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안컵이 대한민국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중국과의 경기를 2:0으로 승리하면서 산뜻한 대회 출발을 보였지만, 일본과 북한과의 경기에선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우승을 확정 짓기까지는 대회 마지막 경기인 중국-일본 전을 기다려야했다. 그 탓에 우승이란 확실한 성과를 가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승에 보내는 환호와 축하도 있지만, 일본-북한전에서 시원한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두고 불만족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이번 동아시안컵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 2015 동아시안컵 우승! 대한민국! K리그의 힘! 출처: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1. 당연히 받아야할 우승팀으로서의 영광
어떤 대회든 우승팀은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다. 비록 3승으로 따낸 우승은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일부에선 대한민국의 축구가 일본,중국 그리고 북한까지 가볍게 누르고 승리하는 모습을 바랐고 또 당연하게 여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K리그는 J리그와 중국 슈퍼리그의 투자 규모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J리그와 슈퍼리그의 선수들로 구성된 중국과 일본의 면면을 만만하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번 동아시안컵은 대표팀의 핵심 선수인 기성용 등 유럽파는 물론, 중동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수비는 1골만 실점하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고, 공격진은 북한전에서만 끝내 골문을 열지 못했을 뿐 대체로 좋은 공격 작업을 선보였다. 일본전의 답답한 공격은 다소 아쉬웠으나, 일본전엔 중국전과 완전히 바뀐 엔트리로 나서면서 공격의 핵심 선수들이 결장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유럽파’들을 제외하고도 대한민국 대표팀은 1경기도 지지 않았다. 우승컵을 들어 올릴 자격이 충분했다.
동아시안컵에 출전한 우리 대표팀의 면면을 보면 새로운 얼굴들이 많았다. 팀의 핵심 선수였던 김승대, 이종호, 권창훈은 이번 동아시안컵을 통해 처음으로 슈틸리케 감독이 중용했다. 축구는 11명이 모였을 때 의미가 있는 스포츠이다. 1명의 선수가 바뀌어도 전혀 다른 팀 컬러가 나오기도 한다.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소집되었던 만큼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것이 쉽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K리그 선수들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더해 이렇게 준수한 경기력을 보이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는 것은 분명 고무적이다.
다른 참가국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일본의 경우 우리와 비슷하게 자국의 J리그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일본이 보여준 경기력은 무척 실망스러웠으며 받아든 성적표는 4위라고 쓰고 꼴찌라고 읽는 순위표의 가장 아래였다. 중국의 경우 대부분이 자국리그에서 활약하고 있기에 사실 상 1군이라고 봐도 무방했지만 우리 대표팀에게 밀려 2위를 차지해야 했다. 특히 대한민국 대표팀과의 맞대결에서 보인 경기력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2. 경기 내용 역시 4팀 중 최고
대회 첫 경기였던 중국과의 경기는 확실한 수준 차이를 보여준 경기였다. 중국은 전방부터 시작되는 대한민국의 전방 압박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수비에서 전방으로 연결하는 긴 연결에 의지한 공격에선 창의성이라곤 찾기 힘들었다. 공격 전개 전반이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 개개인의 실력이 수준 이하였던 건 아니다. 다만 조직적인 움직임에서 우리 선수들을 전혀 따라오지 못했다. 영리하지 못한 플레이를 하지 못한 것도 큰 문제였다. 연이은 K리그 선수들의 중국 진출로 인해 중국에 왠지 모를 피해의식을 갖게 된 축구팬들로선 기분 좋게 K리그와 대한민국의 강함을 즐길 기회였다.
일본과의 경기는 답답했다는 것에 동감한다. 하지만 일본과의 경기는 중국전에 내세웠던 선발과는 완전히 다른 선수들이 출전했다. 개인적으로 중국-북한전에 출전한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팀으로 완성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이 일본전에서 승리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선수들을 직접 확인하길 바랐던 것이다.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이 많았던 만큼 경기력이 일정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정확한 크로스가 부재했던 것은 분명 개선해야 할 점이다. 하지만 ‘스시타카’라는 별명이 붙으면서 점유율을 높게 유지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일본을 상대로 공격을 주도했고 좁은 공간에서 찬스를 분명히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괜찮은 점도 있었다. 특히 이재성 투입 이후 일본의 골문을 위협하면서 승리할 기회도 있었다.
북한전의 무승부는 분명히 아쉬웠다. 경기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절대로 못한 경기가 아니었다. 현재 축구계를 지배하는 화두는 압박과 간격이다. 단순히 골대 앞을 지키고 서는 정도의 밀집 수비가 아니라, 2줄 혹은 3줄로 촘촘히 서면서 수비의 강도는 더욱 강력해졌다. 수비 전술을 뚫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이다. 실제로 지난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이란의 수비를 뚫는 데 어려움을 겪다가 경기 막판 메시의 ‘마법’으로 진땀나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재성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골문을 위협했다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다만 마무리가 부족했을 뿐인데, 중요한 경기에서 찬스에도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은 '어린 팀'이 갖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앞으로는 발전시켜야 할 점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월드컵에서 골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면 될 일이다.
