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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 정토회관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북한 전문가들과 북한의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대화를 나누는 날입니다.
평화재단 실무자들이 준비한 밥상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북한 주민들의 생활 상황을 살피고, 환율과 식량 가격의 변화를 점검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북한군이 파병된 이후의 변화 추이, 트럼프 재선으로 인한 국제 정세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을 배웅한 후 내년도 일정에 대해 점검하고, 다시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11시 30분에 점심 식사를 같이 하고, 접견실에서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1시 20분에는 외부에서 사회 인사를 만나 시국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미팅을 한 후 다시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6시에는 강연을 하기 위해 서울대로 향했습니다. 차로 50분 달려 강연이 열리는 서울대학교 83동 대형 강의실에 도착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총불교학생회가 창립 66주년을 맞이해서 스님을 기념식에 초청하여 강연을 요청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총불교학생회는 서울대학교 법대 불교 학생회로 출발하여 청년 불교 운동의 초석을 다졌고, 1960년대에는 대학생 불교 연합회(대불련)를 출범시켜 전국 대학에 불교의 씨앗을 뿌렸고, 1970년대에는 불교계 최초로 민주화 운동을 이끌면서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스님은 젊은 시절에 대학생 불교 연합회를 지도했던 인연이 있어서 흔쾌히 강연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강의실에 도착하자 서울대 총불교학생회 회장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초청 강연 전체를 졸업생 동문들이 아니라 재학생들이 직접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저녁 7시가 되자 삼귀의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초청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서울대 재학생과 일반인들을 포함하여 25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먼저 총불교학생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는 운성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 제가 너무나도 존경하는 법륜 스님이 서울대학교에 오시니 너무 떨립니다. 그래서 다른 말을 못 하겠어요.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다음은 동문회 회장이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41년 전에 법륜 스님을 모시고 경주 망월사에서 4박 5일 동안 수련을 했었습니다. 그때 죽도록 고생한 기억이 납니다. 경주 남산의 여러 골짜기를 순례했는데 경주 남산이 그렇게 험한 줄 처음 알았습니다. 스님께서 좋은 강연도 많이 해주셨는데 그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고생했던 기억만 납니다. 여러분이 오늘 만난 불법 인연이 삶의 원천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오자 모두가 환호를 했습니다.
청중은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서울대 총불교학생회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서울대학교 총불교학생회 창립 66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곳에 오면서 문득 예전에 저희 스승님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이 하셨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서울대 법대 불교학생회 지도법사를 하셨고, 또한 총불교학생회 지도법사까지 역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총불교학생회 동문회 회장님을 만났는데 옛날 경주에서 같이 수련했던 일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제가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것 같은데, 동문회 회장님 말씀이 그때 배웠던 좋은 기억들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고 고생한 것만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수련을 할 때는 강의 같은 것은 하지 말고 고생만 시키면 되겠구나’ 이런 짓궂은 생각이 드네요. (웃음)
저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정답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좋을 대로 사는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서 먹어 놓고 배가 아프다고 하듯이 자기가 좋아서 연애하거나 결혼을 해 놓고선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잖아요. 그럴 때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는 것도 아니었고, 자기가 좋아서 해 놓고 괴로워하니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이렇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즉문즉설이란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괴로운 일들에 대해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대화입니다. ‘스스로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왜 그런 문제가 생겼을까?’ 이렇게 원인을 규명해 보고, 그 원인을 제거할 때 괴로움이 없어지게 되는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연장에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많이 참석했는데요. 스님은 즉문즉설을 하기 전에 학생들이 불교에 좀 더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다른 종교와 차별화되는 불교만의 독특함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불교에 관심이 있어서 이 자리에 모였을 텐데요. 불교만의 독특함이 무엇일까요? 그 얘기를 조금 해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처님이 처음 말한 것이 여러 개가 있겠지만 저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첫째, 연기법이고 둘째, 중도입니다. 연기법은 이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세계관을 말합니다. 중도란 우리가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한 실천관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역시 연관되어 있습니다. 연기법이기 때문에 중도이고, 중도이기 때문에 연기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세계관, 모든 존재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부처님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철학이든 어떤 종교든 모든 사상의 세계관이 이 세상을 개별 존재의 집합이라고 보았습니다. 예부터 ‘삼라는 만상이다’ 이렇게 표현하곤 했죠. 개별 존재는 각각 자기라고 하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데, 그런 개별 존재의 집합이 이 세상이라는 겁니다. 사회라는 것은 사람들의 집합 아닙니까? 그래서 사회의 기본 특징에 대해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것처럼 이 세상을 개별 존재의 집합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자연 현상에 대해서도 ‘약육강식’, ‘적자생존’ 이렇게 이해했던 것입니다.
