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의 히트곡 ‘소원을 말해봐’에 등장하는 행운의 여신이 지니(Genie)다. 코란에서 영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진(Jinn)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흔히 ‘램프의 요정’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천일야화에서는 램프를 문지르면 연기가 뿜어 나와 소원을 들어주는 거대한 지니로 바뀌는데, 마치 그런 모습의 무기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등장하였다.
바로 핵폭탄인데 램프의 요정처럼 갑자기 솟아오르는 버섯구름은 어느덧 새로운 무기의 상징이 되었다. 이처럼 핵 시대가 도래하자 이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무기들이 속속 등장하였는데 그중에는 상식을 초월하는 것들도 있었다. AIR-2 지니(Genie)도 그러한 핵무기 중 하나였다.
(좌)M-65 원자포의 실사격 훈련장면. 폭발후 버섯구름이 생생히 보이는 거리에서 전술 핵포탄을 발사했다.
(우)공대공 핵 로켓 AIR-2A 지니의 모습. 핵폭발의 위력으로 적 핵폭격기를 격추시키려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핵의 무서움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냉전 초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불벼락을 내리는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방점을 찍은 미국은 유일 핵보유국이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를 혼자서 좌지우지할 기분 좋은 꿈에 부풀었다. 비록 종전과 더불어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이 새로운 세계질서로의 편입을 거부하고 팽팽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냉전이 개시되었지만 필살기인 핵폭탄의 보유는 첨예한 체제경쟁에서 미국이 상대방을 충분히 앞서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렇지만 불과 4년 후인 1949년 9월, 소련이 핵폭탄 실험에 성공하게 되자 미국의 자만심도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핵폭탄의 무서운 폭발력만 알고 있었지 방사능이 더욱 무서운 죽음의 그림자라는 사실은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핵무기 만능론이 거세게 몰아친 냉전기간 초기에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공공연히 핵폭탄의 사용이 거론되었을 만큼, 인류는 핵의 진정한 무서움을 모르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지금 생각으로는 말도 안 되는 무기가 이 시기에 개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배치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버섯구름이 생생히 보이는 사거리에서 전술 핵폭탄을 발사하는 M-65 원자포도 그런 경우였다.
(좌)1950~1960년대에 미 본토 방공 임무에 투입된 F-89 스콜피온(Scorpion)
(우)초기 공대공 요격 로켓인 Mk4 마이티마우스 로켓포드
적의 핵 폭격기를 막아야 한다. 그런데, 방법은?
핵폭탄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같은 여러 종류의 장거리 발사체에 장착하는 것을 정석으로 여기지만, 1950년대 미소가 핵무기로 중무장하며 냉전시기를 열어갔을 때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핵폭탄을 목표지점까지 운반할 수 있는 플랫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당시에는 히로시마 경우처럼 폭격기로 적진까지 날아가 투하하는 방법이 유일무이하였다. 이런 이유로 미소 모두 상대편 깊숙이까지 침투할 장거리 전략폭격기의 개발에 서둘렀고, 한편으로는 침투하는 적의 폭격기를 방어할 고성능 방공 요격기의 필요성도 더불어 제기되었다.
지금은 미사일을 이용한 각종 방공 체계가 보편화되었지만, 당시에는 적기의 요격은 사실상 제2차 대전 당시의 방법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공격에 나선 폭격기를 전투기로 요격하여 격추시키는 방법뿐이었다. 이때 미국은 노스롭(Northrop)의 F-89 스콜피온(Scorpion) 전투기를 미국 본토 방어전용 요격기로 개발하여 1950년부터 실전배치하였다. 이 요격기는 적 폭격기가 미국 본토까지 침투하였을 경우, 핵폭탄 투하 전에 완벽하게 피격시키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았다. 그래서 전통적인 고정무장인 기관포를 제거하고 Mk4 마이티마우스(Mighty Mouse)라고 불리는 다연장로켓 발사기를 장착하였는데, 정밀한 미사일 체계가 없었던 당시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기관포만으로 핵폭탄을 운반하는 정도의 중폭격기를 요격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제2차 대전을 통해 입증된 상태여서 폭격기에 빠르게 다가가 강력한 로켓탄을 집중 발사하여 단 번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는 이러한 방식은 당시로는 훌륭한 요격 방법이었다. 그런데 당시 군부의 책임자들은 이러한 방공 체계도 별로 신뢰하지 않았는지 빗맞아도 적의 폭격기를 완전히 분쇄해버릴 체계를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핵이었다.
(좌)1957년 실탄두 사격 훈련 후 폭발한 AIR-2 지니의 버섯구름. 네바다 핵실험장 상공 4.5km에서 폭발했다.
(우)1982년 캐나다군의 CF-101에서 발사되는 AIR-2 (훈련 탄두 발사 장면)
그 시대의 자화상 우리의 핵을 우리 하늘에 폭파시켜도…?
