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046호 우리, 상상할 수 없는 역전승을 맛보자 (고전2:9~16)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혀있을 때 주님이 하신 일에 대해 듣고는 제자들을 보내어 주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그러자 주님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고,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라”(마11:4)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을까요? 위의 상황은 누가복음 7장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뒤에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눅7:21). 말씀하시는 그 시간에도 예수님은 병에 걸린 자, 고통 받는 자,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7:22).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을 통해 메시야적 실재를 증거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고로 보고 듣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요4:48).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병든 자를 낫게 하시고,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가난한 자를 부유케 하러 오셨습니다(눅4:18). 이를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19:30). 이것이 예수님 최후의 일성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승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수차례 말씀하셨듯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우리를 죄와 가난과 저주와 병에서 해방시키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다 이루었다’고 승리의 메시지를 남기신 것입니다. 역전승을 암시하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분이 고통과 수욕을 당하고, 강도 같은 중범죄자나 달리는 수치스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우리를 죄악에서, 병에서, 가난에서, 저주에서 건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죄와 무관해야 하고, 아프지 말아야 하고, 잘 살아야 하고, 행복해야 합니다. 맞지요? 그런데 실상을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알면 답이 있는 법, 지금까지 가난했지만 부유케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병든 자가 건강해지는 법이 분명 있고, 저주의 사슬이 끊기고 행복과 축복의 삶을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지금의 삶을 단번에 역전시키는 방법이 분명 있습니다. 이는 이미 다 이루신, 마귀에서 역전승하신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 나아갈까요? 먼저는 그분께 순종하는 겁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21~23). 예수님의 계명에 순종할 때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일진대,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어디 감히 가난과 병과 저주가 임하겠습니까? 빛이 오면 어두움이 엄습할 수 없지요.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지면 흥이 깨지고 초상집 분위기가 됩니다. 이 사실을 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요2:5)고 지시했습니다. 순종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항아리 아구까지 물을 채우라고 하시니 그대로 했고, 떠다 주라 해서 가져다주니 기가 막힌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하객들이 신랑을 불러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요2:10)라고 했겠습니까? 초상집이 될 뻔했던 잔칫집이 다시 흥겨워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그럴 수 있습니다. 초상집같이 슬프고 우울한 삶이 잔칫집처럼 흥겹고, 모든 것이 넘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순종하면 됩니다.
둘째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인 나사로가 죽어 그들이 슬픔에 싸여있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 그랬더니 죽은 지 나흘 된 송장이 살아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삶에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봅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산도 옮길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죽었던 삶이 살아나고, 죽었던 육체가 살아나고, 죽었던 기업이, 나라가 살아납니다. 산 같은 문제도 옮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가복음 17장의 문둥병이 걸린 사마리아인에게도, 누가복음 18장에 소경이 눈을 뜨게 한 후에도, 마가복음 5장의 혈루증 걸린 여인이 나은 후에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1장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모두 ‘믿음으로’ 행했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세 번째 방법은 한 맺힌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한나가 그랬습니다. 같은 남편을 섬기는데 브닌나는 아이를 잘도 낳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무자했습니다. 그런 한나 앞에서 브닌나는 행세를 해대고 멸시도 합니다. 한나는 가슴에 한을 품고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삼상1:10).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고, 더 많은 자식을 주셨습니다. 삶 속에 열매를 맺는 비료는 기도 외에 없습니다.
하만이 이스라엘 민족을 멸절시키려고 할 때, 에스더의 사촌 오라비인 모르드개는 왕비가 된 에스더에게 왕 앞에 나가 조국을 구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기도에 들어가면서 모르드개에게 부탁합니다. 온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를 위해 합심기도 해줄 것을요(에4:16).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사 대역전의 드라마를 연출하셔서 하만이 죽고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받는 부림절을 맞게 됩니다. 사면초가 같은 당신 삶에도 부림절이 올 수 있습니다. 한 맺힌 기도를 하면요.
여러분, 우리를 가난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고통 속에 몰아넣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어느 아비가 자식이 힘들고 어렵게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악한 부모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나님이 그러시겠습니까(마7:11)? 다 마귀의 소행입니다. 마귀가 귀신을 투입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기도하여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고, 역사하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동안 오로지 순종하지 못한 것을, 믿음이 없었던 것을, 기도하지 못했던 것을, 그리고 하나님을 과소평가했던 것을 회개합시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려야 하나님이 마음껏 역사하지 않겠습니까?
9회 말 투아웃까지 3-0으로 지고 있던 야구가 만루홈런으로 역전될 때의 기쁨을 아시지요? 그런 기쁨이 우리 삶에 찾아오도록 이제부터 순종과 믿음과 기도의 신앙생활을 시작합시다.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이 우리의 인생에 찾아올 겁니다. 인생은 일모작이 아니라 다모작이니 첫 농사를 망쳤다고 낙담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 역전승해봅시다. 가난에서 부유로, 병든 몸에서 건강한 몸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고통에서 행복으로!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할렐루야!
한번 다운되었다고 KO된 것이 아니다
연극은 막이 내려야 끝난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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