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9.9.24(화) 15;00-19;00
★산책코스; 한양도성 박물관-낙산 성곽길(내부)-이화장-낙산 정상 관망대- 낙산 성곽길(외부)-혜화문(3km)
★참가인원(9명); 산책및 식사(7명), 저녁식사(2명)
★저녁식사/장소; 17;00-19;00(서울고깃집;02-742-9966)
-낙산 정상에서-
사계절 중에서 산책하기 가장 좋은 계절은 가을이다. 반창회는 가을을 맞이하여 서울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 낙산 성곽길을 택하였다. 서울 도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일상을 벗어난 걷기 좋은 길은 서울 성곽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울 성곽은 어디에서나 가닿을 수 있다. 서울 성곽은 약 600년 전에 축성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유서깊은 곳이다. 낙산은 산이라고 하지만 됫동산처럼 야트막하여 누구나 쉽게 산책삼아 오를 수 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낙산 성곽 구간은 동대문에서 혜화문까지 2,1km로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다.
동대문역 1번출구에서 낙산 성곽 내부로 들어서면 한양도성 박물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한양도성 박물관은 한양도성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유물을 전시한 곳이다. 한양도성 박물관에 들려서 성곽의 역사에 대한 관련지식을 축적하고 산책에 나섰다. 한양도성은 1396년(태조5) 1월9일부터 전국에서 징발한 장정 11만8천7백명을 동원하여 쌓은 성곽으로, 성돌 하나하나에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따라 18,627m 성벽의 축조를 98일만에 완료하였다.
공사간에 동사자와 부상자가 속출하였고 전염병까지 돌아 병사하는 사람이 있었다. 태조 때는 평지는 흙, 산지는 돌로 쌓고 성돌에 구간을 표시하는 숫자를 새겼다. 그러나 세종대 이후부터, 숙종, 순조 시기에는 모두 돌로 수축공사를 하고 성돌에 군,현의 이름, 공사시기, 공사책임자, 공사 감독자 등의 이름을 새겼다. 이 성돌을 각자성석(刻字城石)이라고 한다. 다양한 시기와 유형의 각자성석이 280개 이상 전해지고 있다. 세계최초로 공사 실명제를 도입하였던 것이다.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성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시기와 축성기술의 발달과정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한양도성은 전체구간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하였다. 낙산 성곽길을 따라서 창신동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창신동의 60년대 모습은 대부분 무허가 판자촌이었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골목 양 옆으로 빽빽이 들어선 달동네 집들은 마치 갯바위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조가비 같았다. 낡고 허름한 좁은집, 지저분하고 어두컴컴한 좁은 골목길, 비탈길 등은 창신동의 대명사였다. 전인구는 학창시절에 누나 집에 얹혀살면서 학비를 벌기위해
매주 일요일에 아이스케끼통을 어깨에 메고 비탈진 창신동 골목길과 신당동을 누비고 다니며 하루 20원 벌이로 물 한지게 값의 20배 해당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1964년도 당시는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생활 환경이 매우 열악한데도 불구하고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였다. 천재에 가까운 실력이다. 전인구 동문은 감회가 새롭다고 하였다. 창신동은 2014년부터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되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드라마 시크릿가든, 미생, SBS패션왕, 영화 건축학개론의 주무대는 창신동이었다.
낙산 성곽길에서 이화장으로 가는 골목길 계단은 미로와 같았다. 소셜줌마 '김영희'의 먹방스튜디오 포토존에서 단체사진과 각자 인생샷을 하고 이화장에 도착하였다. 이화장은 보수공사로 문이 잠겨있었다. 문 앞에서 이화장을 배경으로 인증샷을하고 발길을 돌리려고 하였으나 문이 갑자기 열려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전인구 동문의 전화 덕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업회 사무실장의 안내로 이승만 동상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화장 경내로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들어온 것만도 감지덕지 하였다.
이화장이 있는 지점에는 이화정이란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화정은 배꽃이 무성한 지역에 세워진 정자로 풍경이 절경이었다고 한다. 지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집인 이화장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돈암장에서 이화장으로 옮긴 후 8개월 살다가 대통령 당선 후에는 경무대로 이사하였다. 대통령 직에 있으면서 가끔 이화장에 들러 정원과 뒷산을 산책하기도 하였다. 1960년 4.19 혁명 후에는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 후 1개월 가량 이화장에 있다가 화와이로 망명하였다. 1965년 7월14일 향년 90세 나이로 서거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업적도 많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를 받지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룩한 업적 중 백미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다.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킨 대통령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자유를 누리는 것도 이승만의 정치적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미군 보호막 아래 10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이화장 담벽을 끼고 낙산 정상으로 향하였다. 낙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이화장 벽화마을, 홍덕이밭이 있다. 이화장 벽화마을은 옛날 교복체험을 할 수 있다.
