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아래의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건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글을 읽고 몇가지 생각을 적어본다.
《美대사관 신축 특혜 요구》
주한 미국 대사관이 대사관 신축 공사를 추진하면서 주차장법을 적용하지 말 것과 허가 절차가 까다로운 주택건설촉진법 대신 간소한 건축법을 적용해 달라는 내용의 특혜를 외교통상부측에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서울시에 따르면 미 대사관측은 2006년 입주를 목표로 업무시설 15층, 공관 숙소 8층, 군인 숙소 4층 등 연건평 5만4000㎡ 규모의 3동(棟)짜리 대사관 건물을 서울 중구 정동 옛 경기여고 자리에 짓기로 하고 ‘교통영향평가를 위한 사업계획서’를 지난달 24일 중구청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사업계획서 상의 주차공간은 주차장법과 서울시 관련 조례 등이 규정한 법정 주차대수의 20%에 불과해 교통영향평가를 통과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 미 대사관은 이에 따라 미비한 주차공간을 예외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 대사관측은 또 직원 숙소 등 공동주택을 업무시설로 인정해 줄 것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건설촉진법을 적용받는 공동주택은 건축허가 절차가 건축법을 적용받는 업무시설보다 까다롭기 때문에 업무시설로 인정받으면 주차면적, 용적률 등에서 혜택을 받게 된다.
최근 중구청으로부터 사업계획서를 넘겨받은 서울시는 “일반 건물이라면 당연히 통과되지 않겠지만 미 대사관 신축 건물이고 외교부의 협조 요청까지 받아 고민”이라고 밝혔다.
미 대사관은 현재 상세 설계 작업을 하고 있으며 교통영향평가 심의를 통과하면 내년 초 건축 허가를 받아 공사를 시작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미 대사관측은 “서울시와 협의가 진행중인 사안이므로 아직은 무엇이라고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84년 서울시와 미 대사관측은 95년 7월까지 한미간 양해각서를 통해 대사관 건물을 옛 경기여고 자리로 옮기기로 합의했으나 미국측은 그동안 예산 때문에 이전을 미뤄왔다.
미대사관에 대한 기사를 읽고 건축설계를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건축법을 열심히 지키고 있는 한국국민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느끼게 하고 있다. 문화재에 보호에 대한 차원은 뒤로하고서라도 내가 잘 알고 있는 '건축법'에 대한 것만을 볼 때 대한 민국이 과연 독립국인가를 의심할 정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부패의 복마전이라고 하는 건축공무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현실에서도 문화재 옆에서 '문화재법'과 '건축법'을 위반하면서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단지 미국대사관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법을 어겨가며 집을 짓겠다는 발상과 그것을 묵인하여주라는 외교부의 태도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사항이다. 기사의 내용대로 '주거용 건물을 지으면서 업무용시설로 주차장법을 적용하여 달라'는 것은 한마디로 국내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 사는 어느 누구도 이러한 법에서 예외를 적용 받은 적이 없다. 이것을 청와대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국사독재시절에 청와대의 건물의 설계를 경험한 나로서는 이번의 미대사관의 요구는 한마디로 대통령보다 더 위에서 놀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행위는 미국이라는 존재는 우리 나라에서는 무소불위의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재의 보호라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글을 읽고 어떤 분은 '국내법의 효력이 미치는 소관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바램은 한마디로 아예 꿈도 꾸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미 그간의 미국이 우리 나라에서 한 행위를 고려하여 볼 때 미국은 이미 우리의 국내법을 지킬 생각이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내법인 '건축법'을 지키지 않겠다고 이미 공언한 사람이 우리 나라의 또 다른 국내법인 '문화재보호법'을 지킬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미국은 한국이라는 자기의 속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생각이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미국의 궁궐파괴행위는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미국의 태도보다도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정부당국자들의 태도이다. 우선 우리 외교부에 있는 공무원들의 자질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고 덕수궁에 대한 역사적인 검토가 있었다면 미국대사관 이전에 대한 최초의 협상에서 지금과 같은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이해가 있었다면 아마도 조금 더 외곽으로 이전을 주장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외교 당국자의 한국문화에 대한 무지는 이미 기존의 문화재 반환협정 등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국내법을 준수하는 전제하에서 협상을 진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대한 종속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주권국가의 공무원으로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내법인 '건축법'을 위반을 묵인하도록 하는 '권고 공문'을 지자체에 발송하였다는 것은 한마디로 주권국가의 공무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내법이 국제적 관례에 비추어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국제법과 관계가 없고 위정자를 위시한 모든 국내에 거주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법을 미국대사관이라고 하여 예외로 적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외교부가 있는 이상 우리의 자주외교라는 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고 그에 따른 문화재의 훼손이 발생되는 것은 불보 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상황이 어찌하였든 간에 많은 민간단체에서는 서명운동이라도 하여 이러한 불법행위가 더 이상 자행되지 않도록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