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특별산행을 다녀오고 퍽 오랜만에 산행기를 올리는 예감은 대둔산행에 가지 못한 긴긴 아쉬움 끝이어서겠죠?
대둔산은 너무 아쉬웠답니다. 산을 몰라도 그 산은 안다할 만큼 몇안되는 산 지식 속에 자리한 산인데...
가을바람이 바다와 만나 산을 향해 불어오는 11월의 산은 달마산이었습니다.
이 산을 얘기하기 전에 제 개인적인 얘기를 올려도 될런지요?
남도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해남 달마산을 저는 무조건하고 기다려온 세월이 아주 길었습니다.
결혼하던 그 해에 발행된 베스트셀러 책 중에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문화유적 여행의 붐을 일으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답사여행의 길라잡이로 자리잡은, 제2의 교과서라 해도 손색이 없을 책입니다.
물론 너무 많은 분들이 읽었을 책이니 소개는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저 또한 많은 사람들처럼 그 책을 읽고도 아이 키우기 바쁜 나날들 속에서,
또 살아가는 당연한 이유처럼 그 시절엔 놀지 않고 취미를 유보시키고 살았고요.
그러도록 책은 여러번을 읽었습니다.
그 첫째권의 제 1코스가 바로 남도답사 일번지 - 강진,해남 편이었습니다.
지금 제 옆엔 아쉽게도 책이 없지만 그 첫번째의 감동은 쉬 잊혀지지 않고 해마다 누적되어온 어떤 그리움처럼
강진,해남은 오랜 기다림의 땅이었습니다.
드디어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마치 문화유산 답사여행의 시기처럼 인식하는 저의 뇌 구조.
아이들에게 강진 다산초당과 청자도요지, 내친김에 땅끝까지..
그러고도 무위사와 영랑생가, 미황사를 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볼 것은 너무 많고 일정은 따라주지 않는데, 제 욕심이려니, 마음을 참을 수 밖에 없었지요.
다시 주위에 강진,해남을 항상 같이 붙이며 내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추천하던 끝에 다시 한 번 더 해남땅을 밟습니다.
이번엔 대흥사입니다.
초의선사와 김정희의 차 담소로 유명한 남도 끝의 대사찰이라던 대흥사와 유선관,녹우당,미황사 등등..
제게 언제부턴가 남도땅이라 하면 제 고향인 경상도가 아니고
가보지 못한 강진,해남,완도 등의 전라남도의 붉은 황토흙이 숱한 인생사를 낳은 전라도 땅이 인식됩니다.
책의 제목이 이렇게 사람의 기억에 고스란히 남나 봅니다.
수많은 일화가 소설처럼 각인된 이야기들을 이제 뒤로 하고 미흡하지만 제 나름의 산행기를 써나가겠습니다.
답사여행을 정말 좋아하지만, 지리적 눈은 유아수준인 저에게 저 건너의 섬이 완도라고 하더군요.
몇 해전에 땅끝에서 완도로 가는 배를 보며 다음을 기약하던 마음의 장소. 산에서 보니 또 모르겠더군요.
사람들은 어떻게 비슷비슷한 산을 보고 저 봉우리의 이름을 알고 비슷한 섬을 보고 저 섬의 이름을 알까?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싶은 그런 바램처럼 제 마음엔 언제나 지리눈이 그렇습니다.
아까 왔던 길도 다른 골목에서 나오면 다시 백지로 되는 길눈. 빨리 길눈이 자라고 싶습니다.
길눈이 어두운 한비야가 어떻게 세계 오지여행가가 되었는지...헤매는 그 재미라 했습니다.
그럼 저도 아직 헤매는 재미에 빠져 있는 거겠죠?
바위와 바위가 산 정상을 수놓던 그 산을 이렇게 오를 줄은 몰랐습니다.
산은 언제나 그냥 바라보던 것이지 저 속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이 있으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겨우 여섯번 산행했다고 무얼 알겠냐만,
아이로 치자면 한글도 배우고 잘하면 영어도 흉내낼만한 나이기도 하니, 깊은 맛은 몰라도
그 모름으로 인해 계속 재미를 놓지지 않으려는 발버둥 같은 마음도 있지요.
바람이 차운데, 산은 계속 다녀야겠고 그러면 대망의 눈꽃을 볼 날도 오겠구나!!
희망을 품는 순간처럼 영롱한 것이 또 있을까요?
바위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마냥 다양함을 뿜습니다.
달마산의 바위를 보고 달마대사의 어느 초상을 떠올려서 달마산이라 했을까요?
멀리로 바다가 기웃대는 모습조차 산과 하늘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약간 흐린 날씨.