(△ 중국전과 일본전 엔트리 비교. 8명이 바뀌었다.)
3. 결과가 아닌 과정
이번 대회는 당연히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2018년 월드컵이다. 졸전 끝에 대회를 마쳤다면 슈틸리케 감독을 비롯해 대표팀이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의 무승부를 고려하더라도 분명히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대표팀의 핵심 전력을 이루는 유럽/중동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제외하고 치러진 대회라는 점도 이번 대회가 확실히 ‘과정’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슈틸리케 선수는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선수를 시험해볼 수 있었다. 김승대, 이종호, 권창훈이 새로운 주전 경쟁의 시작을 알렸고, 주세종, 이주용 등도 점검할 기회가 있었다. 2018년 월드컵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유럽파들이 합류한 이후에도 적당한 '주전 경쟁'과 '백업멤버 확보'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번 대회는 그러한 고민들을 해결할 자원들을 발굴하는 기간이었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 점점 쉽지 않아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장 전력이 강한 팀 중 하나이다. 예선 내내 일정 정도의 실험을 병행하면서도 승리를 따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번 대회는 매우 많은 실험이 있었음에도 준수한 결과를 낸 대회였다. 앞으로의 월드컵 아시아 예선의 전망이 밝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회였다. 이번 동아시안컵은 단순한 대회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과정’의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할 대회이다.
4. 언론의 '쉬운 보도'가 아쉽다.
맹활약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역시 K리그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K리그라는 말은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 가지 의미는 역시 ‘아시아 최강의 리그 K리그다.’라는 것이고, 하나는 역시 ‘국가대표팀과 한국 축구를 살릴 것은 K리그다.’라는 것이었다. 어느 쪽의 의미로 해석해도 맞는 말이다. 우리에겐 역시 K리그다.
언급한 것처럼 이번 우승은 충분히 높게 평가 받아야 마땅하고, 특히 K리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왜냐하면 이번 대회 내내 K리그 선수들이 보여준 경기력이 환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훌륭한 선수들이 매일 우리 동네에 있는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이라는 것을 보여줄 기회였다. K리그를 홍보할 최고의 기회에 우리 대표팀을 괜히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골키퍼가 말도 안 되는 선방을 선보이는 날엔 어느 팀이든 경기를 이기기가 힘들다. 우리가 못 넣은 것도 있지만 상대 골키퍼가 잘한 것도 분명하다. 북한의 골키퍼 리명국은 오늘 정말 멋진 선방을 선보였지만 모든 경기에서 그런 선방을 선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은 그저 리명국의 ‘되는 날’이었던 것뿐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잘한 것이 분명한데 0:0이라는 스코어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필요는 없다.(게다가 우리는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기자들이라면 ‘결과’에만 매달린 기사 작성에 조심해야 한다. 축구팬을 넘어서 일반 대중에게 우리 대표팀 전체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밀집수비에 당했다느니, 인민축구의 늪에서 허우적댔다는 등의 기사는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을 무시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경기를 제대로 보지 않은 팬들이라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기자들이 상황을 단번에 뒤바꿀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기자에게 통찰력이라는 것은 기본적 소양이란 생각이 든다. 단순히 경기 결과가 0:0이라고 해서 부정적인 표현으로 깎아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슈틸리케 호가 그간 지나온 맥락을 잘라먹고 북한과 무승부가 답답했다는 평가는 지나치게 '쉬운' 평가가 아닌가. 결과와 별개로 과정의 좋았던 점은 칭찬해야 한다.
(△ 해외파들도 긴장해야 될 것이다. 이재성은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출처: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한 대한민국 대표팀의 첫 우승에 축하의 말을 보내고 싶다. 더불어 K리그의 힘과 대한민국 축구의 힘을 보여준 대회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번 대회의 선전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축구에 있어 핵심인 K리그의 인기로 이어갈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각 팀의 젊은 에이스들이 대표팀에서도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이재성은 전주에서, 김승대는 포항에서, 이종호는 광양에서, 권창훈은 수원에서 매주 경기를 볼 수 있는 선수들이다. K리그를 '선수 유출'이라는 우울한 소식들이 점령했지만, 여전히 K리그엔 많은 재능들이 피치를 누비고 있다. 직접 경기장을 한 번 '와보라.'
http://blog.naver.com/hyon_tai
첫댓글 기사 굳...결국 어줍잖은 기자들로 인해 k리그에 편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되새겨 봐야할 대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