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1~7 / 삭개오를 만나 주신 예수님
(눅 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눅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눅 19: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눅 19: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눅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눅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눅 19: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해서 하늘에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 나의 마음에 들어와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가정에 들어와 함께 사시면 우리의 집이 천국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교회에 들어오시면 우리 교회가 천국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시고자 문을 두드릴 때 우리는 문을 열어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문을 열어 드리지 않으면 예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을 위하여 문을 열어놓고 예수님이 들어오시도록 예수님을 열렬히 찾고 있던 삭개오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를 기뻐하사 그를 만나 주시고 그의 집에 거하심으로 그와 그의 집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순간은 하나님과 삭개오가 만나는 천지창조의 위대한 순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마음과 우리 집과 교회에 초청하여 나와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다 구원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2절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그곳에 순결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세무서장이요, 부자였습니다. 당시 세리장은 세리를 고용하여 세금을 거두어들여서 경매금을 로마 정부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이 가졌습니다. 자연히 세리장은 더 많은 세금을 거두려고 노력했고 세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당시는 로마의 식민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세리장은 매국노 취급을 받았습니다. 성경에도 세리는 창녀들과 함께 공인된 죄인으로 나옵니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죄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자신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당시에 세리와는 식사를 해도 안 되고 교제를 해도 안 되는 시대였습니다.
삭개오는 이런 세리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 되어서 많은 돈을 벌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부자가 되었지만, 양심을 잃었고, 친구를 잃었고, 동족을 잃었고, 하나님을 잃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영생도, 하나님 나라도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사단이 있었고 그의 마음은 어둡고 두렵고 불안했고 고독했습니다. 그는 지옥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난 잃어버린 양이었습니다.
3~4절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기 마을을 지나가신다는 정보를 알고 어떤 사람인가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에 세리 출신인 마태가 있다는 것을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레위도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이기적이고 얼굴이 어둡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고 난 후에 희생적이고 밝은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레위 마태의 마음속에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삭개오도 레위와 죄인들을 변화시키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삭개오는 단지 예수님이 누구인가 알고자 나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인격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도 레위처럼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면 그도 변화될 것 같았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자 했지만, 그가 예수님을 보는 데는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키가 작았고 사람이 많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까치발을 뛰어도 볼 수 없었고, 세리 장부를 놓고 올라가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발길질을 당하고 밟혀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끈질긴 집념과 도전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니 돌무화과나무가 보였습니다. 그는 체면을 차리지 않고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을 가리고 몰래 예수님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이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가난한 마음, 갈급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삭개오처럼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자 애를 쓸 때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알고자 힘을 쓸 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끊임없이 예수님을 알고자 힘을 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과 고난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알고자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았을 때 부활의 예수님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더 많이 알고 싶었습니다.
그는 죽는 그날까지 예수님을 알기 위해 운동선수와 같이 달음박질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더욱 성자로 변화되었습니다.
5~7 예수님은 삭개오를 처음 보았지만, 그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전지하신 능력으로 그를 보는 순간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셨습니다. 그의 소외된 마음을 아셨습니다. 회개하고 새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삭개오의 이름도 부르지 않고 별명으로 불렀을 것입니다. 그의 별명은 땅개, 난쟁이, 찰거머리, 흡혈귀, 드라큐라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순결이라는 그의 이름 삭개오를 불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고 삭개오의 집에 묵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 같은 죄인을 찾아서 하늘나라에서 오셨습니다.
그들을 만나고자 육신의 모습으로 오셨고 그들을 만나고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잃은 양인 삭개오도 예수님을 찾고자 하시니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예수님의 갈망과 삭개오의 갈망이 서로 일치하였습니다.
이 순간이 천지창조가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삭개오의 집에 묵으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참으로 죄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실 수 없는 더러운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에 거하시고, 우리의 집에 거하시고, 우리의 교회에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의 누추한 집에 거하고자 문밖에 서서 두드리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십니다. 예수님은 문을 강제로 딸 수 있는 힘이 있지만 강제로 따지 않으십니다.
인격적으로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시면 돌아가십니다.
우리는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찾았고 예수님은 삭개오를 찾았습니다. 이 둘의 만남은 극적인 만남입니다. 우리를 찾으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찾는 우리가 만날 때 교회가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삭개오는 자신을 영접하고 그의 집에 거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그는 급히 뽕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의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의 집에 모시고 들어가 예수님을 위해서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