추론적인 표상은 분명히 우리에게 지루하게 느껴진다. 왜냐 하면 이러한 방식의 작품에서는 관찰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해석을 제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타야나는 이러한 추론적인 표상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각들에 쾌를 부여하는 불명료한 형식보다도 미적이지 않음을 지적한다. 요컨대 산타야나는 '불명료한 구성'과 '과도하게 명료한 구성'의 대비를 통해서 다양한 구성요소의 조화로운 통일 속에서 형식의 美를 발견한다.
4-3. 표현
마지막으로 美의 재료와 형식 이외에 美의 표현도 예술의 가치를 고양시키는데에 기여한다. 그는 이 표현의 요소를 재료와 형식의 요소와 명료하게 구분한다. 그리고 때때로 재료와 형식의 요소를 "직접적"이거나 "드러난 bare" 지각의 양상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산타야나에 의하면 이러한 재료나 형식과는 달리 표현은 직접적이지 않으며, 특히 감각적이지도 않다. 표현은 주관의 경험의 인식 양상, 즉 주관의 경험에 의한 신념과 해석의 양상에 속한다. 예컨대 예술 작품 속에서, 혹은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되는 어떤 대상 속에서 표현의 가치는 대상에 대한 재료나 형식의 양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아니라, 주관의 경험에 의해 대상에 부여된 것이다. 요컨대 표현의 美는 주관과 대상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이때의 '대상'이란 대상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독립된 것이 아니라 주관의 경험 속에 한정된, 즉 주관에 의해 인식된 대상이다. 그리고 표현의 美는 더욱 진전된 대상, 심상, 혹은 경험에 대한 암시를 나타낸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재료와 형식의 美에서는 직접적인 지각의 과정과 관련된 어떤 쾌의 객관화가 있었다. 이러한 쾌의 객관화는 어떤 경우의 -주관의- 감각 작용이나 -대상의- 성질, 또는 또 다른 경우의 감각 작용들이나 성질들의 종합에 대한 구성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의식은 명료한 한계와 명확한 심상으로 이루어진, 즉 명확하게 추론되거나 철저히 지각되는 매우 분명한 거울같은 반영이 아니라고 언급한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관념들 중 일부는 생동적 감정과 擴散된 감각의 불명료한 연속체로부터 잠시동안 나타나며, 실제로 우리의 주의를 변경하거나 새로운 관계들을 지각함으로써 다른 대상들의 관념들 속에서 변화하거나 변형되기 이전에는 거의 고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와 같은 마음의 유동성을 면밀하게 숙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컨대 우리는 이러한 유동성으로 인해 단어나 어떤 상징들 속에 고정되지 않는다. 즉 우리가 어떤 단어를 생각할 경우, 현재 떠오른 -지각된- 단어를 통해 우리는 그 단어와 관련된 과거에 우리가 지각하거나 경험했던 여러 심상들을 연상하게 되고, 따라서 현재 떠오른 그 단어는 우리의 연상에 의해 더 이상 '현재의 단어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연상된 다른 성질들이 추가된 것'으로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번의 지각으로 또다른 표상들을 잇따라 떠올릴 수 있으며, 표상들을 다시 떠올림으로써 대상의 영속성을 지각할 수 있게 된다. 이 때 표현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어떤 지각되는 대상에 의해 이러한 연상된 감정들의 잠재된 여운 hushed reverberation은 기억 속에 계속 머무른다. 그러나 그러다가 그것이 우리의 현재 반응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의 주의가 집중되어 있는 그 심상을 어렴풋이 채색하게 된다. 따라서 연상을 통해서 대상에 의해 획득된 성질을 우리는 그 대상의 표현이라고 부른다.
즉 표현은 대상 속에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거나 지각했던 心象, 즉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있던 心象을 재투사한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과거에 구름을 보고 '솜털처럼 부드럽다'라는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면, 다시 구름을 보거나 구름과 유사한 것을 보게 될 경우, 즉 우리가 그 '구름'이라는 대상에 직면했을 때, 과거에 보았던 구름이 연상되고 이러한 연상을 통해 '솜털처럼 부드럽다' 등의 심상이 산출된다. 따라서 이러한 과거의 심상들을 연상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구름의 심상만이 아니라 과거에 보았던 구름의 심상이 복합됨으로써- 대상에 대한 우리의 현재 반응이 변화된다. 따라서 산타야나는 우리의 '연상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연상은 우리를 외부로부터의, 그리고 외부의 관계 속으로, 즉 사실과 사건의 세계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리고 산타야나에 따르면 이와 같이 표현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지각되는 재료나 형식과는 달리, 반드시 '주관'과 '주관에 의해 지각된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연상에 의해서만 美를 지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美에 단지 간접적으로 기여한다'고 언급한다.
