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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로 가 가볍게 와인한잔을 하고, 대리 기사에게 운전석을 맡긴 채 영화와 정화는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옆머리를 창에 기대고선 영화의 눈길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들의 조명들을 하나의 흐름처럼 따랐다. 살짝 상기된 볼을 톡톡 손바닥으로 토닥이며 정화가 슬그머니 그 가까이로 궁둥이를 붙였다. 취한듯이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짚고선 살며시 영화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닿는 감촉에 창을 향한 그의 얼굴이 반대편 어깨 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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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영과 함께 떠나기 며칠 전.그때도 지금처럼 두 사람은 저녁을 먹고, 나란히 택시 뒷좌석에 앉아, 그녀는 영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그는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누구나 할법한 일상적인 소소한 대화들을 주고받았다. 도중 대화에 틈이 생겼고, 영화는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보영이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영화야' 라고.
부름에 그는 다시 고개를 그녀 쪽으로 틀며'어.' 라고 조금은 무뚝뚝하게 답했다.
'나 다 봤어'
직감적으로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뭘'
알아차렸음에도 그는 시치미를 뗐다. 딱 거기에서 멈추도록 해야 했다. 그 이상 그녀가 입을 열지 않게끔.
'너랑 보나'
그땐 왜 그랬던 걸까. 왜 그렇게까지 잔인할 만큼 그녀의 입을 통해서
'방에서……'
확인해 두고 싶었던 걸까.
시작부터가 황보영이 아니라, 황보나. 인 거라고. 황보영은 그저, 황보나에게 닿기 위한, 징검다리였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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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초저녁임에도 선술집은 인산인해였다.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두 녀석은 겁도 없이 떡하니 교복차림으로 커다란 막걸리 통을 반씩이나 비워놓았다.
"양호가 그러던데? 까딱하면 고자 됐을 거라고."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킨 상기가 대접을 내려놓고선 키득거렸다. 양호실이건, 응급실이건, 늘 보내는 쪽에 속한 녀석이 최홍만 같은 거구의 사내도 아니고. 모양빠지게 계집애한테 허벅지나 물려서 양호실 신세를 지다니.
"또라이 새끼, 그 와중에도 기어이 그건 안 돌려줬군."
표주박으로 한 사발 막걸리를 대접에 퍼 담은 상기가 '졌다.'라는 듯 중얼거렸다.
죽기 살기로 작정해야만 나올 수 있는 힘. 황보나가 그런 거라면 진짜인 것이다. 상처가 덧날수도 있으니 병원으로 가 제대로 소독 받으라던 양호의 말. 그럴까도 했지만 관두기로 했다. 황보나의 흔적. 달콤한 키스도 아닌, 짜릿한 섹스도 아닌. 미친개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어 놓은 진짜 흔적. 이왕이면 평생 아물 생각 말고, 매일같이 욱신거리고 쓰라렸으면.
그렇게 내가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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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그럴래? 언제까지 그렇게 과거 속에 발이 꽁꽁 묶인 채로 그렇게..."
얼굴 곳곳에 퍼진 물방울이 줄기가 되어 주룩- 턱밑으로 흘러내렸다. 마주한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며, 수없이 되묻고, 그만큼 채찍질을 가하며 붙잡고, 또 붙잡는다.
대충 얼굴을 닦고선 주머니에 넣으려던 손수건을 쥔 손길이 그에 앞서 울려대는 진동의 진원지로 향했다.
"네 어머니"
[오늘 집에 영화 초대했어. 나랑 네 아버지는 사정이 생겨서 빠지는 걸로 해놓을 테니까. 이번엔 정말 확실하게 말해야 할 거야]
"알겠어요."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신은 왜 인간을 만든 걸까?' 그땐 저도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 답해주지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 보나 역시 되묻고 싶다.
'신은 왜 나를 만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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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넓은 식탁. 그 위에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들. 가깝지 않은 거리에 마주앉은 두 사람.
