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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두북 수련원에서 김장을 하는 날입니다.
3일 동안 김장을 하기 위해 서울 공동체에서 20여 명의 대중과 상근 활동가들이 두북 수련원에 모였습니다. 스님은 평화재단, JTS, 에코붓다 등 사회 활동 기구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종교계, 시민사회의 원로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북수련원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연말이 되면 그분들에게 김치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정성껏 김장을 해서 사회원로들에게 선물로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치고 아침 6시에 김장을 시작했습니다. 두북 수련원에서는 주말에 여러 행사들이 많이 있어서 얼마 전 새로 리모델링을 한 수행자 처소에서 김장을 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일 나누기를 했습니다. 농사팀장이 작업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톤백 마대에 배추가 가득 담겨 있는데요. 모두 꺼내서 배추를 반으로 자르겠습니다. 배추를 먼저 적시거나 소금을 치지 않고, 배추를 풀장에 다 쌓은 뒤에 소금을 뿌리고 물을 넣겠습니다.”
올해는 김치공장 사장님의 노하우를 배워서 예년과 달리 중간에 배추를 뒤집는 작업을 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미 배추를 거의 다 수확해 놓아서 배추를 다듬고 소금물에 절이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배추를 다듬는 사이 날이 서서히 밝아졌습니다.
배추의 겉잎을 뜯어내고 밑동을 자른 후 배추를 반으로 갈랐습니다. 꼭지 부분에는 3분의 2 정도 칼집을 내어 주었습니다. 배추가 아주 크고 속이 꽉 차 있었습니다.
“배추가 정말 크게 잘 자랐네요.”
반으로 가른 배추를 바구니에 담아 놓으면, 운반 팀이 바구니를 운반하여 대형 튜브로 가져다주었습니다. 선물 용으로 총 1300 포기를 소금에 절여야 하기 때문에 대형 튜브를 준비했습니다.
두 사람이 대형 튜브에 들어가서 배추를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부지런히 배추를 자르고 싣고 나르고 쌓고 한 결과 대형 튜브 안에 배추가 꽉 찼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금을 뿌리고, 온수를 대형 튜브 안에 가득 부었습니다. 배추가 소금물에 푹 잠겼습니다. 이제 배추의 숨이 푹 죽을 때까지 다섯 시간 이상 기다리면 됩니다.
그 사이 기온이 1도까지 떨어졌습니다. 말을 할 때마다 입김이 나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가락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마당 가운데에 불을 지피고 고구마를 구웠습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군고구마를 하나씩 먹으며 추위를 녹였습니다.
행자들이 빠른 속도로 일을 잘하고 있어서 스님은 행자들 몇 명을 데리고 밭으로 갔습니다. 아직 수확하지 못한 배추가 조금 남아 있어서 모두 수확을 해오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고랑을 오가며 칼로 배추의 뿌리를 잘라서 옆으로 눕혀 놓았습니다. 선물용으로 사용할 것이라 크기가 크고 속이 꽉 찬 배추만 우선적으로 골랐습니다.
뒤이어 행자들이 배추를 톤백 마대로 옮겨 담았습니다.
행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스님이 중간중간에 일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배추의 겉잎을 너무 많이 뜯지 마세요. 어차피 옮기다 보면 겉잎이 저절로 뜯어지는 게 있기 때문에 조금만 뜯어 주세요.”
“네.”
배추의 양이 많아지자 고랑을 넘어 다니기가 힘들었습니다. 모두 한 줄로 서서 릴레이로 배추를 날랐습니다.
금세 톤백 마대에 배추가 가득 담겼습니다.
“저는 10시부터 법회를 해야 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밭까지만 마무리를 해주세요. 점심 먹고 오후에는 저 위에 있는 밭에 가서 수확을 하겠습니다.”
스님은 서둘러 작업복을 갈아입고 두북 수련원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정각에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저녁에 즉문즉설을 못 듣는 분들을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오전에 즉문즉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오전에 시청이 가능한 분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이기도 하고, 시차가 다른 해외 분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이기도 합니다.
2,6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밭에 나가서 배추를 뽑고, 무를 뽑고, 배추를 썰었습니다. 오늘부터 3일 동안은 정토회에서 김장을 하는 기간입니다. 원래 이 3일간은 다른 일을 못하고 김장만 해야 하는데, 저는 오늘 금요 즉문즉설이 있어서 일하다가 급히 방송실로 왔습니다. 이제는 날씨가 쌀쌀한 정도를 넘어 꽤 추워졌습니다. 아침에 밭에 나가 일할 때 손이 시릴 정도였습니다.
