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보궐선거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정황이 담긴 투서가 발송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투서에는 이 전 부총장이 캠프 관계자와 지역 시·구의원들에게 필요 선거 자금을 현금으로 내놓을 것을 요구했고, 그 일부를 선거사무소 전화홍보원들의 불법 수당으로 지급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 투서는 지난해 선관위가 이 전 부총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주요 근거로 활용됐다. 현재 이 전 부총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진행 중이다.
“선거사무실 임대료 지급 후 ‘캐시백’ 요구”
이 투서는 구체적으로 지난해 5월 18일 서울 서초갑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마친 후 각 캠프에서 선거 비용을 정산하던 시기에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에 전달됐다. 총 A4용지 세 페이지 분량으로 이 전 부총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정치자금법 위반 정황이 글로 풀이돼 있다. 증거자료로는 이 전 부총장의 선거 캠프 총괄자와 회계책임자 간 카톡 메시지 캡처본이 첨부됐다.
투서에는 ‘2022년 3월, 대선과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 민주당 서초갑 사무국장 손○○이 서초구 의원 장○○ 의원에게 보낸 카톡 내용 중 선거법 위반 및 불법 정치자금 정황’이란 제목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여기서 손씨는 캠프 회계책임자로 일했고 장 의원은 선거 캠프 총괄업무를 맡았다. ‘내방사무실(내방역 사무실)은 손○○이 자신의 6·1지방선거를 위해 일시금 2000만원으로 임대한 사무실임. 이 사무실에 김○○ 외 6명의 TM을 고용하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정근의 지지 선거운동을 함. 그러나 이들은 선관위에 등록하지 않은 운동원이었음.’
이 전 부총장은 당시 두 개의 사무실을 두고 선거운동을 벌였는데 내방역 사무실이 그중 하나였다. 이 사무실의 경우 손씨가 6월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차린 곳으로, 이 전 부총장이 여기를 자신의 것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선관위에 등록하지 않았다는 TM은 텔레마케터, 즉 선거사무소 전화홍보원들을 지칭한다.
이 뒤에는 이 전 부총장이 당에서 지원한 선거 자금을 전화홍보원 수당으로 빼돌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시당에서 정당사무실 임대료로 내려온 900만원을 임대에 사용한 것처럼 꾸미고, 정작 미등록 TM 선거운동비로 전용한 점. 이들에게 손○○(정당 사무소 회계책임자)은 120만원씩 계좌 송금하였고, 증거가 남을 것을 우려하여, 재송금받고, 현금으로 인출하여 다시 지급한 정황.’
이와 관련해 손씨가 장 의원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에는 다음의 내용이 담겼다. “목돈이 없다 보니 회사돈에서 960만원을 제 상여금으로 설정한 후 세금 제외하고 840만원을 현금으로 뺐습니다. 총 7명 중 김○○, 오○○, 이○○, 박○○님 입금 완료했으며 나○○, 이○○, 조○○님 세 분은 오늘 밤 12시에 입금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체 한도 초과로 그렇게 되었다고 티엠분들게 말씀드렸습니다.”
메시지에서 열거된 7명 인사들은 캠프에서 근무했던 전화홍보원이다. 이 전 부총장은 지난해 9월 선거운동원에게 법정 기준 이상의 돈을 지급한(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규정에 맞게 수당·실비 등을 제공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이유로도 선거운동과 관련해 금품을 제공하거나 제공할 의사를 표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이 콜센터 개설 후 모집한 전화홍보원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봤다. 그 내용이 고스란히 이 투서에 담긴 셈이다.
투서에는 이 전 부총장이 캠프 관계자들에게 자신이 치른 선거비용를 캐시백 형태로 다시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반포 쇼핑 사무실(6동 지하 7호 이정근 선거캠프)은 그 지역 시의원 김△△이 자신의 선거에 쓸 목적으로 임대한 사무실임. 이곳을 이정근 위원장은 본인의 선거사무실로 전전세 임대한 것으로 꾸미고 김△△ 계좌로 300만원을 이체한 후 현금으로 되돌려 받았다고 함. 이러한 말을 이정근은 김△△ 의원을 시켜 은근히 손○○을 압박(900만원을 달라는)하는 내용.’
반포 쇼핑 사무실은 이 전 부총장의 또 다른 선거사무실 중 한 곳이자 당시 시의원이었던 김씨가 지방선거 3선 출마를 위해 마련한 공간이었다. 이 전 부총장은 김씨에게 지급한 임대료 300만원을 되돌려 받았고, 이를 근거로 손씨에게도 자신이 줬던 돈을 내놓을 것을 압박했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손씨는 카톡에서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김△△ 의원님이 양 실장에게 전화해서 반포사무실 300(만원) 받은 거 위원장님께 돌려줄 거니 내방사무실 900(만원)도 저에게 돌려주라는 뜻으로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제3자인 양 실장에게 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가지만…. (중략) 더 이상 돈 같고(갖고) 저한테 말씀 없으셨음 좋겠습니다. 스트레스 만땅입니다.” 지난해 11월 이 전 부총장은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추가 기소된 바 있다.
지역의 당 관계자들 말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투서에도 나타나듯 매 선거 때 자신이 직접 사무실을 차리지 않고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 사무실을 자신의 것처럼 활용했다. 지난해 6월 이 전 부총장에게 금품을 공여한 혐의를 받는 사업가 박우식씨와 민주당 인사들 간 대화 녹취록에는 “이 전 부총장이 공천도 확정하지 않은 선거 출마 예정자들에게 선거사무실부터 모두 다 차리라고 강요했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겨 있다.
“돈 갖고 그만해라. 스트레스 만땅”
이 투서 말미에는 ‘본 사안은 이정근 지역위원장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지방선거 공천을 앞둔 출마예정자를 압박, 불법행위를 강요하고,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사안입니다. 해당자를 색출하여 엄벌에 처해줄 것을 요청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투서는 당시 민주당 서울시당에 우선적으로 전달됐지만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자 선관위에 다시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일련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전 부총장이 지역 사람들 시켜서 매번 자신 돈 안 쓰고 선거를 치른 건데 서초갑이 험지이다 보니 당과 당 인사들의 자금 지원도 상당했다”며 “선거 비용 보존받은 것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이 전 부총장은 선거를 치를 때마다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이 전 부총장은 재판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이씨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선거운동을 위해 콜센터가 운영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씨는 선거운동원들에게 얼마의 돈을 지급하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다”며 “인력 동원과 수당 지급은 공동 피고인인 장씨와 손씨가 맡고 있었다”고 밝혔다. 변호인 측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재판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선 드릴 수 있는 말이 없다”라고 말했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