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부터 다룰 제57항은 양이 많습니다. 그래서 몇 회로 나누어 살펴볼 예정입니다.
‘가름’은 ‘나누는 것’을, ‘갈음’은 ‘바꾸거나 대체하는 것’을 뜻합니다. ‘가름’은 ‘가르다’에 ‘-ㅁ’이 붙은 형태입니다. 이때의 ‘-ㅁ’은 명사형 어미일 수도 있고, 명사 파생 접미사일 수도 있습니다. 규정에서 보인 예는 명사형 어미가 결합하여 동사로 쓰인 경우이고, “이기고 지는 것은 대개 외발 싸움에서 가름이 났다.”와 같이 명사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갈음’은 ‘갈다’에 접미사 ‘-음’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명사입니다. 만약 명사형 어미를 결합하여 동사로 쓰고자 한다면 ‘전등을 새것으로 갊.’과 같이 ‘갊’으로 적어야 합니다.
‘거름’은 ‘(땅이) 걸다’에 접미사 ‘-음’이 붙은 말입니다. 따라서 ‘*걸음’으로 쓸 법도 하지만, 단순히 ‘땅이 건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비료’를 뜻하므로 본뜻에서 멀어진 것으로 보아 소리대로 적는 것입니다. ‘걸음’은 ㄷ불규칙용언인 ‘(길을) 걷다’에 접미사 ‘-음’이 붙은 말입니다.
규정문의 용례 ‘영월을 거쳐 왔다’에서 ‘거치다’는 ‘경유하다’를 뜻하는 말입니다. ‘거치다’는 ‘무엇에 걸리거나 거리끼다’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ㅇ 칡덩굴이 발에 거쳤다.
ㅇ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거칠 것 없이 진행되었다.
‘걷히다’는 ‘걷다’에 피동의 접미사 ‘-히-’가 결합한 말인데, ‘걷다’ 자체가 여럿이다 보니 ‘걷히다’도 그 뜻이 다양합니다. ‘안개가 걷히다’에서는 ‘흩어져 없어지다’라는 뜻이고, ‘세금이 걷히다’에서는 ‘받아 모이다’라는 뜻이고, ‘그물이 걷히다’에서는 ‘한쪽으로 치워지다’라는 뜻입니다.
‘걷잡다’는 ‘걷다(거두다)’와 ‘잡다’가 합쳐진 말입니다. 주로 ‘없다’와 함께 쓰여서 ‘거두어 붙잡다’ 또는 ‘억제하다’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겉잡다’는 ‘겉’과 ‘잡다’가 합쳐진 말로, ‘겉으로 보고 대강 헤아리다’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는 앞의 내용이 뒤의 내용의 이유나 원인, 근거가 될 때 쓰는 접속 부사입니다. 어원적으로 보면 ‘그러하므로’가 줄어서 된 것입니다. 즉, 어미 ‘-므로’와 관련이 된 말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지런하다. 그러므로 잘 산다.”는 “그는 부지런하므로 잘 산다.”와 같이 고쳐 쓸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는 ‘그럼’에 조사 ‘으로(써)’가 붙은 말입니다. 이 말은 뒤의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 앞의 내용을 수단으로 삼는 경우에 씁니다. ‘으로(써)’는 수단이나 방법을 나타내는 조사이기 때문입니다. 규정문의 용례는 ‘은혜에 보답함’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함’을 수단으로 삼은 것이기 때문에 ‘그럼으로(써)’를 써야 하는 것이지요.
‘노름’은 도박을, ‘놀음’은 놀이를 뜻합니다. ‘놀음’은 물론이고 ‘노름’도 ‘놀다’에 접미사 ‘-음’이 결합한 말입니다. 이로 보건대 ‘노름’도 ‘*놀음’으로 적을 법합니다. 하지만, ‘노름’은 소꿉놀이나 공기놀이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행위를 나타냅니다. 즉, ‘놀다’라는 본뜻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어원을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입니다. 덤으로 ‘놀음’과 시각적으로도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 이점도 있습니다.