저는 지난 10월 말에 부탄을 다녀왔습니다. JTS는 지금 부탄 주민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개발의 모델을 만들고 있습니다. 식수가 부족한 마을에 JTS가 자재를 제공해 주면, 주민들은 스스로 자기 마을의 상수도를 만듭니다. 그 영상을 잠깐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다시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작은 정성이 저들에게는 귀한 물이 되어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금수강산이라 해서 맑은 물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펑펑 쓰면 ‘물 쓰듯이 쓴다’ 하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이 귀한 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넓은 세계로 나가보면 물은 정말 귀합니다. 그래서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이 가장 큰 복을 짓는 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도의 아소카 대왕은 인도를 통일한 뒤에 세 가지 복을 짓는 일을 했습니다. 첫째, 군데군데 우물을 파서 주민들에게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을 공급했습니다. 둘째, 군데군데 나무를 심어서 그늘을 만들었습니다. 셋째,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을 내서 다니는 사람이 편리하도록 했습니다. 이것dl 오늘날 주민 복지의 첫 시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조금만 절약하고 나누면, 그것이 모여 지구 저편에 있는 목마른 자에게는 물이 되고, 배고픈 자에게는 양식이 되며,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터가 됩니다. 여러분들도 절약해서 이웃을 돕는 마음을 내어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1시간 30분 동안 네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듭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저는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조용히 인사이동을 신청했습니다. 부서 이동 후 잘 적응했고, 직접 계획한 신규 사업도 대박이 났습니다. 그랬더니 갓 승진하셔서 새로 부임한 부장님이 전 부장님과 똑같은 스타일로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기획한 사업도 윗분들이 부러울 정도로 잘 됐지만 진행을 보류시켰습니다. 이직이나 퇴사 혹은 버티기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지 고민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문제를 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이런 조직에서는 벗어나는 게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어때요? 그 사람은 아마 질문자가 문제라고 할 겁니다. 신입 사원이 처음 회사에 들어가면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기존에 있던 근무자들은 신입 사원의 성격이 좀 까다롭다고 평가해요. 이렇게 서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에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부부지간에도 갈등이 생기고, 형제지간에도 갈등이 생기고,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도 갈등이 생기고, 여야 정치에도 갈등이 생기고, 남북 간에도 갈등이 생기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도 갈등이 생깁니다. 갈등이 계속 커지다 보면 상대를 악마화하게 됩니다. ‘나쁜 놈이다’, ‘저런 인간은 죽여도 된다’ 이렇게 해서 전쟁이 일어나는 거예요.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하루에 죽는 사람이 매일 1,500명씩 발생한다고 해요. 또 이스라엘의 가자지역 폭격이나 레바논 폭격, 시리아 폭격은 무차별로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군인이 어떤 건물에 숨으면, 그 건물에 어린아이가 있든지, 여성이 있든지, 노인이 있든지 가리지 않고 폭격해서 그 건물에 있는 사람을 다 죽여 버려요. 거기에 게릴라가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 세상이 혼란스러운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상황을 볼 때 너무 내 입장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 혼자 사는 것이라면 괜찮아요. 하지만 남과 같이 살 때는 내가 보는 관점과 상대가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상대가 틀렸다’ 하는 관점이 아닌 ‘상대는 나와 다르다’ 하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과 갈등이 생겼을 때는 나와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는 확률이 반반이에요.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나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수행 삼아서 그 사람을 좀 좋게 보고 넘어가 보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런데 한 사람과 갈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과 갈등이 생긴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이 75퍼센트로 올라갑니다. 만약 직장에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세 사람이나 있다면, 이제는 나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이 대략 90퍼센트라고 봐야 합니다.