"여러 번 전화했었어."
"휴대폰을 잃어버렸어요."
독종. 그렇게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는데도, 보나는 끝내 휴대폰은 돌려받지 못하였다.
"어머니가 그러시던데, 네가 나한테 할 말이 있을 거라고."
"그래야겠죠."
"네 앞에 그 나물 이쪽엔 없는 거 같은데, 좀 가져다줘. 아니다, 있어 그냥. 가지러 갈게 내가."
수없이 다가오다가도 어느새 또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또,
"그냥 여기 앉는 게 나을거 같네. 괜찮지?"
제멋대로, 영화는 보나 가까이에 와 있다.
기계 같은 젓가락질. 딱딱한 숟가락질이 반복되었다. 무슨 반찬인지, 어떤 맛인지조차 무감각할 정도로. 보나에게 고정된 영화의 시선이 불처럼 뜨겁다. 한때는 그래. 그 뜨거운 불길 속으로 무작정 몸을 내던진 적도 있었다. 데일 걸 알면서도, 끝내 타버릴 걸 알면서도. 그와 하나 되는 순간만큼은, 재가 되어 흩어진대도.
"불쾌해요, 그런 눈빛"
"언젠 좋다며."
"안 그래요 이젠."
"아까 장난으로 보낸 그 문자 때문…"
"안 하면 안 돼요. 그 약혼?"
각진 보나의 음성이 영화의 말 중간을 잘랐다. 불안했다. 조금 더 지체하면 또다시 그가 지른 불 속에 어김없이 뛰어들어 버릴 것만 같아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약해지는 쪽은 그가 아니라 그녀일 테니까.
"왜?"
되묻는 영화의 얼굴에 불쾌감이 없다. 오히려 질 듯,말듯한 미소가 폈다.
"모르는 거잖아요. 혹시라도……"
"혹시라도?"
"깨어날지도."
미소가 쩍쩍 갈라지고, 폈던 그의 얼굴이 굳었다. 달리, 말을 꺼낸 보나의 얼굴은 변화 없이 덤덤했다. 잔인할 만큼.
"결국 깨지게 됐네요."
"……."
"금기씩이나 걸어놓고는."
되도록 빨리, 이르게 정리해야만 했다. 째깍째깍. 들림도 없는 마음의 초침이 돌면 돌수록. 진심을 흘릴 것 같아서.
"그럴지도 모르지. 어쩌면 내일 당장일지도."
죄를 지었고, 그에 달하는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
"또다시 나 때문에 차에 뛰어든다고 해도"
"……."
"그래도 난, 황보영이 아니라, 황보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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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숨겨진 진심을 알고 나서부터. 보영이 변했다. 그녀는 유학을 포기했고, 자연스레 영화도 유학길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란히 같은 대학에 붙었다.
지정이나 다름없는 클럽 VIP룸 분위기는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버젓이 CC인 남자친구 영화가 있음에도, 보영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같은 과 선배인 동준과 끈적하다 못해 지나치게 깊은 키스를 나누며 그의 몸에 거의 붙다시피 몸을 밀착시키고선 혀 놀음에 한창이었다. 그쯤이면 더한 신체접촉도 받아주겠다 싶어 동준은 짧은 미니스커트로 쭉 벗은 보영의 맨다리에 손을 얹었다. 키득키득 교태 섞게 웃으셔 보영은 간지럽다며 그의 손을 붙들었다. 결코,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아랫입술을 쭉 빨듯 당기며 동준은 그녀의 손을 자연스레 풀어내며 허벅지 위로 손을 올렸다. 곧 적당 선이 넘었고, 그의 손은 그녀의 허벅지 안쪽으로 접어들었다. 거부감없이 손길을 받아들인 보영이 지긋이 아랫입술을 물며 으읏. 하며 귀엽게 신음했다.