다윈은 모든 존재가 원래부터 그렇게 있었던 게 아니고 뭔가 변해서 점점 진화해 온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수많은 화석을 진열해 놓고 보니까 ‘처음부터 하나님이 만들어서 이렇게 된 게 아니고 점점 변화해 온 것이구나’ 하는 사실을 발견해서 그걸 ‘진화’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진화의 원리가 무엇인지는 몰랐어요. 그 후 진화의 원리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나왔습니다. 적자생존, 용불용설 등 온갖 이론이 나왔다가 돌연변이설까지 나왔고, 최근에 와서는 유전자까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진화의 원리를 적자생존 또는 약육강식이라고 이해한 이유는 이 세계가 개별 존재의 집합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듯이 모든 존재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원리로 살아간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았더니 어떤 존재도 개별적 단독자라는 것은 없고 서로 연관되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이것이 연기법이에요. 말미암을 연(緣), 일어날 기(起), 즉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거죠. 이것은 그 당시에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불교만의 독특함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할 때 무엇을 깨달았느냐? 바로 연기법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실제 세계가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개별 존재의 집합인데, 실제의 세계는 연기된 세계라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겨남으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이 문장에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공간적 연관을 뜻합니다. ‘이것이 생겨남으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라고 하는 것은 시간적 연관을 뜻합니다. 시간적 연관이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이것을 나중에 교리로 정리한 것이 바로 ‘무아(無我)’와 ‘무상(無常)’입니다. ‘무아’와 ‘무상’이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을 알면, 즉 존재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되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이것을 ‘열반(涅槃)’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걸 알지 못하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고(苦)’라고 해요. 이렇게 불교의 가르침은 아주 단순합니다. 불교의 목표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 즉 열반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가 갖는 독특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기법은 오늘날 자연 과학적 관점에서 봐도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물의 근원은 물방울이죠. 물방울을 계속 쪼개서 더는 쪼갤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다면 이것을 물의 근본 알갱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입자론에서는 물 분자라고 하죠. 물 분자를 더 쪼갤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분자는 더 작은 알갱이인 원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이라는 최소의 알갱이조차 단독자가 아닌 산소와 수소의 결합체입니다. 그러면 산소와 수소는 단독의 알갱이입니까? 단독의 알갱이라고 주장하는 게 돌턴의 원자설이죠. 그런데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전자,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와 중간자 등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원자조차 단독자가 아니고 다시 여러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거죠. 그러면 소립자는 단독의 알갱이일까요? 아닙니다. 쿼크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의 과학 연구 결과와 비교해 봐도 불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그러면 생명은 어떻습니까? 생명에도 종자가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생명의 근본을 찾아 연구를 한 결과 유전자를 발견했습니다. 유전자 역시 수많은 원자와 분자들이 고도의 설계에 의해 결합된 것에 불과하잖아요. 그 결합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유전자를 조작하면 종자 자체가 바뀌어 버립니다.
2500년 전에 부처님은 생물학을 연구한 것도 아니고, 물질을 연구한 것도 아니에요. 부처님은 우리의 정신 작용에 대해서 연구하셨습니다. 정신작용의 원리와 근본을 연구해서 해탈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발견한 것은 오늘날 과학의 발달로 밝혀진 물질 세계의 원리나 생명의 원리에 적용해도 원리적으로 모순이 안 됩니다. 그렇다고 ‘불교는 과학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좀 과장된 표현입니다. 다만 과학적 사실과 불교의 가르침 간에는 상호 논리적 모순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러니 이런 불교의 개념을 이해해서 물질 세계에 거꾸로 적용하면, 물질 세계에서 아직 해명하지 못한 원리를 밝힐 수 있는 어떤 아이디어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특히 연기법은 물질 세계든 생명 세계든 어디에든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 과학이라는 것도 일종의 연기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간적 연관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연관도 마찬가지예요. 시간적인 연관이 바로 ‘인연과보’입니다.
