薰習과 界
긍정적인 측면(修行)과 부정적인 측면(오염)을 모두 포함하는
북방에서는 많이 사용되는 薰習이라는 표현을 니까야(vāsanā)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로 이해될 만한 내용이 없지는 않습니다.
薰習의 또 다른 측면은 잠재성향으로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잠재성향은
과거 누겁의 업이 현재 일상생활 중에도 혹은 수면 중에도 그 근저에서 작동하고 있는 측면과
금생에서 새롭게 형성된 업이 미미하나마 훈습되어 그 다음 찰나 이후에 일부 작동하고
이러한 습관이 긍정적이든지 부정적이든지 창대하게 물들면
금생에서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그리고 미래에서도 발휘할 수도 있지 싶습니다.
그러한 예 중에 하나가
yaṃ kho, bhikkhu, divā kammante ārabbha rattiṃ anuvitakketi anuvicāreti —
ayaṃ rattiṃ dhūmāyanā.
비구여, 낮에 행한 것에 대해
밤에 사유하고 고찰하는 것이 밤에 연기를 내뿜는 것이다.
<*밤 : 명색상태(바왕가) - 훈습 - 有(化)>
yaṃ kho, bhikkhu, rattiṃ anuvitakketvā anuvicāretvā divā kammante payojeti
kāyena vācāya manasā — ayaṃ divā pajjalanā.
비구여, 밤에 사유하고 고찰한 것을
낮에 몸과 말과 마음으로 행위에 적용시키는 것이 낮에 불타오르는 것이다.
<*낮 : 육입상태 - 현행 - 業>
[낮에 몸과 말과 마음으로 행위에 적용] : (안이비설) 身 <口> 意
여기서 anuvitakketi anuvicāreti는 66법의 尋伺(vitakkavicārā)의 유의어로 읽으시면 됩니다.
즉 60법의 6愛 다음에 나타나는 마지막 두 부류인 6尋-6伺와
또한 59법의 6愛 다음에 나타나는 마지막 두 부류인 6界-5온界는
모두 이러한 薰習(잠재) 혹은 界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6內(/6外)-6識-[6觸-6受, 그리고 6想-6思]-6愛는
6界-5온界 혹은 6尋-6伺로 수렴되는 훈습의 측면도 있지만
이미 훈습된 과거의 잠재성향(心行)이 드러나는 현행(意行)의 측면이 더 강합니다.
그 현행의 측면이
kāyena vācāya manasā라는 표현이 나타나면 태어나서 죽기까지[生死間] 생겨나는 業을 말합니다.
身口意 3업은 新業(nava kamma)이고
6內에 대해서는 舊業(purāṇa kamma)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識緣 名色 혹은 名色 緣 識의 명색에서 생겨나는 尋伺(思惟),
그리고 이러한 尋伺(思惟)을 하고서 생겨나는 口行을 고려하면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o]
6內를 기준으로 그 이전의 舊業과 여기서부터 생겨나는 新業인
(眼耳鼻舌)[身구意].
[so navañca kammaṃ na karoti, purāṇañca kammaṃ phussa phussa byantīkaroti.
新業을 짓지 않고 舊業은 接경험하고 接경험할 때마다 끝장낸다.]
알라야식의 연원에 관한 一考 ―上座 슈리라타의 18界 이해를 중심으로 권오민/경상대학교 철학과 / 인문학연구소 [펌 https://blog.naver.com/dlpul1010/221178806261]
‘알라야식(ālaya vijñāna, 阿賴耶識)’은 유식사상의 핵심적인 개념으로, 초기 유가행파 문헌에서는 그 異名으로 種子(bīja)나 界(dhātu) 등이 언급된다. 첫째, 상좌는 온·처·계 3科 중 界의 실유만을 인정하였다. 둘째, 이에 반해 界는 處의 所依로서 勝義有이다. 그럴 때 법계는 12처의 소의라고 할 수 있다. 즉 상좌는 界를 種種의 법이 훈습하여 이루어진 종자·공능 등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隨界(anudhātu) 혹은 舊隨界라고 하였다. 셋째, 상좌는 수계의 마음과 이로부터 생겨난 현행의 마음(즉 了別境識)을 구별하였다. 아마도 그는 이를 각기 心(citta: 集起)과 識(vijñāna: 了別)으로 이해하였을 것인데, .....
