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장성에 '홍길동 생가 답사'(홍길동은 호부호형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 외가집에서 물려주신 오막살이 집에서 살면서
나주시 문평면 '문평초등학교 4학년'때 나주읍내로 이사를 왔다.
읍내라고 하지만, 읍내가 아니고 ,읍내에서 4k.m나 떨어진 나주의 산골에서 처가 살이의
준 재산으로 살림을 붙이고 살다가 나주로 이사를 온 것이다.
그래서 나주초등학교 5학년으로 전학을 온 것이다.
학교 다닐 때 분단장도 못 해 본 사람이 대 나주초등학교 48회 동창 부회장까지 맡게
되었으니, 시골 촌 놈치고 출세를 한 것 인지 아리송하다. 회장 물망까지 오르니 ...ㅎㅎ
나주초등학교로 전학을 오니,꼭 농촌에서 나주읍내의 크나 큰 학교로 유학을 온 기분이다.
면(面)단위 시골학교에서 4개반의 256명이 다니는 나주초등학교 하고는 비교가 않 되는
농촌의 학교이다.
나주초등학교는 일제강점기때 세워진 초등학교로,사진을 보면은 일본 교사들이 일본옷을
입고 ,총칼을 차고 있는 모습이 ,개교 110년쯤 되는 나주에서는 제일큰 명문초등학교임이
되리라고 본다.
나주읍은 교육의 도시다. 현재는 나주시 ....
현재에도 '나주 동신대'가 있으며, 혁신도시에 '한전 공대'가 설립 되어 가고 있는 추진중에
있다, 그러니 대학교가 2개가 들어서는 도시이고,현재 발전하는 호남의 도시이다.
우리가 같이 졸업한 친구들이 광주 서중 일고,전남여고 등 당시 명문고를 많이 들어가 고 똑똑한
친구들이 많이 있다. 나주초등학교로 전학을 와서 2년 남짓 하니,졸업이란다 .
나주 초등학교 정문앞에서 졸업식을 마치고 서로 헤어지는데 그렇게 서운할 수가 .....
그 서운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노(老)부모님의 은공으로 '나주중학교'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역시 그때 어린 마음에 중학교에 들어가니, 더 성장하고,으젓함을 느끼곤 하였다.
교복이라고 하여 보아야 검정 물로 들인 '무명베'의 교복으로 어머니의 정성이 깃든 교복이며
검정 운동화를 사 주신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때까지는 검정고무신이 생각이 난다.
중학교 들어가니, 교과서를 사서 구입하여야 하는데 ......
새 책을 구입할수가 없어, 이웃 동네의 선배님의 책을 구입하기로 ,당사자 합의로 선배님이 쓰신
중학교 책들을 과목별로 계약을 치룬 것이다. 국어책은 좀 깨끗하니 얼마, 수학책은 좀 더러우니
얼마하고....
영어책은 얼마하고 하여 흥정하여 총 중학교 교재를 구입하였다.
지금 생각하여보아도, 그 어린시절의 헌책 구입의 계약은 양당사간의 합의하에 어른스럽게
계약을 치룬 기억이,돈은 어머니가 주시고..
그리고 아직 구입하지 못한 책은 학교에서 새 책으로 구입하여 나의 중학교의 학창시절이
지나 간 것 같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보지 못 한 '영어'책과 글씨가 신기하기도 하여 열심히
공부를 하여 영어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머나 먼 4k.m의 산길의 재(嶺)를 넘어 다니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
전체 중학교 학생수가 21개반 1200 여 명이며, 한 학년7개반에 420 여 명 쯤이다.여기서 전체
5%안의 상위권으로 들어 갔으나...
광주고등학교를 원서를 다 써 놓고 유학을 가지 못 한게 평생 나의 한이 었다. 그러나
나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울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나의 한(恨)이 풀리는 것 일까?
이 글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저 세상에 계신 부모님의 고마움을 이제사 느끼며,자식사랑의
부모님의 사랑을 어찌 헤아리기나 하였을까요? 큰 사랑으로 품어 주신 부모님께 사후 나마
감사한 마음으로 이 글로 회상 해 봅니다. 부디 편안하시게 영면하여 주시기를 ,,,,,
첫댓글 부모님의 고마움 두고두고 갚아야겠어요.서울로 유학 보내기 숩지 않았을텐데.님에 실력두 서울로 보낼만한 실력이었겠죠~^^
감사합니다
부모님의 고마움은 ....
그러나 서울로 유학은 갈수 있는 처지는 못되고 ,둘째누나가 계셔서 나스스로 올라갔습니다
꿈은 저 서해안의 초등학교에서 섬마을 선생님이 꿈이었나, 서울시 공직으로 정년을 ....
@만장봉 아~그러셨군요.즐건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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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유학간거 잘했나요?
예나 지금이나 서울로 유학을 가니, 그리고 직장도 서울에서 잡았으니
서울시우회 문학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 잘 하신것 같습니다
하늘나라 부모님도 흐믓하게 지켜보실겁니다
감사합니다
피터님의 글에 제가 댓글을 못달고 ...
제가 나이가 있어서 머리가 좀 띵합니다 이해를 ....
감사함을 전합니다
님은 부모님의 은혜를 많이 입은 분이라 생각합니다
그 세월이 얼마나 척박한 시절이였습니까 그래도 공부를 하셨으니 ..부러워요
부모님의 고마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나이도 많으신 어머니 ,45세에 낳으셔 ,그렇게 사랑한 아들
그렇게 헌신한 아들 ....
가난해도 아들이라고 가르치신 부모님 ....
교과서와 교복이
어떤 들 공부를 할 수 있음이 전부겠습니다.
어린 나이에 배움의 중함과 구체적인 진로를 꿈꾸시고 실천하신 만장봉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겠습니다.
그렇게 가난하여도,공부를 하여 나의 살길을 찾은거 같습니다
이제는 내인생이 이렇게 라도 살아준게 다행으로 보입니다
나이는 들어가니, 자꾸 어린시절의 추억이나 더듬고 삶의 즐거움을 찾고
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농촌에 그냥 살아간것 보다 공부는 더 많이 한거 같습니다
주경야독, 끊임없이 책을 보았던 그 정열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