그것처럼 처음 부서에서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겼다면, 그럴 때는 그 부서의 문제인지 내 문제인지 확률은 반반입니다. 그러나 부서를 옮겼는데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은 50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줄어듭니다. 반대로 나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은 50퍼센트에서 75퍼센트로 늘어나게 됩니다. 만약 한 번 더 부서 이동을 했는데 거기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때는 나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이 8분의 7이 됩니다. 약 87.5퍼센트가 되는 거예요. 이건 스님이 단순히 하는 말이 아니고, 수학적 확률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질문자는 부서 이동을 한 번 해본 것이니까 직장을 그만두느니 안 두느니 하는 고민을 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지금은 나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이 조금 높아졌기 때문에, 질문자가 한번 현재의 상황을 수용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억울해하지 말고 그냥 ‘알았습니다’ 이렇게 수용을 해보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상황을 한번 넘어가 보는 거예요. 만약 또 부서 이동을 했는데, 그곳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이런 일이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어떤 나라에 갔는데, 그 나라에서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못 듣게 금지를 했어요. 부처님과 제자들이 걸식을 나가도 사람들이 음식 공양을 못하게 했어요. 부처님 같은 분도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그때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이렇게 말했어요.
‘부처님,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하지 않으니 다른 나라로 가시지요.’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처님을 존경하고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환영했어요. 그러니 이렇게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난존자의 생각이었어요. 아난존자의 생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취하는 삶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물으셨어요.
‘아난다여, 만일 다른 나라에 갔는데 그 나라에서도 우리를 환영하지 않고 배척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면 또 다른 나라로 가면 됩니다.’
‘그 나라에서도 혹시 환영하지 않고 배척하면 어떡하겠느냐?’
‘그러면 다시 다른 나라로 가면 됩니다.’
아난존자가 이렇게 답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너는 무엇을 잘못해서 그렇게 쫓겨 다니느냐.’
부처님은 아난존자에게 ‘그들의 행위에 구애받지 마라. 그것이 진정한 자유다’ 하는 말씀을 하신 거예요. 내가 보기 싫어서 옮겨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쫓겨 다니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렇듯 내가 진정으로 내 인생의 주인이라면 그냥 웃으면서 한 번 있어보는 거예요. 처음 문제가 생겼을 때 한번 직장을 옮겨서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직장을 옮겨서 잘 해결된 것 같았는데 그 직장에서 또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다시 직장을 옮기거나 그만두어야 해요. 그런데 다른 직장으로 옮겨서도 또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거예요. 그러니 이번에는 그냥 한번 지켜보는 겁니다. 그들의 비판을 한번 받아들여 보는 거예요. 내 주장을 하지 말고, 상대가 내 기획을 보류했다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수용해 보는 겁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제안을 했지만 상대가 거절한다면 ‘예, 알겠습니다’ 이렇게 한번 해보는 거예요. ‘왜 좋은 아이디어를 실행 안 합니까?’ 하고 문제 제기를 하지 말고요. 항상 그래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번에는 한번 그렇게 받아들여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한번 보세요. 그래야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괴로워하지 않고 능히 그것을 받아낼 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란 인간관계에서 이런 갈등이 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갈등이 생기더라도 그에 대해 크게 구애받지 않을 때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직장은 위계질서가 있는 곳이잖아요. 합리적이냐 불합리적이냐를 떠나서 어쨌든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는 구조인데, 제가 그 구조에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나가 프리랜서를 하거나 혼자 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어요.”
“직장이라고 반드시 윗사람의 명령을 들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에요. 문제 제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에 들어가서 처음 그 사람을 만났는데, 첫 만남 때부터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 번 받아주고, 두 번까지도 받아주고, 세 번째에 문제 제기를 했을 때 내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거든요. ‘당신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난번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이러는 것은 조금 과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문제 제기를 해야 내 주장에 설득력이 생깁니다.”
“제가 사실 거의 2년 동안 참았습니다. 두세 번 제안을 거절당한 다음에 조용히 인사이동을 신청해서 부서 이동을 하게 된 겁니다.”
“내가 참았다는 말은 내가 옳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힘이 드는 거예요. 내가 옳은 것이 아니라 상대와 내가 서로 다른 거예요. 예를 들어, 나는 상대가 싫지만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틀린 게 아니고 다만 그 사람의 감정이 내 감정과 다른 것입니다. 질문자가 회사에 2년 동안 있으면서 여러 번 제안을 했고, 거절을 당해서 부서 이동을 신청한 것은 잘한 일이에요. 그러나 새로운 부서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예전 부서에서와 똑같은 일이 생겼다고 해서 본인이 이런 사회에 맞지 않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아직 두 번밖에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내가 잘못했는지 상대가 잘못했는지 아직 결론을 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한번 상대를 수용해 보라는 거예요. 나를 돌아보면서 상대가 뭐라고 하든 그냥 ‘알겠습니다’ 하고 한번 해보라는 겁니다. 그렇게 몇 번을 거듭했는데도 여전히 회사와 안 맞다면 그때는 그만둬도 돼요. 질문자는 아직 사회 초년생이잖아요? 그러니 수행을 하는 차원에서 최소한 3년은 더 해보면 좋겠습니다.
