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2024년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열 번째 강연이 제주도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50분에 교래자연휴양림으로 향했습니다. 제주도에 온 김에 자연이 잘 보전된 곳을 답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날씨가 좋아 차창 밖으로 한라산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1시간 30분을 달려 10시 20분에 교래자연휴양림에 도착했습니다.
교래자연휴양림 곶자왈 숲길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화산 폭발로 형성된 곶자왈을 활용한 길이라고 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과 바위, 돌, 나무가 헝클어진 거친 느낌을 있는 그대로 살려져 있었습니다.
경사가 완만해 무릎이 아픈 스님도 쉽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낙엽을 밟으며 가을을 만끽하네요."
오랜 세월을 살다가 고사한 나무들이 마치 미라처럼 누워있고, 굵직한 나무들마다 으름덩굴이 뱀처럼 나무를 휘감고 있었습니다. 여러 모양의 나무와 식물들을 보니 신비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오름까지 가려고 했으나 길이 점점 험난해졌습니다. 절반인 2,000m까지 갔다가 2시간 만에 입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12시가 넘어 인근 식당에서 잔치국수를 간단하게 먹고, 제주 성읍민속마을로 향했습니다.
옛 제주 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돌담과 돌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제주도만의 특징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고즈넉한 성읍마을의 가을 풍경을 둘러본 후 차를 타고 표선 해수욕장으로 향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제주도 특유의 거센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바람이 너무 강해 오래 머무를 수 없어 다시 차에 올라탔습니다. 해안을 따라 달리며 푸른 바다를 눈에 담았습니다. 검은 현무암에 부딪히며 일렁이는 하얀 물보라와 가을 햇살 아래 춤추는 억새까지 어우러져 차 안에서도 제주도의 가을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책도 하고 바다 구경도 하고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 후 오후 4시에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한 후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5시 50분에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오프라인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강연이 열리는 곳은 제주시 한라대학교 안에 위치한 한라아트홀 대극장입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도착하자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제주 시민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제주 행복센터에서 행복학교를 졸업한 행복시민 30여 명이 강연 준비를 해주었습니다.
6시 50분에 강연장에 도착한 스님은 대기실에서 손님들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먼저 보수 법사님과 초기에 제주도에서 정토회를 일군 강재연 보살님 부부가 스님을 찾아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이어서 제주 BBS(불교방송)에서 윤두호 사장님이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장님은 제주어로 듣는 법륜스님의 법문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법륜 스님의 책 내용을 제주도 방언으로 바꾸어서 방송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청취자들의 호응이 아주 좋습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주도 방언을 할머니들만 알아듣지 젊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어요?”
“제주도 방언을 살리자는 취지니까요. 젊은 사람들도 호응이 아주 좋습니다.”
사장님은 제주도 방언으로 낭독하는 법륜 스님의 법문을 직접 핸드폰으로 들려주었습니다.
차담을 나눈 후 기념사진을 찍고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장에서는 사전 공연으로 인디밴드 요술당나귀가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해학과 풍자가 담긴 노래 가사에 청중들 모두가 크게 호응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신나는 공연이 끝나고 스님이 얼마 전 전쟁과 지진 피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시리아와 지속가능한 개발을 하고 있는 부탄을 다녀온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나서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8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메웠습니다.
먼저 스님이 제주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방금 영상 잘 보셨죠? 우리는 물을 물 쓰듯 하다 보니 물이 얼마나 귀한지를 잘 모릅니다. 또 음식이 남아도니까 음식이 얼마나 귀한지를 잘 모릅니다. 옷도 풍족하게 입다 보니까 옷이 얼마나 귀한 줄 모르고 삽니다. 그런데 세계 곳곳에는 아직도 인간의 생존에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물, 최소한의 음식, 최소한의 물자들이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시리아 서북부 지역에는 국내 난민이 한 350만 명 정도 있습니다. 내전이 일어난 지 10년이 넘었는데 전쟁이 지속되고 있어서 난민촌 아이들은 학교 교육을 못 받고 있습니다. 방금 영상에서 보았듯이 50만 명 이상의 어린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나마 지진으로 파괴된 학교를 복원해서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가 있지만, 난민촌에 있는 아이들은 아예 학교 교육 자체를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쟁 피해 지역을 다녀보면 전쟁이라는 게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오고, 얼마나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되는지 그 실상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호감도 역시 아주 높은 나라에 속합니다. 이런 대한민국인데, 세계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가장 걱정하는 게 무엇일까요? 저한테도 외국에서 전쟁 날 것 같지 않느냐며 전화가 자주 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쟁의 위험에 대해 별로 걱정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걱정을 하나요?
