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28~36 /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
(눅 19: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눅 19: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눅 19: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눅 19: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눅 19: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눅 19: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눅 19: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눅 19: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눅 19: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우리나라는 독립이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삶을 뒤돌아보면 소리 지르며 하나님을 찬양할 때가 있었습니다.
죄사함을 받았을 때,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 시험에 합격했을 때, 처음 교회에 부임했을 때, 교회를 개척했을 때,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와서 독립된다고 믿었을 때 속이 터지라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보다 더 찬양할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
바로 사탄의 나라를 물리치고 하나님 나라가 독립될 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감격적인 순간을 알고 목이 터져라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소리 질러 찬양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 질러 찬양할 것이라고 합니다.
28~35절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으로 앞서서 가십니다.
예수님은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오셨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오리쯤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제자 중 둘을 뽑아 맞은편 마을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곳에 가면 거기서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끌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스가랴의 예언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나귀를 풀면 주인이 "어찌하여 남의 나귀를 풀어가느냐"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주가 쓰시겠다"라고 대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풀어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 무슨 그런 도둑질을 시키십니까?” 하고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과연 주인이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주인에게 주인이 쓰시겠다고 담대히 말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귀를 가져가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나귀 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제자들은 순종하여 나귀를 끌고 오는 것을 통하여 예수님이 나귀와 나귀 주인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나귀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나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이 땅에 있는 나귀의 주인은 나귀의 관리자입니다.
예수님은 나귀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자신이 필요한 때 나귀를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도 우리의 직장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가 쓰시기를 원하면 관리자는 언제든지 모든 것을 풀어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쓰신다고 하면 풀어진다’는 것을 배웁니다.
풀어주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풀어주면 쓰임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주님께 쓰임 받겠다고 하면 풀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편에서는 우리가 먼저 쓰임 받겠다고 하면 매인 것이 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매여 있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질병에 매여 있고, 물질에 매여 있고, 인간관계에 매여 있습니다. 사건 사고에 매여 있고 죄와 사망에 매여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 것에서 풀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겠다고 하면 우리의 병에서 풀어주시고, 가난에서 풀어주시고, 인간관계의 맺힌 것에서 풀어주십니다. 죄와 사망에서 풀어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자신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소원을 받으시고 그를 로마와 세계 선교에 쓰시고자 하셨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유대인에게 붙잡히기도 하고 14일 동안 폭풍을 만나기도 하고 독사에게 물리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선교에 쓰임 받고자 하는 바울의 소원을 받으시고 이 모든 것에서 풀어주셨습니다.
36~38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불꽃으로 오셔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초라한 인간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스가랴에서 메시야는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겸손하시므로 나귀 새끼를 탄다고 예언하였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겉옷을 펴서 존경을 표시하였습니다.
당시에 평화의 왕이 노새를 탔습니다. 예수님도 평화의 왕이므로 나귀를 타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우리를 통치하시되 가이사 아구스도처럼 힘과 권위로 통치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깊은 이해와 사랑과 섬김으로 통치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을 십자가에서 감당하여 주시며 우리의 왕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님이라는 푯말이 풑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죽기까지 믿고 기다려 주심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우리의 죄값을 친히 치러주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타신 나귀 위에다가도 겉옷을 펴시고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도 겉옷을 펴서 존경과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이 감람원이라는 산에 오시자 제자의 온 무리가 종려나무를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능한 일을 본 자들입니다. 이들은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보았습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높으신 분이 이스라엘을 로마 압제에서 구원하실 것을 믿고 찬양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7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바벨론과 페르시아와 헬라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곳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고 목이 터져라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이스라엘이 과거 430년 애굽의 노예에서 나오고 홍해를 건널 때도 이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다시 한번 그런 구원이 재현되기를 바라며 예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43~44 바리새인들은 이들이 예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듣고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영접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무리들이 예수님이 선지자인데 잘 모르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찬양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무리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찬양하는 제자들을 책망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찬양하는 무리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찬양하지 못하게 하는 책망해 달라는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찬양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 질러 찬양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 후에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리고 사탄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사탄의 통치를 받으면서 질병이 오고 분쟁이 오고 가난이 오고 죽음이 왔습니다.
사탄의 통치는 인간의 죄의 결과이므로 정당한 것입니다.
이들을 사탄에게서 독립시켜 주려면 사탄에게 죄의 값을 치러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를 독립시켜 주시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더 큰 소리로 하나님 나라의 독립을 찬양해야 합니다.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널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찬양해야 합니다.
바울이 찬양했을 때 쇠사슬이 벗겨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모암과 암몬과 전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복을 입은 찬양대를 군대 앞에서 찬양하게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친히 모압과 압몬과 싸워서 승리를 주셨습니다. 주님이 죄인들의 구원을 이루어주실 줄을 믿고 찬양해야 합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해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고 찬양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