만약 신체적으로 괴롭히거나 폭력을 행사한다면 고발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면서 ‘쟤는 잘못 건드리면 고발하는 애다’ 이렇게 말하는 정도라면 그 정도는 감내할 만합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질문자에게 더 조심스럽게 행동할 테니까 좋은 일이지요. 만약 어떤 오해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풀릴 수도 있는 문제예요. 그래서 지금 회사를 그만두는 결정을 하는 건 질문자가 나중에 지금을 돌아보았을 때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제가 보기에 질문자의 심리 상태가 지금은 좀 위축되어 있어요. 약간은 대범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이 회사에 대해 반발심이 생기지 않을 때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좋든 싫든 그만두는 것은 나의 자유예요. 그러나 그만두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노력을 해보고 그만두어야 나중에 후회가 적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보지 않고 그만둬 버리면 나중에 ‘그때 조금 더 견디어 볼 걸’, ‘그때 이렇게 해볼 걸’ 하고 후회를 하게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질문자가 말한 일은 회사를 그만둘 정도의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만약 본인이 심리적으로 좀 힘들다면 오히려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이런 상황에 대해 조금 무던한 마음을 갖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직장 상사가 막 트집을 잡아서 화가 날 때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왜 트집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는 지적을 해주는 것입니다. 상대가 내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트집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생각이에요. 지적을 하면 ‘알겠습니다. 고치겠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돼요.”
스님이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질문자는 수긍을 하지 못하고 다시 스님의 말씀에 첨언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질문자는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결혼 생활도 어렵고요. 상대방이란 언제든지 내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어요.”
그제야 질문자가 스님의 말을 받아들이며 말했습니다.
“스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분의 어떤 면을 보고 ‘저 사람은 문제 있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게 다 그렇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잘 알아들었네요. 그 사람이 열 마디 말을 하면 나는 ‘네’ 하고 한 마디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입이 아프지 내 입이 아프지 않잖아요.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하면 끝나는데, 말을 많이 하면서 변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나를 못 믿나’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거울에 물건이 비치듯이 그냥 상대가 말하는 대로 한번 대꾸를 해보세요. 그 사람이 나를 화나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질문자만 손해예요. 지금 질문자는 본인이 괴롭기 때문에 회사를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잖아요. 질문자는 직장 상사에게 밀리고 있는 겁니다. 자기 고집을 부리니까 밀리는 거예요. 자기 고집을 버리고, 그냥 상대가 말하면 그대로 대꾸하면 돼요. 보류하겠다면 ‘알겠습니다. 뭘 고칠까요?’ 하고 물어보고, 새로 작성해 오라고 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새로 작성해 가면 돼요. 수행 삼아 이렇게 한번 해보라는 겁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앞으로 사회생활도 할 수 있고, 결혼생활도 원만하게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자기 생각만 고집하면 앞으로 여러 인간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꼭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남의 눈의 티끌을 보고, 파고들 듯이 따지는 것은 인생살이를 굉장히 피곤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질문자는 ‘이런 상사와도 한번 같이 잘 지내본다’ 하는 목표를 갖고 지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수행 삼아 그렇게 해보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네 명과 대화를 나눈 후 12시가 다 되어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니 행자들도 오전 울력을 모두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사이 대형 튜브 하나를 더 만들어서 배추를 가득 쌓고 소금물에 담갔습니다. 고무대야 4통에도 배추를 쌓고 소금물을 부었습니다. 일단 배추 1300 포기를 모두 소금물에 담그는 작업까지 마쳤습니다.
다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라면을 금방 끓여서 먹은 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휴식을 하지 않고 행자들에게 말했습니다.
“힘이 남는 사람은 몇 명만 저를 따라오세요. 밭에 가서 무를 수확해서 옵시다.”
다 함께 밭으로 가서 무를 뽑았습니다.
손으로 잡아당기자 무가 땅에서 쏙 뽑혔습니다. 그 자리에서 칼로 무청을 잘라 따로 모았습니다. 무는 포대에 담았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작업을 하니 순식간에 무 수확을 마쳤습니다.