우리는 전쟁에 대한 걱정을 안 하지만, 밖에서 볼 때 우리는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높은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 모두가 적어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갈등이 심해서 설령 통일을 좀 뒤로 미루더라도 전쟁만은 안 됩니다. 이런 인식을 우리 국민 모두가 확고하게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6.25 전쟁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고, 전쟁 경험이 없는 사람만 살게 되어서 그런지 ‘까짓 거 뭐 전쟁하면 되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전쟁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전쟁의 피해는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이루어 놓은 많은 기반시설들과 재산들이 모두 폐허가 되어버립니다. 요즘 이스라엘의 가자 폭격, 레바논 폭격,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폭격을 한 번 보세요. 도시의 형체가 사라지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다 부서지는 이런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러니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확고한 관점을 우리 모두가 가져 주었으면 합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다섯 명이 먼저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현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8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은 온라인 강연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재미있는 질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중고 물품을 너무 많이 사 와서 속이 터진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남편이 중고물품을 너무 많이 사 와서 열불이 납니다
“저는 치매를 앓으면서 대소변도 못 가리는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너무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다가 ‘자기가 싼 똥을 깔고 누워 있는 사람의 심정도 헤아려보라’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어머니에게서 받은 혜택을 잊어버리고 한탄만 하던 제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누워서 천장만 보고 대소변도 못 가리는 어머니의 고충도 보였습니다...(중략)”
스님이 질문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오늘 자기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다 할 거예요? 그래서 질문이 뭐예요?” (웃음)
“우리 하르방(남편) 문제입니다." (웃음)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질문을 하려나 싶었습니다.
"남편이 당근 마켓에서 중고 물품을 너무 많이 사들입니다. 엿장수 해도 될 정도로 너무 많이 사들입니다. 과수원 귤창고에 장롱, 책장이 벽면을 가득 채웁니다. 하루는 또 당근마켓에서 러닝머신을 사서 트럭에 싣고 와서는 저보고 같이 내리자고 했습니다. 내리고 보니까 너무 낡았고 청테이프로 여기저기 감아서 간신히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화가 나서 얼마에 샀냐고 하니까 5만 원에 샀대요. 제가 속으로 이거 버리려고 해도 5만 원은 더 줘야겠다 싶어서 막 열불이 나는 거예요. 운동을 딱 3일만 하고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더 이상 말하면 또 버럭하고 싸움이 되니까 그냥 놔두었습니다. 그게 5년 전 일입니다.”
“5년 전 얘기 말고 지금은 무엇 때문에 고민이예요?”
“하루는 귤 작목반을 해체하면서 나온 나무 빨래트를 아깝다고 주워왔어요. 이미 창고에 빨래트가 가득 쌓여 있는데 말이죠. 빨래트를 내리면서 보니까 받침대가 너덜너덜 해서 도저히 쓸 수 있는게 아니였어요. 그걸 보고 저도 모르게 ‘엿장수질 이제 그만해!’ 하고 버럭 화를 내게 되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남편이 귤 박스를 바닥에 내팽겨쳐 버렸어요. 바닥에 널부러진 귤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그제서야 제 눈에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게 3년 전 일입니다.”
“이제 3년 전 얘기예요? 또 어떤 이야기를 더 해야 돼요?”
“3년 전 일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럼 뭐가 중요한 일입니까?”
“심지어 아이들한테도 퇴근하는 길에 당근마켓에 물건 나왔으니까 그거 받아오라고 시킵니다. 아이들은 맞벌이하면서 바쁘게 사는데 아이들까지 귀찮게 하니까 그게 너무 괴롭습니다.”
“남편이 자기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이 다 내 마음에 들 수는 없어요. 또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배우자도 내 마음에 다 들 수는 없어요. 남편하고 연애해서 결혼했어요? 중매해서 결혼했어요?”
“남편의 여동생과 제가 친구였습니다. 시누이가 제 친구입니다.”
“친구의 오빠랑 결혼했다는 거네요. 어쨌든 결혼을 할 때는 남편이 괜찮아 보여서 결혼했어요? 아니면 누가 시켜서 억지로 했어요?”
“지금 친구도 자기 때문에 자기 오빠랑 결혼해서 제가 고생한다고 말할 정도예요.”
“어쨌든 그때 당시에는 남편이 괜찮아 보여서 결혼했어요? 싫은데 억지로 결혼했어요?”
“그때는 괜찮아 보이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쨌든 남편이 괜찮아 보여서 결혼했다는 거네요. 지금까지 주로 귤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남편이 귤 농사를 잘 지은 편이에요? 아니면 잘못 지어서 자기를 고생시켰어요?”
“스님의 법문 중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남편은 똥지게에 똥을 20퍼센트만 담아서 슬렁슬렁 다니는 사람이고, 저는 80퍼센트를 담고 낑낑거리면서 다니는 사람입니다. 결혼생활 내내 서로 잘 안 맞았습니다.”(모두 웃음)
“스님 법문에서 누가 현명한 사람이라고 그랬어요?