불교의 실천론, 양극단에 치우치면 안 된다
불교가 갖는 독특함은 실천 방법에도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 전통 사상에는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라는 두 가지 부류가 있었습니다. 욕망이나 욕구가 있을 때 그것을 충족시키면 기분이 좋죠. 이것을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즐거움이 곧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합니다. 쾌락주의에 의하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더 즐거워야 하고, 더 즐겁기 위해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러나 붓다는 이런 전통 사상을 부정했습니다. 물론 전통 사상을 부정한 것은 붓다만의 고유한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부처님이 살던 당시 사회는 브라만교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계급 질서가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기존 사상이 변화된 세계를 설명하지 못하니까 새로운 주장을 하는 신흥 사상가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주류였던 브라만교는 브라만이라는 계급으로 태어난 사람만 사상가가 될 수 있지, 다른 계급은 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에 반대하는 신흥 사상가들은 출생이 아닌 자기 결단에 의해서 수행자의 신분이 결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단이란 집을 떠나고 가족을 버리는 것을 의미했어요. 욕망을 충족해서 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모든 고의 근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욕망을 용납하지 않고 철저하게 억제해야 진정한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고행주의’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왕자로 태어나서 자랄 때는 주류 사상계에 있다가, 주류 사상의 모순을 느끼고 비주류 사상계 쪽으로 가서 출가 사문이 되었습니다. 출가한 후에는 6년 간 고행주의 쪽의 수행법을 선택해서 최고의 극심한 고행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주류와 비주류 양쪽을 다 경험해 봤기 때문에 그 모순을 직시하고 이 둘을 뛰어넘는 제3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중도(中道)’입니다.
중도라는 용어는 다 들어보셨겠지만, 구체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거예요. 예를 들어, 명상을 할 때 다리가 아프다면 다리를 펴고 싶겠죠? 다리가 아프다고 다리를 편다면 그건 쾌락주의입니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다리가 아프지만 참는다면 그건 고행주의입니다. 고행은 긴장이 되잖아요. 참으면 편안하지 않고 긴장이 되니까 열반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다리를 펴면 욕구를 따르기 때문에 과보가 생기고, 참으면 욕구의 저항을 받아서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둘 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닙니다. 붓다의 위대함은 이 둘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붓다는 이 둘이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욕구에 반응한다는 면에서는 같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욕구를 따르는 것만 욕구의 노예가 아니고, 욕구에 저항하는 것도 욕구의 노예라는 거죠. 욕구가 일어날 때 욕구를 따르거나 욕구에 저항하는 것은 모두 욕구에 대한 반응입니다. 둘 다 욕구에 대한 반응인데 반대로 반응하는 것일 뿐이에요. 우리는 늘 이렇게 욕구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나빠도 참습니다. 참으면 괴롭죠. 괴로우니까 감정이 터집니다. 감정이 터지면 과보가 따르니까 ‘조금만 더 참을 걸…’ 하고 후회를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또 참고, 참다가 터지고, 이렇게 고행주의와 쾌락주의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붓다가 제시한 새로운 길은 욕망에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다리가 아플 때 그냥 통증을 느끼는 거예요. 통증이 일어나면 우리는 ‘싫다’ 하는 반응이 먼저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좋다’, ‘싫다’ 하는 반응을 하기 전에 다만 느낄 뿐이에요. 통증이 일어나면 ‘통증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릴 뿐입니다. 알아차릴 뿐 다리를 안 폈으니까 외부적으로 드러난 것은 고행주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악다물고 참는 게 아니니까 스트레스를 안 받습니다. 행하지는 않는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수행을 할 때 이를 악다물고 하면 그것은 ‘단련’ 또는 ‘수련’이지 수행은 아닙니다.
‘모든 긴장을 풀고 편안한 가운데 다만 알아차린다’
이것이 붓다가 발견한 제3의 길입니다. 이 방법을 통해서 붓다는 해탈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처음으로 한 설법의 내용은 세계관이 아니고 방법론이었습니다. ‘수행자는 양극단에 치우치면 안 된다, 양극단을 버려라’ 이렇게 중도를 먼저 설하고, 그리고 사성제를 설하고, 팔정도를 설했습니다. 이것이 초전법륜(初轉法輪)의 내용입니다.
