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중세시대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얼른 생각할수 있는 이미지는 칼을 든 기사나 요상한 마녀, 난장이, 까마귀, 집시, 마법사 같은 것 들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책이나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각인된 이미지이다.
유럽문화의 전통과는 다른 동양문화권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런 것들이 본토인들처럼 익숙할 수는 없다.
물론 세계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점차 글로벌화되어 가고 있고 유난히 자국의 전통을 지켜가는데 약하면서 서구 문화를 수용하는데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한국인들인지라 점차 서구인들과 동질화되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는 살아온 과정 자체가 유럽인들과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중세시대는 우리에게 신비로움일수 밖에 없다. 유럽의 중세시대는 유럽인들의 과거이지 동양인들의 과거가 아닌 탓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전해진 전통음악이 철저히 단절되어 현대음악과는 완전한 분리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유럽인들은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살아 쉼쉬는 선율들을 종종 현대의 음악에 응용하곤 한다.
중세 포크풍의 음악을 들려주는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퍼 락그룹 Deep Purple의 기타리스트였던 리치 블랙모어가
오랜 방황을 끝내고 최종적으로 정착한 곳은 다름아닌 유럽 중세시대에 대한 동경을 담은 음악을 추구하는 블랙모어스 나이트였다.
사실 그가 묘한 인상의, 사적인 견해이지만 고결하다거나 순수하다거나 하는 인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 여성 보컬리스트 Candies Night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결성한다고 했을때도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이들은 탄탄한 반응을 얻으며 세번째 앨범까지 내 놓았다.
한국에서도 이들의 앨범은 비교적 손쉽게 구입할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희귀반으로 취급받고 있는 이들의 데뷔작 "Shadow Of The Moon" 역시 예전에 LG 미디어를 통해 한국에 라이센스로 공개되었고 두번째 앨범과 세번째 앨범인 본작, 그리고 가장 최근에 공개된 베스트 앨범까지 모두 한국의 포니캐년 코리아를 통해 라이센스로 발매되었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기타리스트인 리치 블랙모어의 한국내 지명도에 근거한 힘일 것이다.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음악은 여러가지 선율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락적인 면이나 포크의 정서, 그리고 유럽의 전통음악이나 이름모를 민속음악등의 선율이 복합되어 있다.
연주를 위해 사용한 악기도 기타나 키보드 같은 기본적인 악기 외에 백파이프나 옛날 현악기등을 적극 도입하여 상당히 다채로운 인상을 준다.
물론 기본적인 사운드 연출은 복고풍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세시대를 다룬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쓰여도 어울릴법한 분위기의 사운드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과거로의 회귀 정서이자 본능에의 갈구이다. 좀더 근본적인 인간의 상황에 접근하고자 하는 인위적인 노력이랄까?
요란하고 웅대하지는 않지만 당연스럽게 신비감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
그렇다고 음악이 어렵지는 않다. 감정이 풍부한 캔디스 나이트의 보컬라인에 실려 들려지는 선율은 쉽게 쉽게 감상자를 파고든다. 리치 블랙모어의 이름값 외에 이들의 음악이 일본이나 유럽의 음악팬들에게 먹힐수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 세번째 앨범은 이전작들과 다른 뚜렷한 개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다양해진 음악적 감성을 노출하고 있다.
포크 음악의 거장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한 'The Times They Are A Changin'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야릇한 사운드로 바뀌었으며, 프랑스나 독일, 스페인등 유럽 각국의 트레디셔널 음악에 기반한 아트 포크에 가까운 곡들도 꽤 많이 보인다.
'The Storm' 같은 곡은 중동풍의 멜로디를 도입하여 다소 다이나믹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으며 'All Because Of You'같은 곡은 싱글로 발매해도 좋을만큼 멜로디와 구성이 좋은 팝의 모습을 하고 있다.
'Praetorius'같은 곡은 깔끔한 켈틱풍의 인스트루멘틀곡이며 'Benzi-Ten'같은 곡에서는 중국풍의 멜로디를 차용하고 있어 흥미를 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