“스님 법문에 비추어 보면 제가 바보입니다.”(모두 웃음)
“제가 거지하고 살면서 배운 것 중에 하나인데요. 저는 똥지게에 똥을 80퍼센트를 담아서 낑낑거리고 옮기고, 거지는 20퍼센트만 담아서 슬렁슬렁 다녔어요. 처음에는 ‘일을 저렇게 해서 되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제가 몸살이 나서 누워서 생각해 보니까 거지의 행동에 일리가 있더라고요. 거지가 저한테 말하기를, 몸으로 일하는 품팔이 노동자는 몸이 재산이라는 겁니다. 내 몸 아프면 알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내 몸을 내가 보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슬렁슬렁 일을 하는 이유는, 첫째, 자기 몸을 보호하는 방법입니다. 둘째, 주인들은 부리는 사람이 노는 꼴을 못 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잠깐 쉬고 있을 때 주인의 눈에 띄면 주인은 왜 일을 안 하고 노느냐고 언짢게 생각합니다. 내가 일하는 성향을 알면 ‘열심히 일하고 잠깐 쉬는구나’ 하고 이해를 하겠지만, 주인이 나를 전부 알 수 없으니 쉬고 있을 때 보면 게으름 피우는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80퍼센트를 담고 다니면 힘들어서 안 쉴 수가 없다는 거죠. 반면에 20퍼센트를 담고 다니면 안 쉬고 계속 일할 수 있으니까 주인이 보기에 하루 종일 부지런히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나는 내 몸을 챙길 수 있어서 좋고, 주인이 보기에도 좋고, 서로 좋다는 겁니다. 저처럼 낑낑대고 일해봐야 몸만 축나고, 잠깐 쉬는 걸 주인이 보면 노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주인의 눈 밖에 나고, 서로 손해라는 거예요.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거지니까 그 따위 소리를 한다 싶었는데, 막상 내가 몸살이 나서 드러눕고 며칠 일을 못하게 되니까 거지의 말에 일리가 있구나 싶더라고요. 그것처럼 남편이 슬렁슬렁 꾸준하게 일을 하면 남편의 건강에도 좋잖아요? 자기가 보기에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지 그래도 남편이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맞습니다.”
“남편이 건강은 하지요?”
“고혈압이 있긴 하지만 건강합니다. 고혈압 관리한다고 러닝머신 사다 놓고 3일 사용하고 그만이에요.”
“남편이 자기가 번 돈으로 중고물품을 사는 거예요? 질문자가 번 돈으로 산 거예요?”
“대부분 자기가 돈을 벌어서 삽니다.”
“그러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잖아요.”
“예! 맞습니다.”
“지금 당근마켓에서 이것저것 헌 물건을 사서 가져오는 게 재산을 축낼 만큼 금액이 많아요?”
“그 정도는 아닌데, 보고 있으면 속이 답답합니다.”
“자기가 답답한 건 이해가 돼요. 그런데 답답한 이유는 남편이 중고 물품을 사 와서 답답한 거예요? 아니면 자기가 남편을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한 거예요?”
“제가 그걸 스님께 질문드리는 겁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남편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내가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고 저 인간이 왜 저러나 싶을 때는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래요? 그 사람이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아서 그래요?”
“제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지요.”
“그럼 누가 답답해요?”
“제가 답답해요.”
“그런데 ‘우리 남편이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면 누구 마음이 편안할까요?”
“어제 아침에 보니까 또 그 러닝머신 위에 기다란 앵글을 사서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속이 터지지요.”
“자꾸 말을 돌리지 말고 제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해보세요. 내가 그동안 남편을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했잖아요. 그런데 ‘남편이 그래서 이런 행동을 했구나’ 이렇게 내가 남편을 이해하게 되면 남편의 마음이 시원할까요? 내 마음이 시원할까요?”
“제 마음이 시원하죠.”
“그럼 자기 마음을 시원하게 하면서 살아야지 왜 답답해하면서 살아요?”
“남편을 보면 열불이 나니까요.”
“열불이 난다는 건 남편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는 거예요. 똑같은 남편의 행동을 보고 ‘남이 쓰던 걸 사 오니 돈을 아낄 수가 있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러닝 머신을 가져오는 걸 보고 ‘요즘 건강이 안 좋아져서 몸을 챙기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운동 좀 하려고 가져왔지만 못 할 수가 있잖아요.
‘새것을 150만 원 주고 사 와서 안 쓰는 것보다 헌 것을 5만 원 주고 사 와서 안 쓰는 게 차라리 낫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중고물품은 좀 사 와도 손실이 크지 않아요.
