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
DNA로 어떤 病 걸릴지 미리 알고, 매머드 복제… 곧 현실이 된다
지식 콘서트 박태현 원장의 '생명공학과 미래' 삼성사장단 강연 멸종 동물 되살리기… 꽁꽁 언 매머드 세포 핵 이용 코끼리 자궁 통해 출산 추진 중 DNA 재조합 기술… 박테리아의 놀라운 복제 속도 인간 성장호르몬 생산에 활용 유전자 분석·BT·IT·NT의 결합… 유전자 결함 미리 예측하고 원숭이 뇌파로 로봇팔 작동 가능
박태현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 |
박태현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이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와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생명공학과 미래융합기술'이란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컴퓨터를 모르면 '컴맹'이라고 하듯 앞으로 생명공학을 모르면 '생맹'이 되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이미 와 있다. 오늘 이 자리를 생맹 탈출의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쥬라기공원'과 매머드 복제
할리우드에선 생명공학과 관련된 영화도 많이 만들어졌다. '쥬라기 공원'이 대표적이다. 옛날에 공룡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가 나무에 앉아 쉬고 있는데, 나무의 진액이 흘러내려서 그 안에 갇힌다. 나무 진액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 굳어져 호박(琥珀)이 됐다. 한복 마고자 단추로 쓰이는 누런 것 말이다. 과학자들은 호박 안에 주사기를 넣어서 모기의 배 속에 있는 공룡 피에서 DNA를 끄집어 내 공룡을 복제한다. 영화는 완전 허구지만, 이와 매우 비슷한 프로젝트를 실제로 과학자들이 시도하고 있다. 매머드 복제가 그것이다. 시베리아는 땅을 조금만 파고들어가면 영구 동토층(凍土層)이 나온다. 매머드 중에는 거기에 묻혀 있는 것들이 있는데, 꽁꽁 얼어서 잘 보관돼 있다. 거기서 손상되지 않은 핵을 추출한다. DNA 정보는 그 핵 속에 있다.
매머드는 공룡과 비교하면 또 다른 장점을 갖고 있다. 매머드는 멸종했지만, 사촌 격인 코끼리가 아직 지구 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끼리의 난자 속 핵을 꺼내고 그 자리에 매머드의 핵을 대신 집어넣은 뒤, 이 난자를 코끼리의 자궁에다 착상시킨다. 나중에 코끼리는 매머드 새끼를 낳게 된다. 이건 허황한 얘기가 아니다. 2008년 11월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매머드를 만들자'란 기사로 소개됐다. 다만 아직도 많은 기술적인 문제들이 있어서 실제로 매머드를 만들지는 못했다.
생맥줏집에서 싹튼 유전공학
도대체 DNA가 뭐기에 이렇게 중요할까?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DNA가 이중 나선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서 노벨상을 받았다. 이중 나선구조란 난간이 2개인 사다리가 똑바로 뻗지 않고 꼬인 모양을 말한다.
DNA 정보는 사다리의 발판에 해당하는 부분에 들어 있다. 4가지 알파벳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4가지 알파벳이 어떤 순서로 나와 있느냐가 DNA가 가지고 있는 정보다. 이 서열의 순서를 읽는 작업을 수행한 것이 바로 '휴먼 게놈 프로젝트'다. 이 서열의 개수가 인간의 경우에는 30억 개에 달한다. 컴퓨터는 0과 1의 2진법으로 작동하는데, DNA는 ATGC라는 네 가지의 알파벳을 사용하니 4진법을 써서 정보를 저장하는 셈이다. ATGC가 어떤 순서로 나오느냐가 바로 DNA가 저장하는 정보다.
컴퓨터에 들어 있는 정보를 USB에 담아서 다른 컴퓨터에 옮기듯 생명체 간에도 정보를 옮기는 일이 가능하다. 사람의 DNA 정보를 USB 같은 데 담아서 박테리아 안에 집어넣으면 이 박테리아가 사람의 정보를 자기 정보인 줄 알고 읽는 거다.
이 기술이 바로 'DNA 재조합 기술'이다. 이 기술은 1973년 UC샌프란시스코 허버트 보이어 교수와 스탠퍼드대 스탠리 코언 교수가 공동 개발했다. 두 사람은 1972년 하와이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 중 해변의 생맥줏집에서 만났다. 보이어 교수가 "저는 DNA 자르는 '가위'를 연구하는데, 당신은 뭘 연구하나요?"라고 묻자, 코언 교수가 "전 플라스미드라고 하는, 고무 밴드같이 동그랗게 생긴 DNA를 연구합니다"라고 답한다. 둘은 각자의 연구를 합하면, 세상을 놀라게 할 새로운 기술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 사람은 테이블 위에 냅킨을 펼치고 볼펜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인간 DNA 중 성장 호르몬 정보를 가진 부분을 가위로 잘라내고, 이것을 고무밴드와 풀로 붙인다. 이것을 박테리아에 집어넣으면 박테리아가 인간 성장 호르몬을 생산할 수 있다.' 박테리아는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한 마리가 두 마리 되는 데 고작 20분밖에 안 걸린다. 몇 시간 키우고 나면 엄청나게 와글와글하다. 하와이 맥줏집에서 싹튼 아이디어가 이듬해 현실화됐다. 유전공학의 시초다.