높은 곳에서 바다와 섬을 바라보는 장소를 사랑하는 저는 고향 땅의 느낌을 쉽게 떠올립니다.
다도해. 아름다운 섬들의 장난기가 파스텔톤 하늘색 위에서 찬바람에도 그치지 않습니다.
저 또한 놀던 아이때로 돌아가 팽이 한 번 돌리고 저 먼 바다 한 번 바라보는 눈이 됩니다.
그 팽이 돌리는 사이 어른으로 변했어도 늘 저들은 저 모습 그대로 해마다의 겨울 일감을 풀어놓겠죠.
바다 사람에게 겨울이라고 휴면기가 아닙니다. 그 바다의 일감들을 보고자란 저에게는 떠오르는 가족 중에
할머니의 풍경이 있습니다. 찬 바람에 바깥 한길 가에서 늘 굴껍질에 줄을 끼우기도 하고 가리비 껍질에
줄을 끼우기도 하며...털옷에도 콧물 훔쳐가며 노년의 소일거리 삼던 할머니의 순박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겨울이어도 농한기가 따로 없고 우리 마을의 누구라도 방바닥에서 쉬 누워있지 않던 고향의 풍경.
해남 땅은 남해와 너무 닮아 추억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만질 수도 없는 할머니의 손을...한 번 잡아드리고 싶습니다.
억새들의 운무는 아름다운 가을길
바람이 그렇게 불러 줍니다.
산행하며 처음으로 보온도시락을 쌌습니다.
신혼 때 남편은 새벽밥을 싸는 일이 잦은 건설회사에 다녔습니다.
보온도시락 싸는 신혼재미를 새벽에 해 본 저는, 보온도시락이 주는 이미지가 그렇게 고정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특별한 한두번 보온도시락을 쌀 일이 있었지만 그 때도 새벽밥은 아니었습니다.
이 날, 신혼 이후로 새벽 보온도시락을 싸는데, 어느 순간 옛날의 동작이 떠올랐습니다.
계란 반숙을 꼭 밥 사이에 넣었던 그 동작을 이제는 하지 않는구나, 생각을 해가며...
산에서 바라본 미황사의 전경.
하지만 어딘지 허전합니다. 미황사는 유독 달마산 미황사라고 해야 옳게 부른 것 같습니다.
강진,해남이 남도답사 일번지라 불러야 제대로 하는 것처럼
미황사는 달마산 미황사라 해야 제대로 부르는 거라는.. 괜한 저의 고집입니다.
미황사의 유명한 대웅보전 현판글씨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
흔히 무위사 극락보전을 추사의 대표느낌이라 하고 미황사 대웅보전을 이광사의 글씨와 닮았다 했습니다.
추사의 글씨는 획과 획 사이에 옹골찬 기백이 보이는데
이광사의 글씨는 자랑하지 않는 섬세함, 시원하지는 않지만 바르고 정확하며,
그러기에 멋지다기 보다는 근사하다는 평을 받는 것이 특징이랍니다.
알록달록한 색이 바래져 세월을 지나온 긴긴 흔적처럼 은백색으로 남은 단청은 유난히 곱습니다.
미황사 대웅보전은 보면 볼수록 이광사의 글씨와 어울려 보입니다.
어느 글에서 본 듯한데...미황사는 땅끝으로 향할 듯 날렵한 추녀를 가진 대웅보전을 가졌다고...
달마산의 능선이 미황사를 품어주는 소담한 터에 바다로 내달리듯 추녀끝이 가뿐합니다.
산행을 마치고 난 후의 느낌이 그냥 그 절을 목적으로 했을 때와 바라보는 깊이가 다른가 봅니다.
산에서 줄곧 내달려온 자신이 곧 바다로 계속 갈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이게 하는 걸까요?
다시 본 미황사에서 그 아름답다는 노을은 못 보았지만 대웅보전의 추녀맛을 좀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세시에 차는 다시 땅끝으로 향합니다. 가족끼리 왔을 때 샀던 그 곳에서 햇김을 장만하고
전망대와 토말비를 보고 산책길이 바다를 끼고 도는 길을 걷기도 하니, 완전 여행온 기분입니다.
찬 날씨에 짧은 산행이 적절했습니다.
땅끝에 서서 김지하는 '애린'을 낳았고
땅끝의 시인 황지우를 낳았고
황석영도 다녀가고 수많은 작가들의 산실인 전라남도 해남 땅끝에서
저는 또 추억할 거리가 많아 좋았던 하루였습니다.
어딜 가든 좋은 산사람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고생하신 산 선배님들에게도 늘 건강한 산의 인상이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며...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