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명품 편집 매장 'LN-CC'의 성공 전략
트렌드 리더들의 '뜨는 장소'_유명 브랜드·신예 디자이너 의류·신발 등 발굴해 판매
고객에게 특별한 체험 선사_예술작품처럼 꾸민 매장 예약 고객에게만…
온라인 매장의 '현지화'_현지 언어·통화로 표기 해외 배송·교환도 무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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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만원짜리 종이가방-작년 9월 LN-CC 온라인 사이트에서 33만원(185파운드)에 팔린 질 샌더 종이가방.
작년 9월 수퍼마켓에서 나눠주는 종이봉투 모양의 가방이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33만원(당시 185파운드)에 팔렸다. 반(半)영구 코팅 종이에 'Jil Sander(질 샌더)'라는 브랜드 이름이 쓰인 것을 빼면 일회용 종이봉투와 비슷했지만 3주 만에 전량 매진됐다. 독일 디자이너인 질 샌더가 작년 가을·겨울 패션쇼에 선보인 이 제품은 원래 비매품이었으나 런던의 한 명품 편집매장(select shop·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골라 한곳에 모아 파는 곳)이 팔겠다고 나서 히트 상품이 됐다.
이 매장은 요즘 세계 트렌드 리더들 사이에 '잇 플레이스'(it-place·바로 거기)로 뜨고 있는 LN-CC(Late Night Chameleon Cafe). 질 샌더·지방시·랑방·꼼데가르송·마르지엘라 같은 유명 브랜드 물건은 물론 실력 있는 신예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을 발굴·판매하는 '하이엔드(고급) 편집 매장'이다. 희귀 음반과 서적도 판다.
2010년 9월 문을 연 LN-CC는 첫해 가을·겨울 시즌 매출이 26만5000파운드(4억6000만원)였으나 지난해 같은 시즌에는 370만파운드(63억원)로 2년 만에 14배 늘었다. 7명이던 직원은 60명이 됐다. 단 하나의 매장을 갖고 어떻게 이런 성장이 가능할까?
Weekly BIZ가 지난달 만난 프레이저 하퍼(Fraser Harper·42) 창업자 겸 CEO는 "단 하나의 매장을 아주 특별하게 꾸며 놓고, 전 세계 고객이 매장의 모든 물건을 온라인으로 쉽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더 많은 고객 서비스를 제공한 게 성공 비결"이라고 했다.
"100여 개국 11만500명의 고객이 우리 제품을 구매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은 우리 물건을 다시 찾고 있어요. 2년 후에는 지금의 10배인 6000만파운드(약 1030억원) 매출 달성을 자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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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은 예술품처럼 꾸미고, 모든 고객을 VIP로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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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갤러리처럼 꾸민 LN-CC 런던 매장 내부. 간판도 없는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벌집 모양의 화려한 통로.
런던 시내 북동부 예술인촌인 달스톤(Dalston)에 있는 LN-CC는 간판도, 대문도 없다. 허름한 건물 옆 좁은 계단을 내려가자 반지하에 창고 입구처럼 보이는 철문이 보였다. 작은 명찰 크기의 벨에 'LN-CC'라고 적혀 있는 게 유일한 표시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별세계가 펼쳐졌다. 벌집을 연상시키는 육각형 통로를 따라 다섯 개의 진열 공간이 미로처럼 이어졌다.
