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잘싸
小珍 박 기 옥
처음에는 이 무슨 외래어인가 했다. ‘졌잘싸’라니? 한참 후에야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당이 스스로를 ‘졌지만 잘 싸웠다’고 말한데서 나온 말임을 알았다.
온갖 꼼수와 날치기로 점철된 당이었지만 '참패'를 두고는 당 내부에서조차 ‘위기’ 라는 파열음이 나오고 있었다.
특히 당의 텃밭인 광주 투표율이 지방선거 시, 도 중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것을 두고는 ‘당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라며 ‘아픈 참패’라고 하는 판국에 정작 당사자들은 ‘졌잘싸’ 운운하고 있었다. 반성 없는 자기합리화가 국민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졌잘싸’당을 보니 내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은 모두 평범했다. 잘 나지도 못나지도 않다 보니 나이 또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무슨 일을 하든 완성도가 낮았다. 허술하고 미흡했다.
큰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사회문제에서 외양간이 있는 그림을 보여주고, ‘위의 그림은 시골집입니까? 도시의 집입니까?’ 라는 문제가 있었다. 답은 ‘시골집’이었지만 딸은 ‘촌집’이라고 써서 틀렸다. 친구 엄마는 선생님한테 말해보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질문은 분명히 시골집인가 도시의 집인가 물었던 것이다.
국어시험에서는 ‘인사’라는 단어로 짧은 글을 지어보라는 문제가 나왔다. 아이는 ‘나는 선생님께 공선히 인사를 합니다’라고 썼다. ‘공손히’를 ‘공선히’라고 써서 틀리고 말았다. 그냥 ‘나는 선생님께 인사를 합니다’하면 될 것을 구태여 ‘공선히’라는 말을 붙여 틀린 것이다.
딸은 반에서 2, 3등을 했다. 1등 하는 아이는 우리 아이와는 달랐다. 절대로 틀리지 않고 실수조차 하지 않았다. 시험 때마다 1등을 했다.
가정방문 때 담임선생님이 딸의 성적 내역을 보여주며 산수와 과학 성적이 좋아 고학년이 되면 1등을 할 거라고 말했다. 예상은 어긋났다. 아이는 여전히 5등 안을 맴돌았다. 단 한번도 1등을 받아온 적이 없었다. 몰라서 틀리거나 실수해서 틀리는 문제가 반드시 나왔다.
반회장을 하고 있었으므로 담임선생님과 전화를 할 일이 더러 있었다. 학교에서 IQ 테스트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최고 점수가 나왔는데 성적이 그에 못 따라줘서 아쉽다고 말했다. 나도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실력 아니겠습니까.”
마침 딸이 전화기 옆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할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할머니. 나는 1등 못 해요. 열심히 하는 것도 실력이라고 엄마가 선생님에게 말했어요.”
딸의 ‘졌잘싸’였던 셈이다. 근성 부족이었다.
아들은 어떻든가. 이 아이는 완성도까지 이르지도 못했다. 선택과 집중부터 문제였다. 초등학생 때는 ‘43–18’이 골치 아픈 나머지 8에서 3을 빼고 40에서 10을 빼고 그쳤다. 그나마도 시험지 뒷면은 풀지도 않고 후다닥 달려가서 제일 먼저 제출하는 만용을 보였다. 시험지를 1등 제출하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했던가.
고등학생이 되자 아들은 공부는 뒷전인 채 록밴드를 만든다고 설치고 다녔다. 4명 중 저만 특별반이었다. 연습 시간을 나머지 3명한테 맞추느라 자율학습을 빼먹는 바람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아이는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엄마 그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3명이 1명한테 맞추는 게 옳아요, 1명이 3명한테 맞추는 게 옳아요?”
아들은 결국 대학입시에 떨어졌다. 온 집안에 죄인이 되고, 엄마인 나까지 애를 너무 풀어 키운다고 비난을 들었다. 시험에 떨어졌으니 군 영장이 나왔다. 신체검사 결과 1급을 받았다. 검사장에서 군의관이 아들의 등을 탁 치며,
“의장대 감이다. 1급!“
을 외쳤던 것이다. 우리는 아무 생산성 없는 병역 1급을 공부 1등으로 받아들였다. 어차피 선택과 집중이 어긋난 아이가 아니던가. 딸들도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며,
“엄마 소원 푸셨네. 1급이나 1등이나! 의장대 가면 멋있겠다!”
내 아이들의 ‘졌잘싸’는 무엇이었을까. 생의 마디마디 완성도가 부족하고, 선택과 집중이 잘못된 내 아이들의 ‘졌잘싸’는 어찌해야 할까.
오늘 저녁 브라질과 한국의 축구 경기에서는 내 생애 최고의 멋진 ‘졌잘싸’를 보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브라질의 친선 축구 경기에서는 1:5로 한국이 졌다. 6만이 넘는 관중들이 아쉬움으로 자리를 못 떴으나 주장인 손흥민은 당당했다. 아름다운 청년 손흥민은 능숙한 영어와 한국말로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그는 브라질의 네이마르 선수와 유니폼을 바꿔 입으며 그를 한껏 추켜세웠다.
“네이마르는 월드스타이고, 저는 월드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입니다.”
나는 본 적도 없는 손흥민에게 손뼉을 치며 사랑과 응원을 보냈다. 참패를 당하고도 자기 성찰 없이 ‘졌잘싸’를 내세운 그들도 이 장면을 보았을까.
첫댓글 "졌잘싸" 아! 이런 용어도 있었군요...
자기 변명으로 만든 용어라구요. 부끄러움도 모르고...
그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 사람은 근본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예 부끄러움을 모르거던요. 스스로를 모르니 반성도 부끄러움도 없겠지요. 허... 그 참... ^^*...
세상에는 별 희한한 사람도 있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