“자, 트럭에 전부 실어 주세요.”
무와 무청을 트럭에 실은 후 다 함께 배추를 수확하러 이동했습니다.
“아이고, 허리야!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큰일이네요.”
스님은 허리를 두드리며 겨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직 밭에는 서울 공동체가 김장을 하기 위해 가져갈 배추 500 포기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스님과 행자들은 밭에 남아 있는 작은 배추도 전부 수확했습니다. 스님이 중간중간 작업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배추를 트럭에 최대한 실어 봅시다. 못 싣는 건 톤백 마대에 담아 두면 되니까요. 밭에 있는 배추는 전부 뽑아 주세요.”
스님이 칼로 배추의 뿌리를 잘라서 눕혀 놓고 지나가면 행자들은 배추를 컨테이너에 담아서 트럭으로 옮겼습니다.
트럭에 배추를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남은 배추는 포기가 작은 것들이긴 하지만 과연 500 포기가 다 실릴지 미지수였습니다. 양쪽에 판자를 대고 배추를 최대한 높이 쌓았습니다.
크기가 크든 작든 가리지 않고 배추를 모두 뽑았습니다. 금방 트럭에 배추가 가득 쌓였습니다.
배추가 무너지지 않게 끈으로 단단하게 묶은 후 트럭을 다른 밭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배추가 무너지면 안 돼요. 조심히 운전해 주세요.”
싱싱한 배추들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는 밭이 나타났습니다.
트럭에 더 이상 실을 수 없을 때까지 배추를 뽑았습니다.
“자, 그만! 여기까지만 수확하겠습니다. 트럭이 꽉 찼어요.”
서울 공동체에서 김장을 할 수 있게 트럭 한가득 배추를 실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저는 여기까지만 일하고, 이제 강연을 하러 전주로 가겠습니다. 나머지 일을 부탁해요.”
스님은 작업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은 후 오후 2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전주로 향했습니다.
차로 3시간을 달려 저녁 6시 30분에 전주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도청에서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 도지사님이 저녁 식사 초대를 했는데, 스님이 간단하게 먹겠다고 해서 도청 앞 국숫집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도지사님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멀리서 전주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난 6월 13일에 발생한 지진 피해로 인해 만인대법회에 참석을 못 해서 죄송했습니다.”
두 분은 국수 한 그릇을 먹은 후 가볍게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의 농장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부탄에서 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까지 다양한 주제로 두루두루 이야기를 한 후 요즘 시국 현안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서민 경제가 굉장히 나빠지고 있습니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행정부와 의회가 머리를 맞대고, 전부 협력을 해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데, 정치권이 계속 싸우기만 하니까 큰일입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으니까 거기에 대응하려면 여야가 긴밀하게 논의를 해야 하는데, 대통령이든 야당이든 전부 극단적인 대치만 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의료 대란이 일어날 것 같은데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걱정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들에게 '아프면 큰일 나니까 아프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얘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라북도에서 죽림정사에 짓고 있는 용성조사 기념관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주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용성조사님은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고, 새로운 불교운동을 이끄신 분으로 전라북도가 낳은 위대한 애국자입니다. 내년에 용성조사 탄신일과 열반일 기념법회에 시간이 되시면 한 번 참석해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강연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전북특별자치도청 3층 공연장입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도착하자 전주 행복센터에서 나온 행복시민 50여 명이 곳곳에서 강연을 보러 온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공연장으로 향했습니다. 폭죽과 별 그룹의 버스킹 공연이 끝난 후, 청중은 스님이 전쟁과 지진 피해로 고통받고 있는 시리아를 방문한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나서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9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메웠습니다.
먼저 스님이 전주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죽지 않고 모두 살아남으셔서 이렇게 다시 뵈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주에 다녀간 지 한 5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맞나요?”
“예.”
“저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조용히 살았습니다. 시골 폐교에 살면서 주로 농사를 지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서 다시 국내와 해외 이곳저곳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원래 은퇴를 하고 나서 농사를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덕분에 농사를 일찍 짓게 되었고, 요즘 다시 활동을 시작하니까 마치 정년이 다시 연장된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여러분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다섯 명이 먼저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현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7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항상 떠날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며 어떻게 이 마음을 극복할 수 있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항상 떠날 준비를 하며 삽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나요?