요컨대, '재료'에서 우리는 생동적 기능이나 정서, 시각, 청각 등의 감각을 통해 대상을 직접 바라봄으로써 '객관화된 쾌'로서의 美를 느끼게 되며, 그리고 '형식'에서, 우리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이러한 재료를 배열하거나 통일함으로써 또한 美를 느끼게 되므로 의식의 이 두 요소, 즉 '재료'와 '형식'은 美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표현'은 직접적으로 주관에 의해 대상에 투여된 것이 아니다. 표현은 이미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표상을 통해서 대상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며, 우리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던 심상이 대상과 접촉함으로써 다시 그 대상에 재투사된 것, 즉 주관이 다시 객관에 재투사된 것을 의미하므로 재료나 형식에 비해서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산타야나는 이처럼 표현이 간접적으로 美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표현 expression"과 "표현성 expressiveness"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우리는 편리하게 한 사물이 소유하는 암시적인 수용력 capacity을 의미하기 위해서 '표현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며, 이러한 표현성이 그 속에서 산출할 수 있는 미적 변형을 의미하기 위해서 '표현'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따라서 표현성은 우리의 경험에 의해서 마음 속에서 다른 것들을 상기시키기 위한 어떤 심상에 부여된 힘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성은 미적 가치가 된다. 그리고 그 가치가 연상들 속에 포함될 때, 그렇게 됨으로써 현재의 대상 속에 합체되어 지각될 때 표현이 된다.
이제 우리는 대상을 접하면서 의식 속에서 산출된 지각, 표상들이 연상을 통해서 그 대상과 직접적으로는 무관한 다른 대상들에 관한 표상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주관적 의식은 경험에 의한 다른 표상을 다시 원래의 대상에 재투사시켜 그 대상을 이해하고 해석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에 의해서 마음 속에서 다른 것들을 상기시키기 위한 어떤 심상에 부여된 힘, 즉 주관의 경험에 의해 어떤 대상에 속할 수 있는 의미있는 존재의 성질 property인 표현성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美의 재료와 그것을 배열하거나 질서지우는 美의 형식의 직접적으로 '드러난 지각'이라는 특성과 결합하여 원래의 대상 속에 과거에 우리가 경험했던 다른 대상에 의해 산출된 표상을 부여함으로써 미적 가치를 지니게 되고, 이러한 미적 가치를 지니게 됨으로써 표현이 된다.
산타야나는 이러한 표현의 상황에 관계하는 두 사항 terms을 지적한다. "우리는 모든 표현 속에서 두 가지 사항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첫째는 실제로 제시되는 대상, 즉 낱말, 심상 등의 표현하는 것 expressive thing이며, 둘째는 암시되는 대상, 즉 더 진전된 생각, 정서, 혹은 환기된 심상 등의 표현된 것 thing expressed이다." 그에 의하면 표현은 표현성과 달리 이러한 두 사항이 '우리의 마음 속에 함께 존재'하고, 첫 번째 사항인 '표현하는 것'과 두 번째 사항인 '표현된 것'이 조화롭게 결합할 때 발생한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두 사항 중 한 사항만을, 즉 전적으로 첫 번째 사항만을, 혹은 두 번째 사항만을 가치로운 것으로 파악한다면 우리는 표현의 美를 지닐 수 없을 것이다. 결국 표현은 두 사항들의 조화로운 결합에 의해서 더욱 명료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있지 않은 것을 제시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것에 대한 표현성은 관찰자의 풍부한 知性으로 인해 더욱 증가될 수 있다. 요컨대, 표현의 가치가 산출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경우는 두 사항들이 본래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조화롭게 되었을 때이다. 그리고 표현의 쾌는 이 두 사항들이 서로 관련되어 나타나는 활동을 통해서 산출된다.