옛 고등학교 교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는 대만 청소년 관광객들을 만나 원더플을 외치자 매우 기뻐하면서 싱글벙글하였다. 1964년 당시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감회가 깊었다. 교복이 이렇게 멋있는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입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닿지않아 그냥 발길을 돌렸다. 벽화마을을 지나 계단길로 올라가면 홍덕이밭이 나온다. 홍덕(나인)이란 여인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불모로 잡혀갔던 봉림대군(효종)을 따라 심양에 머무르면서 채소를 가꾸워 김치를 담가서 봉림대군에게 날마다 드렸다.
봉림대군 (효종)은 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홍덕이의 김치맛을 못잊어 홍덕이에게 낙산 중턱의 채소밭을 주어 홍덕이밭이라 하였다. 낙산 정상에 오르니 북한산, 도봉산, 오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이 파노라마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암문을 통하여 혜화문으로 향하였다. 낙산 정상에서 혜화문에 이르는 성곽길은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낙산 성곽외부에서 성돌을 보면 태조, 세종, 숙종, 순조 때 쌓은 돌들이 섞여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낙산 성곽 수축공사는 세종 1422년에 광희문에서 낙산 정상까지는 전라도 화순, 함열 주민들이,
그 이후 혜화문까지는 충청도 음성,영동 주민들이 담당하였다. 이러한 기록들이 성돌에 새겨져 있다. 왜냐하면 성곽이 붕괴되었을 때는 책임소재를 명확히 밝혀야하기 때문이다. 교우들과 함께 살갑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심드렁하게 걷다보니 어느새 혜화문에 다다랐다. 혜화문은 한창 보수공사 중이었다. 저녁식사 약속시간이 다가와 한성대역 부근 서울고깃집으로 이동하였다. 채광병 동문 부부는 미리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매우 반가웠다. 식당은 좁지만 정갈하였다. 돼지고기 생삽겹살에 소주와 막걸리를 곁들여서 정겹게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장갑문 동문은 분위기 메이커로 개그맨 못지않게 웃음을 선사하곤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커피집에 들러 얼음 커피로 2차 뒤풀이하고 가을 반창회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얼음 커피는 장갑문이 유사하였다. 오늘은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힐링하면서 한양도성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반원들이 적극적인 호응으로 동참해줘 매우 고마웠으며 보람된 반창회로 가슴이 뿌듯하였다. 개인 사정으로 반창회에 참석하지 못한 반원들에게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6반 반창회 브라보!
<반창회 예산 사용실적>
①이월금액; 1,955,765원
②수입; 150,000원
③지출; 196,240( 식비;186,000원, 간식; 10,240원)
④잔액; 1,909,525원
낙산 성곽길 내부에서 한양도성 박물관으로 가는 길
한양도성 박물관 내부
한양도성 박물관에서 성곽 내부 길 을 따라 산책
이화장으로 가는 골목길 소셜줌마 '김영희'의 먹방 스튜디오에서
이화장 정문 앞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 앞에서 거수경례 후 묵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 촬영
이승만 전대통령의 동상과 건물 배경
이화장 담벽을 따라서 이동
이화장 벽화마을
대만 청소년 학생들의 옛날 교복과 모자를 쓰고 좋아하는 모습
낙산 정상에 오르는 계단
홍덕이밭
낙산 정상에서
한성대학교
혜화문으로 가는 암문을 빠져나와서
혜화문으로 가는 삼선동에서
낙산 성곽길 종점에서
한성대역 부근 서울 고깃집
반창회 참석한 교우들과 채광병 부부
저녁식단(생삽겹살)
첫댓글 밑에서 두 번째 사진(시계 방향): 성근, 창호, 광병, 갑문, 인구, 학천, 완식, 명선…모두 10년 전 모습 그대로인 듯하네. 건강도 모두 좋아 보여. 이런 모임에 참석할 수 없어서 늘 아쉽지만, 마음은 늘 함께하고 있다네. 모두 잘 지내게.나는 은퇴하고 일때문에 받던 스트레스가 없어지니 각종 건강 지표가 모두 정상으로 돌아와서 기쁘다네.
형기 오래간만이야. 형기도 6반이지. 6반은 성동고 16회 중 가장 모범적인 반으로 정평이 나있네. 계절따라 반창회를 하지만 만날 때마다 반갑고 마치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지. 형기가 먼 이국에 있지만 카페를 통하여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형기가 건강이 좋다고 하니 나로서도 기쁘네. 항상 몸 건강 관리 잘하기 바라네. 댓글 고맙네.
사진을 보니 돼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생각이 간절하네. 그래도 건강 생각해서 삼겹살은 좀처럼 먹지 않지. 소식에 채식 위주, 담맥질은 적게 섭취하고 매일 운동하는 걸 원칙으로 해서인지 오늘 아침에 잰 혈압이 119, 당뇨 없고, 콜레스테롤 정상. 아직 약 먹는 게 없다네. 운동과 섭생에 유의하고 건강 검진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네. 이 나이에는 다들 건강 열심히 챙겨서 여생을 즐겁게 보낼 계획 세우길 바라네. 올리는 글 빠짐없이 보고 있다네.
형기는 기억력도 대단하고 글솜씨도 명필이지. 나이들어서 채소음식과 병행해서 단백질 음식은 먹어야 된다고 생각되네. 단백질은 근육을 강화시켜주는 음식이네. 참고하기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