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 백지도 출처 : https://rgm-79.tistory.com/713
그림판으로 영역 표기한 거라 퀄리티 자체는 상당히 조악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국가 영역의 표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만 했습니다. ㅎㅎ...
광개토대왕의 즉위직후 4세기 후반의 고구려 판도입니다. 이 지도에서 영역상으로 표기되지는 않았지만
서쪽으로는 모용선비족의 후연과 거란이, 북쪽으로는 부여가, 동쪽으로는 숙신(말갈)과 동부여가 있었죠.
그리고 광개토대왕의 사후, 고구려의 통치권이 미치는 직속영역은 어떻게 변화하냐면....
이렇게 변화합니다. 서쪽으로는 요동반도를 실효지배하게 되었고, 동쪽으로는 숙신과 동부여를 굴복
남쪽으로는 백제의 수도 한성 근처까지 직접 위협하게 되었으며, 북쪽으로는 부여도 굴복시킨 모습...
* 물론 부여라는 '국가의 체제' 는 존속했습니다.(멸망은 494년)
다만 사실상 고구려의 직할령이나 다름없이 되어 버린 것...
즉, 다면전선이 형성된 국가의 군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구려의 주변세력들인
후연, 거란, 백제, 부여, 가야, 숙신 등을 다 가리지 않으면서 압도적으로 쥐어패버린...
(* 참고로 공식기록상 광개토대왕의 친정은 '무패전승' 의 전적)
더 짙은 붉은색이 광개토대왕 때 확보한 영역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 이후 장수왕대에 확장된 고구려 판도입니다.
사실 이 지도는 장수왕의 흥안령 진출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광개토대왕의 북 · 서방 진출을 강조하려다 보니... ㅎㅎ...
첫댓글 저 때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어땠을까 ㅔ
분열해서 망했겠지..
고구려가 무너진 이유 분석한 걸 보니깐
수렵문화인 국내성세력과 농경문화인 평양세력이 반목해서 외부의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다던 분석도 있던데
나라라는 게 그냥 공격해서 차지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지
세종이 4군6진 개척할 때도 보니깐 땅을 뺏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걸 계속 지배하기가 어려운 거였더라고
사민정책으로 남쪽에 있는 사람들을 압록강 두만강으로 올려보내는데
신하들도 그런 춥고 척박한 땅을 왜 차지해야하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많았다고 하고
아무튼 만주와 한반도는 은근히 문화가 많이 다르다
기후자체가 다름. 만주는 냉대기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