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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발전소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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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손가락 물, 충격, 두려움
현기욱 추천 0 조회 130 25.06.26 15:16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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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5.06.27 09:02

    첫댓글 기수와 화식이가 떠났던 날.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과거엔 주말에도 근무를 했었다.
    낡은 봉고차를 기수가 운전했고, 화식이와 경희가 동승하고 있었다.
    주말 오전에 성남, 강동구에서 일을 마치고 양평동 사옥으로 귀사하는 시간.
    사당역 부근이 엄청 막혔다고 했다.
    그래서 핸들을 돌려 사당역 사거리 - 이수역 - 동작대교 - 강변북로 - 양평동으로 가려고 했단다.
    오후에 다른 약속이 있어 경희는 이수역에서 내렸고, 그후 불과 7-8분 만에 두 형제는 유명을 달리했다.
    깊은 밤, 한강에서 시신을 인양한 뒤 고무보트로 이송했다.
    경희는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시신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가까이 오지도 못했다.
    그녀의 공포, 그녀의 충격, 넋이 나간 듯한 영혼, 혼절 직전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경희는 두 형제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곧바로 사직했다.
    평생을 선교사로 봉사하며 살겠다고 했다.
    120여 명 직원들의 채플과 큐티를 인도했던 화식이와 경희.
    경희는 모든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고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회사를 떠났다.,
    벌써 33년 전 일이다.
    지금도 어느곳에선가 선교, 봉사, 헌신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부디 건강하기를 기도한다.

  • 작성자 25.07.16 22:16

    86년 11월 26일.
    오전 10시 경 석모도에서 강화도로 가던 '카페리호'가 화물과적으로 전복됐다.
    서해에서 발생한 최악의 참사였다.
    당시 나는 해병 2사단(김포)에서 복무 중이었다.
    김포와 강화 사이엔 '염하수로'가, 강화와 석모도 사이엔 '석모수로'가 있다.
    그 수로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물살이 매우 빨랐다.
    밀물과 썰물 때문이었다.
    또한 개펄로 인해 물속에선 자신의 손바닥도 보이지 않을 만큼 혼탁했다.
    그 사고로 총 28명이 목숨을 잃었다.
    12구의 시신은 선실에서 인양했으나 16구는 영영 찾지 못했다.
    끝내 실종으로 처리됐다.
    "아니 '태평양'도 아니고 '석모수로'에서 16명이 실종돼? 이게 말이 되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수심 30-40미터, 유속 빠름, 시계 제로.
    시신이 몇 킬로미터를 떠밀려 갔을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시야가 좋은 태평양이라면 작업이 훨씬 유리했을 터였다.
    우리 대원들이 투입되어 선실 내부의 시신들은 인양했으나 흩어진 사체는 영영 찾을 수 없었다.
    악전고투 했으나 불가항력이었다.
    슈트 위에 무거운 납벨트를 찼어도 고도로 훈련된 대원들이 낙엽처럼 떠밀렸다.
    물 속은 무서웠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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