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성 토마스 사도 축일) 연결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의 신비로운, 성스러운 몸이다. 교회는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이 땅에서 하시던 일을 계속 이어 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이 머무시는 하느님의 집이다. 예수님이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행하셨던 거처럼 교회는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것만을 실천한다. 그러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고, 거기에는 하느님이 사시지 않는다.
오늘 첫째 독서 에페소서는 교회가 어떤 것인지 건물에 비유해 아주 잘 설명한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에페 2,20-21) 건물에서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한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기초이고, 그 아래 기초들의 기초인 모퉁잇돌이 그리스도 예수님이다. 그런데 모퉁잇돌과 기초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땅속에 깊이 박혀 있어야 할 기초가 훤히 드러난 건물로 들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남모르는 봉사와 희생과 헌신, 구호나 외침으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런 것들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아가고, 또 그렇게 하지 못해 가슴을 치며 속상해하는 이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예수님이 먼저 그리고 사도들과 그들을 이은 성인과 순교자들이 그렇게 사셨다.
우리는 모두 바로 그런 사람들, 그런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 성직자와 수도자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라고 초대받았고, 그러겠다고 응답하며 세례받았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다. 그리스도인은 더더욱 영적이어야 한다. 아버지 하느님 뜻에 순종해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님의 몸이고, 하느님의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 사이에 차별이 없는 건 당연하다. 피부색, 언어, 문화가 달라도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으로 하나가 된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에페 2,19)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토마스 사도는 의심하는 사람의 대표가 아니다. 사도는 예수님과 연결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사람이다. 예수님이 당신을 해치려고 하였던 베타니아 마을로 가시려 하자 이를 말리던 다른 제자들과 달리, 토마스 사도는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요한 11,16)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그만 부활하신 주님을 뵙지 못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는 말은 못 믿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과 다시 연결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뵈었다고 기뻐하는데 토마스 사도만 혼자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었다. 예수님과 다시 연결돼서 그도 기뻐할 수 있게 됐다. 그 기쁨이 이 고백 안에 담겨 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이제 우리는 사도보다 더 행복하고 더 기쁘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예수님을 뵙지 않고도 믿고, 잘 못하고 자주 실패하는 데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기초, 마음속 깊은 곳에 계신 주님의 영이 이끄시는 길, 하늘나라로 이어진 길이다. 토마스 사도가 예수님께 물었던 바로 그 길이다.(요한 14,5)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요한 14,5)
예수님, 그 길은 온 세상에 다 드러나 있습니다. 단지 길이 좁고 문이 좁아서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을 따름입니다. 저희는 빛과 소금입니다. 한밤중이라도 촛불 몇 개면 충분하고, 온 세상에 소금만 있다면 살 수 없을 겁니다. 왜 저희만 주님 목소리를 알아듣게 됐는지는 나중에 주님을 뵈면 알려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찾게 도와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