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점대위’ (대구 서쪽에 있는 점심대책위원회) 의 야외 나들이가 성황리에 막이 올랐다.그동안 인구에 회자하는 여러 격려의 말씀들에 보답코자 이번에는 부인을 대동하고 그리 멀지 않은 동해바다 오어사(吾魚寺)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갈매기에게 안부도 한번 물어볼 겸 호연지기가 발동된 셈이다. 사실은 두어달 전에 기획된 나들이였으나...
태풍 ‘매미’의 영향을 고려하여 ‘위원회’답게 민심을 추스르는 차원에서 순연되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점심 한 그릇의 의미는 크다. 1950년도에 조직되었어야 마땅하나 좌익들에게 나누어 줄 식량이 부족해서 전전긍긍하다가 어느 날 야음을 틈타 전광석화와 같이 지휘봉이 뻔득이며 빈 탁자를 두들기니 순식간에 콩나물 등이 운집하여 머리를 조아렸도다.
(이렇게 하여 콩나물 대가리는 그 자질이 국민훈장으로 격상되며 자타가 공인하는 개국공신의 반열에 올랐고 반찬서열1위임이 '점대위'에서 비로소 추인되었다)
초대위원장에는 그 이름 선명이 높았던 박해상이었고...
2대는 우홍기 위원장이 만장일치로 추대되었다.
점심을 많이 굶은 순서대로 대오의 가닥이 잡힌 셈이다.
때는 매주 화요일 정오 장소는 성당못 인근 ‘두류가든’이고 메뉴는 나물일색이다. 주로 비빔밥이다. 비비고 또 비비면 못 비빌게 없나니...!비비는 가운데 역사의 한 페이지가 그 고유한 맛을 내는가 보다.
'점대위‘일화 가운데 홍인식 위원이 세운 공로는 혁혁하다.
사위(홍인식위원의)가 워낙 걸출하였던지라 어떤 모임에서 동석한 어느 어른으로부터 하문을 받았던 모양이다.
“자네 장인어른 직업이 무엇인고?”
“점대위 위원이십니다.”
“과연...뼈대 있는 집안이로고... 훌륭 하외다.”
이렇게 하여 홍인식 위원은 사위업계에서 추앙받는 영광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 후 이 사건은 ‘점대위’ 전체의 위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세력이 불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오전 9시 지하철 상인역 인근에서 출발신호가 올랐다.
드디어 <대서점대위 동해바다 유람기>가 시작된다.
전날 어느 위원이 아침식사문제를 거론하였으나...
점대위에서는 전부 형편이 어려우니 “점심 말고는 일체 식사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말라”는 장지국 위원의 질타가 주효하였든지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언급이 없었다.
경부고속도로를 벗어나 동쪽으로 방향이 꺾인다.
앞쪽에는 연분홍(?)여인네들... 뒤쪽으로 위원들이 포진해 있다. 위원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오늘 스케줄에 대한 간략한 일정안내와... 홍종흠 위원의 ‘오어사’에 대한 부연설명이 뒤따른다.
모두들 상념에 젖어있다. 감개무량한 모양이다. 아마 까까머리로 경주수학여행 가던 그 길을 더듬고 있는 것이리라. 아니면 타향 속에서 문득 고향의 체취가 되살아 난 걸까?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만추의 텅 빈 들녘이 흡사 지나온 인생역정의 한 단면 같기도 하다.
(부지런히 무언가를 채우며 달리고 달려왔지만... 그 걸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초로의 우정과 만추의 들녘사이에는 어떤 비례상수가 있는 것이 좋을까?)
** 吾魚寺 : 신라 진평왕 때 창건한 고찰로 처음에는 恒沙寺라 하였으 나 신라의 고승인 원효와 혜공이 수도할 때 법력으로 개 천의 고기를 생환토록 시합을 하였는데 그중 한 마리는 살지 못하고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헤엄치는지라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하여 나 ‘오’(吾) 고기 ‘어’ (魚) 吾魚寺라 하였다 한다. 조선 영조 17년에 중건 **
아담하고 소박한 절 吾魚寺다. 산속에 묻혀있다기 보다는 둥근 산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 하다. 댐을 만들어 생긴 큰 저수지가 절을 감싸고 있다. 일행은 대웅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인근에 솟아있는 ‘자장암’으로 발길을 돌렸다. 약 30분정도 산행을 한 셈이다. 시간관계로 ‘원효암’은 후일을 기약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시간이 오후1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갈 길은 아직 먼듯하다.
꾸불꾸불 산 속이다.알아보니 새로 난 토함산 뒷길이다.
‘자장암’에 오르느라 땀도 한번 흘렸고 지금쯤은 식사시간인데...
약간 길을 잘못 접어든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이 경과할수록 민생고가 절박해 진다. 점대위에서 점심시간을 못 맞추었으니 질책성 공기가 자욱하다. 존폐위기가 거론된다.
(점심 하나에 긍지를 건다고 오만상 떠들어 대더니만... 이제 와서 부인들까지 불러놓고 이게 무슨 꼴인고?)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런 질곡의 역사가 겹겹이 있었기에 오늘의 점대위가 탄생되는 당위성이 부여되지 않았겠는가-!
(참자. 참는 법부터가 기본이다. 겨울이 다가오면 봄은 얼마 남지 않은 걸로 위로해 왔다. 이제 경주를 지났으니 감포가 시야에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바야흐로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고 있도다-! )
드디어 배가 항구에 닿았다.
아니 버스가 어촌에 도착했다. 왁자지껄한 통일신라시절의 어떤 소란스러움 같은 것을 느끼며 일행은 ‘감포’의 어느 횟집으로 안내되었다.