쓸만한 물건이었으면 남편의 차례가 오기 전에 다른 사람이 잽싸게 사갔을 겁니다. 남편이 살 정도면 아무도 안 사가는 싼 물건이라는 거예요. 비싸 봐야 5만 원밖에 안 되니까 술 먹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술값도 안 돼요. 술 먹고, 바람피우고, 어디 가서 사고라도 치고 다니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남이 쓰다가 내어놓은 것이 아까워서 가져오는 사람이니까 훌륭한 사람이에요.
정신적으로 분석해 보면 남편이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아서 버리는 걸 아까워하는 성향인 것 같아요. 저도 그런 면이 좀 있어요. 길 가다가 책장을 누가 버려놓은 걸 보고 주워 와서 사용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실에도 테이블과 의자를 남이 쓰던 걸 주워와서 벌써 20년을 썼어요. 그 의자에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사람들이 앉아서 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지금껏 아무 문제가 없어요. 주변 사람들은 갖다 버리자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직 쓸만해요. 지금과 같은 환경 위기 시대에는 남편 같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남편이 이렇게 물건을 아껴 쓴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저한테 질문을 한 거 아니에요? (웃음)
남편한테 중고물품 사서 쌓아두지 말라고 수없이 잔소리를 했는데도 안 고쳐진다는 건 내가 남편을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바꿀 수 없다는 거예요?”
“바꿀 수 없다는 겁니다.”
“바꿀 수 없는데 바꾸려고 하면 누가 괴롭다고요?”
“제가 괴롭습니다.”
“이왕 고칠 수 없는 거 그냥 놔두면 나라도 안 괴로울 것 아니에요? 내가 잔소리를 해도 중고물품을 살 것이고, 잔소리를 안 해도 살 것인데, 괜히 잔소리해서 귤 박스만 손해 봤잖아요. 잔소리를 안 했으면 귤 박스를 집어던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는 남편이 귤 박스를 던질 때 울었습니다. 평소에 계란 다루듯이 소중하게 귤 박스를 나르는데, 세상에 귤 박스를 패대기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남편이 자기가 농사지은 건데 귤이 귀한 걸 알까요? 모를까요?”
“알겠죠.”
“그 귀한 귤을 패대기칠 때는 그만큼 성질이 났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성질이 났으면 자기를 화나게 만든 마누라의 귀싸대기를 한 대 때려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차마 내 마누라는 못 때려서 아까운 귤을 집어던진 겁니다. 그렇다면 귤을 던진 걸 차라리 고맙다고 해야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아까운 귤을 패대기칠 수 있냐고 항의하지 말고 이렇게 말해봐요.
‘아이고, 여보. 나를 못 때려서 귤 박스를 던졌구나. 성질 나는 중에도 내 생각을 해주어서 고마워’
사실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귤이 귀해도 마누라보다는 덜 귀하기 때문에 귤 박스를 집어던진 겁니다. 마누라를 한 대 치고 싶은데, 차마 마누라를 못 때리니까 마누라가 제일 아끼는 그릇 같은 걸 깨는 거예요. 마누라가 아끼는 그릇을 깨면서 자기감정을 푸는 거죠. 마누라는 차마 못 때리고 애꿎은 그릇만 깨는 거예요. ‘그릇이 무슨 죄가 있다고 아까운 그릇을 깨냐’ 이렇게 따질 게 아니라 ‘마누라를 아끼다 보니 그릇을 깨는구나’ 하고 재미있게 생각해 봐요.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사람을 때리고 싶은데 차마 못 때리니까 다른 걸 집어던지는 겁니다. 귤 박스를 던질 때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구나. 저렇게 화가 나는 중에도 나를 생각해 주네’ 이런 생각이 딱 들면 눈물이 날 정도로 남편이 고마울 거예요. 이런 생각은 안 해봤죠?”
“네, 안 해봤습니다.”
“질문자는 온 신경이 귤에만 가 있어서 그래요. 아픈 시어머니를 돌보는 게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법문을 듣고 ‘똥오줌 받아내는 나보다 똥오줌 못 가리는 시어머니가 더 힘들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바뀐 것처럼 귀한 귤을 집어던지는 남편을 보고 ‘차마 나를 못 때려서 아까운 귤을 던졌구나. 화가 나는 중에도 내가 귤보다 귀하니까 나를 두고 귤을 던졌구나’ 이렇게 마음을 바꿔 보세요. 귤이 더 귀했으면 귤을 던지는 대신 자기가 맞았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 자기 생각을 바꾸어야 됩니다. 남편은 바꿀 수가 없어요. 남편의 나이가 어떻게 돼요?”
“내일모레 칠십입니다.”
“나이가 그 정도면 바뀌기가 어렵습니다. 중고 물품 사 모으는 게 크게 손해 나는 정도가 아니니까 남편을 이해하는 마음을 내보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