또 하루가 지났다. 날이 밝았고 호텔 방 창안으로 들어오는 새벽빛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내의 벗은 몸의 등이 훤히 드러났다. 밤새 꺼두었던 휴대전화를 켰다. 부재중 전화 77통화. 그중 반은 영화였고, 나머지 반은 엄마와 동생 보나였다. 정확히는 엄마가 재혼해 생긴 남편의 딸.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런 아이를 벌써 2년씩이나 짝사랑하면서 여전히 보영 옆에 붙어 있게끔 한 빌어먹을 유영화가 저의 남자라는 것.
차라리 한순간 욕정으로 참지 못해 불장난한 거라면, 눈 한 번 질끈 감고 보영은 영화를 데리고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간이 될 수도, 잠깐이 되지도 않았다.
[어디야 거기.]
"신라호텔, 곧 로비로 내려가 있을 테니 데리러 와"
호텔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보영 앞으로 기다란 그림자가 졌다 사라졌다.
"애처럼 언제까지 이럴래"
"유영화가 황보나를 황보영 동생으로만 여길 때까지."
"그럼 평생이라는 거네, 됐다. 그만 일어나자"
더 얘기해봤자 피곤해질 거라 생각해 영화는 먼저 일어섰다.
이럴 수는 없다. 아무리 빈 껍데기라도 해도 엄연히 유영화는 황보영의 남자다.
콰창!
보영의 손에서 날아간 유리컵이 영화의 어깨를 스쳐 앞바닥에 부딪쳤다.
"그럼 왜!! 처음부터 거절하지 않았어!! 맘도 없으면서, 좋아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았으면서!! 날 왜 받아준 거야 왜!!!"
파편으로 변한 유리조각. 이게 두 사람의 결말임을 알고서도 영화는 멈추지 못하였다. 보나에게 전하려던 마음, 그전에 보영이 먼저 그에게 온 것이다. 처음엔 그저, 알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황보영 말고, 황보영 동생으로서의 황보나가.
잘못됐다는걸 알면서도, 그르침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닿고 싶었다.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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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분은 과거입니다.
첫댓글 대박!!!!입니다!!ㅋㅋ
작가님!!!상기는 누구이고 정화는 누구이고 양호는 누구인가요?ㅠㅠ
상기는 백 휘 친구이고, 정화는 영화가 선본 상대이며, 양호는 양호선생입니돠 ㅋㅋ
백휘가 누구였죠??
남주요 ㅠㅠ
아!!!!알았어요!!!근데 보영이눈 죽었나요?
곧 밝혀집니다 ㅎㅎ
그리고 영화는 보나놔두고 선 본 건가요?또한 상기는 백 휘 친구인데 보나좋아하는 건가요??
보나 두고 선본거 맞습니다 ㅎㅎ 상기는 백휘 친구이나 보나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싫어하죠 ㅎㅎ
아ㅎㅎ영화가보나를좋아하군요ㅜㅜ드디어알앗어용 재밋게보고가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마리아도 요새 글쓰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아ㅋㅋ 영화가 저랑 이름이 똑같아서 더 정감가요ㅋㅋ
영화란 이름, 남,녀 둘한테 다 잘어울려서 썩 매력적이라는 ㅋㅋ 감사합니다~
잘보고가여
잘보고 가주셔서 감사합니다~
음...남주는 백휘인가요?? 아님 영화인가요? 헷갈리네요~~ 아 진짜 첨부터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끝까지 함께 할게요~
남주는 흠흠, 백휘에 가깝죠. 뭐 영화도 그만한 비중이긴 하지만~ㅎㅎ 잼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함께 꼭! 지켜볼겁니다. 우케케
역시 민마님이대박이에요 보영이랑 백 휘 ㅋㅋㅋㅋㅋ 어떻게 이어질질 굼굼하네용
하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요녀석들을 어떻게 연결을 시켜야 할지 헤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