이미 한상 거창하게 차려놓은 체 기다리고 있었다. 홍종흠 위원께서 반주로 양주 한 병을 준비해 왔다. 일행은 입장순서대로 대충 이리저리 둘러앉았다.
오-! 점심이여-! 점대위 밥상이여-!
용왕이시여-! 점심 한 그릇 하러 왔소이다-! 굽어 살피시옵소서-!
이것저것 돌볼 겨를이 없다.
눈에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주섬주섬 입에 집어넣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으렸다.
눈뜨기가 좀 편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여러 곳에서 온 손님들과 합석해 있었다. 추가로 몇 접시 더 비우고 자리를 물렸다.
버스는 일행을 또 어디론가 모시고 간다. 몇 점이나 지났을까. 어느 한적한 해송의 풍광이 고즈넉한 해변 가에 닿았다.4~5층의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해수목욕탕’이다. 사우나가 일정에 잡혀 있었다. 단체입장을 하였다.
본인은 취기도 있고 해서 바닷가 산책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명사십리가 눈에 아른거려 해당화 존재여부를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만추의 가을바다는 마치 바닷물이 육지를 탐색하고 있는 듯 했다.육지에 닿은 바닷물은 이내 하이얀 옷으로 갈아입고 모래 속으로 숨어버린다. 바다로 다시가기 싫은 모양이다.
해당화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 최경호 위원의 소탈한 모습이 나타났다.
그 역시 약간의 고독을 달랜 듯 하다.
우거진 해송 사이로 ‘신라의 달밤’이라 새겨진 돌로 된 대형조형물이 보인다. 해송에 기대어 원시림의 형태를 취한 조그만 주막이 반갑다.
길 가던 나그네의 행색을 취하고 들어섰다. 주모에게 물어보니 마침 낱잔소주를 판다고 한다.
한잔에 500원이다. 의기투합하여 홀짝홀짝 마셨다.
그 낱잔의 의미에 의기가 투합 된 것이다.
그 맛이야 말로 추억의 여인보다 웃질 이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주막이다-!
술잔까지 달콤하다. 순식간에 취기가 한계선을 넘어선다.
안주(갈매기)가 하늘에서 막 날아다닌다. 정신이 몽롱하다.
바닷가에 얹힌 호연지기성 낭만은 자연 ‘에나벨-리’를 불러온다.
그게 언제였더라? 아메리카 신대륙의 바닷가가 눈앞에 전개된다-!
(아서라-! 늙으막에 ‘점대위’에 편입되어 오갈 데 없는 통나무집에서 소주를... 그것도 낱잔으로 청하고 앉았으니 싹수가 노랗다-! ‘에나벨-리’가 보따리를 싼다고 한들 어찌 말릴소냐. 그래 가거라-! 일찌감치 단도리 하는 게 맞다. 그나저나 갈 때 가드라도 한잔하고 가소.)
한잔 또 한잔...잔인지 병인지 분간도 못할 지경으로 접어들면서 그만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그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게 없다.
* 원효(617~686) : 신라의 고승 성은 설(薛) 경북 경산출신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 수도 길에서 해골속의 물을 마셨던 장본인 불교사상의 종합과 실천에 노력한 선구자이다 *
운제산 吾魚寺다.
신라의 4대조사는 ‘혜공’ ‘원효’ ‘의상’ ‘자장’이라 전한다.
여러 사찰을 둘러보아도 당시의 신앙은 아마도 호국불교의 일면이 진한 듯 하다. ‘원효대사’는 失戒 한 후 스스로 小性居士라 칭하며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염불의 참뜻에 대한 교화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吾魚寺로 가는 길은 멀수록 좋을 것 같다.
여느 사찰도 그렇지만 吾魚寺 만큼은 십 여리 정도는 걸어서 경내로 접어들면 더욱 신심과 자연의 풍광이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굽이도는 산골짝 양지바른 물길을 따라 고기의 전설에 얽힌 법력을 상상해 보면 고승들의 어린시절이 또 다른 한 장르를 만들어 준다.
동자승들은 오어사로 가는 길모퉁이에서 어떤 화두를 주고받았을까?
혜공 : 너희들은 산이 좋으냐? 물이 좋으냐?
자장 : 나는 산이 좋다.
(문) : 왜?
(답) : 거기서 태어났으니까-!
의상 : 나는 물이 좋다.
(문) : 왜?
(답) : 그걸 먹고 사니까-!
혜공 : 그럼 원효는?
원효 : 나는 바람이 좋다.
(문) : 왜?
(답) : 산에도 갈 수 있고 물에도 갈수 있으니까-!
이렇게 하여 원효는
<산 따라... 물 따라... 바람을 잠재우며...> 한평생 수도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닐는지?
지금쯤 吾魚寺의 밤도 깊어 가리라.
원효암과 자장암의 풍경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아-! 신라의 달밤이여-!
첫댓글 김형 화려한 필체에 단숨에 읽었습니다. 오어사라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존경받는 스승이 되려면 제자가 잘나야 하고, 조상이 잘 나려면 후손이 번성해야하며, 대서점대위가 위대해 질려면 글 잘 쓰는 문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오어사 탐방기를 읽고 실감하였소.
위력있는 점대위의 모습들이 박력과 함께 서부사나이 들의 개척정신이 돋보인 원정이오 가히 용기는 일품이라 늙은이들의여유가 대단한 것이오 점대위의 발전을 .........
점대위의 위상을 내익히 알았으나 이처럼 화려한 나들이 인줄 체험으로 느꼈소,초청에 새삼 감사 드리며, 위원장에게 화답 점심 낼 기회를 예약해 놓았으니 언젠가 기회가 올줄아오, 무궁한 발전 있길 기원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