‘느리다’는 ‘빠르다’의 반대말입니다. ‘늘이다’와 ‘늘리다’는 ‘늘다’에 각각 사동의 접미사 ‘-이-’와 ‘-리-’가 결합한 말입니다. 둘 다 ‘늘어나게 하다’라는 뜻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늘이다’는 ‘길이’에 한정해서 쓰고, ‘늘리다’는 ‘길이를 제외한 대상’에 대해 씁니다. 즉, ‘본디보다 더 길어지게 하다’라는 뜻으로 쓸 때는 ‘늘이다’를 쓰고, ‘수량, 부피, 넓이, 재산, 능력 따위를 본디보다 더 커지게 하다’라는 뜻으로 쓸 때는 ‘늘리다’를 쓰는 것입니다. 아래 예문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ㅇ 늘이다: 고무줄을 늘이다/바짓단을 늘이다/엿가락을 늘이다
ㅇ 늘리다: 아파트 평수를 늘리다/학생 수를 늘리다/시험 시간을 30분 늘리다/세력을 늘리다/실력을 늘리다/재산을 늘리다/쉬는 시간을 늘리다
‘다리다’와 ‘달이다’는 모두 어원적으로는 ‘달다’(열을 받아 뜨거워지거나 졸아들다)에 사동의 접미사 ‘-이-’가 결합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둘의 표기를 서로 다르게 하는 까닭은 ‘달다’의 본뜻에서 가깝고 먼 정도에 따른 것입니다. ‘간장이나 한약 따위를 끓여서 진하게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달이다’는 ‘달다’의 본뜻이 어느 정도 남아 있기 때문에 어원을 밝혀서 적는 것입니다. 반면에, ‘주름이나 구김을 펴기 위해 다리미로 문지르다’라는 뜻을 가진 ‘다리다’는 ‘달다’의 본뜻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어원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대로 적는 것입니다.
‘다치다’에는 ‘상처를 입다’라는 뜻과 ‘무엇을 건드리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뒤엣것은 남한보다는 북한에서 널리 쓰이는 용법입니다. 어원적으로는 ‘닿다’와 관련된 말입니다. ‘닫히다’와 ‘닫치다’는 ‘닫다’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닫히다’는 ‘닫아지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로, ‘닫다’에 피동의 접미사 ‘-히-’가 붙은 것입니다. ‘닫치다’는 ‘강하게 닫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로, ‘닫다’에 강조의 접미사 ‘-치-’가 붙은 것입니다. ‘닫히다’와 ‘닫치다’의 가장 큰 차이는 앞엣것은 목적어가 필요 없는 자동사이고, 뒤엣것은 목적어가 필요한 타동사라는 점입니다. ‘닫치다’는 그리 자주 쓰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일을 끝내다’라는 뜻일 때는 ‘마치다’를 씁니다. 줄여서 ‘?다’로 쓸 수도 있지만 이때는 ‘?고, ?는, ?지’처럼 자음으로 시작하는 어미와만 결합할 수 있습니다. 널리 쓰이지는 않지만 ‘마치다’에는 ‘속에서 무엇이 받치거나 결리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맞히다’는 그 뜻이 다양합니다. 이 말은 ‘맞다’에 사동의 접미사 ‘-히-’가 붙은 것인데, ‘맞다’ 자체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적중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퀴즈의 답을 맞히다’가 그 예입니다. 흔히 ‘*퀴즈의 답을 맞추다’라고 잘못 쓰는 경우가 있는데, ‘맞추다’는 ‘대상끼리 서로 비교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맞히다’와 구분해서 써야 합니다. 둘째는, ‘눈이나 비 따위를 맞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ㅇ 우산을 갖고 가지 않아서 아이를 비를 맞히고 말았다.
셋째는, ‘좋지 않은 일을 당하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ㅇ 약속 장소를 잊은 바람에 본의 아니게 그녀에게 바람을 맞혔다.
넷째는, ‘주사나 침 따위로 치료를 받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섯째는, ‘쏘거나 던진 물체를 목표물에 닿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ㅇ 돌멩이를 넣은 눈덩이로 소녀의 얼굴을 맞히다니 너무 비겁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