“저는 좋지 않은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회사에 가든, 연애를 하든, 친구를 사귀든, 저는 항상 미리 떠날 준비를 합니다. 직장에는 아직 정규직으로 근무해 본 적이 없고, 계약직으로 두 번 정도 일했습니다. 일하면서 정규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회사에서 단점을 발견하면 마음속으로 항상 떠날 준비를 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좋아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곧 콩깍지가 벗겨지면 ‘이 사람은 언제든지 남이 될 수 있어’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친구에 관한 관심은 제일 마지막이 됩니다. 이제는 우정이나 사랑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찐한 우정이나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저는 게을러서 누군가에게 시간을 쏟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도 오래 일한 선배님들을 보면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들과 달리 저는 어디에 가든 늘 도망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디에 가든, 누구와 사귀든, 이렇게 항상 떠날 생각을 하며 살아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사람을 열흘 계속 만나는 것과 매일 다른 사람을 열흘 만나는 것은 어차피 똑같습니다. 같은 일을 열흘 하는 것과 매일 다른 일을 열흘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질문자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하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투자하고 싶지도 않고, 찐한 인간관계가 부담스럽다고 하면서 또한 그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순입니다. 그것은 마치 학생이 공부하기 싫어하면서도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맞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것을 욕심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그만큼 공부하면 됩니다. 단순히 공부하기 싫다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학생들과 대화할 때도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공부를 싫어하면 되나?’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공부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대신 대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공부하지 않으면서 대학교에 가겠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결혼을 해놓고 내 식대로 살겠다는 것도 똑같습니다. 결혼 준비를 할 때 여러분은 돈이나 학벌, 인물 같은 걸 보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맞추며 살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오늘 짜장면이 먹고 싶다면 그냥 먹으러 가면 됩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사는 사람은 배우자가 비빔밥이 먹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불고기를 먹고 싶은데 상대는 고기를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배우자에게 맞출 줄 알아야 합니다.
빨래하는 문제나 씻는 문제도 상대에게 맞출 줄 알아야 합니다. 혼자 살면 물을 아끼기 위해 샤워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한 사람은 배우자가 매일 씻는 걸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때로는 나의 가치관, 습관, 신념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말하는 내게 딱 맞는 사람이란 주로 어떤 사람을 말하나요?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사람을 말하죠.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래서 나에게 딱 맞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결혼은 맞추며 사는 겁니다. 결혼 초기에는 열 가지 중에 한두 개도 맞지 않지만, 살면서 조금씩 맞춰가는 겁니다. 그렇게 한 10년, 20년을 살다 보면 절반 정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완전히 맞출 수는 없습니다. 상대와 맞지 않아서 못 살겠다는 분은 결혼하시면 안 됩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결혼 준비가 아니에요. 상대에게 맞추며 살겠다는 자세를 갖는 것이 결혼 준비입니다. 회사에 가도 어느 정도 맞추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하나도 맞출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은 ‘스님은 맞추면서 살아요?’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렇게 못 산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결혼했고, 저는 혼자 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같이 살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노력을 적게 해도 되는 사람이에요. 저는 일 년 동안 여러 나라를 다니며 한국에 거의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고, 잠시 한국에 들어오더라도 늘 전국을 다니기 때문에 한 곳에 머물 때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제가 결혼하면 상대가 만족할 수 있을까요? 저와 같은 사람은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여러분들은 법륜 스님을 이렇게 멀리서 보니까 좋아 보이죠? 같이 살아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맞추며 산 경험이 별로 없어서 같이 지내보면 좀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노처녀 노총각 히스테리라고 들어보셨죠?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보지 않은 습관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은 자고 싶을 때 자도 되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됩니다. 안 먹어도 되고요. 그런데 결혼해서 살고 아이까지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몸이 아파도 일어나야 하고, 밥을 먹기 싫어도 밥을 해야 합니다. 나는 채식을 하지만 배우자나 아이에게는 고기반찬을 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 같이 살면 싫어도 뭔가 해야 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뭐든지 맞출 줄 알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칠십이 되어도 혼자 사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맞춰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뭐든지 아이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혼자서 아무 문제 없이 사는 것처럼 질문자도 지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걸 원하면서 찐한 우정과 찐한 사랑을 바라면 안 됩니다. 그럴 때는 저처럼 ‘나는 끈적끈적한 관계는 싫어. 누군가 다가오더라도 싫어’ 하고 일관된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정규직보다는 여러 가지 일을 조금씩 경험해 보는 게 좋아. 요즘처럼 좋은 세상에 한 사람에게 매여서 살 필요가 있을까? 나는 조금씩 만나더라도 여러 사람을 사귀어 보는 게 좋아. 아무리 잘생기고 돈이 많더라도 매여서 사는 건 싫어.’