한편 高翊晋은 일찍이「阿含法相의 體系性 硏究」라는 논문에서
“18界는 六六法(6根·6境·6識·6觸·6受·6想)에 대하여 그것의 실상을 밝힌 眞如法界이며, 六六法은 그것의 진여법계인 18계를 근거로 緣起한 有爲世間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의의 可否는 별도의 문제로 제켜두더라도 ‘界’를 蘊·處 등과 구별하고 있다는 점만은 설일체유부 계통과는 다른 불교사상사의 또 다른 일면을 예고한 탁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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界(dhātu)에 대해서 병고 고익진 선생님은 진여법계라는 표현까지 했지만
界는 薰習된 틀(型, schema, flactal)이면서 現行하는 뼈대(骨格)로 생각된다.
界를 연한 想見尋(dhātuṃ,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saññā, uppajjati diṭṭhi, uppajjati vitakko”ti.)
界를 연한 sañña-saṅkappa-chanda-pariḷāha-pariyesana-身口意
(kāmadhātuṃ, bhikkhave, paṭicca uppajjati kāmasaññā,
kāmasaññaṃ paṭicca uppajjati kāmasaṅkappo, kāmasaṅkappaṃ paṭicca uppajjati kāmacchando,
kāmacchandaṃ paṭicca uppajjati kāmapariḷāho, kāmapariḷāhaṃ paṭicca uppajjati kāmapariyesanā.
kāmapariyesanaṃ, bhikkhave, pariyesamāno assutavā puthujjano tīhi ṭhānehi micchā paṭipajjati —
kāyena, vācāya, manasā.)
yaṃ kho, bhikkhu, rattiṃ anuvitakketvā anuvicāretvā divā kammante payojeti
kāyena vācāya manasā — ayaṃ divā pajjalanā.
비구여, 밤에 사유하고 고찰한 것을
낮에 몸과 말과 마음으로 행위에 적용시키는 것이 낮에 불타오르는 것이다.
現行 : dhātu ☞ 想 見 尋 ☞ kāyena, vācāya, manasā
薰習 : dhātu ☜ 6界-5온界 ☜ kāyena, vācāya, manasā
現行 : 識 緣 名色, 名色 緣 六處 ☞ kāyena, vācāya, manasā ☞ 6界-5온界
薰習 : 六處 ☞ 6界-5온界 ☞ 名色화 ☞ 名色 緣 識 ☞ 미래 再有(名色) ☞ 未來 生(六處)
[bhūtā bhūtassa upapatti hoti; yaṃ karoti tena upapajjati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viññāṇāhāro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yā paccayo,
tasmiṃ bhūte sati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첫댓글
지수화풍-공-식의 6계,
색-수상행-식의 5온계,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안식 등 의식의 18계
이런 저런 측면으로 분석한 분류이지
모두 욕계(넓게는 색계, 단 18계는 아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3科인 蘊, 處, 界의 상호 연관성은
훌륭한 논문 주제가 되지 싶습니다.
혹시 이런 류의 논문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전에 [Re 시험적 시도]에 올린 내용
界(dhātu)란 심층적이고 原型的인 골격이 되는 뼈대(骨格), 틀(型)을 말한다.
예를 들면 물(H2O)은 H라는 물리적인 기본 뼈대 두 개와 O라는 물리적인 기본 뼈대 한 개에 의해서
다른 물질과는 구별되는 속성을 가진 뼈대(骨格) 혹은 틀(型)을 지니고 있다.
DNA의 AGCT도 이와 같지만 물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요소들을 지닌 유정들도
이러한 정신적인 요소에 의해서 다른 중생과 구별되는 속성을 지니게 된다.
예를 들면 느낌에 민감한 사람, 이념에 민감한 사람 등으로 경향성이 각각 다른 지향을 지니게 되는 것도
이렇게 받아들이는 틀이면서도 潛在되어 있는 틀인 界에 의해 외적으로 顯現되는 類型이다.
欲界 중생이라면 거친 물질에 대한 갈애라는 틀(ṭhita)을 지니고 있고 그 틀로 대상을 內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정신적 육체적인 행위가 外로 표출(paṇihita)되게 되지만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혹은 일시적이나마) 벗어난
色界 중생들은 색이라는 계에 따라 받아들이고 표출한다.
이때 界(dhātu)에 정보(dhamma)를 저장-인출(sati)하는 방식은 相(nimitta) 형태이다.