부처님 당시 초기 불교의 가장 핵심은 중도와 연기법(緣起法)입니다. 열반이나 해탈, 붓다라는 용어는 부처님 이전에 이미 인도의 전통 사상에 있었던 용어입니다. 그러나 중도와 연기법은 새로운 개념이었습니다. 수행의 목표는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고, 열반을 증득한 자가 붓다입니다.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서는 무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무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이고, 그 사실이란 바로 연기입니다. 연기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 ‘무상’과 ‘무아’입니다. 당시 인도 전통 사상에서는 ‘아(我, 나라고 할만한 실체)’와 ‘상(常, 변하지 않고 항상함)’을 강조했기 때문에 그걸 부정하기 위해서 무상(Anicca), 무아(Anatta)라고 표현한 거예요.
제가 즉문즉설을 할 때는 사상이나 철학에 대한 이론적인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데, 여기는 서울대학교니까 여러분 모두 공부 꽤나 하는 사람들이 모였잖아요. 여러분 같은 사람들은 이론적인 얘기를 해야 관심을 갖기 때문에 서두에 이야기를 길게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연기법과 중도를 얘기해야 법문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대화를 하다가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면 그 대화를 법담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이공계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영어가 장벽처럼 느껴져서 답답하다며 어떤 관점을 갖고 공부를 해야 할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공계를 선택하고 영어의 장벽을 느낄 때마다 답답합니다
“저는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을 준비 중입니다. 이공계는 지식이 거의 다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글로 써진 영어 자료는 번역을 해서 다루면 되지만, 발표를 하거나 상대와 소통을 할 때 또는 저의 아이디어로 상대를 설득해야 할 때는 영어가 하나의 장벽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토종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아쉬운 생각이 더 듭니다. 사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정말 좋은 환경인 것도 알고,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여서 학문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인 것도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사람이란 욕망의 존재이다 보니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불만족스러운 점이 계속 느껴집니다. 제 생각에 이공계에서는 한국어의 유용성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어의 장벽을 느낄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자꾸 드는데,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학생이 좋은 대학은 가고 싶고, 공부는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공부가 하기 싫으면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좋은 대학을 가겠다면 하기 싫어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현재 이공계에서 앞서있는 분야들은 대부분 영어를 쓰는 국가에서 이미 학문의 생태계를 만들어 놓았어요. 영어를 사용하기 싫다면 이 생태계가 아닌 제3의 생태계를 만들면 됩니다. 중국은 지금 그것을 시도하고 있어요. 중국 역시 독자적인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할지 아니면 실패할지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는 다르게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는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고 가장 활발히 교류를 하고 있어요. 초기에 우리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때는 일본을 한번 거쳐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영어를 몰라도 문제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일본이 먼저 서양 문물을 받으면서 용어를 다 만들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일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말화된 일본말을 쓰지 않고 영어를 바로 써요. 이것은 최첨단에 있는 지식들을 바로 직수입해서 공부하는 것이어서 한번 소화시켜서 건네받은 것과는 차이가 생깁니다. 이렇게 직수입을 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예전처럼 일본이 소화시킨 것을 건네받아서는 일본과 경쟁이 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지금은 영어로 인한 어려움은 달리 해소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아니면 질문자가 독창적으로 연구를 하면 됩니다. 마치 원효대사처럼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는 요즘 말로 하면 국내파와 유학파예요. 의상은 중국에 가서 중국 최고의 석학인 지엄대사에게 배워서 돌아왔고, 원효는 유학길에 올랐다가 깨달음을 얻고 유학을 가지 않고 국내에 남았습니다. 진실은 마음 가운데 있지, 책에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인도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누구에게 배우지 않고 독창적으로 화엄종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처럼 질문자가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기술을 배운 다음, 그다음 단계의 기술을 독창적으로 연구하여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게 되면 후배들은 영어를 배우는 수고를 하지 않게 될 거예요. K팝의 대표적인 그룹인 BTS는 주로 우리말로 노래를 하고 영어를 양념으로 조금씩 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BTS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한국말로 따라 불러야 해요. 마치 옛날에 우리가 팝송을 영어로 따라 불렀 듯이 말입니다. 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서 나가게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외국의 지식을 따라 배워야 한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뒤처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에요. 이 과정을 피하고 싶다면 길은 두 가지예요. 첫째,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공계 분야를 버리고 그렇게 안 해도 되는 대중음악 분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어를 안 해도 돼요. 미국이나 프랑스로 유학을 안 가도 됩니다. 지금 피아노를 치거나 바이올린을 연주하겠다고 하면 유럽에 가야 하잖아요. 그러나 대중음악을 하겠다고 한다면 한국이 제일 앞서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오지 우리가 다른 나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한 분야를 우리가 선점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에요. 질문자가 본인의 분야에서 세계를 가장 앞서나가게 되면 이와 마찬가지의 일이 질문자의 분야에서도 일어날 겁니다. 그러나 현재 과학 기술 분야는 아직도 미국의 창조성이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있어요. 핸드폰을 처음 만든 나라도 미국입니다. 기존에 있는 것을 모방해서 더 기능을 좋게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데, 미국처럼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까지는 아직 우리나라가 잘하지 못합니다.