당시 미국의 방공체계를 연구하던 담당자들의 생각이 어떤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 본토를 공격하려는 적의 폭격기를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완전히 없애버리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이것은 적의 핵 공격을 어떻게 해서든 무력화 시키겠다는 미국의 결연한 의지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핵을 막기 위해 망설임 없이 핵을 사용하겠다는 발상은 경악스러울 뿐이다.
미국은 1957년 MB-1(이후 AIR-2 지니로 변경)로 명명된 전술 핵탄두 탑재 공대공 로켓탄을 개발하였는데, 이것을 다연장로켓인 마이티마우스 대신 F-89 요격기에 탑재하여 소련 전략 폭격기의 미 본토 침투 차단에 투입하였다. 지니는 강력한 다연장로켓으로도 적의 폭격기를 격추시키지 못한다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여 탄생한 무기라 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핵폭탄의 폭발력을 이용하여 흔적도 없이 적기를 날려버려 미국을 완벽하게 지키겠다고 당시의 방공 책임자들은 이처럼 결론을 내어 버린 것이었다.
비록 지니가 살상력이 한정 된 방어용 전술 핵무기이기는 하였지만, 단지 적의 폭격기를 잡기 위해 그것도 자기 머리 위에다 핵폭탄을 쏘는 행위도 서슴지 않겠다는 자세는 당시 냉전시기의 대립이 얼마나 심각하였는지 알려주는 예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당시 기술로 이것이 확실한 요격수단이기는 하였겠지만 핵폭탄을 이용하겠다는 것 자체가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할 뿐이다. 큰 피해보다 차라리 작은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것으로 밖에는 생각 할 수 없는 것 같은데 방사능 오염의 피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았다면 과연 이러한 방어체계를 생각 할 수 있었을지 상당히 궁금해진다. 이것은 2011년에 있었던 후쿠시마 원전사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도 뚫리는 하늘
어쨌든 핵무기를 장착하여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장을 갖춘 전투기가 되었던 F-89는 17년 이상 1,000여대가 배치되어 1969년까지 미 본토 방어임무에 투입되었고 핵 로켓인 지니는 F-106처럼 다양한 여러 종류의 방공 전투기를 통해 1985년까지 운용되었다. 특이한 점은 캐나다 공군에서도 지니를 CF-101 요격기에 탑재하여 사용하였다는 점인데, 이러한 사실은 지니를 소련의 폭격기로부터 북미 전체를 방어하는 최일선의 방어체계로 사용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무리 핵 만능주의가 판치고 이데올로기가 이성을 압도하던 시기였지만 무식한 것인지 아니면 용감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뿐이다. 만일 오늘날 이러한 방공요격체계를 만들겠다고 하면 과연 국민들이 가만히 있을까? 1950년대 방공책임자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지니는 탄생하였지만 과유불급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9.11 테러 당시를 회상하면 아무리 기술적으로 완벽한 방공망을 구축하였어도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있나 보다. 당시 자료를 보면 비상사태를 감지하고 미 공군의 요격기들이 출격하였음에도 막상 민항기라서 격추를 망설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미국의 심장부가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던 것을 보면 완벽한 방공망은 어쩌면 영원히 이루기 힘든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AIR-2A 제원
길이: 2.95 m 직경: 0.44 m 익폭: 1.02 m 발사중량: 373 kg 최대속도: Mach 3.3 사거리: 9.6 km 유도방식: None
탄두: W25 nuclear fission, 1.5 kiloton yield 배치시기: 1957 퇴역시기: 1965
출처 http://bemil.chosun.com/
첫댓글
근데 어차피 완벽하게 막지 못할 미사일이라면 대도시에 떨어지는것보단 방사능피해가 우려가더라도 공중에서 소형 전술핵으로 일단 막는게 우선 아닌가요?
최근 md다 머다 해도 못막으면 일순간 천만명이 증발하는데 최종 방어 카드로서 방사능피해로 고생하더라도 공중에서 핵요격시켜버리는게 맞는거 아닌지..
그 피해가 후덜덜 합니다여.............
체르노빌처럼여............ ㅜㅜ
비슷한 내용을 다룬 Unstoppable, 2010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유독물질을 가득실은 화물기차가 폭주해서, 시내로 들어가는걸 막기위해 시내진입 직전에 폭파시킨다는 내용인데 결론은 스포일방지차원에서 생략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언제나 골치아픈 명제임
소수를 위한 다수희생을 현실화시킨게 지금의 사회 체제니까요
(소수 부유층을 위한 대다수 서민들의 삶? 요런거)
ㄷㄷㄷ
ㄷㄷㄷㄷ
핵만능화가 대세였던 시대였으니깐요
무려 핵으로 요격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