이런 관점을 갖고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자기 성질대로 살면 됩니다. 대신에 결혼해서 자녀들을 어렵게 키워서 나중에 효도받는 모습을 부러워하면 안 됩니다.
아무런 투자 없이 결과를 바라는 것은 공부하기 싫은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처럼 살면 죽을 때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후회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눈감을 때 사람들이 괜히 와서 울면 귀찮다. 그냥 주변에 아무도 없이 죽는 게 좋다’ 이렇게 생각을 굳혀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됩니다. 노력 없이 그런 결과를 바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자에게 아무 문제없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나 질문자가 찐한 인간관계를 싫어하면서도 그 모습을 부러워하는 건 모순이에요.”
“일단 저는 찐한 우정이나 사랑보다는 취업이 더 걱정이긴 해요.”
“그런 관점을 갖고 살겠다면 취업은 걱정거리가 아니어야 합니다. 당장이라도 나가서 아무 일이나 하면 됩니다. 돈을 조금 주는 일도 해보고, 돈을 많이 주는 일도 해보고, 이런 일도 해보고, 저런 일도 해보는 겁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규직에 원서도 내보고요. 그렇다고 거기에 목매달면 질문자의 인생관에 맞지 않는 겁니다. 직장을 옮겨도 되고, 계속 지금 하는 일을 해도 됩니다. 인생관이 질문자와 같으면 걱정할 일이 없어야 합니다.
질문자와 같은 사람은 스님을 하면 딱 좋아요. 부처님은 수행자들에게 한 장소에 하루 이상 머무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한 숲에서 지내더라도 매일 다른 나무로 옮겨 다녔어요. 한 나무 밑에서 지내면 집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어쩔 수 없이 3개월간 한마을에서 지내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이것을 ‘안거’라고 해요. 수행자는 원래부터 늘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바뀌었습니다. 최근에는 스님들이 너무 돌아다니니까 안거를 지내야 수행자로 인정합니다. 사실, 떠돌아다니는 것이 수행자의 본래 모습이었고, 안거 기간을 제외하고 한 곳에 머무르면 세속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원래 안거는 인도의 기후 때문에 생긴 것인데, 요즘은 안거를 지내야 진짜 스님으로 인정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도 그냥 떠돌이 생활을 하셔도 됩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한 사람만 정해서 만나지 말고요. 한 사람만 계속 만나면 집착이 생겨요. 직장도 자주 바꿔 보고, 사는 곳도 자주 바꿔 보고, 이렇게 사는 게 괜찮다 싶으면 다 내려놓고 출가를 하면 됩니다. 제가 초반에 질문자의 얘기를 듣자마자 ‘스님 하기에 딱 좋은 기질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이 해결되었어요?”
“네, 감사합니다.”
“자신이 가진 기질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살아도 됩니다. 내가 한 사람을 자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어! 이건 내 기질에 맞지 않는 거야’ 이렇게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내가 결혼해야 아버지가 행복해진다고 말씀하시는데, 존경하는 아버지를 위해 결혼을 해야 될까요?
아이의 미래를 위해 대출이라도 받아서 학군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까요?
폭력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고 당연하다고 믿는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요?
지방 소멸 앞에 우울감과 허탈감을 느끼는 지방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내가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게 되니까 말을 하기 전에 스스로를 검열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을까요?
집에서 키우는 유기견 때문에 이웃집 아저씨가 놀랐고, 그 사건을 아이가 실명을 거론하여 공론화시켜서 고소를 당했습니다. 아이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떡하죠?
현장에서 추가 질문을 두 명 더 받고 나니 밤 9시 30분이 되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스님 덕분에 정말 많이 행복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책 사인회를 마치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행복 시민, 전주!”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강연장을 나와 곧바로 전주를 출발하여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3시간을 달려 새벽 1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김장 2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소금물에 절인 배추를 꺼내서 물기를 빼내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김치 양념을 만든 후 양념을 배추 잎 사이사이에 넣어서 박스에 포장하는 일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