복제양 돌리의 탄생
1996년 획기적인 생명공학 기술이 탄생했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 아니라 체세포 복제를 통해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것. 돌리의 탄생에는 A, B, C라는 세 마리의 양이 필요했다. A의 체세포를, 핵을 제거한 B의 난자에 넣어 세포 수를 불린 뒤, C의 자궁에 착상시켜 태어난 양이 돌리다. 누가 제일 고생을 할까? 당연히 C다. 입덧도 하고, 산고(産苦)도 하고.
몇 년 뒤 네이처에 부고가 떴다. '2003년 2월 18일 복제양 돌리, 진통제 과다 투여로 사망.' 복제양 돌리의 무덤엔 비석도 세워져 있고, 꽃 잔디가 은은히 깔려 있다. 양의 평균 수명이 11~12세인데 6.5세까지 살았으니 사람으로 치면 50세 정도까지 산 셈이다. 복제양 돌리가 새끼를 낳을 수 있을까? 체세포 복제를 통해 태어난 돌리가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새끼를 낳을 수 있을지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그런데 6마리나 낳았다.
할리우드의 상상력은 기술 발전과 함께 종종 현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 쥬라기 공원’ 에 나왔던 공룡 복제는 매머드 복제 노력으로 이어졌고, ‘ 스파이더맨’ 에 등장했던 BT·IT·NT의 융합 역시 진행형이다.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가운데)는 유전자를 분석해 맞춤형 치료에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활용, 유방암 위험을 줄이기 위한 유방 절제술을 감행했다. |
영화 '가타카'와 휴먼 게놈 프로젝트
지난 2000년 클린턴 미 대통령은 '휴먼 게놈 프로젝트' 완성을 발표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DNA 전체 정보를 읽었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 우리는 조물주가 생명체를 창조할 때 사용했던 언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휴먼 게놈 프로젝트가 가져올 미래를 '가타카(GATTACA)'란 영화가 잘 보여준다. 제목부터가 DNA 정보를 구성하는 알파벳 ATGC로 구성돼 있다. 영화는 유전자 차별이 있는 미래 사회를 묘사한다. 미래에는 유전자 디자인을 해서 태어난 사람들이 상류 계급을 차지하고, 주인공처럼 '자연산'은 하등 계급이다. 가타카 영화 장면을 보면, 5분 전 남자 친구와 키스를 한 여인이 DNA 분석 기관에 찾아가 입술을 내민다. 남자 친구의 입술 세포를 통해 DNA를 분석해 달라는 것이다. 이제 학력이고 아이큐고 볼 것 없고, 유전자를 가지고 신랑감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현실이 된 유전자 분석 사회
현실 세계에서도 이런 회사들이 운영되고 있다. 2011년 자료에 따르면 디코드미(deCODEme)라는 회사는 2000달러, 내비지닉스(Navigenics)는 1000달러, 23앤미(23andMe)는 500달러를 제시했다. 현재로선 인간 DNA 서열 30억 개 정보를 다 읽어봤자 그 의미를 모르는 게 대부분이다. 글씨는 알아도 그 뜻을 모르는 셈이다. 그중에서 의미를 아는 부분만 읽어서 알려주는 회사가 그런 회사들이다.
23앤미라는 회사는 고객의 침 속에 있는 DNA를 뽑아내 유전 코드를 판독해서 질병과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통보해 준다. 당신은 이런 문제가 있고, 이런 것은 괜찮고, 이런 병의 증세를 보이면 이런 약을 먹고, 그야말로 환자 맞춤형 진단 서비스를 해 주는 것이다.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검사 결과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로 나오자 유방을 절제했다. 브라카라는 유전자에 결함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인데, 그런 경우 5명 중 4명이 유방암에 걸린다고 보고돼 있다.
'스파이더맨2'에 나타난 BT와 IT의 융합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융합이 되면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게 된다. '스파이더맨 2'는 그 흥미로운 예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악당으로 나오는 과학자는 자기 뇌와 로봇 팔을 나노와이어로 연결한다. 뇌는 BT, 컴퓨터로 제어하는 로봇 팔은 IT, 나노와이어는 NT의 영역이다. 나노와이어란 세포보다도 굵기가 가는 아주 가느다란 선을 말한다.
이와 유사한 기술이 실험실에서 재현됐다. 연구자들은 원숭이의 팔을 묶어 못 움직이게 해놓고 대신에 로봇 팔을 달았다. 원숭이의 머리에 전극을 꽂고, 원숭이가 생각하는 것을 전기 신호 형태로 읽어서 로봇 팔에 전달한다. 자기 팔이 묶인 원숭이는 학습을 통해 로봇 팔을 사용해 먹이를 받아먹을 수 있게 됐다.
'스파이더맨 2'에선 BT의 산물인 스파이더맨과 융합기술의 산물인 악당이 기차 위에서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선 스파이더맨, 즉 BT가 승리한다. 왜? 스파이더맨이 주인공이니까. 하지만 앞으로는 융합기술의 산물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도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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