옛날에는 지금 있는 것에 기능을 더 개량해서 잘 만드는 나라가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이 하던 것을 요즘 한국이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더 나아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나라가 되려면,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모방 교육은 맞고 틀리는 것이 있어요. 정답이 있는 거죠. 창조성을 키우려면 정답이 없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건 틀렸다’ 이런 반응을 하지 말아야 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이렇게 반응을 해주어야 사고 체계가 자유롭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모방을 하다 보니까 앞선 것을 그대로 맞게 베꼈는지 틀리게 베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답이 늘 있고, 정답과 다르면 자꾸만 틀렸다고 지적하는 문화를 갖게 된 것입니다.
대중음악 분야로 가는 것이 첫 번째 선택지라면, 두 번째 선택지는 ‘비록 나는 이렇게 배우지만 내 후손들은 이렇게 안 해도 되도록 하겠다’ 하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모국어로 학문을 할 수 있도록 해주면 경쟁력이 월등하게 앞서게 되죠. 그러니 후손들을 위해서 지금은 비록 내가 다른 나라의 언어로 따라 배우지만, 그걸 극복해서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기술을 우리 모국어로 다루는 경지까지 나아가 주면 됩니다.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어요.
모방은 한두 번의 실패로 성공할 수 있지만 창조는 천 번을 실패해서 새로운 걸 하나 발견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사회가 창조하는 사회가 되려면 연구원들이 수없는 탐구 과정에서 끊임없이 실패하더라도 이를 용인하는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등수를 매기고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 때문에 현재는 그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단기간에 모방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은 분명합니다. 모방은 성공적으로 해냈는데, 이제 그다음 과제인 창조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합니다. 창조라는 벽에 부딪혀서 일본처럼 가라앉게 될지, 아니면 극복하게 될지, 조금은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동양 사람이 서양 사람보다 더욱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려고 하면, 자연계 학문만 연구해서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불교를 공부해서 불교적 아이디어를 적용하면 서양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파격적인 접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양에서는 사유체계라든지 물질을 연구하는 방식이라든지 이미 정해진 방식이 있는데, 이것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데에 불교 공부가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만약 불교의 가르침이 자연 과학과 결합하게 되면 서양 사람들이 생각해 내지 못하는 독특한 성과들을 만들어 내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변방에서 새로운 창조성이 일어났습니다. 모방만 해서는 문명의 주류를 바꾸기 어려워요. 모방에 익숙한 사회는 오히려 주류 문명이 몰락할 때 함께 몰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불리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질문자가 대학에 가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울 수 있었던 것도 다르게 보면 엄청난 기회입니다.”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대화를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불법의 위대한 보물 보따리를 저 팔만대장경 안에 넣어 두고만 있지 마세요. 여러분 모두 종교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보물 보따리를 꺼내서 자신의 양식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총불교학생회의 역사와 활동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생 불교 학생회 연합의 발원문을 함께 낭독하고 사홍서원으로 초청 강연을 마쳤습니다.
다 함께 무대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자 대학생 시절에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졸업생 동문들이 찾아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총불교학생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는 운성 스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도 뒤풀이를 함께 해야 하는데 울산까지 가야 해서 지금 가야 해요. 미안해요.”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차를 타고 서울을 출발하여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3시간 30분을 달려 새벽 1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공동체 지부 구성원들이 두북 농장에서 새벽 6시부터 하루 종일 김장 울력을 합니다. 스님은 오전에 김장 울력을 함께한 후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김장 울력에 결합했다가 전주로 이동하여 저녁에는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