각각의 쇼룸에는 옷, 구두, 희귀 음반과 책들이 전시 작품처럼 진열돼 있다. 하퍼 대표는 "매장 그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고객에게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날 매장 안에 손님은 단 2명이었다. 하퍼 대표는 "사전예약을 한 손님에 한해 온전히 그들만을 위해 매장을 오픈한다. 고객이 사전에 어떤 물건에 관심 있는지 미리 파악하고, 원하는 사이즈의 물건을 고객 방문 시간에 맞춰 마련해 놓는다"고 했다. 고객 한명 한명을 VIP로 정성껏 대접하는 '핀 포인트(Pin-point) 전략'을 구사하는 셈이다. LN-CC에는 그래서 유명 건축가나 연예인들도 편하게 와서 쇼핑을 즐긴다고 한다. 매장 중앙 통로의 맨 끝자락엔 작은 바를 갖춘 클럽을 갖춰, 고객 전용 파티나 이벤트를 열어 고객 간 사교의 장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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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개의 공간에 의류·신발·음반 등이 예술작품처럼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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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쇼핑 장애물 제거하고 현지화한 글로벌 온라인 판매망LN-CC의 고객은 전 세계 100개국에 퍼져 있다.'온라인 매장'을 현지화한 덕분이다. "온라인 고객들이 해외 쇼핑을 할 때 언어·통화 표기·현지통화결제·세금 납부·배송료·교환의 어려움 같은 장벽이 있는데 우리는 이를 최대한 해소했습니다."
예컨대 중국·일본 같은 동양 문화권은 현지 언어로 표기했고, 관세·부가세는 결제 가격에 미리 포함시켰다. 올봄 시즌부터는 한국도 한글 표기에다 원화로 세금이 포함된 가격을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다. 정가 제품에 한해 배송료는 무료이며, 교환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한다. 하퍼 대표는 "현지 매장 운영을 하지 않아 절감한 비용으로 온라인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극대화한다"고 했다.
LN-CC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입소문 확산을 겨냥한 '토털 마케팅'이다. LN-CC는 일본·중국·대만·브라질·남아공·이탈리아·프랑스·미국·호주·영국 등 11개 국적의 직원들이 해당 시장의 마케팅에 참여한다. 또 브라질·호주·독일·일본·미국 등 현지의 트렌드 리더 9명을 LN-CC의 홍보대사로 고용해 각종 인터넷 블로그와 SNS상에서 관련 소식을 계속 전달한다. 이런 노력 끝에 유명 패션 잡지는 물론 파이낸셜타임스(FT)·뉴욕타임스(NYT) 같은 유력 매체에도 등장했다. 하퍼 대표는 "전 세계 8000개 디지털 미디어들을 매개로 최고 품질에 대한 우리의 자신감을 적극 알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LN-CC의 지난해 매출액 가운데 70%는 영국 이외 지역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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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한 오프라인 매장’하나로 100개국 고객에게 상품을 팔며 급성장하고 있는‘명품 편집 매장’인 LN-CC의 프레이저 하퍼 CEO는“LN-CC를 하나의‘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했다./런던=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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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의 바이어가 수천 개 아이템 선택…브랜드 일관성 고수"LN-CC는 매년 의류·신발·액세서리 등 3000종류가 넘는 물건을 팔지만 판매 아이템을 선택하는 바이어는 2명뿐이다. 하퍼 대표는 "2년 만에 회사 외형이 10배 넘게 컸지만 바이어는 계속 2명을 고수하는데 이는 통일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이들의 선택 기준도 독특하다. 브랜드 이름 이외에 '최고 품질과 디자인' 그리고 '흥미로움'을 추구한다. "우리는 옷, 구두, 희귀 음반이나 서적 등 '흥미롭고 관심 받는 것들'을 찾아다닙니다. 우리 매장을 찾는 고객들은 특별한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바이어들은 주로 관심 있는 디자이너들의 패션쇼를 찾아가 쇼보다는 의상이 진열되어 있는 쇼룸부터 먼저 들어간다. 쇼에는 공개되지 않은 다양한 물건을 먼저 보고 옷의 질감과 색깔을 모두 꼼꼼하게 확인하기 위함이다. 또 콘텐츠 팀을 따로 운영해 디자이너의 특별한 개인 스토리나 제품 제작과정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고객에게 물건에 담긴 스토리도 전한다.
LN-CC가 평범한 옷가게나 편집 매장을 넘어 세계적인 '핫 플레이스(hot place)'가 된 것은 창업 초부터 치밀한 경영 전략을 구사한 덕분이 크다. 하퍼 대표는 금융·건축 계통에서 경력을 쌓았고 동료 창업자 6명은 패션유통과 온라인 판매, 디지털 미디어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