5. 맺음말 : 산타야나 미학 이론의 意義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산타야나의 초기 미학 이론의 핵심은 '객관화된 쾌'로서의 美를 강조하고 이러한 美의 구현과 관련해서 예술을 설명하는 것이다. 특히 본 고에서는『美感』을 중심으로한 산타야나의 초기 미학 사상을 '자연주의적'이며 '관념론적'인 철학 체계와 연관시켜 이해하고자 했다. 따라서 '객관화된 쾌'로서의 美의 의미와 그 성질을 고찰하는 가운데 그의 초기 미학 사상이 '자연주의적'인 견해와 '관념론적'인 견해 모두를 포괄하는 절충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내포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산타야나의 미학 이론을 '자연주의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는 그가 '우리에게 美感을 불러 일으키는 대상은 우리의 주관 바깥에 존재한다'고 간주한다는 점에서이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이론은 또한 '유물론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자연주의적 입장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가 더욱 관심을 가진 것은 '주관이 대상과 접했을 때 주관이 그 대상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기술적 심리학의 방식으로 탐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美感을 부여하는 근원으로서의 대상은 우리의 주관 바깥에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 대상과 접해서 美感을 느끼는 것은 각각의 주관에 따라서, 그리고 동일한 주관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서 달리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이론은 '주관 관념론'적 경향을 강하게 띤다.
이처럼 우리가 미적 대상을 경험하고 그것이 인간의 의식에 드러나는 그대로를 기술하는 것이 그의 초기 입장에서 나타나는 '기술적 심리학'의 방식이며, 이것은 미적 대상이 주관을 벗어나서 실제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자연주의적 입장'과 기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산타야나의 이러한 입장은 美를 느끼는 데에서 주관의 의식 작용에 대한 분석에 치중하던 초기의 입장으로부터 벗어나, 후기에서 주관이 대상에서 어떠한 美感을 느끼게 된다 하더라도 '美' 자체는 불변적이며 본질적인 것이라는 것, 그리고 대상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美의 본성이 있다고 보며 그것을 추구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토대가 된다.
그리고 산타야나는 '객관화된 쾌'로서의 美의 의미와 성질에서 더 나아가 '객관화된 쾌'를 산출하는 인간의 심리적이며 생리적인 세 요소들, 즉 재료, 형식, 표현을 구분하는데, 이를 설명하는 산타야나의 견해에도 역시 '자연주의적'이며, '관념론적'인 경향 모두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산타야나는 美의 재료를 설명하면서 그것이 주로 인간의 신체적 기능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산타야나는 이 신체적 기능 자체는 인간의 마음이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일종의 자연적 요소로 존재하며, 그것이 미의 재료가 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자연주의적 경향을 띤다. 다음으로 산타야나가 제시하고 있는 美의 형식에는 인간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신체보다 가치있다고 파악하는 '관념론적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형식을 구성하는 종합은 우리의 '마음의 활동'임을 표명했을 때 가장 잘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형식을 '다양성의 통일'로서 정의한다. 다양성의 통일로서의 형식은 서로 별개의 구성 요소처럼 보이는 감각적인 성질들의 집합 혹은 종합이다. 이 때 통일은 의식, 또는 정신에 의해 산출되며 -이 지점에서 또 다시 산타야나는 관념론적 경향으로 기울고 있다- 개별적으로 지각되는 감각적 요소들의 연관성을 통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끝으로 美의 표현을 설명하는 데에서 산타야나의 관념론적 경향은 더욱 뚜렷이 부각된다. 그는 '표현'의 요소를 재료와 형식의 요소와 명료하게 구분한다. 그는 때때로 재료와 형식의 요소를 '직접적이거나 드러난 지각의 양상'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러한 재료나 형식과는 달리 표현은 직접적이지 않으며, 특히 감각적이지도 않다. 표현은 주관의 경험의 인식 양상, 즉 주관의 경험에 의한 신념과 해석의 양상에 속한다. 표현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지각되는 재료나 형식과는 달리, 반드시 주관과 주관에 의해 지각된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연상'에 의해서만 美를 지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美에 단지 간접적으로 기여한다'.
