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알에 돌밭에 저절로 나서
저희들끼리 자라면서
재재발거리고 떠들어쌓고
밀고 당기고 간지럼질도 시키고
시새우고 토라지고 다투고
시든 잎 생기면 서로 떼어 주고
아픈 곳은 만져도 주고
끌어안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고
이렇게 저희들끼리 자라서는
늙으면 동무나무 썩은 가질랑
슬쩍 잘라 주기도 하고
세월에 곪고 터진 상처는
긴 혀로 핥아 주기도 하다가
열매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머리와 어깨와 다리에
가지와 줄기에
주렁주렁 달았다가는
별 많은 밤을 골라 그것들을
하나하나 떼어 온 고을에 뿌리는
우리 동네 늙은 느티나무들
느티나무에겐 비밀이 많습니다. 겨울눈을 감추고 봄을 기다리는 모습부터 뭔가 내밀한 사연을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위가 꺾이고 바람결이 부드러워지면 연한 햇가지를 슬며시 내밀지요. 봄이 제대로 왔는지 조심스레 살피는 햇가지들의 움직임은 느리고 은밀합니다.
꽃을 피울 때도 그렇습니다. 4~5월이 되면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연녹색 꽃을 살살 밀어내지요. 놀랍게도 수꽃과 암꽃을 한 몸에 피웁니다. 수꽃은 햇가지 아래쪽에 여러 송이로 돋는데, 자세히 보면 수술이 4~6개 있습니다. 암꽃은 햇가지 끝에 한 송이만 피지요. 암술 한 개에 퇴화된 헛수술을 거느리기도 합니다.
느티나무 꽃은 여느 나무와 달리 녹색입니다. 꽃잎이 없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드물지요. 벌과 나비를 유인하는 향기도 없습니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에 꽃을 감추는 나무도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지요.
(하략 / 아래 '원본 바로가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