우리는 '재료'에서 생동적 기능이나 정서, 시각, 청각 등의 감각을 통해 대상을 직접 바라봄으로써 美를 느끼게 되며, 그리고 '형식'에서 우리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이러한 재료를 배열하거나 통일함으로써 또한 美를 느끼게 되므로, 의식의 이 두 요소, 즉 '재료'와 '형식'은 美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표현'은 직접적으로 주관에 의해 대상에 투여된 것, 다시 말해서 우리 주관이 대상에 직접적으로 반응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표현은 이미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표상을 통해서 대상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며, 우리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던 심상이 대상과 접촉함으로써 다시 그 대상에 재투사된 것, 즉 주관이 다시 객관에 재투사된 것을 의미하므로 재료나 형식에 비해서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이상과 같이 살펴 본 산타야나의 미학 이론이 철학사적으로, 그리고 현대의 예술 이론에 대해 가지는 함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산타야나는 현대 미학의 주류적 경향이 강한 주관주의적 경향으로 흘러 가는 것과는 달리 그 출발점에서는 주관주의적 경향을 배제할 수 있는 자연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그의 미학 사상이 전체적으로는 강한 관념론적 경향을 띤다고 해서 폄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에드만 (I. Edman)의 말처럼 "철학으로서의 자연주의는, 인식이라는 행위의 정신적 가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공포에 사로 잡혀 있는 한 인간은 세계를 참되게 또는 삶을 현명하게 볼 수 없다고 강조한 루크레티우스 Lucretius에 이르기까지, ... 수단이며 목적인 행위에서 완수된 삶의 이상을 말하는 존 듀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인간의 경험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파악했으며, 그 이유는 인간의 경험에서 물질적 만족이 보장되기 때문이 아니라 보는 것과 행하는 것이 동물적 욕구의 만족을 넘어서는 -또는 때때로 그것이 없어도 가능한- 향유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아울러 산타야나는 자연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인간의 정신적 차원과 그 차원이 어떠한 개념 속에서나, 혹은 완전한 도덕적 성취의 실제적 발생 속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적절하게 그리고 동시에 설득력있게 강조했다. 비록 산타야나는 그의 전체 철학 사상에서 볼 때, 일관된 자연주의의 입장에서 인간의 정신적 차원의 중요성을 논증하지는 못했지만, 즉 산타야나는 자연주의적 경향 -혹은 유물론적 경향- 과 관념론적 경향에서 동요하고 있었지만 그의 이론의 성과는 결코 간과될 수 없다. 즉 산타야나가 정신적 차원이 인간이 도덕적 성취를 이루는 데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적어도 서양의 종교적·철학적 전통에서 매우 적절하고 또 거의 불가피한 것이었다. 실로 정신적 삶, 이상에 대한 전망, 미적 선호는 '보는 인간 men-who-see'과 '행하는 인간 men-who-do'이 있는 한, 또는 모든 인간이 동시에 관찰자이자 행위자인 한, 도덕적 삶에서 중요한 특징이 될 수 있다.
요컨대, 세계를 미적으로 포착한다는 것은 단순히 美가 물질적 대상에 연루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정신적 차원에 포함되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세계를 완전성으로 포착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계의 미적 전유는 이상적인 것을 바라고 추구하는 것처럼 인간의 도덕적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산타야나가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산타야나의 미학 이론을 이처럼 단순히 인간의 도덕 의식을 고양하는 것으로 제한해 버린다면 산타야나 미학에서의 장점과 가치는 드러나지 않는다. 산타야나 미학 이론에서의 탁월성은 무엇보다도 그가 미적 대상에 반응하는 인간의 주관적 의식을 경험 심리학의 방식으로 세밀하고 치밀하게 기술해 내는 데 있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그가 美를 인간의 일상적 생활에 국한시키고 사회성, 역사성 등으로부터 제거해 버린 결점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미학이론을 단순히 내던져 버릴 수 없는, 많은 가치를 함유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닌라,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그의 美論이 현재까지 순수 학문의 영역을 넘어서서 스포츠의 각종 종목들 및 음악 감상과 사긴 작품활동 등을 미적인 의미에서 이해하고자 시도하려는 학자들에 의해서조차 적절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 즉 미적인 영역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다양한 분야의 시도에 그 입구를 허용한다는 것은 현재의 시점에서 그의 미학이론을 재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앞으로의 남겨진 과제들로서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러한 다양한 분야에서 특히 산타야나의 美論을 선택할 경우, 우리가 흔히 실제로 '관람'하는 방법이나 이유를 깨닫지 않고 언제나 감상했던 각 분야의 민감하고 상상적인 특성들 중의 많은 것들에 관한 美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들의 많은 부분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진정한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각 분야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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